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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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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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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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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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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글자
20쪽

06화. 일장춘몽

DUMMY

“아아~ 학교 가기 싫다!”

“누군들 가고 싶어서 가겠어.”

언제나와 같은 등굣길. 희세와 함께 걷는 익숙한 길의 분위기. 입이 찢어져라 지겨운 하품을 한다. 희세는 옆에서 냉소적인 말투로 말한다. 안다, 그 정도는. 학교를 안 가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뭐 어쩌겠어. 말이라도 가기 싫다고 의견을 내고 싶은데.

“……너 말야.”

“응?”

오늘따라 말수가 별로 없는 희세. 소풍 갔다 와서 힘들어서 그런가. 나는 피곤해서 어제 일찍 자고 오늘 일어나니 피로가 말끔히 없어졌다. 회복력만큼은 상급인 나니까. 하지만 희세, 아침부터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평소엔 나 깨워줄 때에도, 밥 차려줄 때에도, 또 등교할 때에도 잔뜩 태클 걸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곤 했는데. 오늘은 지나치게 조용하다. 지금 겨우 말을 거는 것에 얼른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할까, 희세는.

“……채유진하고 놀지 마.”

“앙? 뭔 소리야.”

“놀지 말라면 놀지 마!”

“그건 또 무슨 어린애같은 생떼인데.”

뜬금없는 희세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희세에게 되묻는다. 희세는 대뜸 짜증을 낸다. 들어줄 수 있는 말이 있는 거지, 갑자기 유진이랑 놀지 말라니. 설령 엄마나 선생님이 말한다고 해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 않는한은 듣지 못할 내용이다. 아니 애초에 내가 누구랑 놀고 말고를 누가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희세는 유진이랑 만난 처음부터 유진이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했다. 이번 소풍에도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이 많았으리라. 하지만 이 정도로 어린애처럼 막무가내로 우길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희세와 유진이의 사이가 이 정도인데 나란 녀석은 희세랑 유진이가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어리석구나, 나도 참.

“걔…… 좀 정상이 아니라고. 어쨌든…… 놀지 마!”

“유진이가 뭐가 어때서. 착하고 좋은 애인데. 미래랑 민서랑도 금방 친해졌는데. 성빈이랑, 너한테도 솔직히 살갑게 다가가려고 했는데 네 쪽에서 잔뜩 저기압으로 나오니까 영 말을 못 거는 거잖아.”

“아 진짜!! 말하면 좀 들어!! 어쨌든 놀지 마! 적어도 나랑은 엮이게 하지 마! 아니, 너랑도 엮이지 마!”

“하하…… 그러니까, 왜. 단순히 네 마음에 안 든다고?”

“……후우.”

처음으로, 희세에게 조금 골이 난 태도로 말을 꺼내는 것 같다. ‘화났다’ 정도는 아니고, 조금 어이없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 기분이라. 희세는 유진이를 마냥 마음에 안 들어 하니까 제대로 몰라서 저런 식으로 말하겠지만, 유진이랑 같은 반이라 금방 친해진 내 입장에서는 조금 난감하다. 물론 희세와 알고 친하게 지낸 기간이 훨씬 길지만, 그렇다고 옛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려 새로운 친구를 계속 버리라는 건 또 아니잖아.

간단하게 말하자면 유진이 욕하고 매도해서 기분 별로 안 좋다고. 희세도 소중한 친구이지만─친구보다 조금 더 나아간 관계인 것 같지만,─ 유진이도 마찬가지로 새로 사귄 좋은 친구인데. 누구를 선택한다거나 버린다거나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희세는 내 말에 한숨 쉬며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겠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억지로 말하는 것인데. 아니면 약간 골이 난 내 목소리에 더는 말할 가치를 못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미안해진다. 아니, 미안해질 게 아니지. 이런 것까지 희세의 기세대로 행동하면 그럼 내 주체성이 없는 거잖아. 사람은 주체적으로 행동해야지. 그런 게 주체사상 아니겠어. ……뭔가 심각하게 다른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알았어. 맘대로 해.”

“아니, 거기서 그렇게 화낼 게 아니잖아. 친구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안 화났거든.”

“그렇게 말하는 게 화난 거잖아.”

“시끄러. 됐어.”

“아 쫌~”

잠자코 말하는 희세. 대번에 삐친 것이 티가 난다. 예전에는 당당한 신여성(?)인 희세인지라 이런 것에 눈 하나 꿈쩍 않았는데 지금은 이런다. 능글맞은 목소리로 달래보려 하지만 희세는 단단히 삐쳤다. 여자애 특유의 ‘안 삐쳤다’고 말하지만 대놓고 삐친 티를 내는 심리전을 구사하는 희세. 난감한 건 나다. 이런저런 재롱 떨고 계속 말을 걸어 겨우, 학교 앞에쯤 희세의 기분을 풀어줬다. 그래도 영 뚱한 표정의 희세. 복도에서 ‘가.’ 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하아. 그냥, 유진이는 반 친구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굳이 희세하고 엮이지 않게 했어야 하는데.


“좋은 아침~ 응? 뭐 안 좋은 일 있어? 표정이 뚱한데.”

“아 그래. 나까지 그런가.”

“나까지? 무슨 말이야?”

“아하하, 아니야. 그냥.”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방긋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네는 유진이. 방금 전까지 희세와 유진이에 얽힌 일로 얼굴 붉히고 있었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눈치 빠른 유진이는 금세 그런 내 기분을 눈치 채 묻는다. 유진이 앞에서는 거짓말 같은 건 못 하겠구나. 아니면 포커 페이스를 전혀 못 하는 내 성격 탓인지도. 웃으며 대충 넘기려 한다. 말해서 좋을 게 없잖아.

“에~ 왜, 오늘은 우렁 각시가 안 왔어?”

“우렁 각시라니.”

“아침에 와서 깨워주고 밥 해주는 사람 있잖아! 진짜, 여자친구가 알면 뭐라고 할까? 여친 유학 가니까 당당하게 바람 피우는 거?”

“아, 희세 말하는 거구나. 그건 리유도 알아.”

“에에? 그런데 뭐라 안 해? 여자친구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아핳, 그런 면으론 조금, 그렇지.”

‘우렁 각시’라는 비유에 잘 못 알아 들었다가 유진이의 부연설명에 그제야 알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우렁각시라고 해도 되겠구나. 존재감 당당하게 드러내는 우렁각시. 내 말대로 리유도 알고 있다. 그래도 별다른 말은 안 했다. 희세하고도 엄청 친한 리유고, 무엇보다 나를 철썩같이 믿어서 ‘이성적’인 측면으론 결코 아무런 의심도 안 하는 리유이기에. 유진이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악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리유를 안 겪어본 애라면 그런 말을 할 만 하지. 리유는 그런 애니까.

“음, 그러면─ 그 우렁각시랑 다투기라도 했나? 학교 오면서?”

“……독심술 같은 거 하세요?”

“아핳! 눈치는 빠르니까, 나.”

“후우, 뭐. 별 건 아니고. 어쨌든 기분은 안 좋으니까.”

“흐흥. 그렇지, 보통 남자애들은. 말도 안 되는 걸로 여자애가 삐쳐도 자기 잘못 같은 게 남자애들 심리니까.”

“어어! 그렇다니까! 내 잘못 아닌 것 같은데!”

“후후후. 그것까지 이해해줘야 좋은 남자애가 되는 거지.”

한 쪽 눈을 살짝 감으며 나를 떠보는 유진이. 떠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단번에 적중이다. 뭘 숨기거나 하는 걸 잘 못 하는 나는 감탄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상이 적중해 기분이 좋은지 유진이는 귀엽게 웃으며 대답한다. 자세한 건 말하지 않고 한숨 쉬며 대답한다. 유진이 본인이 관련된 일인데 굳이 말해서 기분 나쁘게 할 건 아니지. 유진이 성격 상 그렇게 기분 나빠 할 것 같진 않지만. 유진이는 지극히 공감되는 말을 해 내 말을 이끌어낸다.

“그…… 유진이 너는. 희세 싫어?”

“음─ 왜 그렇게 생각해? 희세가 나 싫어하니까, 나도 싫어해야 해?”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첫대면부터 대놓고 싫어하는 티 내잖아, 희세가. 계속 싫어하는데 너 쪽에서도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헤에. 그런 얘기 했나보구나. 아침에. 그럼, 웅도 네가 나 변호해주다 싸운 거겠네? 흐흥♪”

“……다 들켰네요.”

“아하하,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네. 아니, 좋아. 내 편 들어준 거잖아?”

“……뭐.”

넌지시 물어보니 눈썹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는 유진이. 그녀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말한다. 입맛을 다시며 말하는 유진이. 예상이 너무 척척 들어맞아 내가 다 당황스럽다. 아니면 내가 너무 유추할만한 증거를 많이 뿌리는 걸까. 유진이는 웃으며 눈을 찡긋 한다. 괜히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

“싫지 않아. 오히려 친구가 됐으면 하는걸?”

“그렇구나.”

“그치만 뭐,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지. 싫어하는 걸 강제로 이어 붙이려면 도리어 덧나니까. 기분 풀 때까지, 천천히 나가야겠지?”

“응.”

오히려 이건 유진이 쪽이 더 성숙하고 어른 같다. 확실히 유진이가 말하는 게 어른다운 처사지. 싫어하는 걸 억지로 풀 수는 없으니까, 천천히 기다리겠다. 원래대로면 희세가 말할 것 같은 어른스러운 말이지만, 어째서인지 희세는 어린애처럼 생떼 부리는 반응이고 그 대사는 유진이가 챙긴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갈 길이 먼 희세와 유진이의 관계지만 그래도, 유진이까지 의지가 없지는 않아 안심이 된다. 어떻게든, 희세 마음만 돌리면 그렇게까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유진이와 희세의 관계개선. ……당분간은 생각하지 말자. 또 희세한테 어떤 짜증을 들을지 모르니까.


“……야.”

“응.”

“……그, 잠깐만.”

“으응?”

가만히 나를 부르는 희세. 쉬는 시간이 되어 잉여롭게 휴대폰을 보는 찰나다. 앙숙인 유진이는 어디를 갔는지 자리를 비웠고, 희세와 나를 보면 대뜸 놀릴 법한 미래도 가만히 휴대폰을 보고 있다. 희세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부른다.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안 그래도 아침에 싸워서 희세 심기를 불편하게 했으니 별 말 없이 따라 나선다.

“…….”

“뭐 할 말 있어서 부른 거 아니야?”

“……잠깐, 휴대폰 좀 줘 봐.”

“……휴대폰은 왜?”

“……그냥 줘 봐.”

복도에 나와 적절한 이슥한 곳에 도착한 나와 희세. 희세는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언가 할 말은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눈치. 먼저 말을 걸어주니 대뜸 내 휴대폰을 요구한다. 조금 불안한 느낌에 일단 수비적으로 대응한다. 희세는 여전히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뭔데, 무슨 일인데.”

“……휴대폰, 잃어버렸어.”

“아아? 그런 거면 빨리 말해야지! 내 휴대폰을 뺏어서 뭐하게!”

“……전화 걸어보려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희세. 퍼뜩 놀라 말하니 희세는 여전히 아니꼬운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말한다. 하여튼, 그 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아까 나와 유진이 때문에 말다툼 한 것 때문에 아직도 꽁해 있는 모양이다. 얼른 휴대폰을 꺼내 희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받아?”

“안 받네. 어디서 잃어버렸는데? 돌아다닌 데 다 찾아 봤어?”

“아후. 오늘 그다지 돌아다닌 데도 없는데. 기껏 해봐야 수학수업 듣느라 교실 이동한 것밖에 없는데…… 아까도 교실 찾아봤는데 없어.”

“음…… 그럼 어디 있지. 전화기는 안 꺼져 있는데.”

받지 않는다. 신호는 가는데. 희세는 초조한 표정으로 묻는다. 황급히 어디 잃어버릴 데 있나 물어보지만 희세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하긴, 자존심 때문에 나한테 말하는 것도 머뭇거린 희세이니 나한테 오기 전에 찾을 수 있을만한 데는 다 찾아 봤겠지. 그래도 없다니. 그럼 어떻게 찾지. 누가 발견해서 전화를 받아준다면 차라리 찾기 편할 텐데.

“아…… 학교라서 무음으로 해 놔서 어디 떨어뜨렸으면 벨소리도 안 날 텐데.”

“무음? 진동으로라도 해 놓지!”

“진동으로 하면 진동 소리 나잖아! 학교니까 당연히 무음으로 해 놔야지!”

“그런 데에서 원칙을 지키니까 이렇게 못 찾잖아!”

“아후…… 짜증나, 짜증나.”

휴대폰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나나 희세나 서로 잔뜩 짜증을 부린다. 진동이냐 무음이냐라는 사소한 것 가지고 싸우고 있다. 어쨌든 큰일이긴 하다. 휴대폰 누가 훔쳐간 것이면 어떡하지. 팔아버리면 어떡해. 넌지시 희세에게 ‘그거 할부 몇 개월 남았어?’ 하고 묻는다. 희세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지금 그런 게 중요해?! 찾아야지, 휴대폰을!’ 하고 말한다. 뭔가 괜히 미안해진다. 내 휴대폰도 아닌데. ……아니 물어볼 수도 있지! 제일 중요한 거잖아, 그게!

“지금은 쉬는 시간도 다 갔고, 점심시간에 찾아보자. 점심 먹기 전에 찾아보자.”

“어. 그…… 고맙다.”

“응. 그런 건 뭐, 고맙고 자시고 같이 찾아야지. 이따가 성빈이랑 미래한테 말해도 되지? 같이 찾아야 빨리 찾을 거 아냐.”

“어, 알았어.”

내 신속한 상황 판단과 지시 계획에 희세는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 머뭇거리며 고맙다는 말을 한다.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휴대폰을 찾는 게 더 중요하지. 우선은 쉬는 시간이 끝나 각자의 반으로 돌아간다.


“어딨니! 휴대폰아! 희세 휴대폰아! 아, 모델명이 뭐랬지? 갤6?”

“미친X아, 휴대폰이 대답하냐!”

“스마트폰인데! 시리가 대답해줄 거라구!”

“그럼 아*폰이어야지! 아니, 아*폰이어도 대답은 안 해! 그 정도면 얼마만큼 미래 일인데!”

미래는 이런 와중에도 드립을 멈추지 않는다. 드립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애완동물 찾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휴대폰 잃어버렸다고 광고를 하고 다닌다. 옆에서 잔뜩 태클을 거는 나. 미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드립을 이어 나간다. 옆에서 성빈이가 어이없는 지 방긋 웃는다.

점심시간, 네 명이서 휴대폰을 찾고 있다. 밥도 먹지 않고 곧장 휴대폰을 찾아 나섰다. 휴대폰 원정대 네 명. 점심시간에 찾는 게 그럭저럭 용이하다. 대부분의 애들이 밥 먹으러 빠져나갔기 때문에. 설령 몇 명 애들이 있다 해도, 휴대폰 찾으러 왔다고 하면 되니까. 다른 애들 가방을 뒤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은 있으면 이 교실이나 근처 가는 길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데 말이지.”

“그럼 동선대로 찾아보자. 교실 한 명, 복도에서 계단까지 한 명, 계단에서 복도까지 한 명, 3반 한 명.”

“그래, 그렇게 하자.”

수색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내 말에 성빈이는 야무진 표정과 목소리로 제안을 한다. 오늘 희세가 움직인 동선은 희세네 반 ─ 복도 ─ 계단 ─ 수학교실. 마침 적절하게 네 개의 루트로 나뉘기에 성빈이의 배분은 적절하다. 모두 군말 없이 따른다. 나는 희세네 반을 찾기로 했다. 성빈이나 희세는 오히려 본인 반이라서 못 찾을 수도 있으니까.

“뭐해, 변태 씨?”

“아, 정희 되게 오래간만이네? 점심 도시락?”

“엉. 근데 뭘 변태처럼 밑에 보고 있어? 여자애들 팬티 보려구?”

“그런 레벨은 내가 지난 지 오래지. 실컷 봤는데, 1년동안.”

“미친 변태새X. 그게 마음에 든다니까, 변태 씨는.”

“아하하하.”

희세네 반에서 힐끔거리며 여기저기 뒤져본다. 가방을 뒤질 수는 없으니 고개를 연신 숙이며 서랍장이나 교탁 밑 같은 데를 살펴본다. 다른 데 들어갔을 수도 있으니 TV 뒤편 같은 곳도 꼼꼼히 살핀다. 문득 말을 거는 정희. 되게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다. 정희도 희세네 반이었구나.

여전하게 ‘변태 씨’ 라는 그리운 별명으로 나를 부르는 정희. 1년이나 여자애들에게 시달리다보니 이제는 너스레를 떨며 받아칠 정도가 된 나. 정희는 골 때린다는 듯 미소 지으며 내 어깨를 탁탁 친다. 나도 마주 웃어 보인다. 정희는 뭐랄까, 그냥 남자애 같으니까 이런 드립을 칠 수 있지. 보통 여자애였으면 이렇게 대놓고 말하지는 못 하지. 아무리 그래도 성희롱일 수도 있는데.

“근데 진짜 뭐하는데?”

“아. 휴대폰 잃어버려서, 희세. 찾고 있었어.”

“아 진짜? 전혀 몰랐는데. 아, 어쩐지. 겁내 불안한 표정으로 3교시 때부터 불안불안해 하더니. 생리대 떨어진 줄 알았는데 휴대폰 잃어버린 거였구나.”

“……그런 걸 꼭 남자애인 내 앞에서 얘기할 것까지는 없지 않냐.”

“뭐, 팬티도 많이많이 봤다매. 여자애들 생리하는 거 몰라?”

“아아, 됐고.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찾고 있는겨. 좀 도와줄텨?”

“아 뭐. 도시락 오기 전까지 할 거 없으니까. 애들아~”

아무리 여고에 다녀 적응됐다지만 ‘생리’라는 민감한 말까지는 내성이 부족하다. 조금 부끄러워 약간 붉어진 얼굴로 말하니 정희는 ‘요것봐라’ 하는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말한다. 정희도 호락호락하게 다룰 여자애는 아니다. 미래처럼 완전히 맛이 간(?)건 아니지만 정희도 요주의 인물이었지. 오래간만에 봐서 그 성질을 잊고 있었다. 좋게좋게 말해서 화제를 돌리니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도와주는 정희. 정희 친구들까지 함께 도와 교실을 뒤진다.


“없어.”

“없어?”

“너도?”

“응, 없어.”

“아하아…….”

다시금 복도에 모인 네 명의 용사들. 다들 풀 죽은 표정. 특히 희세의 표정은 더욱. 이제는 뭔가 아파 보이기까지 하는 희세다. 아무렴,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휴대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인걸. 배도 고프고, 목적인 휴대폰은 찾지도 못 하고. 잔뜩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다. 점심시간이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그게 문제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빵으로 떼워야겠다.

“뭐하고 있어?”

“아아. 그……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희세.”

“휴대폰?”

“응. 찾을만한 데는 다 찾아봤는데 없어.”

어떻게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우리들.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유진이. 친구 두 명과 함께 복도를 지나가던 모양이다. 유진이의 물음에 조금 희세 눈치를 보다 말을 꺼냈다. 딱히 숨길만한 일도 아니잖아. 희세 또한 휴대폰을 잃어버린 심란함에 유진이에게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잔뜩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유진이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꺼낸다.

“계단 올라오면서 구석에 휴대폰 있는 거 주웠는데. 교무실에 가져다주려는 길이었는데, 혹시 이거야?”

“……어?! 마, 맞아. 내 꺼 맞아.”

“여기. 아아, 진짜 안 건드렸어. 친구들하고 같이 발견했어. 그치?”

“응. 보자마자 그냥 가지고 왔으니까.”

유진이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하나 꺼낸다. 익숙한 휴대폰. 늘 봐오던 희세 휴대폰과 동일한 모델에 동일한 케이스다. 희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얼른 유진이 앞으로 온다. 유진이는 희세가 딱히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지 않았는데 먼저 얼른 말한다. 아무래도 희세가 자기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걸 아니까, 먼저 얘기하는 거겠지. 유진이 친구들도 맞장구치며 대답한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한참 찾았는데.”

“응, 주인 찾아서 다행이네. 나도 휴대폰 잃어버린 적 있는데, 진짜 엄청 짜증났거든.”

“……어.”

희세는 내키지는 않지만 어쨌든 사과를 하는 모양새다. 그러다 얼른 표정을 풀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유진이는 방긋 웃으며 발랄하게 말한다. 희세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쨌든 휴대폰을 찾아준 유진이니 그렇게 밉게 볼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유진이와 친구들은 지나가고 우리 넷만 남았다.

“뭐야, 미래 너 제대로 찾았어? 계단에서 봤다잖아.”

“진짜! 엠X 까고! 계단 구석구석까지 다 봤는데! 와 대박! 어디서 찾은거지? 진짜 없었는데! 내가 거미줄 있는 데까지 다 봤는데!”

“……흠.”

“어쨌든 찾아서 다행이다. 지금 밥 먹으러 가기는 조금…… 늦겠지? 매점이라도 갈까?”

“그래야지. 아~ 배고프다. 휴대폰 찾으니까 마음 놓이네.”

대뜸 계단 담당이었던 미래에게 따진다. 미래는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정말 억울한 표정. 어쨌든 미래가 잘 못 찾은 모양이다. 희세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말이 없다. 성빈이는 일이 좋게 끝나 방긋 웃으며 제안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나. 배고프긴 나나 애들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빵이라도 사 먹으러 매점으로 향한다. 두 개 사먹어야지. 점심을 안 먹고는 버틸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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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06화 - 2 +8 15.08.30 1,005 19 19쪽
» 06화. 일장춘몽 +12 15.08.27 1,220 68 20쪽
165 05화 - 4 +18 15.08.24 1,213 25 18쪽
164 05화 - 3 +14 15.08.22 1,104 21 19쪽
163 05화 - 2 +8 15.08.20 943 27 19쪽
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3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8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20 2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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