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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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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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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08.1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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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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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9쪽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DUMMY

“음…… 좋아.”

거울 앞에서 옷차림을 정돈하는 저. 단정하게 잘 말린 긴 생머리. 구김이나 보풀 없이 깨끗한 교복. 거울 앞의 모습은 어느 정도 만족입니다. 방긋 미소 지어 보이고 등교를 준비를 하러 가요..

제 이름은 임성빈, 올해로 고등학교 2학년 되는 평범한 여자 고등학생. 우연의 일치로 이름하고 같은 ‘성빈여고’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 맞다, 여고는 아니지. 우리 학교, 원칙적으로는 남녀공학이지만 예전부터 남자 수가 급격히 줄어서 10년 전부터는 거의 여자애들만 입학하는 학교인데. 그랬던 학교인데 단 하나의 예외. 남학생이 들어왔습니다. ‘정웅도’라는 남자아이. 그게 1년 전 얘기라니.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요.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등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꽃이 흩날린다거나 싱그러운 초록빛이 가득한 나무가 있다거나 하는 고운 풍경은 아니고, 온통 콘크리트에 아스팔트에 자동차에, 산업화가 가득한 살풍경이지만 그래도 아침 등굣길은 즐겁고 상쾌합니다.

“어? 웅도 아니야? 희세도 있네. 좋은 아침!”

“응, 좋은 아침.”

“학교 일찍 가네.”

“그럼 너희는. 우연히 만났어?”

“뭐.”

학교 가까이에 와 앞서 나란히 걸어가는 남자애 여자애가 눈에 띕니다. 학교에서 유일한 남자애이니 유일한 짧은 머리 스타일의 웅도는 너무 알아보기 쉬워요. 은은한 웨이브 기운이 있는 갈색 머리칼에 중간 정도 키를 가진 희세도 마찬가지로 1년 동안 봐 와서 금세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니 두 사람도 방긋 웃으며 화답합니다.

“멍청이.”

“뜬금없이?! 좀 명분이라도 가지고 놀립시다. 이제는 막 나가자는 거여?”

“그게, 그렇잖아. 멍청이잖아.”

“이유도 없이?! 너무하잖아!”

“흐흐흥.”

“성빈이까지 웃어?! 왜! 나 멍청해보여?!”

희세의 놀림에 발끈하는 웅도. 희세는 침착하고 냉정한 투로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에 웅도는 더욱 발악하듯 짜증을 부립니다. 저는 그런 웅도가 귀엽고 웃겨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습니다. 웅도는 서운한 표정으로 저를 보며 말합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조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웅도…… 좋아했었거든요. ‘예전에.’ 지금은 깨끗하게 포기하고 친구 사이로 지내려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성격이 그렇게 쿨한 편이 못 되는 것 같아요. 자꾸만 좋아했던 마음이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웅도는 이미 리유라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리유는, 무척 귀여운 여자아이인데 2학년 올라가기 직전에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갔습니다. 웅도의 여자친구이기도 하구요. 아이 같은 면이 있고 마냥 어린애 같아 유학 가는 것이 걱정됐지만 최근 소식을 들어보면 잘 적응한 것 같습니다. 다행이에요.

“그럼 변태 씨?”

“그건 이제 그만!”

“……맞잖아? 변태……?”

“크흠. 흠. 어험. 크험.”

희세는 요즘, 웅도하고 친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안 친했냐면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즈음 특히. 말로 다 표현하기 미묘하지만,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도 희세도 웅도를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웅도는 리유와 사귀게 되었고, 저는 깔끔하게 포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희세도 웅도에게 조금 쌀쌀맞게 대했지만 곧 풀어지고 다시금 원래의 친구 사이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이상함을 느끼는 건 요즈음 희세의 행보. 이전까지의 희세는, 웅도에게 조금 쌀쌀맞게, 그리 살갑지 않은 눈길과 태도를 보였습니다. 좋아하긴 확실히 좋아했었지만 표현을 잘 못 하는 것일까요. 문학적인 표현으로 ‘세침데기’라고 하면 꼭 맞을 것 같은 희세의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웅도에게 적극적으로 놀리고 웃고 떠듭니다. 웅도 또한 그런 희세가 나쁘지 않은지 같이 잘 어울리며 웃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 저는 묘한 기분이 듭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음…… 약간 나쁘달까요. 기분이.

“리유는 잘 지내려나. 보고 싶다.”

“리유? 잘 지내지. 전화할 때마다 목소리가 점점 밝아지는 것 같애. 처음엔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았는데. 요즘은 나도 지낼만 해졌어. 잘 적응했다니까.”

“뭐, 리유라면 해낼 줄 알았으니까. 나약한 너희들이나 리유 걱정했지. 리유, 하면 할 수 있는 애니까.”

“그, 그치만 걱정되긴 하잖아. 누구라도 유학 간다면 걱정스럽잖아.”

“뭐, 그렇기야 하겠지만.”

저는 얼굴이 약간 빨개져서 대답합니다. 희세의 대답에 부끄럼 타는 게 아닙니다. 지금 대화에서 괜히 리유 얘기를 꺼낸 제 자신이 창피해서요. 꼭 잘 얘기하고 있는 희세에게, ‘웅도는 리유가 있어! 여자친구 있다구!!’ 하고 광고하는 것 같습니다. 정작 희세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웅도의 말에 희세는 피식 웃으며 또 웅도에게 시비를 겁니다. 그렇게 교실까지 두 사람은 즐겁게 얘기합니다. 저는 가끔씩 한 마디씩 대답하긴 하지만 대화에 주류로 끼어들 순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희세라서, 어떻게 함부로 할 수가 없어서. 웅도는 저희와 반이 달라 헤어지고 저와 희세 둘이 저희 반으로 들어갑니다. 또 기묘하게 저와 희세는 반이 같아요.

“희세, 요즘 웅도랑 많이 친해진 것 같은데.”

“응? 아아. 언제까지고 삐딱하게 보는 건 그러니까. 나름 찾아보면 장점도 있는 녀석이니.”

“으, 응.”

희세는 제 말에 심드렁한 말투로 대답해요. 웅도 앞에서는 늘 새침하고 도도한 희세지만 적어도 저, 미래, 리유 앞에서는 이런 느낌으로 꾸밈없는 심드렁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습니다. 희세랑 짝꿍이에요.


쉬는 시간. 저는 웅도랑 반이 다르기에, 가끔 웅도네 반에 놀러가곤 합니다. 10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웅도랑 얘기하고 싶어서요. 딱히 새로운 반에서 새로운 친구를 못 사귄 건 아닙니다. 그래도, 웅도랑 얘기하는 게 좋아서. ……아, 리유 없다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리유 있었어도 그랬을 거에요! 리유라면 그런 거 가지고 왈가왈부할 애도 아니구요! 그런 거에요, 그런 거.

하지만 저는 이내 실망하는 표정을 짓게 됩니다. 웅도는 희세랑 얘기하고 있습니다. 제 짝꿍인데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희세는 웅도 옆자리를 꿰차고 웃고 있습니다. 웅도 앞자리엔 저번에 한 번 본 ‘유진’이라는 애도 있습니다. 두 여자애에게 둘러싸여 과장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웅도. 즐거워보입니다. 저기에 제가 낄 수 없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이상하게 울적해집니다. 약간 화가 날 것도 같구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교실로 돌아가려 몸을 돌린 찰나.

“소레와 질투데스.”

“에?”

‘할짝’

“히익! 뭐, 뭐 하는 거야?!”

“이 맛은! 질투를 하는 맛이구나…… 임성빈!”

“이, 이상해 미래!”

저를 보고 방긋 웃으며 말하는 미래. 일본어로 말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미래는 이렇게 엉뚱한 친구입니다. 제 쪽으로 한 발자국 성큼 다가오더니 갑자기 제 볼을 할짝 핥습니다.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 하며 놀랐습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아무리 동성 간이라고 해도 가까이에 와서 볼을 핥다니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미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헤헤’ 하고 다시금 쾌활하게 웃습니다. 저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잔뜩 미래에게 짜증을 냅니다. 엉뚱해도 너무 엉뚱해요, 미래는.

“음. 그러니까 그게 질투잖아? 웅도 주위 여자애들이 끼 부리는 거 보면 짜증난다는 거. 희세 또 한 끼 하지 그 녀석.”

“끼, 끼부린다니…… 그런 게 아니라, 웅도는 어쩔 수 없잖아, 친구를 사귀어도 다 여자애니까.”

“허허. 과거에 태어났으면 ‘소첩은 이미 노쇠하였으니 젋은 첩을 들여 기쁨을 누리시지요’ 하고 말할 본처 스타일이네.”

“무, 무슨 말이야.”

미래는 물 마시고 싶다고 정수기로 가자면서 저에게 고민을 말해보라고 재촉합니다. 조금 꺼림칙하지만 마침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기에 미래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미래. 조금 당혹스러워 말하니 이번에는 제 디스까지 합니다. 말이 너무 격한 미래에요.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거에요. 알았어요 유현주 씨?”

“에? 유현주?”

“엄마가 보는 아침드라마 같이 보는데. 엄청 재미있어! 거기 나오는 장대표님이 한 말이거든! 겁나 재미있어! 너도 볼래? 파일 보내줄까?”

“아하하, 아니이.”

갑자기 뜬금없는 시의 한 구절 같은 말을 꺼내는 미래. 다소 진지한 표정과 말투에 저는 긴장한 채 미래의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칭하는 대상이 제가 아니라 뜬금없는 다른 이름이기에 깜짝 놀랐어요. 미래는 꼭 아줌마처럼 저에게 아침 드라마를 권합니다. 조금 더 있으면 드라마 내용까지 말할 것 같아서 얼른 완곡하게 거부 의사를 내보입니다. 진짜 엉뚱하긴 합니다, 미래는.


“꼬꼬마, 오래간만에 선생님이랑 밥 좀 먹을까.”

“에엑. 싫은데요.”

“……싫어? 너에게 그런 권한이 있었나. 으응~?”

점심시간, 저, 웅도, 희세, 미래 네 명이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밥을 먹으려 하는데 사감 선생님이 문득 교실로 찾아와 웅도에게 말합니다. ‘꼬꼬마’라는, 사감 선생님 전용 웅도 별명을 부르며. 웅도는 예전과는 다르게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씨익 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웅도에게 다가와 말씀하시는 사감 선생님.

“아 왜요! 저 이제 기숙사도 안 사는데!”

“대신 우리 반이지. 나한테 영어도 배우고. 관계는 예전보다 더 밀접해진 것 같은데?”

“아! 정자 선생님 약속 있어서 밥 먹을 사람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제가 모를 것 같아요!”

“……들켰네. 너처럼 눈치 빠른 애는 싫다니까.”

“몇 번이나 그러는데 어떻게 몰라요!”

희세가 변한 것처럼 웅도 또한 2학년 올라와서 꽤 변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감 선생님한테 꼼짝도 못 했지만 이제는 거부도 하고 저항도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사감 선생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쓰지 않으시는 것 같다는 점. 웅도의 완강한 거부 의사에도 빙글빙글 웃으시며 자꾸만 웅도를 꼬드깁니다.

“선생님이 밥 사주는 게 싫어? 선생님하고 밥 먹는 거, 되게 영광이다? 교육부에 신고하면 나 감봉 당하고 심하면 짤릴 수도 있다구?”

“그렇게 본인 디스까지 하면서 저랑 밥을 먹어야겠어요.”

“혼자 먹느니 굶는데 굶으면 오후 수업 못 하잖아.”

“그럼 저희랑 같이 드실래요?”

“싫어. 여자애들 재수 없게 밥 깨작깨작 먹는 꼴을 보라고.”

“애들 듣고 있는데 너무 단호하게 말씀하시네요. 알았어요, 뭐.”

네 명이서 밥을 먹는 건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묵언의 약속이기에, 웅도는 저희 눈치를 살피며 선생님을 설득하려 합니다. 하지만 사감 선생님, 굉장히 고집 있으신 분입니다. 특히 웅도에게는. 약간 놀리는 의도도 포함된 것 같지만. 한 가지 더, 사감 선생님은 여자애들은 굉장히 싫어하지만 웅도는 되게 좋아하거든요. 편애하는 게 눈에 띌 정도로. 웅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합니다. 답이 없다는 걸 느낀 모양이에요.

“미안, 선생님하고 밥 같이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으응, 괜찮아. 맛있는 거 먹고 와!”

“부러워요! 공짜로 외식하고!”

“괜찮지 않지만 뭐, 어쩔 수 없잖아.”

저는 방긋 웃으며 대답하고, 미래는 부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십니다. 희세는 희세답게 독설 비슷한 투로 대답합니다. 사감 선생님은 승리감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저희를 쳐다보며 ‘그럼, 갈까.’ 하고 말합니다. 승리감이라기보다는 장난기 많은 미소인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 웅도를 빼앗은 게 마냥 재미있는 것 같은 표정. 성숙한 어른 같은 사감 선생님이지만 이런 면은 또 어린애 같아요.

“웅도도 없는데, 대충 도시락이나 시켜 먹자.”

“에에─ 웅도 없으면 도시락이라니! 웅도가 무슨 대통령이라도 되나!”

“응, 나는 좋아, 도시락. 오래간만에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에에! 거기서 호응을 해 줘야지! 성빈이 너무하네!”

선생님과 웅도가 나가고, 희세는 다시금 심드렁한 태도로 말합니다. 여자애들끼리만 있으니까 편하게 말하는 희세는 보기 좋습니다. 방긋 웃으며 마주 대답하니 미래가 불평 많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도시락은 제가 시킵니다. 저희 학교는 급식이 나오지 않아서 밖에 나가 사 먹거나 도시락을 싸 오거나 해야 하니까요. 애들끼리 도시락을 시켜먹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시간, 잠시 이야기꽃이 피었다가 미래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갑자기 급똥! 화장실 좀…… 돈 여기다 놓고 갈게!’ 하고 급히 교실을 떠나요.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을 것 같은데. 지나치게 솔직한 미래입니다.

“……희세야.”

“응?”

“희세 너는, 웅도 좋아해?”

“……?”

……에에. 에에엣?! 제, 제, 제, 제가 지금 무슨 말을!? 멍하니 웅도에 대한 생각하다 희세를 쳐다보고 저도 모르게 말해버렸어요! 무슨 용기로 무슨 대담한 마음으로 이런 말을 꺼낸 걸까요! 너무 민감하고 너무 어색한 주제인데! 희세는 의아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히이이익. 어떡하죠. 왜 그랬을까요, 신경 쓰고 있어서 그런 가봐요. 괜히 아침부터 신경 쓰여서…….

“응, 좋아해.”

“!”

“너는? 이제 안 좋아해? 리유랑 사귀니까?”

“나, 나는…….”

“흐흐흥.”

잠시 저를 빤히 쳐다보는 희세. 이내 씨익 미소 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깜짝 놀라 눈이 크게 떠지는 저. 이어지는 희세의 질문에 더욱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으며 말을 흐립니다. 그런 제 반응을 보고 희세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습니다. 요조숙녀 같은 모습이 조금 얄밉게 보입니다.

“선전포고 같은 거야? 아니면, 통보? 이제 들어간다, 그런 거?”

“무, 무슨 소리.”

“그럼 떠 보는 건가. 순수한 아가씨 같은 스타일인데 성빈이 되게 영악하구나. 하긴, 그러니까 웅도한테 한 지분 있는 거겠지.”

“…….”

희세는 도도하고 새침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게다가 조금 공격적인 말투여서 저는 더욱 당황해서 말을 잘 잇지 못 하겠습니다. 싸우는 건 아닌데 싸우는 것 같은 분위기가 돼서 어떻게 말을 못 하겠어요. 희세는 저를 똑바로 쳐다봅니다. 눈을 가늘게 뜨더니, 숨을 크게 들이쉽니다.

“나, 웅도 좋아해. 리유는 상관 없어. 어차피 있지도 않고. 이제는 그렇게 바보처럼 하지 않을 거니까. 네가 좋아하던 말던 나랑은 상관없어. 웅도는 내 남자야. 내 남자친구로 만들 자신, 있으니까. 너도 분발해 봐.”

“……!”

희세의 당돌한 말에 저는 더욱 놀라 숨을 크게 들이쉬었습니다. 희세의 말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어떻게 다른 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방금 전까지는 당황해서 말을 못 하는 것이면 지금은 충격 때문에.

희세가 아직까지 웅도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은연 중에 조금 눈치 채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하게 마음 먹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아예 대놓고 리유에게서 웅도를 빼앗겠다는 말이기에, 저는 큰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왜. 뭐 할 말 있어?”

“……우, 웅도는, 리유 남자친구인데. 그, 그렇게 할 수는……!”

“너도 참 웃긴다. 제일 억울해야 할 게 너 아니야?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퇴해? 참 잘난 기업가정신 나셨네. 아니지. 기업이었으면 그대로 멸망하고 파산신청 했겠네.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바보 멍청이 아니야? 리유 같은 애한테 웅도 뺏긴 게 억울하지도 않냐고. 나는, 나는…… 짜증나 죽겠는데……!”

“그, 그치만……”

“그치만 뭐! 여자친구 있다고 그 애 좋아하면 안 돼!? 그런 법이 있어! 상관없잖아! 내가 좋아해서 좋아하는데, 내가 사귀고 싶어서 사귈건데 그게 뭐가 잘못이야!”

“…….”

희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저에게 반문합니다. 저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을 꺼냅니다. 웅도는 이미 리유하고 사귀고 있는데, 하필 리유도 유학 가서 없는 사이에 희세가 웅도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한다는 건…… 바, 바람 피우는 거잖아요, 웅도가! 그런 건, 그런 건!

희세는 제 말에 따지듯이 말합니다. 점점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걸 보니 꽤나 흥분한 모양입니다. 끝에는 억울하다는 듯 말투. 저는 어떻게든 반박하려 했지만 희세의 외침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치만, 그치만. 더 말을 이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음? 뭐야, 되게 어색한데. 싸웠어? 성빈이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인데.”

“어. 한바탕 싸웠어.”

“아, 아니야, 그냥…… 사소하게.”

“헤에. 이런 때엔 희세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성빈이는 좋게 좋게 끝내려고 진실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화장실에 다녀온 미래는 저와 희세의 수상쩍은 낌새를 금세 눈치채고 말합니다. 희세는 심통이 나서 팔짱을 끼고 적나라하게 말합니다. 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 말합니다. 미래의 농담삼아 하는 말에도 꽤나 큰 상처가 됩니다. 가뜩이나 희세의 충격발언 때문에 마음이 괴로운데.


점심을 다 먹고,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을 들으며 잠자코 생각에 빠집니다. 의도치 않게 희세의 속마음을 너무도 솔직하게 들어버렸습니다. 문득 희세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은 게 떠오릅니다. ‘나는 웅도 좋아해. 너는?’ 이라는 희세의 질문.

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웅도를 아직도 좋아하는 건지. 좋아하지만 리유 때문에 억누르고 있는 건지. 정말 식어버린 건지. 제 마음을 저도 모르겠습니다.

희세의 당돌한 발언과, 미래가 해 준 ‘사랑받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 라는 말도 머릿속에 떠올라 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괴로워서 저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게 됩니다. 수업은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힐끔 바로 옆에서 수업 듣고 있는 희세를 바라봅니다. 이렇게나 예쁘고 성실하게 수업 듣는 희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불안하고 괴로워요.


작가의말

히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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