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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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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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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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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9쪽

08화 - 4

DUMMY

“웅도야.”

“……어.”

반에서, 나는 요즈음 엎드려 있는 시간이 많다. 우리 밥 패밀리 애들과 있으면 기세등등, 말이 많아지지만 이렇게 다른 애들이 있는 때에는 가만히 엎드려 있는다. 따돌림 당하는 데도 당차게 깝치고 까불고 그러면 별로 문제될 없겠지. 계획도 있고, 해서 얌전히 따돌림을 받고 있다.

그런 와중에, 문득 말을 걸어온 유진이. 고개를 들고 가만히 유진이를 쳐다본다. 싱긋 웃으며 나를 보는 유진이.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다. 미래와 희세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분석한 결과 지금 유진이가 나에게 말을 거는 건 순수한 호의가 아닌 철저한 계획의 하나 라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막상 살갑게 대하는 유진이를 보니 마음이 떨린다.

“괜찮아? 요즘 계속 엎드려 있잖아.”

“……말 걸면 안 되는데.”

“상관없잔아, 그런 거. 같이 따돌릴 거면 따돌리라고 해. 너무하잖아?”

“……고마워.”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하는 유진이. 연기를 잘할 자신은 없는데. 되는대로 어수룩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 애들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유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와, 이거 진짜 계략은 계략이다. 미래나 희세를 통해 유진이의 이면에 대해 듣지 못 했다면 정말 껌뻑 넘어갔겠다.

힘든 가운데 내 편을 들어주며 설령 다른 애들에게 도매금으로 같이 따돌림을 당해도 상관억다는 말을 들으니까 어두운 시궁창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유진이의 그 계획이 실현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는 혼란과 거부감이 같이 느껴지고 있다.

“A반은 이상한 거 해. 둘이 짝지어서 영어 스피킹 하는 거 녹음 해오기 같은 거.”

“……그런 것도 하는구나.”

“선생님 잘 가르치시니까. 근데 고등학교 와서 이런 수업은 처음 들어봐. 역시, 다르달까.”

“……응, 그렇지.”

나는 짐짓 유진이에게 감동받은 것처럼, 그러나 여전히 의기소침한 태도로 대응했다. 유진이는 방긋 웃으며 재잘재잘 얘기한다. 뜨끔 하지만 잠자코 의기소침하게 대답했다. 그 ‘이상한 자기주도적 학습’은 나와 미래의 주도인데. 유진이와는 쉬는 시간 동안 얘기했다.


영어시간엔 반을 바꿔서 수업을 한다. 수준별 교육인지 뭐시기인지 한다니. 나와 미래, 민서는 B반이고 그 B반이 우리 반인지라 굳이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 영어시간이 바로, 결전의 시간이다. 직접 볼 수 없는 점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뭐, 희세와 성빈이가 잘 해주겠지. 애들과 유진이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자, 그럼 가죠?”

“음? 가긴 어딜가.”

“자자, 일어나세요!”

“야, 야!”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 문득 미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의아한 표정의 나에게 어떠한 설명도 없이, 미래는 힘으로 나를 일으켜 그대로 복도로 데리고 나온다. 진지하게 저항하자면 저항할 수 있겠지만 허탈하게 나는 복도로 끌려 나왔다.

“뭔데?!”

“뭐긴요! 잠입해야죠, A반에!”

“안 그런다니까!”

“이미 늦었어요. 모든 건 그렇게 처리하기로 했거든요.”

복도에서, 미래의 손을 뿌리치며 한 마디. 미래는 지지 않고 강인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대로 미래에게 휘둘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런 때엔 강하게, 의사 표현을 해야해. ‘싫어요!’ 라고 해야만 해! ……뭔가 다른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누구 맘대로! 선생님한테 폐라니까! 다른 애들한테도 마찬가지고!”

“이미 수업 중에 그런 짓을 하기로 했으니 늦었어요. 어차피 비 오는 거 흠뻑 다 젖어버리는 게 낫잖아요. 어머…… 오늘 핑크색 브라인데, 젖으면 비치는데……♡ 아니, bitch려나♡”

“뭔 되도 않는 개드립이야!”

단호하게 말하지만 미래는 능숙한 섹드립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어느 정도 미래를 다루는 미래자격증을 터득했다고 생각했지만 미래는 더욱 상향되어 건드릴 수 없는 섹드립으로 나를 당황하게 한다. 경쟁을 계속 해도 멈춰 있는, 그런 느낌일까.

“애초에 멋대로 난입할 수도 없잖아. 자리도 없을 텐데.”

“그런 건 상관없어요. 다 처리를 해 놓았으니까. 그러니까, 자 자~ 갑시다!”

“야, 안 되는데……!”

교실에는 자리가 전부 정해져 있다. 수준별 수업이라고 절대적으로 구간을 정해 나누면 사람 수가 안 맞잖아. 그러니까 수준별 수업이라도 반의 인원은 일정하다. B반인 우리가 빠지면 B반에는 두 자리가 비겠지만, A반은 정원 2명 초과가 되는 것이다. 앉을 데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선생님이 우릴 보시면. 참 좋은 소리 듣겠다. 가뜩이나 무리한 부탁 한 것 같아 면목이 없는데.

미래는 나의 이런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내 등을 떠밀며 A반으로 억지로 들어간다. 아, 안 돼……!

반에 들어가니 여자애들이 전부 쳐다본다. 여자애들이 쳐다보는 건 이제 한참 익숙해진 일인데도 오늘따라 상당히 멋쩍다. 희세와 성빈이도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러나 두 사람, 금세 씨익 미소 짓는다. 멀거니 유진이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보인다. 신기하게도 구석 맨 뒤의 두 자리가 비어 있다. 이제 쉬는 시간 1분도 안 남았는데?!

“이걸 위해서, 두 명을 골로 보냈죠. 아마 지금쯤 쿨쿨 자고 있을 거에요.”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상한 거 아니에요! 꼬드겨서 양호실로 보냈어요! 뜨거운 물로 이마에 열 잔뜩 내서 조작해서요!”

“……난 또 뭐라고. A반 애들이면 수업 못 듣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을까.”

“그건 초초초상위권 애들이나 그렇구요. 공부 좋아하는 애가 어디 있어요? 과자랑 커피랑 몇 가지 쥐어 주니까 좋다고 가던데요.”

“하하.”

미래의 말에 퍼뜩 놀라 얼른 속삭이듯 물었다. 어쨌든 애들이 전부 쳐다보니 큰 소리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미래는 적진에 잠입하는 군인 같은 느낌으로 얼른 자리에 앉아 몸을 숙이며 말한다. 아, 적당히 핑계를 댔구나. 나는 또, 이상한 짓 해서 문자 그대로 ‘골로 보낸’ 줄 알았잖아. 미래의 극단성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드르륵.’

“조용히 해. 시끄러워.”

“…….”

나한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여자애들한테는 가차없는 선생님. 들어오자마자 잔뜩 짜증을 내신다.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애들. 뭐, 선생님의 명성이야 수업이 없던 1학년 때에도 애들에게 파다했으니까. 본인이 짜증나면 설령 여자애라 할지라도 몽둥이를 가지고 때린다고 한다. 그것도 엉덩이를. 좀 너무하다 싶은데. 일언반구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선생님의 카리스마다.

“저번에 시킨 숙제, 다 해왔어?”

“……네─”

“고등학생인데 그런 건 처음 해봤겠지. 뭐, 아직 수능 꽤 남은 2학년 초반이니까. 그런 것도 해 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너네, 늘 기계처럼 독해만 하고 단어만 외우고 문법만 보고. 실질적인 회화는 거의 안 해보잖아.”

“……네─”

여자애들은 묵묵히 대답한다. 선생님은 씨익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신다. 뭐랄까, 귀찮은 숙제를 애들에게 내 줘 즐거운 것 같은 기색.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럼 출석 부른다.’ 하고 파일철을 펴신다.

“아. 그럼 우리는? 우리는 결석 되잖아.”

“그것도! 민서한테 부탁했어요 이미. 제가 아파서 양호실 가는 걸로! 오빠는 대충 비슷한 이유로 가는 걸로.”

“너, 의외로 철저하구나. 무서워지는데.”

“아핳! 이런 즐거운 장면을 안 보면 어떡해요! 창문에 매달려서라도 봐야지! 팝콘 사 왔어야 하는데!”

우리에 대한 일까지, 철저한 대비. 어떻게 보면 유진이보다 더 무서운 것 같다. 실질적으로 유진이의 계략을 부숴버리는 미래의 위엄이다. 근미래, 무서운 아이……! 더욱 소름 돋는 건, 미래의 이런 철저한 행동이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희세나 성빈이, 민서처럼 직접적인 원한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 미래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순전, 자신의 즐거움 때문. ……몰라 뭐야 얘 무서워. 조커야?! 온 세상은 단순한 유희거리일 뿐?! 미래의 미소가 오늘따라 굉장히 사악해 보인다.



“근미래? 근미래?”

“미, 미래 양호실 갔어요! 생리 때문에!”

“아 그그그그래. 그러면 그래야지.”

B반. 나지막이 출석을 부르시는 선생님. ‘근’이라는 특이한 성씨 덕분에 출석번호 1번인 미래. 1번부터 대답이 없으니 선생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미래를 찾는다. 질끈, 눈을 감고 외치듯 말하는 민서. 있는 듯 없는 듯한 민서의 평소 존재감 때문에 애들은 퍼뜩 놀란 눈으로 민서를 바라본다. 남자 선생님인 B반 선생님은 ‘생리’라는 민감한 사안 때문에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넘긴다. 어떤 되물음이나 이유도 없는, 완벽한 알리바이. 민서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정웅도. 정웅도? 정웅도?”

“우우우, 웅도도 양호실 갔어요!”

“응? 정웅도는 왜?”

“미, 미래 아프다고 발악하는 거 부축하다 미래가, 미래가…… 거기를 차 버렸데요!”

“……푸하하하하─”

“아아, 그러냐. 그것도 어쩔 수 없지.”

웅도 차례. 민서는 이번에도 잔뜩 동요한 듯 허둥지둥대다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두 명이나 빠졌으니 선생님의 표정에 의심이 생긴다. 민서는 우물쭈물대다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잠시 조용해졌다 빵 터지는 교실. 그 모습(?)을 상상한 여자애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선생님은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은 남자의 고통을 십분 이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신다. 민서는 녹초가 되어 혀를 쭉 내민다. 그래도 미래의 부탁을 잘 해낸 것 같아 뿌듯하다.



『Hi Se-yeong!』

『Greetings!』

『Where are you from?』

“무슨 중학생 수준이냐, 그래도 고등학생인 애들이.”

“하하하.”

녹음한 숙제들을 일일이 재생해주시는 선생님. 문제가 있다면, 그 수준이 꽤나 낮다는 것. 자율적으로 짝지어서 녹음만 하랬지 딱히 어떤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라. 애들이 녹음해온 대화의 대부분은 훌륭한 중등영어다. 거기에 주입식 영어의 필수요소인 “Fine thank you, ‘and you?’”까지, 완벽하다. 선생님은 헛웃음을 지으며 애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신다. 잔잔하게 웃는 애들. 녹음본의 주인인 세영이와 영서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힌다.

“다음. 나희세, 임성빈?”

“네.”

“응. 너희는 좀 수준 높았으면 좋겠는데.”

애들에게 가차 없고 무관심하다고 애들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니까, 선생님이. 희세가 전교 1등이고 성빈이가 전교 20등 안에 드는 것 정도는 아신다. 무엇보다 나랑 친구니까, 어느 정도 안면도 있고. 희세는 의미심장하게 자신만만한 대답을 한다.

『…….』

“…….”

잠시동안 흐르는 정적. 선생님이 재생 버튼을 제대로 누르신 건가 싶다.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미래 또한 긴장한 표정으로 스피커를 쳐다본다. 나는 힐끔, 유진이를 바라본다.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전혀 모른 채 무심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유진이.

‘지지직.’

『근데 너 말야.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니야?』

『아니, 그냥. 아무리 여론이 너한테 유리하게 형성되었고, 이런저런 조건은 너에게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생각 안 해봤어? 다같이 힘을 합쳐서 너를 조진다거나. 반격을 한다거나. 그런 거?』

『……해 볼 테면 해 봐.』

『아하하. 조금…… 그런데 말야. 너, 나 왕따 시키는 거. 설마 열등감 때문에 그런 거야? 정공법으로 나오면 나한테 안 될 게 뻔하니까. 아아. 하긴, 그런 계략이라도 써야한다면 응당 그래야지. 그렇게라도 해서 가질 수 있다면 가지는 게 좋겠지, 알량한 정웅도.』

『……시끄러! 네가 뭘 어떻게 하던! 게임은 이미 끝났어. 여자친구 있는 남자애한테 꼬리 쳐서 헤어지게 만들고 자기가 사귀려는 걸로 소문난 너랑! 왕따인 웅도한테 천사처럼 다가가는 나랑! 누가 더 나을 거 같아? 너 끝났다니까? 저번에 말 했잖아. 아직도 현실을 못 받아들이겠어? 더 까불어 볼래? 완전히 박살을 내줄 테니까.』

“……!”

잠시 지지직거리는 소리, 이어지는, 희세와 유진이의 대화. 저번에 들었던 대화다. 희세 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인지라 희세 목소리는 정확하고 맑게, 유진이의 목소리는 조금 먼 듯 흐릿하게 들린다. 그래도 미래가 소리 크기를 조절했는지 충분히 잘 들린다. 마지막 잔뜩 격앙된 유진이의 목소리가 반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웅성대는 여자애들. 서로 쳐다보며 얘기하는 애들, 희세를 바라보는 애, 유진이를 쳐다보는 애, 나와 미래를 바라보는 애. 교실은 삽시간에 동요된 시선들로 가득하다. 뭐라고 말은 못 하고 그저 쳐다만 보며 수군댈 뿐이다.

유진이는 잔뜩 눈이 커져서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숨죽이고 있다. 설마 녹음해서 수업시간에 틀어버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기절할 듯 놀란 것 같은 표정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내 쪽이나 희세, 성빈이 쪽은 쳐다도 못 보고 멀뚱히 스피커만 바라보고 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말할수록! 나는 더 강하게 나올 거니까!』

『그러니까 강하게 나와 보라니까! 말만 하는 걸로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성·빈·양? 나처럼 행동으로 보여주던가. 뭘 하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그렇잖아? 여론이란 게, 참 편하고 좋잖아. 적당히 책임추궁 들어오면 ‘아몰랑~’ 좋잖아? 지극히 나한테만.』

『어쨌든 진실은 밝혀져! 웅도하고 희세에 대한 헛소문 퍼트린 것도, 나에 대한 소문도, 무엇보다, 그 소문을 네가 직접 냈다는 사실도!』

『아하하. 성빈이, 귀여워서 어떡하지. 그걸 아는게 누군데? 너 혼자? 아, 비열하게 웅도한테 쫄래쫄래 가서 웅도한테도 말해서 두 명? 근데 그거, 누가 믿어줄까? 소문의 피해자 쪽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해봤자 아무도 안 믿어주는 거, 많이 보지 않았어? 뉴스나 다큐멘터리 한 번 안 봤나? 이거, 만화 같이 낭만적인 거 아니거든? 실제야 실제. 그렇게 노력한다고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아. 실제 소문은. 응? 마음대로 해보세요, 성빈이~』

‘웅성웅성’

이어지는 목소리는 성빈이. 평소 성빈이의 목소리는 곱고 차분한데 이 목소리는 약간 울먹이는 느낌을 포함해 굉장히 흥분한 투다. 반면 유진이의 목소리는 아까 희세와의 대화와는 다르게 차분한 느낌에 잔뜩 비꼬는 투. 게다가 길게길게 말하는 게 더욱 얄미운 목소리다. 성빈이는 이제 정말 우는 것 같은 목소리로 쥐어짜듯 말한다. 유진이는 끝까지 조롱하는 투로 성빈이를 놀린다. 애들은 더욱 동요하고 더욱 웅성댄다.

입을 가리고, 몸을 작게 부들부들 떠는 유진이. 이미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이제는 애들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는지 몸도 조금 웅크린 상태. 성빈이는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한 표정이 되어 그런 유진이를 바라본다. ‘그 때의 굴욕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추진력이었다!’ 하는 듯한 모습. 귀엽다.

『너, 너, 너 나빠! 어쨌든 따돌리는 건 나쁜 거니까!』

『야. 김민서. 너 아직도 상황파악 안 되냐. 내가 위협만 하니까, 감 안 오지? 너 고등학생 됐다고 애들이 그냥 두는 것 같은데…… 때리고 그러는 건 이제 유치하니까 안 그런 거지, 걔네들이 그만둔 게 아니야. 너 같은 거, 얼마든지 구실 만들면 금세라도 올 애들이거든? 한 번 더 해볼까? 중학교 때 시즌 2?』

『……사, 상관없어 그런 거!』

『헤에. 벌벌벌 떨면서 잘못했다고, 질질 짜면서 그랬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한데. 괜찮겠어, 정말? 뭐, 나는 더러운 꼴 보기만 하면 되니까. 애들이, 너 괴롭히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 맷집이 좋아서 때리는 맛이 난다나. 걔네도 되게 이상하지, 여자애들인데 그렇게나 때리는 거 좋아하고.』

『……흣!』

성빈이에게 유진이가 대하는 것도 처음 들었지만, 이건 나조차도 조금 충격. 대놓고 협박하는 유진이, 벌벌 떠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한 목소리의 민서. 어떤 정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 모종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중학교 때 민서가 따돌림 당했고, 그것에 유진이 친구들이 관련돼 있는 듯한……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대화. 마지막에 민서의 울음을 꾹 참는 목소리가 들리니 괜히 주먹이 꽉 쥐어진다. ……주먹 꽉 쥐어서 뭐 어쩌게. 유진이 죽빵이라도 날리게. 아무리 그래도 유진이 여자앤데.

이제 유진이는 완연하게 몸을 떨고 있다.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아챈 것일까. 함정이라기보다는, 진실. 애들은 이제 웅성거림도 멈추고 다만 유진이를 쳐다본다. 개중에는 유진이가 소문의 근원인 것을 아는 애들도 있었을 것이다. 전혀 모르고, 그냥 애들이 말하니까 같이 소문을 퍼뜨리는 애들도 있었을 것이고, 소문을 듣기만 하고 묵인하는 애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애들이건, 전부 진실을 알았다. 희세, 성빈이, 민서의 희생으로.

“이거, 뭐야. 나희세, 임성빈. 이게 영어 녹음이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해야할 말은 꼭 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저저저! 저희가 했습니다↗! 저희요!”

“아…… 그리고, 수업에 무단으로 들어와서 멋대로 행패부리는 죄목까지 추가해서요…… 죄송합니다.”

녹음본이 모두 재생되고, 무서운 눈을 하고 희세와 성빈이를 쳐다보는 선생님. 자세한 사항을 선생님께 설명해드렸지만, 어째서인지 선생님은 유진이가 아닌 희세와 성빈이 쪽을 본다. 성빈이는 어쩔 줄 몰라 하지만 희세는 당당히 선생님과 눈을 마주하고 당돌하게 말한다. 오오, 역시 나희세. 기세만큼은 선생님에게도 지지 않을 모양이다.

이 와중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번쩍 들고 괴상한 톤으로 말하는 미래. 이런 식으로 자수하려고 온 거냐! 아니면, 우리가 시선끌기용 미끼 같은 거? 선생님과 애들의 시선이 가장 구석자리 미래와 내 쪽으로 모인다. 이미 모인 시선, 나도 마저 일어나며 실토한다.

“너희 둘하고 나희세, 임성빈. 네 명 다 나가. 엎드려.”

“……네.”

“네에에에~”

“……크흠.”

선생님은 낮은 톤으로 정말 무서운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 잠자코 대답하는 희세. 말없이 일어나는 성빈이. 이 와중에 미래는 즐거운 듯 길게 이어지는 대답을 하며 복도로 나선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힐끔, 유진이를 쳐다봤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진이. 그런 그녀를, 입술을 깨물고 착찹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입모양으로 살며시, ‘끝났어.’ 하고 말하곤 복도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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