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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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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5.11.1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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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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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20쪽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DUMMY

“…….”

“야, 야! 뭐해, 엄청 멍 때리고 있네. 야!”

“……아, 어, 응.”



희세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멍 때리고 있게 되는 시간. 정신이 현실세계에서 로그아웃 했다가 한 달만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전 수업시간이 국사 시간이었다. 국사 선생님의 위력은 대단하지.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 조는 것도 아니고.”

“아…… 그렇게. 정신줄 놓고 있었나봐.”



희세의 빈정거림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아무리 국사시간이라지만 너무 심한 멍때림이었으니. 양 손으로 양 볼을 탁 치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한다.



“가자.”

“응?”

“밥 먹어야지! 진짜 영혼까지 빼 놓고 있어?!”

“아, 어, 응.”



더 정신을 차려야겠는데. 점심시간이다. 희세 뒤에서 성빈이도 방긋 웃으며 기다리고 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희세를 따른다. 점심 먹으러 가자.





“기말고사잖아, 이제.”

“응, 그렇지.”

“공부, 해야지?”

“응, 그렇지.”

“내 말 듣고 있어?”



밥을 먹으며 희세의 말을 듣고 있는 나. 멍 때리는 건 이제 그만 두었지만 희세의 말에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뭐, 적극적으로 대답할 여지가 없는 물음이긴 한데. 희세는 심통이 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 너무 대충 대답했나.



“기말고사긴 해도 그래도 2주 가까이 남았는데.”

“너, 2학기 들어서 공부 통 안 했잖아? 성적 떨어졌지?”

“헤헤─ 오빠가 공부할 정신이 있었나요? 그보다 우리 전부, 공부 같은 거 할 정신 아니었잖아요?”

“……너는 유일하게 별 피해 없었잖아.”

“나는 원래 공부를 놓았으니까! 핳! 포기하면 편해!”



내 대답에 엄마처럼 잔소리를 늘어놓는 희세. 그 말에 나는 딴청을 피운다. 성적, 확실히 내려갔지. 공부라는 걸 한 적이 없는 것 같으니, 2학년 들어와서. 뭐,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미래는 웃으며 슬쩍 끼어든다. 은근한 시선으로 유진이를 쳐다보며. 유진이는 다시금 죄인 모드가 되어 고개를 숙인다. 희세는 그런 미래의 시선을 의식하며, 조금 아니꼬운 표정으로 말한다. 당당하게 대답하는 미래. 영웅은 공부따윈 안 한다네, 이런 말인가.



“그런 와중에 희세는 전교 1등 유지하고 있잖아? 너무해. 난 되게 괴로워서 성적 10등이나 떨어졌는데.”

“그, 그야! 그거랑 성적이랑은 별개니까!”

“좋겠다. 나도 그렇게 딱딱 나뉘었으면 좋겠어.”



성빈이는 부럽다는 듯 말한다. 희세는 괜히 부끄러워하며 대답한다. 민서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등어조림을 발라 먹는다. 유진이는 계속 미안하고 언짢은 표정으로 연신 애들을 쳐다본다. 조그맣게 ‘괜찮아, 이미 지난 일이잖아.’ 하고 유진이에게 말해주니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린다.



“어쨌든, 무슨 일 때문이든 다들 공부 별로 못 했잖아. 기말고사 땐 만회해야지.”

“그렇지, 정말 맞는 말이야. 그러나 이를 어찌하지. 공부하기가 싫은데.”

“맞을래?”

“하, 하겠습니다!”



희세는 자꾸 여기저기로 빠져나가는 대화주제를 붙들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고개를 끄덕이며 올바른 희세의 말을 듣는 나. 묘한 건들거리는 태도로 느물느물하게 대답했다. 정말 공부하기 싫은걸. 공부라는 게, 한 번 놓고 놀기 시작하니 그 어느 때보다 하기가 싫다. 이어지는 희세의 위협에 대번에 무너져 비굴하게 대답하는 나지만. 뭐, 애초에 장난이었지만. 희세가 하라면 해야지.



“기말고사 정도는 범위 나오면 충분히 벼락치기로 성적 올릴 수 있으니까. 응? 듣고 있어?”

“아직 범위도 안 나왔는데 시험공부 얘기 하는 건 좀…….”

“진짜 끝까지 그럴래?!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알았어.”



희세는 지나칠 정도로 내 성적에 집착하며 말한다. 조금 껄끄러운 기분이 들어 말을 꺼낸다. 그래봐야 희세의 말에 또 꼼짝없이 아무 말 못 하는 나지만.



“에에~ 꼭 와이프가 남편 들볶는 것 같네요~ 희세가 드디어 정실부인이 된 건가요, 오빠?”

““무, 무슨 소리야!””

“어머어머~ 농담인데 둘이 정색하고 동시에 말하는 거 봐~ 마음이 통했나봐요, 둘이?! 천생연분??”

“그런 거 아니라니까!”



적절한 타이밍에 미래의 놀림. 나와 희세 둘 다 동시에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또 서로 놀라 눈이 마주쳤다 또 서로 눈을 피한다. 몰라 뭐야 이거. 청춘 드라마에 나오는 뻔한 장면 같은데, 정말 의도한 건 아닌데 이렇게 된다. 미래는 그런 나와 희세를 보고 더욱 흐뭇한 표정으로 말한다.


희세의 강한 부정에 나는 괜히 의기소침해진다. 성빈이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와 희세를 번갈아 쳐다본다. 유진이는 미래 비슷하게 씨익 웃는 표정. 민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쳐다본다.



“어쨌든, 주말에 찾아갈 테니까.”

“아, 그러면 다같…… 아닙니다.”

“응? 같이 공부하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집에 밀린 일이 있어서 그건 힘들 것 같구.”

“아 그래?”



점심을 다 먹고 올라가는 길, 희세는 나에게 다시금 따지듯 말한다. 밥 먹는 중에는 미래의 태클 이후로 잘 얘기를 안 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럼 다 같이 주말에 공부할까?’ 하고 말하려다, 대번에 희세의 엄청난 눈빛에 황급히 말문을 닫았다. 나도 이제는 그 정도 눈치는 생겼으니. 성빈이는 그 짧은 순간에 내 ‘다같……’ 까지 말하는 걸 캐치한 모양이다. 희세의 눈총을 의식하며, 대충대충 얼버무린다.




--




“어, 왔어.”

“누워서 인사하지 마, 뭐 하는 거야! 씻지도 않고!”

“너 기다리고 있었지.”

“얼른 씻어! 기껏 준비 다 하고 오니까! 나 참.”



주말, 평화롭게 누워 있는 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가벼운 사복 차림의 희세가 보인다. 여유 있게 누워서 인사한다. 이제 슬슬 여름이고 하니 옷차림도 가벼워질 때가 됐지. 희세는 잔뜩 신경질을 부리며 이불을 확 걷어버린다. 으아아! 너무 따뜻한데 어떡해! 나올 수가 없어, 이불에선!



“잘 먹었습니다.”

“설거지는 네가 해.”

“넵. 당연하죠, 밥 차려주셨는데.”



희세는 엄마처럼 꼭 아침을 챙겨 먹는 주의다. 주말임에도 꼭 아침을 차려서 나와 같이 먹는다. 씻는 동안 아침을 차려놓은 희세. 맛나게 먹고 일어나 설거지를 자처한다. 희세는 벽에 기대 쭉 다리를 뻗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그럼, 공부 하는 건가?”

“무슨 소리야. 도서관 가야지.”

“에엣. 도서관?”

“그럼, 집에서 어떻게 공부를 해. 컴퓨터도 있고, 휴대폰도 있고, 맘껏 떠들어도 되잖아. 집에선 집중하기 힘들어. 가자.”

“아…… 그래, 뭐.”



희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도서관에 가는 건 생각도 못 했는데. 꽤 귀찮게 됐네. 어쩐지, 우리 집에 오는 것 치곤 꽤나 산뜻하고 예쁜 옷을 입고 왔다 했는데, 희세. 나만 희세에게 격의 없어진 게 아니라 희세 또한 마찬가지니까. 예쁘네, 핫팬츠 희세. 허벅지가…… 으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 했다.



“근데, 그 때 왜 뭐라 한 거야?”

“그 때? 무슨 소리야?”

“주말에 공부 하자길래, 다 같이 하자고 했는데 막 그랬잖아.”

“……그야. 하여튼, 눈치 더럽게 없다니까.”

“응? 뭔데?”



집에서 나와 도서관까지 걸어가며 문득 생각이 나 희세에게 묻는다. 어차피 도서관 가서 공부할 거라면, 성빈이나 다른 애들도 같이 공부하면 좋잖아? 나만 성적 떨어진 건 아니니까. 희세는 문득 나를 흘겨보며 살짝 얼굴을 붉힌다.



“……너랑 둘이 공부하려고 그랬다, 왜!”

“……아.”

“…….”



희세는 조금 뜸을 들이다 대뜸 소리 지르듯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바보처럼 ‘아’ 하는 이상한 소리만 냈다. 잠시동안 무척 어색하고 끈적한 침묵이 감돈다.



“……그거 너무 직설적이지 않아?!”

“뭐 왜 뭐! 너랑 둘이 있고 싶어서 그랬다는데 그게 잘못이야?!”

“그, 그, 그러는 건 좋지만! 그, 이게 그러니까 그…… 너답지 않잖아!”

“나 다운 게 뭔데! 그렇게 했다가 리유한테 뺏겼잖아?! 이제는 안 뺏겨, 말했잖아, 2라운드 시작이라고!”

“아우으어으으…… 그치만 그치만 그치만!”

“뭐 멍청아!”



잔뜩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받아들이기에 따라 희세의 저 말은 거의 고백이나 마찬가지잖아?! 내 설레발이 아니야, 확실히! 희세도 얼굴 빨개졌다고! 썸 타는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말하는 꼴이잖아! 미친 듯이 부끄러워! 얘 왜 이래! 이러지 않았는데, 희세는 이러지 않았는데! 잔뜩 새침하게 말하는 희세에게 나는 쩔쩔맬 따름이다.



“……아직 리유 못 잊었다고? 그런 건 상관없어, 그럼 걔 생각 안 나게, 잔뜩잔뜩 내 생각만 나게 해줄 테니까.”

“……저기, 그거 되게…… 야시시한 말 같은데.”

“어머, 그런 걸 바래? 그렇다면, 그 쪽도 나름대로 고려해볼게.”

“아니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희세는 도발적인 새침하고 농염한 눈을 하고 나를 흘겨보며 말한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잔뜩 희세 생각만 나게 한다니……! 여고생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야! 조용히 태클을 걸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안 그래도 그 쪽(?) 은 예전에 했던 일이 있어서 굉장히 민감한 사안인데, 다시금 수면 위로 ‘그 일’이 떠오르면 난, 난……!



“뭐, 중간에 유진이 때문에 분탕질 쳐서 2라운드 끝났다면, 지금은 3라운드일까.”

“그만 그만, 그 얘기는 그만! 오늘 공부하러 온 거 아니야?!”

“시끄러. 이제는 완전히 헤어진 거잖아, 너랑 리유?”

“저기 잠깐만 그렇게까지 확정짓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맞잖아?”



어떻게 해서든 되게 껄끄러운 이 주제의 얘기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희세는 가차 없다. 아예 작정하고 온 모양이다. 흘긋 나를 쳐다보며 말하니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리유 생각에 기력이 쭉 빠진다.



“……그렇지만,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금방…… 아흑.”

“대단한 열녀 나셨네. 왜, 망부석처럼 리유 있는 쪽 하늘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지. 3년상 치루지 그래? 삼베옷 입고?”

“리유 죽은 거 아니야! 비꼬는 것도 작작 해야지!”

“흥.”



도서관까지 가는 동안, 희세와 잔뜩 티격태격 한 마디 한 마디 꼬투리를 잡아 가며 말다툼을 한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는 희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뭐긴 뭐야 좋은 게 좋은 거지 얼른 낚아채!’ 하는 식으로 장난스럽게 대하기는 싫다. 그야, 물론 희세가 나를 좋아하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그…… 하아. 나도 모르겠다. 나도 내가 답답하다. 솔직해지지도 못하고 과거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고 애매한 상황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나.



“뭐, 네 답답한 거지같은 성격은 잘 아니까. 재촉할 거야. 계속. 안 그러면 너란 애는, 아무 대답도 안 해줄 테니까.”

“…….”

“지금처럼.”

“아니이.”

“흥.”



도서관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그 때까지 대화 중간에 입을 다문 희세는 새침하게 말을 꺼낸다. 대답이 없는 나를 흘겨보는 눈으로 보곤 빠른 걸음으로 앞서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희세를 따라 들어갔다.




“…….”

“…….”



애초에, ‘같이 공부한다’는 말부터가 상당히 무언가 어폐가 있는 말이다. 사람은 같이 있으면 분명 한 마디라도 얘기하게 되지. 물론, 같이 공부하며 모르는 걸 질문하거나 해서 서로 공부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좋게만 풀리는 게 세상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는 건 조금, 의미가 퇴색되는 일이다.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도서관엔. 학생들이 제일 많지만 대학생이나 젊은이, 중년 아저씨나 아주머니도 있다. 우리나라, 이렇게 학구적인 국가였구나. 20대, 공부에 미쳐라, 30대, 아직 공부할 시기다, 40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라, 50대, 공부하다 죽어라. 뭐 이런 것일까. 안 돼! 이런 미래는! 나는 감당할 수 없어! 지금도 공부하기 싫은데!



‘툭.’

“멍 때리지 말고 공부해. 멍충아.”

“아아. 넵.”



살짝 머리를 때리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주의를 주는 희세. 잘못을 저지른 건 나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이런 목적이 있다면 나쁘진 않겠구나. 희세는 아무 이득도 없겠지만. 뭐, 애초에 나 공부 시키려고 부른 것 같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것일까. 희세를 봐서라도, 공부해야지. 주말에 이렇게 불러서 공부 시켜주는 것도 고마운데.


공부를 하면 딴 생각이 절로 난다. 굳이 비생산적인 허황된 공상이 아니더라도,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봐도 어쨌든 딴 생각.


기말고사.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어떻게 보면 이 시험이, 내 고등학교 생활의 절반. 터닝 포인트인 셈이다. 새삼 신기하다. 어른들이 세월이 빠르네, 시간 금방 간다, 공부해라 이런 말 하는 것 들었을 때,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는데. 막상 정신 차려보니 벌써 고등학교 생활의 반절이 지나가버렸다. 나머지 반절, 1년 반 중에 1년은 그 유명한 고3…… 그럼 이제, 제대로 놀 수 있는 기간은 6개월 뿐인 건가. 하핫, 즐겁군. 고3을 기다리는 처지라니.



“……잠깐 밖에 나갈래?”

“……하여튼.”



잡생각이 극에 달해 결말은 허무한 기분. 뭔가 고등학교 생활 다 끝난 것 같은 공허한 기분이 들어, 희세에게 속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뜩 찌푸린 표정의 희세. 하지만 나를 따라 나온다.



“하여튼, 집중 못 한다니까. 공부한 지 30분도 안 됐는데.”

“그냥, 하아. 그래서.”

“뭐가.”



도서관 밖에는 등나무넝쿨이 타고 올라가 그늘이 있는, 운치 있는 벤치가 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거기에 앉아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희세의 잔소리에 나는 공허한 눈빛으로 먼 산을 바라보며 말한다. 희세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음료수를 홀짝 마시며 묻는다.



“이제 고등학교 생활 절반이나 훌쩍 지나가버렸구나, 싶어서. 기말고사잖아? 방학은 원래 금방 지나가고, 1학기 지나간 것처럼 2학기 금방 지나가면, 우리도 벌써 고3이구나. 고3 내내 공부하고 수능보고, 그다음 대학가면…… 끝이구나, 싶어서.”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는 생각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그렇긴 한데, 공부하기 싫으니까 이런 잡생각이나 하고 있네. 하하.”



희세는 내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무미건조한 대답을 한다. 냉혹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대답인데. 희세의 대답에 더욱 씁쓸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음료수를 들이킨다. 그래,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해야지. 공부 하려고 도서관에 온 건데.



“……마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이 흘러간 건 아니잖아? 분명, 재미있는 시간들 많이 있었잖아.”

“그렇지.”

“…….”



희세는 내 시무룩한 반응에 덧붙여 말을 잇는다. 눈을 돌려 희세를 쳐다본다. 조금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하는 희세. 희세의 눈을 보고 있자니,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르는 듯하다.



“희세 네가 나 왕따시키고. 너희 집 놀러가거나, 뒤풀이 할 때 술 취한 거나, 2학년 들어와서 유진이한테 잔뜩 농락당하거나. 좋은 추억들이 많네.”

“……닥쳐! 꼭 추억이라고 꺼내는 게 왜 그 모양인데!”

“아하하하. 기억에 남는 건 안 좋은 일 뿐이니까.”

“흥.”



이어지는 내 대답에 희세는 얼굴을 붉히며 짜증스럽게 말한다. 죄다 희세에게 부끄럽거나 흑역사 취급할 만한 일들이니. 뭐, 그 격동의 근·현대사(?) 가운데 나도 세파에 잔뜩 시달렸지. 희세 말대로,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있었구나.



“시끄럽고, 그만 쉬고 공부나 해. 기말고사 보고 놀아야지?”

“그렇네. 기말고사 끝나면 방학이잖아. 야, 신난다! 35일 중에 보충수업이 30일인 방학이다!”

“굳이 그렇게 현실을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절망적이니까. 들어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화를 정리하는 희세의 말에 팔을 쭉 뻗으며 신나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나. 피식 웃는 희세를 따라 다시금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조금은, 공부할만한 의욕을 얻었다. 어쨌든 열심히 살아온 내가 있으니까. 아직 18살 밖에 안 됐는데, 예전에는 즐거웠네 어쩌네 하는 것도 웃기잖아. 고3 되기까지 6개월 넘게 남았으니까. 고3은, 그 때 가서 생각하자. 수능 100일의 기적! 잠깐, 공부하기 전부터 이런 생각 하고 있으면 어떡하는데. 아아, 잡생각 그만. 이제부터, 공·부·한·다.




“이대로 시험 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시험 다다음주 월요일부터잖아. 8일이나 남았네.”

“시끄러. 계속 공부해서 안 까먹으면 되잖아. 머리가 그렇게 안 좋아?”

“아하하, 농담입니다. 덕분에 하루종일 공부도 하고, 늘 희세한테 신세지네.”

“……신세는 무슨.”



오후와 저녁 사이, 노을이 지는 시간. 그 때까지 공부했으니 하루종일 공부한 게 맞다. 터덜터덜 희세와 함께 집으로 가며 이야기. 내 고마움 표시에 희세는 살짝 창피한 표시를 내며 대답한다. 후훗, 귀여워. 어울리지 않게 이런 귀여운 모습이 있는 희세.



“하루종일 공부했으니까, 게임 조금 해도 되지만. 그렇다고 자기 직전까지 쭉 게임만 하지 말구. 어?”

“네, 네. 알겠습니다. 오늘, 고마웠습니다아!”

“흥. 간다.”

“어, 잘 가!”



내 자취방 건물 앞에서 헤어지는 길. 희세는 끝까지 엄마처럼 잔소리를 한다. 정작 우리 엄마는 나한테 이런 잔소리 안 하는데. 엄마보다 더 엄마같네. 능청맞게 대답하며 고개를 꾸벅 조아린다.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희세. 나도 마주 손을 흔들고 인사하고 계단을 오른다.





희세 귀엽지, 나도 좋아해. 자, 이제 스스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자.

희세가 날 좋아하는 것 같아. 나도 희세가 좋아. 근데 왜, 나는 희세의 마음에 답해주질 않는 개새1끼인 걸까요. 희세가 좀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성빈이나 유진이나, 다른 여자애들이 아까워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분명 나는 희세를 좋아한다. 그리고, 희세도 나를 좋아하는 걸 확실히 인지했다. 그럼에도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 건…… 역시, 리유 때문이려나.


아니, 리유 핑계를 대는 건 아니고,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리유가 확답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나는 리유를 잊지 못하고 있으니까. 정말, 정말 어쭙잖은 얘기지만 리유는 ‘좋아한다’의 감정을 넘어서서 ‘사랑한다’에 가까운 감정이 된 것 같으니까. 그래서 괴롭고, 그래서 아직도 잊혀지질 않고, 그래서 희세의 마음에 답해줄 수가 없다. X랄 같지만 정말, 그렇다.



“푸흐흡.”



혼자 청승맞게 자취방에서 웃는다. 별 거지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여고에 오기 전, 혈기왕성한 남자 중학생이던 16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다 먹어(?)!!’ 이러지 않을까. 암만, 사람이 편식하면 쓰나. 골고루 이것저것 막 먹고 쑥쑥 커야 나중에 훌륭한 인물 되지. ……이런 쪽에서 그러면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 인간 쓰레기가 될 것 같은데.


고개를 저으며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켠다. 답답할 땐 게임이 최고다. 오늘은 또 어떤 X밥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의자에 쭈욱 몸을 기대어 고개를 뒤로 뻗고 잠시 한숨을 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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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Lv.56 비행병아리
    작성일
    15.11.20 12:06
    No. 1

    인물관계가 웅도 시각으로 보는 희세-웅도 이야기만 나와서글이 조금 지루한감이 있는거 같습니다
    등장인물 성격상 희세가 자주 나올 수있겠지만 웅도-다른사람 이야기도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고 하나의 사건을 각각의 시선에서 보고 그 각각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개인사정을 알아기면서 애독자가 전체를 알게되른 스토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1.20 23:44
    No. 2

    아..... 네, 그렇죠. 쓰면서도 점점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데에만 급급해서. 꼭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비행병아리
    작성일
    15.11.20 12:08
    No. 3

    물론 그럴려면 스토리 구성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할꺼지만 전 믿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11.20 19:30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1.20 23:44
    No. 5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5.12.04 17:28
    No. 6

    원래...슈레기였어 웅도야
    그러니 다 먹...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2.05 23:10
    No. 7

    아뇨, 물론 웅도가 쓰레기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다 먹..... 을 순 없잖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5.12.09 06:07
    No. 8

    희세 컴백!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2.10 23:25
    No.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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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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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쉬는 날. +10 15.10.09 762 16 19쪽
188 11화 - 3 +9 15.10.08 927 23 18쪽
187 11화 - 2 +8 15.10.07 805 20 20쪽
186 11화. 고난의 행군 +12 15.10.06 875 17 19쪽
185 10화 - 5 +8 15.10.04 933 24 22쪽
184 10화 - 4 +8 15.10.03 827 24 18쪽
183 10화 - 3 +16 15.10.01 1,006 18 20쪽
182 10화 - 2 +8 15.09.29 1,050 16 21쪽
181 10화. 약속했어, 기다려 줘. +12 15.09.24 1,022 18 16쪽
180 09화 - 4 +12 15.09.22 951 25 17쪽
179 09화 - 3 +8 15.09.21 1,033 26 21쪽
178 09화 - 2 +9 15.09.20 891 21 17쪽
177 09화. 힘들지만 안녕, 하고 말하기 +8 15.09.19 1,232 16 19쪽
176 08화 - 4 +12 15.09.16 937 18 19쪽
175 08화 - 3 +10 15.09.15 1,063 19 21쪽
174 08화 - 2 +12 15.09.13 1,003 20 19쪽
173 08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16 15.09.11 959 20 19쪽
172 07화 - 3 +10 15.09.09 1,096 17 20쪽
171 07화 - 2 +16 15.09.08 935 17 19쪽
170 07화. 말했을 텐데. +10 15.09.06 1,035 20 18쪽
169 06화 - 4 +6 15.09.04 998 18 23쪽
168 06화 - 3 +10 15.09.01 1,046 20 21쪽
167 06화 - 2 +8 15.08.30 1,005 19 19쪽
166 06화. 일장춘몽 +12 15.08.27 1,219 68 20쪽
165 05화 - 4 +18 15.08.24 1,213 25 18쪽
164 05화 - 3 +14 15.08.22 1,104 21 19쪽
163 05화 - 2 +8 15.08.20 942 27 19쪽
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3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7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20 2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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