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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201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09.2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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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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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7쪽

09화 - 2

DUMMY

“점심 먹자! 오늘은 밖에서 먹자는데, 희세가?”

“내가 언제. 뭐, 간만에 밖에서 먹고 싶긴 하지만.”

“와~ 외식이다 외식!”

“…….”

점심시간. 우리반으로 손수 찾아온 성빈이와 희세. 성빈이의 밝은 대답에 희세는 정색하고 대답한다. 싱긋 웃으며 좋아라 하는 미래. 나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고 희세와 성빈이를 올려다본다.

“오늘은 넷이 먹어. 나 할 일 있어서, 점심 굶어야 할 것 같은데.”

“할 일……?”

“뭔데?”

“……말하기는 좀 그러니까, 미안. 어쨌든, 넷이 먹는 걸로. 나 갈게.”

“어, 어…….”

“하! 보나마나 뻔하지. 맘대로 날뛰어 보세요! 저흰 저희끼리 잔뜩 뒷담화 할 테니까!”

허락을 맡지 않고, 내 쪽에서 통보하듯 말했다. 희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말을 꺼내고, 성빈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조금 머뭇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나 확정지어 말하곤 자리를 뜬다. 뒤에서 미래의 비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복도 바깥으로 나섰다.

민서의 말에 용기를 얻은 나. 혼자 끙끙 앓고만 있지 말고, 행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뭐, 혼나면 되지. 아니, 희세나 미래가 엄마도 아니고, 내가 왜 혼날 걸 걱정해야해. 왜 걔네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그보다, 엄마라도 딱히 혼낼만한 건 아니지. 이러나 저러나 딱히 상관있는 일은 아니다. 우선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야겠다.

‘뚜…… 뚜…… 달칵.’

『……여보세요.』

“어. 밥 먹고 있어?”

『……아니.』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확실하게 얘기하고 싶은 거 있는데.”

『……어.』

기운없는 목소리. 머뭇거리며 간신히, 첫 대답을 떼는 유진이. 나도 그리 활발한 목소리로는 말하지 못하고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을 꺼냈다. 잠자코 대답하는 유진이. 금세 전화를 끊는다. 곧, 복도로 나오는 유진이가 보인다. 사실 같은 교실에 있었다. 희세와 성빈이, 미래 눈치 보여서 직접적으로 말은 못 한 것이지.

서로 같은 곳을 가는 게 아닌 것처럼, 따로 떨어져 걷는다. 유진이는 잔뜩 의기소침해져서 어두운 느낌으로 천천히 나를 따라 걷는다. 힐끔 뒤를 쳐다보니 움찔, 내 눈을 피한다. 면목이 없는 걸까. 얘기할 게 참 많기에, 그러면서도 민감한 주제의 말이기에 다른 애들 이목이 없는 곳으로 향한다. 그런 일을 해내기에는 딱 좋은 곳이 구교사 뒤편이지.


“앉아.”

“……어.”

아무래도 구교사 뒤편은, 희세와 유진이가 일전을 펼치던 게 떠올라서. 기숙사 뒤로 진로를 바꾸었다.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벤치가 두 개 정도 있는 이상한 곳이 있어서. 도대체 누구보고 앉으라고 이런 외진 데에 벤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앉으면 되겠네, 하고 앉는다. 유진이는 잠자코 앉는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꽤 있는데. 하고 싶은 얘기도 많이 있고.”

“……응.”

잠자코 말을 꺼냈다. 유진이는 여전히 죄인인 것처럼 말을 아낀다. 잔잔히 시선을 옮겨 유진이를 바라본다. 시선은 자신의 무릎에 가 있다. 손을 꼼지락. 감히 나를 보지 못하고, 굉장히 의기소침한 태도로 앉아 있다. 꼭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가여워 보인다. 미래라면 이런 와중에 ‘저것도 다 꾸민 거에요! 역겹다구요! 가장이에요 가장!’ 하며 험한 말 했겠지. 희세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겠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랬어.”

“…….”

“추궁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래.”

“…….”

눈치를 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유진이는 먼저 말은 못 꺼내고 죄인처럼 내 말을 기다리고만 있으니까. 하지만 막상, 내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 한다. 죄의식을 덜어주기 위해 한 마디 더 덧붙여준다. 그래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유진이. 힘들겠지. 확실히. 당사자가 직접 물어보는 건데.

“좋아한다고 들었어. 나.”

“……!”

“아니야?”

“……마, 맞아.”

아무래도 역시, 내가 먼저 물꼬를 트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넌지시 말을 꺼냈다. 흠칫 놀라는 유진이.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쳐다본다. 하나 나와 눈이 마주치니 금세 시선을 다시 바닥으로 돌린다. 놀라는 유진이를 보고 싱긋, 웃으며 물으니 유진이는 잠자코 대답한다. 귀엽네.

“근데 왜 그랬어. 이해가 안 가는데. 그─ 렇잖아. 경쟁자를 물리친다는 거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

“미래가 그러는데, 그러더라고. 나까지 같이 곤경에 빠뜨려야, 이후에 유진이 네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효과가 굉장할 거라고. 실제로, 얘기 걸어줬을 때 굉장히 마음 울렁거리기도 했고.”

“…….”

내가 말하는 것을 유진이는 묵묵히 듣는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유진이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잇는다.

“그치만, 역시 그건 잘못된 거잖아. 다른 애들에게 잔뜩 피해까지 입히면서 그러는 건. 솔직히, 그렇게 알게 되면 너무 안 좋잖아. 여자애가 좋아한다는 얘기를 그런 식으로 듣는 건.”

“…….”

“다 떠나서, 어쨌든 제일 친한 친구들 따돌림 주도한 게 유진이 너라는 말 듣고는. 도저히 믿기질 않는데, 녹음본까지 들려주니까 도저히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잖아. 그건, 명백하게 잘못한 거니까.”

“……응.”

너무 착하게 말하는 건 아닐까, 너무 유진이를 배려해주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게 내 스타일이다. 더 어떻게 강경하게, 추궁하듯 말할 수는 없는 게 내 성격이다. 유진이는 묵묵히 듣다가 간신히 고개를 든다. 잔뜩 고여 있는 눈물.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게 신기할 정도. 그러나 곧 눈물은 또르르 떨어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닿지 않을 것 같았어. 나, 나는……!”

“…….”

처음으로 제대로 말을 꺼내는 유진이. 눈물이 주르르 흐르며 감정이 격앙되 목소리가 흐트러지는 게 느껴진다. 말까지 더듬는 유진이. 잠시 목이 메여 말을 못하는 유진이는 눈물을 닦고 눈을 들고 나를 쳐다본다. 또렷하게 나를 보려 하지만 금세 눈물이 다시 고인다.

“네가 너무 좋았어……! 정말, 어떻게든 갖고 싶었는데…… 이미 여자친구도 있고…… 그 여자친구보다 훨씬 좋은 다른 여자애들도 잔뜩 있고…… 이미 1년이나 뒤쳐진 내가, 어떻게 틈바구니에 낄 수가 없잖아……! 그래서, 그래서……”

“그렇다고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게 아니잖아. 그렇다고 모두를 따돌림 시키고 그런 거야?”

“……응. 그랬어. 내가 그랬어. 그렇게 생각했어. 그렇게만 하면, 다른 애들은 다 나쁜년 되고, 나만 착하디 착한 여자애 되니까. 그렇게 하면 너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주위 애들 보기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만 잔뜩 착한 애 돼서 너랑 사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치만, 그치만…….”

“…….”

조금씩 머뭇거리며 말하는 유진이. 여자애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데 이렇게 씁쓸하고 두려운 기분까지 드는 건 처음이다. 조금 강한 말투로, 옳지 않은 유진이의 생각을 정정해주려 하는데 유진이는 더욱 목소리가 강경해진다. 감정이 오를 대로 오른 유진이. 적나라하게 자기의 생각을 전부 말한다.

조금 표정을 찡그린 채 유진이를 바라본다. 유진이가 무섭다거나, 소름 돋는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작은 몸을 웅크린 채, 부들거리며 자폭하듯 모든 것을 말하는 유진이가 안쓰러워서 그렇다. 나를 쳐다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싱긋 웃는 유진이.

“……역시, 나쁜짓은 안 되네……?”

“…….”

“……나, 그런 애야. 미X년 맞아. 나만 사랑받으려고, 잔뜩 이기적으로 행동했어. 이렇게 따돌림 받는 게 맞아. 그게 내 죄값이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속죄가 된다면, 달게 받을게.”

“……그건 아니지.”

감정이 한창 절정까지 치솟았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다운되는 유진이. 이번엔 자학의 끝이다. 스스로 따돌림 받아 마땅하다고 말하는 유진이. 여전히 표정을 찌푸린 채, 나는 말을 꺼냈다.

“세상 누구도, 따돌림 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어. 그런 게 어디 있어. 따돌림 자체가 잘못됐는데. 네가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따돌리는 것 자체는 그것대로 잘못된 거야. 누가 죄를 지었다고, 멋대로의 잣대로 그 사람을 처벌하는 게 정당한 게 아니잖아.”

“……그러면……?”

“…….”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바보처럼 착해서 호구인 것도 아니다. 적당히 음험하고, 여자애들 보면 야한생각만 잔뜩 하는 변태 남자 고등학생이 맞다. 하지만 이런 건, 어떻게 확실하게 못 하는 어중간한 녀석이다. 양비론? 어쨌든 그렇다. 유진이가 따돌림 당하는 게 잘못됐다. 그건 유진이가 지은 잘못에 대한 마땅한 처벌이 아니다. 유진이가 잘못 안 했다는 게 아니라.

유진이는 나를 쳐다본다. 목이 메여, 속삭이듯 간신히 말을 꺼낸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흑’ 하고 울음을 삼킨다. 지금까지는 눈물만 흘리는 유진이었는데, 이제는 울음이 사무치는 모양이다. 간신히 참고 있는 유진이. 그런 모습을 보니까 더욱 안쓰럽다.

“……흣! 나…… 엄청, 흑! 염치없지만…… 용서, 받을 수 있어……? 흑! 그렇게나 잘못했는데…… 흑! 이게 아니야……? 헤엑, 흑!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 흑!”

“……우선은, 두 가지.”

참고 있지만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울음. ‘흑!’ 하는 울음 참는 소리와 함께 더듬더듬, 유진이는 말을 잇는다. 이미 감정은 폭발해서 눈물콧물 다 흘리고 얼굴은 잔뜩 새빨개져있다. 너무 안쓰러워 그런 유진이를 쳐다보다 잠자코 입을 여는 나.

“희세, 성빈이, 민서한테 제대로 사과하고, 걔네들한테 사과 인정받기.”

“……응! 흑! 후우, 흑!”

“그리고, 나한테, 제대로 고백하기.”

“……!”

생각해보면, 그렇잖아. 중간에서 내가 끼어서 고생할 게 아니라, 유진이가 직접 당사자들에게 사과를 하면 되는 일이잖아? 나는 다만 그걸 알려만 주는 거고. 유진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을 참아내려 한다. 손으로 눈물 콧물 닦는다. 이어지는 내 말에 뚝, 울음을 그치고 그대로 눈이 커져서 나를 쳐다본다. 오, 귀여워. 눈물 콧물 다 있는데 귀여워. 싱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런 식으로 소문처럼 듣는 건 영 안 좋잖아. 좋아한다는 말, 제대로 정정당당하게 듣고 싶어. 추하게 수작질 걸고 꾸며진 착함이나, 소문으로 듣는 거 말고. 본인한테 직접, 듣고 싶어.”

“……지금?”

“어, 지금. 이거는 기한이 없어, 지금 아니면.”

“……우읏.”

여자애한테 고백을 종용하다니, 살다살다 별 일을 다 겪는구나 나도.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애한테 제대로 말도 못 걸어서 벌벌 떨면서 두려움을 느끼던 난데. 이제는 여자애한테 고백을 강요하다니. 하하. 정말 이해가 안 가지만. 미래에게 일침 들은 것도 있고, 이제는 쿨하게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좋다는 데 어떡해! 나 참 이거 인기가 하늘을 찌르네 나란 남자는! 매력을 풀풀 풍기고 다니다, 핳! ……죄송합니다.

“……저, 저기.”

“응.”

“……그.”

“어어.”

“……그, 그러니까.”

“무슨 할 말 있는 건데?”

“……으으~”

얼마나 긴장했는지 방금 전까지 훌쩍거리며 울던 것까지 멈춘 유진이. 얼른 뒤돌아 얼굴 정리(?)를 한다. 눈물콧물 범벅이니까. 엉망인 머리도 만지고, 어떻게든 단정하게 했지만. 빨갛게 상기된 얼굴만은 어떻게 안 된다. 울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지금 창피해서 더 달아오른 것도 원인이려나. 긴장해서 도저히, 말을 못 꺼내는 유진이. 그것도 그것대로 귀엽다. 감정을 손바닥에서 읽듯이 보이니까 굉장히 여유가 생긴다. 놀리는 것 같네. 유진이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는다.

“……좋아해! 좋아해, 그러니까…… 사귀어 줘……!”

“고백, 제대로 했네.”

“……응.”

쥐어짜내듯 간신히 말하는 유진이. 차마 내 눈을 마주치진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말하곤 땅바닥을 쳐다본다. 훈훈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유진이는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대답을 종용하는 듯한 간절한 눈빛. 잠자코 그런 유진이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 마음, 받아줄 수가 없어.”

“……어, 응. 알겠어.”

“너무, 아직도, 조금…… 아픈 게 남아 있거든. 혼란스럽기도 하고. 리유하고 헤어진 것도 그렇고, 희세나 성빈이 잔뜩 괴롭게 한 것도. 그래서, 응. 미안. 고맙게 생각할게.”

“……응!”

희망고문일까. 거절할 거라면 왜 나는 고백을 시켰을까. 이렇게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할 것 같아서. 흐지부지하게 어물쩍 넘어갔다간 나중에 또 이상해질 것 같아서. 차라리, 이렇게 끝을 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이는 처음 내 대답에 얼떨떨하게 대답하다, 이어지는 내 말에 금세 눈물이 차올라 울음을 참으며 간신히 대답한다.

“……결국엔 그것도, 나 때문이네……!”

“아니, 뭐. 네 탓은 아니지.”

“……너도 왜! 안 받아줄 거면서 고백은 하라 그래! 흑! 비참하게! 흣, 흑! 흐으……!”

“응, 내가 좀. 개X끼라. 미안해.”

“흑! 흐윽! 으아아아앙! 바보바보바보야!! 흑! 흐윽!”

모기만한 소리로 겨우, 목이 메인 상태로 말하는 유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과관계를 면밀히 따지면 그렇게 되지만,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고 싶진 않다. 그건 그냥,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바람피워서 헤어진 거니까. 유진이는 고개를 쳐들고 눈물을 참으려다 화악, 고개를 털고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독한 그 눈빛에 살짝 두려움이 느껴지지만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유진이는 그대로, 더 참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앙앙 운다. 이런 때엔, 어떻게 안 되겠지. 살짝 유진이의 얼굴을 품에 안고 다독여준다. 유진이는 내 가슴팍에 머리를 묻고 잔뜩 울음을 터뜨린다.


‘꾸르륵.’

“배고파?”

“……어.”

“하긴, 점심도 안 먹고 잔뜩 울었으니. 빵이라도 사 먹을까?”

“……네가 사 줘. 잔뜩 울렸으니까.”

“아, 원인관계를 따지면 내가 울린 게 아니잖아. 네가 스스로 운 거지.”

“……쫌생이.”

“내가 원래 이런 쓰레기입니다. 그런데도 좋아해?”

“……이제 안 좋아. 짜증나.”

“아하하.”

한참을 울고 겨우, 토라진 표정으로 벤치에 앉은 유진이. 꼬르륵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울린다. 넌지시 물어보니 잔뜩 뾰로통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뭔가 되게 쿨해진 것 같은 유진이.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이제는 나에게 폭언도 서슴지 않고 말한다. 미래의 개드립과 희세의 폭언으로 이런 게 익숙한 나는 이쪽이 더 마음 편하다. 방긋 웃으며 유진이를 마냥 귀엽게 쳐다본다.

“하나는 지켰으니까. 나머지 하나, 확실히 해야 해? 희세, 성빈이, 민서한테 사과하기.”

“……응.”

“그럼, 빵 사먹으러 가자.”

“……저기.”

“어?”

확실하게 약조를 받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을 리는 없잖아. 그러면 두 번째 뒤통수고, 그럼 더는 어떻게 유진이를 용서한다거나 할 수 없겠지.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얼른 빵을 사려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내 옷깃을 붙드는 유진이. 몸을 돌려 유진이를 쳐다본다.

“……용서, 받을 수 있을까. 내가. 애들한테.”

“받아야지. 받을 수 있겠지. 받을 수 있어. 응, 진실 되게 사과한다면.”

“……아무리 그래도, 나라도 절대 사과하고 싶지 않을만큼 못된 짓거리 했는데.”

“그건, 직접 해 봐야 아는 거지. 타인의 마음을 재단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직접 부딪혀 보는 건 직접 부딪혀 봐야지.”

“……이건 멋있네.”

“응, 그러니까, 빵 먹으러 가자. 먹고 힘내야 사과하지.”

“응.”

머뭇거리며 말하는 유진이의 모습은 꼭 어린애 같다. 처음 보는 작은 유진이의 모습에 꼭 자신없어하는 리유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아 아련한 기분이 든다. 힘주어 대답한다. 그래도 불안해하는 유진이에게 더욱, 진실된 조언을 해준다. 아까 민서에게 들었던, ‘직접 무모하게 해 보는 게 좋을 때도 있다’라는 말을 더해서.

유진이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빵을 먹고자 하는 내 강한 의지에 유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른다. 더는 죄인처럼 웅크린 모습은 없다. 울면서 다 털어냈으니까. 나도 배가 고프다. 말을 많이 해서 그런가. 빵을 사러 매점으로 향한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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