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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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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09.13 23:03
조회
1,003
추천
20
글자
19쪽

08화 - 2

DUMMY

“좋아! 잘하고 있어! 가라, 나희세! 너로 정했다!”

“그…… 뭐랄까. 굳이 이걸 미행하듯이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 자칫 잘못하다 들키기라도 하면.”

“무슨 개소리에요! 희세는 5V짜리 엄선된 고개체인데! 기술배치도 완벽하고, 질 리가 없잖아요!”

“너야말로 뭔 개소리인데.”

속삭이는 목소리로 기쁜 듯이 말하는 미래. 호들갑스러우면서도 은근히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게 한껏 감정이 격앙돼 보인다. 나는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그도 그럴 게, 나와 미래, 모퉁이 구석에 몰래 숨어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상황인데. 몰래 쳐다보자는 건 미래의 제안이었다. 내 걱정에 미래는 한결같은 개소리를 지껄이며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인다. ‘목소리 너무 높아.’ 하고 주의를 주니 미래는 ‘아핫. 데헷☆’ 하고 눈을 찡긋 하며 혀를 내민다.

미래와 함께, 몰래 미행하듯 쳐다보고 있다. 무엇을? 유진이와 대치하고 있는 희세를.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희세. 우리 반에 와 유진이를 불러 구교사 뒤편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왔다. 본격적으로 싸울 것 같은 분위기의 두 사람. 길냥이 두 마리가 영역다툼을 하기 전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걸 굳이 오빠한테 보자고 하는 건! 3D 입체 영상으로 생생하게! 채유진의 썅년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죠! 목소리만 듣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잖아요!”

“……그래.”

굳이 성실하게 이유를 알려주는 미래. 고개를 끄덕인다. 더 이상 내가 무슨 대답을 하겠어. 아직까지 유진이에 대한 신뢰가 깨지지 않은 나다. 미래 말대로, 애들 말대로 과연 유진이는 내가 아는 그런 모습이 아닌 걸까. 약간은 불안하면서도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다.

“왜 또 불렀어? 항복선언?”

“미쳤다고. 그냥, 대단해서, 너란 애.”

“후후훗. 이제 알았어? 내가 좀 그래.”

희세와 유진이가 대화를 나누는 곳에서 꽤 떨어져 있는 모퉁이 구석. 하지만 주위가 상당히 조용해서 그런지 희세와 유진이의 대화는 무리없이 잘 들린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유진이의 태도. 뭔가 더 당당하고 기 센 느낌이다. 그 희세조차 조금은 밀리는 듯한 느낌. 벌써부터 상당히 의외다.

“근데 너 말야.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아무리 여론이 너한테 유리하게 형성되었고, 이런저런 조건은 너에게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생각 안 해봤어? 다같이 힘을 합쳐서 너를 조진다거나. 반격을 한다거나. 그런 거?”

“…….”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할 희세가 아니다. 평소 나에게 대하는 것보다 100배 정도 더 강화된 도도함과 당당함으로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유진이는 뭐 씹은 표정으로 묵묵히 희세를 쳐다본다. 굉장히 의아하다, 희세의 저 발언. 지금 우리가 힘을 합쳐 반격하는 건 비밀인데 그걸 유진이에게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자칫 우리까지 들키는 게 아닌가 싶어 심장이 덜컥거린다.

“왜? 아무 말도 못 하네? 으응?”

“……해 볼 테면 해 봐.”

“아하하. 조금…… 그런데 말야. 너, 나 왕따 시키는 거. 설마 열등감 때문에 그런 거야? 정공법으로 나오면 나한테 안 될 게 뻔하니까. 아아. 하긴, 그런 계략이라도 써야한다면 응당 그래야지. 그렇게라도 해서 가질 수 있다면 가지는 게 좋겠지, 알량한 정웅도.”

“……시끄러!”

……미래는 분명히 나에게, 유진이의 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나를 데리고 미행하듯 이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건데. 어째 사악한 유진이보다는 사악한 희세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희세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나올 법한 자뻑(?)이기에 전혀 충격 받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확실히 연기라는 건 알 수 있지. 희세가 자존감이 높기는 하지만 남한테 저렇게 대놓고 말할 정도는 아니니까. 명백한 도발이지.

유진이는 작게 중얼거리다 이어지는 희세의 인신공격의 영역까지 간 도발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희세를 보며 빼액 소리 지른다. 괜히 내가 놀라 어깨를 움찔 하게 된다. 미래는 더욱 놀라 ‘히잇.’ 하고 작게 소리까지 낼 정도. 정작 유진이를 바로 앞에서 대하고 있는 희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덤덤한 표정.

“네가 뭘 어떻게 하던! 게임은 이미 끝났어. 여자친구 있는 남자애한테 꼬리 쳐서 헤어지게 만들고 자기가 사귀려는 걸로 소문난 너랑! 왕따인 웅도한테 천사처럼 다가가는 나랑! 누가 더 나을 거 같아? 너 끝났다니까? 저번에 말 했잖아. 아직도 현실을 못 받아들이겠어? 더 까불어 볼래? 완전히 박살을 내줄 테니까.”

“오오우우. 무서워라.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교실에서 혼자 책이나 읽으러 가야겠네. 고마워~ 채유진.”

“……?”

유진이는 눈을 희번덕하게 뜨고 따지듯이 격앙된 목소리로 빠르게 말한다. 생전 처음보는 모습이다. 내가 아는 유진이가 아닌, 전혀 다른 애를 보는 것 같다. 무섭고 집착적인데다 뭐랄까, 사악한 느낌. 희세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런 유진이의 말을 듣더니 방긋 웃으며 좋아한다. 비꼬는 듯 대답한 희세는 빠르게 인사하며 뒤돌아 간다. 도리어 화를 내던 유진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우리도 얼른 빠져요! 흐앗!”

“어, 그래.”

미래는 냅다 내 손목을 잡고 속삭이듯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래와 함께 그 곳을 빠져나왔다. 유진이와는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하! 저 X발년! 진짜 제대로네! 저렇게 미X년인줄 몰랐는데! 오빠도 똑똑이 봤죠? 저 미친 거 저거!”

“……어.”

교실로 돌아오며, 미래는 흥분한 투로 말한다. 나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아 잠자코 대답했다. 유진이가, 유진이가 진짜 범인이었다니. 마음 한구석에서는 조금이라도, 유진이가 그런 짓을 하지 않기를 기대했었다. 희세나 성빈이, 민서가 말하는 정황 상으로 유진이가 모든 일을 주도한 것 같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믿었었다. 뭔가 오해가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이건.

희세에게 눈을 부라리며 광기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내뱉는 유진이의 모습은 나에게 충분히 그 이면을 확인시켜줬다. 충격 요법 같은 것일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왜일까, 미래 말마따나 나는 왜 유진이 편만 드는 것일까. 너무 괴리가 커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게 평소 유진이는 착하면서도 싹싹하고, 그러면서도 넉살좋고, 하여튼 참 좋은 애였는데. 소름 끼친다.

“……어때.”

“어, 어…… 내가 확실히, 유진이 편만 들은 것 같아서 미안해지네.”

“흥, 이제 와서. 어쨌든 확실히 봤지? 걔 하는 거.”

“응…….”

“그럼 계획 하나는 확실히 망가졌네. 채유진, 왕따 정웅도한테 천사처럼 다가가서 점수 따는 계획. 귀여운 강아지가 순식간에 하이에나처럼 비열하고 무서운 이빨을 보여줬으니.”

“……후우.”

자연스럽게 나와 미래의 옆에 끼어들어 묻는 희세. 떨떠름한 표정으로 희세를 보며 말했다. ‘흥’ 하며 피식 웃는 희세. 어쨌든 유진이의 그런 모습을 끌어내서 뿌듯한 모양이다.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다 녹음했으니까. 끝났어, 채유진.’ 하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 사실을 확인하고 유진이의 실체를 알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이게 맞는 걸까.”

“오빠 또 성인군자질 하려고 그래요? 왜요, 채유진 고것이 불쌍해요? 잘 들어요. 공격을 받으면 당연히 반격을 해야죠. 예전에 희세한테는 잘도 반격했었다며요. 근데 왜 얘한테는 이렇게나 감정을 갖고 그러는 거에요?”

“……그런 게 아니라.”

잠시 얘기하고 싶어 복도 끝 이슥한 곳에서 멈춰서 말했다. 미래는 순식간에 불퉁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따지듯이 말한다. 희세도 마찬가지로 불만스러운 표정. 두 여자애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잠자코 입을 열었다.

“우선은 대답부터 하고 말할게. 유진이가 그런 짓 한 거, 용서할 생각은 없어. 유진이가 좋아서 편들어 주는 것도 아니야. 물론 유진이가 내 취향 제대로 건드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감정은 없으니까.”

“시끄럽고 본론이나 말해.”

“넵. 그러니까요. 그게.”

태클을 걸리지 않으려고 결벽증인 양 먼저 판을 차린다. 태클은 전혀 의외로 미래가 아닌 희세에게서 걸려 온다. 심드렁하면서도 위압감 있는 희세의 단호한 말에 넙죽 대답하고 공손한 태도가 되었다. 응당 그래야지, 희세님 앞이라면. 아까 유진이와 대치하던 당당한 모습이 어느 정도 영향이 없잖아 있다.

“물론 사실을 밝혀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렇게 녹음한 거 애들한테 들려주면서까지 진실을 밝혀내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유진이가 역으로, 따돌림 당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고 싶진 않는데. 내가, 우리가 당해봐서 알잖아. 얼마나 싫은 건지. ‘반격’이라지만 그렇게까지 되돌려주는 건, 그럴 권한도 권리도 없고. 그래서…….”

“참, 오빠는 라노베 주인공으로 적합하네요. 그 와중에 오지랖도 넓고. 마침 학교도 여고겠다, 참 팔자 좋네요.”

“무, 무슨 소리야.”

“쓸데없는 걱정은 집어 치우시구요. 우선은 그대로 진행할 거에요.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요. 늘 먼저 생각하다 아예 안 하지 마시고. 어차피 오빠는 하는 거 없잖아요? 그냥 닥치고 계세요. 알았어요!?”

“……예예, 알겠습니다.”

내 말에 미래는 비꼬는 듯 대답한다. 너무 지나친 감상이었나. 희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대답 없는 게 더 두려워 얼른 미래의 말에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로 돌아간다.


“저, 선생님…….”

“안 되는 건 안 된다니까.”

“제발……! 선생님 도움이 꼭 필요해요.”

야자가 끝난 뒤, 기숙사 앞. 대부분의 건물들 불이 꺼진 가운데 기숙사 불만 영롱하게 켜져 있는 모습은 완연한 입시위주 교육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것 같아 소름 돋는다. 아아,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니, 이게 아니라.

얼마만에 이 앞에 오는 것일까. 작년 2학기 때 기숙사 나왔었으니까…… 6개월 조금 넘었으려나. 나는 기숙사 앞에서 쩔쩔매며 사감 선생님에게 말씀 드리고 있다. 아, 지금은 우리 담임선생님이지. 선생님은 매정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여전히 기숙사에선 편한 헐렁한 옷에 똥머리 묶음이신 선생님. 나와 얘기하면서도 힐긋 멀리서 천천히 오는 애들을 보고 ‘빨리빨리 안 들어오냐!’ 하고 쩌렁쩌렁 소리 지르신다. 여전하시구나.

“나는 누가 나한테 관여하는 거 되게 싫어하거든. 어쩔 수 없이 하는 거 말고는, 내 마음대로 하는 걸 좋아하거든. 근데 일개 학생이 내 수업방침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아지는데, 지금.”

“그…… 선생님의 수업 방침이나 신념을 훼손하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선생님 수업이 부족하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전 애초에 A반도 아니라 선생님 수업도 한 번 못 들어봤는걸요. 그런 게 아니라 그…… 저희 쪽 사정이…… 제발, 죽은 사람 살려주시는 셈 치구요, 제발.”

“안 돼.”

선생님은 냉혹한 시선으로 나를 보며 길게길게 말씀하신다. 내 말에 자존심이 상하신 모양. 단단히 화가 난 것 같다. 나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마찬가지로 길게 말했다. 자고로 변명을 할 때엔 말이 두서없이 나오지. 뭔가 약 파는 약장수가 된 기분이다. 선생님은 단호하게 대답하신다.

이렇게 쩔쩔매며 선생님에게 부탁하는 건, 바로 ‘반격 계획’의 일환. 미래의 길고 긴 설명이 떠오른다.


─“녹음만 해서 뭘 어쩌겠어요. 애들한테 들려줘야 하잖아요! 근데 지금 왕따에 X찐따인 오빠 말을 애들이 들어줄 리 없잖아요? 애들 모아서 저희가 자체적으로 녹음한 걸 들려주는 건 말이 안 되요.”

“맞는 말인데. 그럼 녹음한 걸 어떻게 들려줘야 하지?”

“마음 같아선 아침 조회시간에 해킹해서 전교생한테 들려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저 정학당할 수도 있구요! 아까 말한 오빠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따르면 굳이 전교생한테까지 들려주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너 해킹까지 할 수 있어?”

“근본적으론 거기서부터 안 되죠! 저는 만화 주인공이 아니니까요. 데헷☆”

“……그렇지, 역시.”

미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녹음은 전부 했다. 희세가 녹음하는 건 미래와 함께 몰래 지켜봤고. 성빈이도, 민서도 어떻게든 녹음을 했다고 한다. 부들부들 떨며 ‘무, 무서웠어……’ 하는 민서의 반응은 덤. 문제가 있다면, 이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의 결백함을 증명하냐인데. 이 녹음한 것들을 모두에게 적당히 들려줄만한 ‘무대’가 없다. 나사 한 두 개씩 빠진 것 같아도 미래는 아주 적절하게 작전의 허점을 파악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한 기가막힌 계략! 바로, 선생님을 이용하는 겁니다!”

“선생님……?”

“네! 영어 선생님이잖아요! 제가 생각한 건데, 이렇게 해서 저렇게…… 요렇게…… ─ ─ ─ …… 어때요??”

미래는 싱긋 웃으며 검지를 들며 말한다. 미래가 말하는 계략은 바로 이것. 담임선생님에게 미리 말씀을 드려, 수업시간에 두 명씩 짝 지어서 영어 대화를 녹음하는 숙제를 내게 한다. 그리고 그 녹음한 것을 틀 때. 영어 녹음본 대신 유진이의 실체가 담긴 녹음본을 트는 것. 물론 선생님한테는 미리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미래의 말에 나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다 좋은데, 선생님이 들어줄까.”

“안 되면 되게 하라! 오빠의 숙명입니다! 되게 만드세요! 오빠 선생님하고 친하잖아요!”

“친하다고 그런 것까지는 좀…… 아아.”

“이게 아니면 녹음본도 말짱 꽝이에요! 들려줄 수단이 없는데!”

미래는 막무가내로 우긴다. 확실히,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과연 선생님이 이걸 들어주실까 싶단 말이지. 제대로 된 사정을 말한다 해도 선생님은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장난하냐는 식으로 된통 혼날 수도 있겠지. 하나 미래의 계책 외에 별다른 뾰족한 대안을 낼 수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해보기도 전에 생각만 많아서 망한다는 미래의 말을 아까 들었으니, 해볼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랬던 게 아까 전인데. 과연 예상대로, 선생님은 완고한 태도로 반대하신다. 아직 우리의 사정을 말씀드리지는 않고 녹음 어쩌고 하는 말만 드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선생님에게 우리의 사정을 말씀드리기가 껄끄럽다.

“그…… 선생님.”

“응?”

“선생님은 제 담임선생님이죠.”

“그렇지. 그게 네 어이없는 제안이랑 관련이라도 있어?”

“학교폭력이라던가, 이런 거 굉장히 시끌시끌한 민감한 사안이죠. 학생들끼리 따돌림이 있는데. 그걸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 곪기만 한다면. 담임선생님한테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너 지금 나 협박하니?”

“협박이 아니라 그……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거죠.”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사정을 말함에 앞서, 선생님에게 강한 도발을 끌고 있다. 대번에 싸늘한 눈빛이 된 선생님. 나지막이 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엔 살의(殺意)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떨리지만 어쨌든 말을 이어 나간다.

“예전에 제가 왕따 당할 때, 도와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 때엔 그냥 넘겼지만. 지금은 선생님 도움이 필요해요. 선생님 도움 없이는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얘기를 들어 주세요.”

“……내가 그런 말 했었어?”

“했어요! 작년에 분명!”

“……기억 안 나는데.”

“했다니까요! 어쨌든!”

이번엔 협박이 아닌, 인정에 호소하는 방법. 뜻밖에 선생님은 전혀 기억을 하시지 못한다. 분명 희세가 주동한 따돌림을 당할 때 ‘도와줄 것 있으면 말해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었는데! 선생님은 뒷머리를 긁으며 대답한다. 이러면 뭔가 내가 우기는 것 같잖아.

“그…… 제가 왕따 당하고 있거든요.”

“그건 알고 있지. 지지배들 들어오면서 그런 얘기만 하거든. 뭐라더라? 너 쓰레기라던데? 여친 버리고 바람 피우고 어쩌고 저쩌고.”

“……사실인데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 잠깐 이 쪽 구석으로.”

“아무리 남자 고등학생이라도 성인 여성을 그런 곳으로 데려가는 건 굉장한 사회적 물의인 것 같은데. 무슨 짓 하려고?”

“아니에요 그런 거! 선생님 남자친구도 있으면서 왜 그런 드립을!”

“후훗♡ 재미있잖아.”

선생님의 사실확인은 확인사살처럼 내 마음을 후벼 판다. 조금 머뭇거리다 우리의 사정을 천천히 설명했다. 혹여라도 지나가던 다른 애들이 들을 수도 있기에 옆 쪽으로 빠져서 말씀 드리려 한다. 선생님은 그 와중에 섹드립을 치시고. 오래간만이네, 이것도.

“……그렇단 말이지.”

“네. 그래서 선생님 도움이 필요해요.”

“……흐음.”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설명드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보신다. 뭔가 떨떠름한 기분으로 선생님을 마주보는 나. 이제 일의 성사는 선생님의 결정에 달렸다. 사정을 다 말씀드렸다 해도, 선생님이 ‘안 돼’ 라고 매정하게 한 마디 하시면 그대로 안 되는 거니까.

“안 돼.”

“……그렇군요.”

“맨 입으로는 안 돼.”

“……네?”

선생님의 대답에 한숨 쉬는 나. 결국 안 되는 건 안 되는구나. 후회는 없다. 마음껏 부딪혀 봤으니. 만화 주인공 같은 생각을 하는 찰나,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에 다시금 희망의 불씨가 살아 오른다. 대번에 시무룩한 얼굴에서 밝아진 표정이 된 나.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피식 웃는다.

“나중에 선생님이 뭐 시키는 일 있으면, 그 때 군말 없이 하는 걸로. 적당하지?”

“그, 그럼요! 그런 거야 얼마든지 들어드리죠! 시키실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 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들어 드릴게요!”

“말은 청산유수네. 너도 참, 골치아픈 인생이구나. 두 번이나 왕따 당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진지한 건 아니고 약간 장난기 있는 말투로 말씀하신다. 그런 거야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선생님을 받든다. 선생님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대답하신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선생님이 나를 예뻐하긴 하는구나. 이제 기숙사에 안 사는데도. 연신 고맙다는 말을 선생님께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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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2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9.14 05:04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14 22:14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97 연필유령
    작성일
    15.09.14 07:36
    No. 3

    미래가 해킹이 가능한 지능캐가 되어 버리면 그건 리ㅋ....(읍읍)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14 22:14
    No. 4

    그러면 미래가 너무 전지전능(?)한 캐릭터가 돼 버려서~~ 안 돼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Kestrel
    작성일
    15.09.14 23:28
    No. 5

    맨입으로 안된다면 입을 가득 채워버리면...... 아, 먹을걸 사간다구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15 21:09
    No. 6

    ......?! 뭐를, 뭐로요?! 눈에 음란마귀가 가득 찼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Kestrel
    작성일
    15.09.14 23:29
    No. 7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읽은 기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죠. 일본의 한 여고가 학생수 부족으로 남녀공학으로 바꿨는데 그중 지원한 남학생이 단 하나 뿐이라는....... ㅎㄷㄷ 라노벨보다 더 라노벨 같은 이야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15 21:09
    No. 8

    늘 픽션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지요. 저도 분발해야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5.09.23 16:06
    No. 9

    와후 좋네요...뭐든지 다 들어줘야 한다라...뭘 원하실까요?
    밤이 요새 추운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23 23:05
    No. 10

    너무 뻔한 소재지만, 이걸로 한 편 정도는 저장해둔 셈이지요.
    밤이 추웁다면, 우훗...... 요즘 사감쌤 섹드립도 많이 죽었는데, 다시 전성기(?) 시절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5.09.29 13:39
    No. 11

    이제 막장 박살나는건가요?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0.01 20:59
    No. 12

    그렇지요. 슬슬 끝내야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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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11화 - 2 +8 15.10.07 806 20 20쪽
186 11화. 고난의 행군 +12 15.10.06 875 17 19쪽
185 10화 - 5 +8 15.10.04 934 24 22쪽
184 10화 - 4 +8 15.10.03 827 24 18쪽
183 10화 - 3 +16 15.10.01 1,006 18 20쪽
182 10화 - 2 +8 15.09.29 1,050 16 21쪽
181 10화. 약속했어, 기다려 줘. +12 15.09.24 1,022 18 16쪽
180 09화 - 4 +12 15.09.22 951 25 17쪽
179 09화 - 3 +8 15.09.21 1,033 26 21쪽
178 09화 - 2 +9 15.09.20 891 21 17쪽
177 09화. 힘들지만 안녕, 하고 말하기 +8 15.09.19 1,232 16 19쪽
176 08화 - 4 +12 15.09.16 937 18 19쪽
175 08화 - 3 +10 15.09.15 1,063 19 21쪽
» 08화 - 2 +12 15.09.13 1,004 20 19쪽
173 08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16 15.09.11 959 20 19쪽
172 07화 - 3 +10 15.09.09 1,097 17 20쪽
171 07화 - 2 +16 15.09.08 935 17 19쪽
170 07화. 말했을 텐데. +10 15.09.06 1,035 20 18쪽
169 06화 - 4 +6 15.09.04 998 18 23쪽
168 06화 - 3 +10 15.09.01 1,046 20 21쪽
167 06화 - 2 +8 15.08.30 1,005 19 19쪽
166 06화. 일장춘몽 +12 15.08.27 1,219 68 20쪽
165 05화 - 4 +18 15.08.24 1,213 25 18쪽
164 05화 - 3 +14 15.08.22 1,104 21 19쪽
163 05화 - 2 +8 15.08.20 943 27 19쪽
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3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8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20 2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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