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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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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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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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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10.0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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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쉬는 날.

DUMMY

‘빰빰빰빠라밤 빰빠라밤 빰! 빠바밤!’

“으음…….”

요란한 알람소리. 절로 눈을 찡그리게 된다. 일어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 그게 숙명. 이제 일어나서 준비하고 8시부터 10시까지 14시간동안 학교에 가둬져야 하잖아? 안 될거야, 아마.

괴롭게 얼굴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찾으려 손을 더듬거렸다. 분명 머리맡에 두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자면서 움직여서 휴대폰이 이동했나보다. 희세가 오지 않는 때부터는 늘 이런 패턴의 아침이다. ……희세의 모닝콜이 없어진 건 아쉽지만, 원래 그랬어야 하는 거니까.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아침 모닝콜이라니. 그보다, 사귄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헌신적으로 아침부터 와서 깨워주고 밥 차려주고 하는 건 없을 것 같은데.

‘뚝.’

“음?”

“아. 깼어?”

“……아아아앙?!”

바닥에 손을 더듬거리는데, 문득 꺼지는 휴대폰 알람 소리. 그와 동시에, 잡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 동시에 희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다. 어둡지만 충분히 적응된 눈이라 어렴풋이 희세의 모습이 보인다. 희세가 몸을 숙여 내 휴대폰 알람을 끄는 사이 내 손이 휴대폰을 찾아 희세 손 위에 손을 올렸다.

“뭐, 뭐야 왜.”

“뭐긴 뭐야, 깨워주러 왔잖아.”

“아, 아니. 이제 그만…… 하기로 하지 않았나.”

“……상관없잖아? 얼른 씻기나 하지.”

“어, 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나. 괜히 뭔가 불안한 기분이다. 희세는 여전한 새침한 태도로 말하며 자연스럽게 냉장고를 연다. 단정한 교복 차림의 희세. 예전에 한창 나를 깨우러 와 줬을 때와 조금의 차이도 없다.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먹어.”

“응. 고마워.”

“뭘.”

“오랜만에 이러니까, 고마워서.”

“흥. 조용히 하고 밥이나 드세요─”

“네네.”

씻고 나오면 어김없이 희세가 밥을 차려 놓는다. 출근 전에 밥을 먹는 신혼부부 같은 느낌이랄까. 정숙한 새댁 같은 느낌의 희세가 보기에 참 예쁘다. 고맙기도 하고. 해서 간만에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이런 거, 사귀는 사이라도 힘들잖아? 나 깨워주려 오려면 희세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와야 할 텐데. 그럴만한 사람도 아닌데, 나.

“……푸흡!”

“왜?”

“아아아아, 아니. 그, 단추…… 하나 풀렸는데.”

“아…… 빠졌나. 요즘 교복이 작아져서.”

“푸흡!!”

밥을 먹기 시작한다. 치마를 입어 무릎꿇은 공손한 자세로 밥을 먹는 희세. 뭔가 부담스럽다. 힐끔 희세를 쳐다보는데. 자석에 이끌리는 쇳덩이처럼, 본능적으로 내 시선은 한 군데로 향한다. 희세의 교복 블라우스, 윗단추가 채워져 있지 않다. 가뜩이나 터질 것 같은 볼륨감을 자랑하는데 그렇게 단추가 풀리니까, 노출도가! 세상에. 저게 정녕 고등학생이란 말인가.

사람이 감정적으로 흥분했을 때 몇 배 이상 팽창하는 느낌으로, 동공이. 동공이! 커져서 희세의 가슴골을 보다 얼른,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 말에 희세는 고개를 숙여 블라우스를 여미다가 지나가는 식으로 한 마디 한다. 더욱 뿜게 되는 나. 교복이 작아졌다는 건, 그 말은 즉……! 성!장!기!

“그…… 있잖아.”

“응? 응?”

“오늘, 이렇게 온 건 이유가 있어서 왔는데.”

“어어, 무슨 이유?!”

단추를 못 채운 게 아니라 단추가 없어진 것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해서 나는 희세에게 차마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반찬만 멀뚱멀뚱 쳐다본다. 지금 말하는 희세에게도, 어떻게 시선을 두지 못하고 허둥대며 대답했다.

“내 눈 보면서 대답해줘.”

“응응, 응…… 그, 사실대로 말하자면 단추 떨어진 것 때문에 신경 쓰여서! 미안해, 이런 변태라서!”

“……흐흣.”

희세의 말에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눈을 들었다. 반듯하게 보이는 희세의 눈. 예쁘다. 그럼에도 중력에 끌리듯, 큰 행성의 인력에 끌리듯 눈이 자연스럽게 밑으로 내려간다. 아, 안 돼……! 하는 수 없이 이실직고한다. 희세에게 거짓말은 무용(無用)이다. 그저 사실대로 말하고 선처를 바랄 수밖에.

원래대로의 패턴이라면 희세는 잔뜩 얼굴을 붉히며 ‘뭐, 뭘 보는 건데?! 변태새끼!’ 하며 나를 변태로 매도할 것이다. 응당 내가 감당해야할 숙명이지. 하지만 희세,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다. 도리어 기분 좋은 듯한 웃음을 짓는다. 에…… ‘기분 좋은 듯한’ 이라고?!

“좋아해.”

“……에.”

“좋아해, 웅도야.”

“……!”

살짝 달아오른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하는 희세. 그 말은 내 귀로 정확히 들어와 뇌리에 파고든다. 허둥지둥 가슴골이나 보고 있던 시선이, 천천히 들려 희세의 눈으로 간다. 살짝 상기된 볼. 입술을 깨물더니, 머뭇거리는 눈을 하고 희세는 다시 한 번 말한다.

심장이 쿵쾅. 다시 한 번 쿵쾅. 멈추지 않고 계속 두근.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얼굴. 머릿속은 새하얗게. 컴퓨터라면 치명적인 오류가 걸린 상황. 이런 상황에 대한 프로그램이 전혀 없으니까.

“웅도 너는……?”

“……나, 나, 나? 내가? 나를? 네가? 조…… 좋아한다고?”

“응, 좋아해.”

“……하아?!”

내 반응을 살피며 잠자코 물어보는 희세.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든다.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정말은. 어느 정도 은연 중에 알고 있었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나는 사실 가식덩어리인 셈이지.

그렇게나 신호를 보내는데, 아무리 둔감해도 못 알아차리면 병신이지. 하지만 내가 당황한 건, 타이밍.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선택해주길 기다리는 건지 희세는 결코 먼저 고백하지 않았다.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도저히,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 고백한 것일까. 아니면, 아니면……? 다시 한 번 희세에게 ‘좋아해’ 라는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견딜 수가 없다.

“…….”

“……왜 아무 말도 없어. 역시, 안 돼?”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잠자코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한 마디 던지는 희세. 살짝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면 뭔데. 리유 때문이야? 이미 헤어졌잖아! 막말로 끝났잖아!”

“아아아─ 그.”

“아니면 뭐? 다른 여자애들이 눈에 밟혀? 나랑 사귀면, 다른 여자애들이랑 사귈 기회는 물건너 가니까?”

갑작스럽게, 흥분한 채 말을 꺼내는 희세. 잔뜩 벼르고 꺼낸 말인지 점차 감정이 격앙된다. 내가 체 변명을 하기도 전에 희세는 나를 몰아붙인다. 게다가 그 몰아붙이는 말들이 잘 벼린 칼 같아서 나는 도무지 변명할 거리조차 없다.

“희세야,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뭔데!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말하라니까! 짜증나게!”

“……미안.”

어떻게든 희세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희세는 더욱 흥분해서 말한다. 끝내 눈에 눈물까지 고였다. 이제야, 희세가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지 알 것 같다. 차라리, 싫다고, 마음 받아줄 수 없다고 확실하게 못 박으면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을 텐데. 애매하게, 잔뜩 애매하게 일관하는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거였구나. 착찹한 마음으로 말했다.

“……미안하다면, 됐다는 거지? 그치?”

“…….”

내 사과에 희세는 또르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감정은 가라앉았지만 다른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희세. 슬픔.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잠자코, 시선을 옮기지 않고 정면을 바라본다. 희세의 무릎이 보인다. 예쁘네.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이냐. 역시, 명불허전 정웅도구먼.

“……!”

“……좋아해.”

“!”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방을 나서지도 못하고, 그저 뒤돌아 가만히 서 있는 희세. 아마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겠지. 이미 터져버린 눈물샘은 진정시키기 힘들겠지만. 나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희세를 뒤에서 안았다. 움찔 놀라는 희세.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더욱 놀라는 희세. 어쩔 줄 몰라하는 게 굳이 보지 않아도 머리에 그려지는 것 같다.

“……나, 잔뜩 변태새끼에, 너만 보면 자꾸 야한 생각만 하는 변태 쓰레기인데. 다른 여자애들 봐도 그런 생각만 하는 나쁜 애인데. 그래도 상관없어?”

“……원래 그런 거잖아, 남자새끼들은. 응?”

“……일반화시킬 순 없겠지만, 대강은 그렇겠지.”

“……헤헤헷.”

“……후후후.”

뒤에서 희세를 안은 상태로 천천히, 말했다. 잘해줄 자신은 없다. 내가 지껄이는 대로, 우유부단한데다 쉽게 휘말리는 갈대 같은 스타일이라, 금세 어떻게 다른 여자애한테 끌릴지도 모른다. 전례들이 너무 많잖아. 리유하고 사귀다 바람피우고, 그런 와중에 유진이의 계략에도 걸려들고. 너무 남을 잘 믿고, 너무 잘 좋아하는 나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다잡고 희세의 마음에 대답하고 싶다. 나도, 좋아한다고.

희세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아직 울음이 섞여 있는 목소리지만, 엄청 좋아하는 기분이 목소리로 전해진다. 나도 마찬가지로 씨익 웃으며 말했다. 희세의 몸이 따뜻하다. 살며시 웃는 희세. 나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작작 만지지?!”

‘찰싹!’

“아핳! 이, 이런 변태입니다, 제가!”

“어떻게 좋아한다고 하자마자 이, 이……!”

한동안 서로 바보처럼 웃기만 하던 나와 희세. 희세는 꾸욱 눌러 참는 목소리로 외치듯 말하고 그대로 홱 몸을 돌려 나를 뿌리치곤 회전력을 담아 강하게 뺨싸다구를 날린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대답하는 나. 백허그 해서는 자연스럽게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희세는 잔뜩 얼굴이 빨개져서 뺨을 때린 손을 부들거리고 있다.

“죄, 죄송합니다! 흰색.”

“죽을래?!”

“으헉!”

이런 때엔 얼른 올곧게 사과하는 것이 올바른 희세에 대한 대처법이다. 넙죽 엎드려 사과하면서 또 은근히 도발을 한다. 잔뜩 창피해하는 희세. 그대로 나를 짓밟는다. 으악! 진짜 아프잖아! 이건 희세가 치마를 짧게 하는 게 잘못이잖아! 멀쩡하게 다 보이는데! 흰색이라니, 얼마나 좋은 색깔인데! 나는 딱히 무슨 색깔을 말한 게 아닌데!


“진짜. 개변태새끼.”

“미안. 하하핫.”

이럭저럭 정리하고, 밥도 먹고 같이 걷는 등굣길. 굉장히 충격적인 고백에, 나도 마음을 대답했지만 어째 나와 희세 사이엔 묘한 거리감이 있다. 대뜸 내가 변태짓을 해서 그런가. 역시, 그런 거 하지 말 걸 그랬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그런 것이었는데 도리어 더 어색해졌네.”

“!”

“……오, 오늘부터 사귀는 거니까.”

“응, 아─ 따뜻하다.”

“……히히히.”

살며시 내 옆으로 다가오는 희세. 꼬옥 내 손을 잡는다. 흠칫 놀라 희세를 쳐다본다.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나를 보지 않고 말하는 희세. 잔뜩 귀여워 죽겠다. 잡은 손을 흔들며 자랑스럽게 말하니 희세도 기분 좋은지 입을 가리고 웃는다.


“에? 에에! 히이익! 손……! 손손! 설마?! 설마설마?!”

“아아…… 그게.”

“……뭐! 멍충아.”

“그, 사귀기로 했거든. 오늘부터.”

“히이이익─! 대박대박!!”

마악 건물에 들어서 계단을 오르는데, 지나가던 미래와 마주친다. 나를 보고 활달하게 인사하려다, 잡은 두 손을 보고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입을 가리는 미래. 어쩔 줄 몰라하며 허둥댄다. 뒷머리를 긁으며 얼버무리려 하니 희세가 잔뜩 눈을 흘기며 말한다. 숨기지 말라 그건가. 조금 창피하지만, 제대로 말했다. 미래는 엄청 놀란 표정으로, 거의 황홀경에 가까운 표정으로 나와 희세를 쳐다본다.

“그럼, 갈게.”

“제대로 말 했네.”

“그럼, 사귀는 게 맞는데. 이따 봐?”

“응.”

희세네 반 앞에 가서야, 희세의 손을 놓아줬다. 얼마나 잡고 있었는지 손에 조금 땀이 베일 정도. 희세는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능청맞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니 희세는 나를 마주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헤어지며 인사한다. 희세랑 같은 반이 아닌 게 이렇게나 아쉬운 일일까.

‘드르륵.’

“…….”

반에 들어서니 시끌시끌하던 반이 조용해졌다. 아하. 벌써 소문이 퍼졌나. 하긴, 미래 말고 다른 여자애들도 수군대면서 손잡고 오는 나와 희세를 쳐다봤으니까. 여자애들 네트워크 무서운 건 알아줘야지. 그 짧은 순간에. 뭐, 두려울 게 뭐 있나. 잠자코 자리에 가 앉는다. 이런 건 왕따가 아니라, 그냥 그런 거니까.

“대박대박~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아침에? 아침에 고백하는 게 어디있어요!”

“……희세가 고백했는데?”

“에에─! 쩔어! 역시, 사랑은 쟁취하는 사람의 것~~! 하아, 저는 안 되겠네요. 저는 먼저 고백했는데! 역시, 이 가슴주의자!”

“가슴주의자는 뭔데 또.”

미래는 내 옆에 와 호들갑스럽게 말한다. 아, 작년에 미래한테 고백 받았었지. 그 때엔, 어떻게 전혀 맞질 않았으니까. 뭘 돌려서 말해. 그냥 그런 거지. 별로, ‘좋아한다’는 마음까지는 아니었으니까. 미래는. 그냥 개드립 주고받고, 좋게 말하면 왈가닥 사촌여동생 대하는 느낌이니까. 결코 ‘사귄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으니까. 그 선택은 후회하지 않는다.


“……잠깐 볼 수 있어?”

“어?”

한참 옆에서 떠들고 있는 미래. 수업까지 얼마 안 남았지만 미래의 호들갑은 끝나질 않는다. 하긴, 어떻게든 재미있는 일이 있기를 바라면서 일을 물어오는 미래인데, 내 쪽에서 스스로 이런 좋은 안줏거리 가지고 왔으니 기쁘지 않을 리가. 한참 미래의 수다를 듣는 와중에, 내 앞으로 다가오는 여자애. 성빈이.

성빈이답지 않은, 무서운 표정.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천사같이 해맑은 눈빛은 온데간데없다. 무언가에 채인 것처럼 상당히 무거운 얼굴.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성빈이가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어, 지금 수업 시작하려면 얼마 안 남았─”

“제발!”

“……어어, 알았어.”

수업 시작까지 1분. 거의 선생님이 들이닥칠 시간이기에 잘 말해 돌려보내려는데. 성빈이가 빼액 소리를 지른다. 다른 애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큰 소리로.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다 깜짝 놀랐다. 성빈이가, 절대 이럴만한 애가 아닌 성빈이가. 얼떨떨해서 알았다고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무슨 할 얘기?”

“……희세랑 사귄다고 들었어.”

“어어, 어.”

……뭐, 짐작가는 부분이 없냐고 하냐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겠지. 희세만큼은 아니어도, 성빈이도 충분히 신호를 보내왔으니까. 나한테, 좋아한다는 신호를. 얼떨떨 했지만 대뜸 물어보는 질문에 대강 감이 왔다. 그것 때문에 부른 거구나. 그것 때문에 이렇게나 풀 죽은 표정 짓고 있는 거구나. 잠자코 대답했다.

“언제부터……?”

“오늘 아침에. 희세가 고백해서. 벌써 소문 다 났구나.”

“……그래.”

“응. 그래.”

더욱 서글픈 표정으로 묻는 성빈이. 나는 묵묵하게 대답한다. 딱히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제 확고하게 마음을 정했으니까. 별다른 거부의 의사는 없지만, 확실하게 대답하는 것만으로 이미, 성빈이에게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고 있는 셈이다. 성빈이는 더욱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헤헷. 나는, 제대로 고백도 못 해보고 차였네.”

“……응.”

“……나도 좋아해, 웅도야. 늦었지만, 나도 고백할게. 나, 너 좋아해. 많이많이.”

“응.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

애써 웃음 지으며 말하는 성빈이. 평소의 천사 같은 미소와 대비돼서 더욱 대조되는 미소다. 천천히 대답하는 나에게, 성빈이는 마찬가지로 천천히 말을 잇는다.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떨어지는 눈물. 묵묵히 성빈이의 고백을 들은 나는 잠자코 대답했다. 어쩔 도리가 없잖아, 이런 건. 하필이면 왜 오늘 바로인데. 조금이라도,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한데, 아무리 나라 해도.

‘턱!’

“!”

“……잠깐만, 이대로 있어줘…….”

“…….”

다짜고짜 달려들어 나에게 안기는 성빈이. 당연히 흠칫 놀라게 된다. 어떻게 막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너무 갑작스럽게 달려들어서. 성빈이는 그대로 안긴 채, 나와 얼굴을 엇갈린 채로 작게 말한다. 너무 슬프고, 잔뜩 울음이 섞인 목소리여서 차마 매몰차게 떨어뜨릴 수가 없다. 팔을 들어 잠자코, 성빈이를 안아준다.

“……그냥, 들어주면 안 돼?”

“무슨……?”

“……나, 두 번째여도 상관없으니까. 비밀이어도 상관없으니까. 잔뜩 무시당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웅도 너랑…… 사귀는 걸로 하면 안 돼?”

“……말이 안 되잖아, 나 오늘 희세랑 사ㄱ……!”

잔뜩 흥분한 듯 모기만한 소리로 말하는 성빈이. 너무 격앙된 감정에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 모양이다. 거기다 말하는 것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 그러니까, 두 번째라도 좋으니까 비밀로 사귀어달라는 거잖아. 대놓고 바람피우자는, 말도 안 되는 얘기. 게다가, 성빈이의 평소 성격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행동. 이것만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나에게 안겨 있는 성빈이를 떼어내고 다그치듯 말하려는 찰나. 그대로, 내 입술로 다가오는 성빈이.

“!!!”

“…….”

“……성빈이 너…….”

“……안 돼? 응?”

“…….”

입술을 비집고 따뜻한 무엇인가가 들어온다. 흠칫 놀란 나. 너무 아찔해서 어떻게 견디질 못하겠다. 그렇다고 또 매몰차게 뿌리치지는 못하는 나는 정말 진성 쓰레기다. 잠시동안 시간이 휙 지나고 겨우, 나에게서 떨어지는 성빈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성빈이를 내려다보며 말하니 성빈이는 너무나 서글픈 눈으로, 다시금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말을 잇는다. ……그런 눈으로 보면, 그렇게까지 해버리면 나는 어떻게. 어떻게 대답할 수가 없잖아. 확실하게. 착찹한 표정으로 성빈이를 쳐다본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비밀로 한다면.







─“~라는 소설을 써 봤는데, 어때요?!”

“미쳤냐.”

“아하하하하! 좋지 않아요?!”

아침부터 얼토당토않은 개소리를 지껄이는 미래. 눈을 반짝이며 내 반응을 살핀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개소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래에게 말한다.

“네 악취미는 이것저것 많이 알지만, 적어도 현실 인물을 가지고 그런 짓거리는 하지 마.”

“에에~ 왜요! 오빠의 답답한 어장관리보다는 이 편이 훨씬 나은 거 같은데요?!”

“아아니, 내가 언제 어장관리를 했다고. 어장이 있기나 하간 내가?”

“「정웅도 하렘」은 이미 유명한데요? 전교에 소문이 파다할걸요?!”

“그럴 리가 없잖아.”

“아! 때렸어요?!”

지지 않고 맞대응하는 미래의 머리를 콩 치며 말한다. 미래는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눈을 부라린다. 이 녀석,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머릿속에 뭐가 들었으면 그런 스토리를.

……뭐, 그렇게 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당연히─


……누굴 골라야 하지. 행복한 고민이겠네.


“후속작으로는 이어지는 유진이의 얀데레질과 민서의 역습! 게다가 돌아온 리유까지! 우와, 속편으로 3편까지 나오겠어요.”

“작작 하라니까.”

오늘도 미래의 개드립은 늘어만 간다.


작가의말

오늘은 쉬는 날입니다. 

......쉬면 뭐 하겠어요. 그냥 쉬어가는 타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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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08화 - 3 +10 15.09.15 1,063 19 21쪽
174 08화 - 2 +12 15.09.13 1,003 2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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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07화 - 3 +10 15.09.09 1,096 17 20쪽
171 07화 - 2 +16 15.09.08 935 17 19쪽
170 07화. 말했을 텐데. +10 15.09.06 1,035 20 18쪽
169 06화 - 4 +6 15.09.04 997 18 23쪽
168 06화 - 3 +10 15.09.01 1,046 2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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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06화. 일장춘몽 +12 15.08.27 1,219 68 20쪽
165 05화 - 4 +18 15.08.24 1,212 25 18쪽
164 05화 - 3 +14 15.08.22 1,104 21 19쪽
163 05화 - 2 +8 15.08.20 942 27 19쪽
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3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7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19 2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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