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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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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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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1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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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9쪽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DUMMY

“…….”

지루한 훈화. 학교의 일은 늘, 어떤 것이던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한 말씀을 하고 나서 시작한다. 버스를 옆에 두고 지루하게 하품하며 기다리고 서 있는 학생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아침부터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뭐, 사회생활의 연장이자 예행연습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냥 시간이 지나길 바랄 수밖에.

간만의 나들이. 소풍이다. 입시위주의 팍팍한 대한민국 고등학교지만, 어째서인지 이런 것은 약속이라도 된 듯 꼬박꼬박 가곤 한다. 너무 공부만 시키면 학생들이 돌아버릴까봐 그런 것 같다. ……지금도 충분히 돌아버릴만큼 공부만 시키는 것 같지만. 어쨌든 가는 소풍 마다할 리 없는 학생들이다. 단순히 수업 안 하고 쉬는 것만으로 좋은데 다른 곳으로 여행가는 기분으로 소풍을 가니 더욱 좋겠지.

“재미있을 것 같아!”

“응, 나도.”

아직 버스를 타기 전, 옆에서 유진이가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 무심한 듯 무덤덤하게 생각하는 나지만 사실 나도 소풍을 굉장히 기대했다. 누군들 소풍을 싫어하겠어. 오랜만의 여자애들 사복 차림도 상당히 눈을 즐겁게 하는 한 요인이다. 아니, 그런 것 때문에 소풍이 즐겁다는 건 아니고.

예전이었다면 당연하게 리유랑 같이 다니고 리유랑 같이 앉았을 텐데. ……뭐, 이제는 익숙하게 없으니까, 리유는. 더 허전하다거나 그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니까. 대신에 같이 다니는 건 유진이.

유진이랑은 요즈음 많이 친해졌다. 리유가 없다면, 그 빈자리를 희세나 성빈이가 채워줄 수 있겠지만─ 같은 반이 아니라는 것이 상당한 차이를 만든다. 어쨌든 좋으나 싫으나 같은 반 애들하고 지낼 수밖에 없기에, 유진이와 같이 놀고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희세, 성빈이와는 쉬는 시간에 꼬박 놀러오고 점심시간, 저녁시간에도 같이 밥 먹기는 하지만.

“과자 먹을래?”

“초등학생도 아니고, 버스에서 웬 과자.”

“피이. 먹기 싫으면 말던가. 난 초등학생이라 먹을 거네요~”

“……먹겠습니다.”

“히히힛.”

버스에 앉아서도 같은 자리에 앉은 나와 유진이. 미래는 버린지 오래다. 그런 말을 미래가 뒷자리에서 하고 있다. 부스럭거리며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는 유진이. 의외로 이런 면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가진 유진이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내 대답에 눈을 흘기며 입을 삐죽이는 유진이. 가만히 복종하며 과자를 얻어먹는다.

과자봉지 소리에 여기저기서 ‘유진아 나도~’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 명 한 명 한 조각씩 나눠주는 유진이. 아아, 좋은 공산주의다. 모두가 가난해지는 신비한 마법. 어쨌든 모두가 공평하게 먹긴 했다. 돈을 지불하고 사온 건 유진이인데. 뭔가 이상하잖아?! 유진이는 ‘아이…… 얼마 안 남았어 히잉.’ 하고 장난스레 울상을 짓는다. 피식 웃으며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하고 대답해준다. 유진이, 발이 넓은 편이라 반 애들한테 두루 인기가 있으니까.

“어디로 간댔지? 서라벌은 아니지?”

“그러면 나는 세 번째 가는 게 될 텐데. 거긴 아니고, 음. 일단 남도랬는데. 무슨 섬 간댔어.”

“우와! 배 타고 그러려나?”

“그럴지도 모르고.”

“쩔겠다!”

중·고등학생 소풍과 수학여행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 서라벌. 신라 문화 1000년의 고도. 거긴 이제 그만 두자. 시내랑 거리 다 외울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번에는 남도 쪽 섬으로 간다고 들었다. 이동 시간만 3시간이 넘는 게 큰 단점이긴 한데. 뭐, 적당히 휴게소에서 먹을 거 사 먹고 그런 게 소풍의 묘미지. 유진이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휴게소…… 자네.”

“…….”

1시간 조금 넘게 고속도로를 달렸을까, 첫 휴게소에 멈춰선 고속버스. 유진이는 아까부터 조용하다 했더니 잠들었다. 쌔근쌔근 자고 있는 걸 깨우기도 그렇고, 잠자코 유진이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같이 휴게소 갈래? 델리만쥬 사먹어야지. 나는 휴게소 오면 꼭 먹거든, 그거.”

“어…… 응.”

뒷자리 민서. 창가 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래는 버스 임에도 대자로 누워 흉하고 원초적인 모습으로 자고 있다. 안방이라 해도 믿을 정도. 민서는 잠자코 앉아 있다 내 말에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 ‘델리만쥬’라는 말에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하, 민서는 먹을 걸로 꾀어내기가 좋은 것 같다. 뭐, 여자애들은 대부분 주전부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나와! 3호차 앞으로 와.』

“아…….”

막 버스에서 나온 순간 톡이 온 것을 확인했다. 희세. 오늘은 등교할 때 빼곤 희세랑 거의 못 봤지. 버스도 반 별로 배정되니까. 소풍 내내 희세나 성빈이랑은 보기 힘들 것 같은 느낌. 그도 그럴 게, 반 별로 움직이는 게 편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희세에게 톡이 온 것.

조금 난감하다. 일단은 민서랑 같이 나왔는데 희세랑 같이 합류해서 돌아다니기엔 중간에서 난처해지니까. 불쾌해하는 희세의 모습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숫기가 없고 사교성이 떨어져 소심하게 있는 민서는 덤이고. 어쨌든 버스에서 내렸다.

“…….”

“어, 희세야. 그─”

“……됐어!”

3호차는 바로 우리 옆에 있는 버스다. 즉 나와 민서가 같이 내리는 것을 희세는 금세 포착할 수 있는 상황. 주뼛거리는 민서와 함께 희세 쪽으로 가니 희세는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짜증스런 표정이 된다. 그나마 민서는 딱히 싫어하거나 하는 것 같지는 희세지만, 어쨌든 같은 반 애들하고 많이 지내는 걸 보면 되게 싫어하는 희세다. 당연하지, 그 반 애들 때문에 자기하고 많이 못 노니까.

말을 체 꺼내기도 전에 희세는 짜증스레 말하고 그대로 앞으로 걸어간다. 어떻게 붙들 시간도 없이. 옆에서 민서가 ‘저…… 미안해해야 할 것 같은데. 미안.’ 하고 말한다. 드립을 친 건 아니겠지만 묘하게 웃겨서 ‘푸흡.’ 하고 웃음이 나온다. 민서는 특유의 미안해하면서 웃어야할지 어떨지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가만히 보면 민서도 의외의 드립력이 있는 것 같다.

“여보세요. 어. 다른 애랑 나와서. 응. 어어. 응~”

“……미안?”

“아니야. 다음 휴게소 들리면 만나기로 했어.”

“그, 그래.”

휴게소 건물 쪽으로 다가온 순간 걸려오는 전화. 이번엔 성빈이. 희세는 진실을 말하기 무섭지만 성빈이는 다르지. 배려심 많은 착한 성빈이이기에 사실대로 말한다. 방긋 웃는 목소리로 그럼 다음 휴게소에서 보자고 하는 성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는다. 옆에서 민서가 앞서 사과하고 있다. 또 웃음이 나올 것 같아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여전히 뭔가 미안하고 어눌해 보이는 민서.

“어디보자. 제일 작은 게 3000원이네. 3000원짜리 주세요.”

“네~”

“…….”

“음? 민서 너는?”

“…….”

3000원, 5000원, 7000원으로 알차게 구성돼 있는 델리만쥬. 좀 비싸긴 하지만, 이건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니. 휴게소만 들르면 으레 사먹게 되는 마법의 과자랄까. 폭신한 빵 안에 달콤한 노란 슈크림 같은 거. 천상의 맛이다. 호두과자보다 맛있는 것 같다. 맥반석오징어, 구운감자, 고구마스틱 이딴 거 다 필요 없다. 델리만쥬면 만사 OK이다.

일단 내 주문을 마치고 시선을 민서에게 돌린다. 웬걸, 민서는 굉장히 서글퍼 보이는 눈망울로 아주머니가 봉투에 담고 있는 델리만쥬를 쳐다보고 있다. 생각보다 눈이 크구나, 민서.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나 촉촉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지. 내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다만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뭔가 마음이 짠해진다.

“지, 지갑을…… 놓고 왔어…….”

“아아.”

“……진짜 좋아하는데, 진짜 먹고 싶은데…….”

“그럼 내가 사줄게.”

“……엣!”

고개를 떨구며 대답하는 민서. ‘나는 이제 틀렸어’ 하는 절망적인 목소리. 좌절에 빠진 눈빛. 눈물마저 고일 것 같은 촉촉한 눈망울. 별 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움직일 정도로 민서의 표정은 애처롭다. 게다가 그녀의 통통한 몸집 또한 ‘진짜 좋아하는데, 진짜 먹고 싶은데’ 라는 말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상당히 높여준다. 이건 안 사주고는 못 베기겠다. 안 사줬다간 나는 사람새끼도 아니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아, 아니야! 얻어먹으려고 그런 말 한 건 절대 아닌데!”

“그럼, 5000원짜리 살 테니까 나눠먹자. 어차피 다른 애들하고도 나눠먹으려 했으니까.”

“그, 그렇게까지는…….”

“아줌마, 5000원짜리로 바꿔주세요.”

“네~”

작은 호의에도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서. 이럴 때엔 베푸는 호의가 아니라 그냥 내 의지로 하면 간편하다.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민서. 아주머니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좀 더 큰 봉투에 옮겨 담는다. 봉투 하나야 버리겠지만 더 많이 파는 건데 뭐.

“하으학, 뜨겁네. 개존맛. 먹어봐!”

“응, 고마워.”

두둑하게 넣어주신 델리만쥬. 하나 집어 먹는다. 갓 구웠는지 뜨거운 크림 때문에 입 안이 데일 것 같다. 역시, 이 맛이다. 마저 먹으며 민서에게도 권한다. 민서는 조심스럽게 하나 집어 먹는다. 금세 녹는 듯한 표정을 짓는 민서. 애처로운 표정 말고도 먹는 리액션 또한 훌륭하다. 정말 맛있어 하는 표정에 맛있게 먹고 있는 나도 더 먹고 싶을 정도. 홈쇼핑 광고모델 같은 거 하면 적절할 것 같다, 민서.

“웅도는, 인기 많은 것 같애.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으응? 갑자기 왜?”

“그, 음…… 누구한테나 상냥하니까, 인기가 있는 것 같아.”

“글쎄, 그냥 여고에 있는 유일한 남자애니까 그런 거 아닐까. 원래 나 X찐따야. 그냥 희귀하니까 값어치 있어 보이는 거지.”

“아, 아니야! 충분히 인기 있을만해, 응.”

버스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며 얘기한다. 민서는 수줍게 얘기하다 심드렁한 내 대답에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대답한다. 뭐, 나는 내 분수는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과한 관심이지.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 정도인 내가 학기 초부터 엄청 관심을 끌고 반에서 입지도 높은 건 순전히 여고에서의 유일한 남자애니까 그런 거지. 여자애들만 있는데 그 중에 딱 한 명, 남자애가 있다면 아무리 그래도 원래보다 훨씬 평이 올라가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 그 증거로 다른 남고나 남녀공학 고등학교와 교류가 있는 여자애들은 나는 거들떠도 안 본다. 민서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대충 그래.’ 하며 대답한다.


“나 두고 휴게소 가구! 너무해!”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이거 먹을래?”

“응!”

“히히히.”

차 안으로 돌아오니 뾰로통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유진이. 볼멘소리로 새침하게 흘겨보며 말한다.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다 얼른 먹을 것을 내미는 나. 역시 먹을 것이 최고다. 금세 기분이 풀려 얼른 집어 먹는 유진이. ‘음 맛있어!’ 하며 좋아한다. 옆에 있는 민서도 덩달아 좋은지 히히 웃는다. 미래도 먹을 것 주고 싶지만 아직까지 혼수상태로 깊이 잠들어 있다. 어제 늦게까지 안 잤나. 미래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셀카 찍자!”

“이런 거 싫어하는데.”

“아아! 그냥 넌 배경이니까 가만히 있어. 멍청한 표정 짓지 말구!”

“에헤헤─ 바보입니다.”

“아아! 짜증나, 이게 뭐야! 다시. 멋있게!”

한바탕 맛있게 먹고 다시금 출발하는 버스. 도통 소풍인지 버스 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원래 소풍이란 게 그렇지. 이동시간이 절반이잖아. 지루했는지 유진이는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 한다. 문득 저번에 놀이공원에서 잔뜩 희세와 셀카 찍은 게 생각나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거. 귀찮잖아.

유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볼을 부풀리고 한 손으로 입과 볼을 가리는 전형적인 여고생 셀카 자세를 취하며 휴대폰의 각도를 위로 한다. 굳이 포토샵을 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엄청난 보정이 들어가는 것 같다. 혼자 찍으면 될 텐데 굳이 나를 배경으로 삽입하겠다는 유진이.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에, 나는 한창 바보같은 표정을 짓는다. 짜증을 내는 유진이. 투닥투닥 내 가슴팍을 때린다. 아프지는 않고 귀엽다. 재미있잖아, 놀려먹는 거.

“푸핫! 여고생 다 됐네, 웅도! 여고 다니더니 여자애 된 거 아니야?”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 데잖아. 내가 그 꼴이지. 어디. 오오, 소녀감수성 터지네.”

“푸하핫. 이번엔 진짜 멋있는 표정. 응?”

이번에는 멍청한 표정이 아닌, 유진이의 여고생 표정을 놀려줄 요양으로 그것을 따라했다. 사진에 나온 나. 손가락을 V로 하고 입과 볼을 가렸다. 새침하게 게슴츠레하게 뜬 눈과 모인 눈썹은 덤이다. 유진이는 나와 쌍벽을 이루는, 양손으로 턱 꽃받침에 한쪽 눈 찡긋 윙크. 그야말로 평범한 여고생들의 사진이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남자애라는 거지. 전혀 여자애처럼 예쁘장한 상도 아니고. 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쿡쿡 나오는 전설의 개그샷이 찍혔다.

유진이는 잔뜩 좋아하며 내 어깨를 탁탁 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덜 아파도 계속 맞은 데 맞으니까 아프다. 그렇다고 아픈 내색을 할 수도 없고. 유진이의 재촉에 이번에는 눈가를 찡그리며 멋진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한동안 유진이와 함께 셀카를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점심 같이 먹자!”

“……나, 나두.”

“응, 민서도 같이 먹자!”

『점심은 같이 먹어. 또 이상한 애들 주렁주렁 달고 오지 말고.』

“아…… 어…… 음…….”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내 뇌는 그 정보들을 처리하지 못하고 혼란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유진이가 밥 같이 먹자고 하고 뒤에서 민서도 같이 먹자고 하고, 그 순간에 우연찮게 희세에게 톡이 왔는데 경고의 문자구나. ……어떻게 해야 한다.

물론 희세가 그렇게 할 권한이나 강제성은 없다. 어디까지나 권유의 말이지. 하지만 권유가 아니잖아, 이건. 미국이 이웃나라한테 강제로는 아니고 ‘그냥 이거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면 어떻게 거절하겠어. 완곡하게 돌려 말하지만 완벽한 강요잖아, 이런 건. 내가 무슨 공처가도 아니고, 왜인지 모르게 희세 앞에서는 잔뜩 작아지는 느낌이다. 죄인 같기도 하고.

“왜에? 같이 못 먹어? 도시락 안 싸왔어?”

“아아니, 그런 건 아닌데.”

“도, 도시락은 내 것 나눠줄게! 도시락은 싸 왔으니까!”

“아니아니, 김밥 사 온 거 있어. 그런 문제가 아니라.”

잔뜩 고뇌하는 내 얼굴을 보고 유진이가 넌지시 물어본다. 뒷자리 민서는 흥분한 표정으로 꽤나 큰 소리로 말한다. 아까 델리만쥬 얻어먹은 게 아직까지 걸리는 모양이다.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도시락이 있는데, 그게 더 부담돼서 그래. 차라리 김밥지옥에서 3000원에 김밥 두 줄 사 오면 마음만은 훨씬 편할 텐데.

소풍날이라고 희세가 아침에 우리 집에 안 온 게 아니란 말이지. 거기다 도시락까지 싸들고 왔다고. 내 몫까지. 아침도 같이 먹고, 학교로 가면서 그 때 이미 말했지. ‘반별로 나뉘어서 소풍은 같이 못 다니겠지만, 점심은 같이 먹자’고. 이미 약속된 일인데 아까 전 휴게소에서의 얼굴 붉히는 일 때문에 다시 상기시켜려 나에게 톡을 한 것이다, 희세는. 희세 도시락이니까 내 멋대로 먹기도 그렇다.


좀, 그렇다. 아직 유진이와 민서는 제안만 했을 뿐이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대답을 ‘응, 다른 애들하고 먹기로 했어.’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근데 그러고 싶지 않은 게 문제지. 유진이랑 민서랑도 같이 먹고 싶은데. 가장 좋은 건 역시, 유진이랑 희세가 친해져서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저번의 엄청난 트러블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만천하에 증명됐지. 고양이와 개도 그렇게 사이가 안 좋지는 않을 거야. 특히 희세 쪽에서. 거의 발작적일 정도로 싫어하잖아.

그렇다고 대뜸, 공처가처럼 ‘희세랑 먹기로 했어’ 하고 말하기도 그렇다. 그렇기 싫다. 하지만 희세를 버리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되고, 같이 먹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에 나는 더욱 주름이 깊어져만 간다. 아아, 골치 아프네 이거.

“희세 때문에 그래……? 희세랑 점심 먹기로 했어?”

“……어. 근데 나는 너희랑도 같이 먹고 싶은데. 같이 다니니까. 그…… 그렇잖아. 같은 반이니까, 소풍만큼은 같이 먹는 거잖아.”

“응, 그치만…… 희세가 싫어하니까.”

“왜, 왜? 싸우기라도 했어?”

“아아니, 그냥…… 그런 알력이 있어.”

“……?”

눈치 빠른 유진이는 계속해서 고심하는 나에게 넌지시 말을 꺼낸다. 예상적중이지요. 그것 외에는 딱히 고민할 이유가 없긴 하다. 희세와 유진이 사이를 잘 모르는 민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하는 나. 설명까지 하기는 복잡하다. ……희세가 나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고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해. 아니 그렇잖아. 이제는 인정할 건 인정 해야지. 나 좋아하니까, 유진이가 내 옆에 있으면 소위 ‘꼬리 친다’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거잖아.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잖아!

“같이 먹자. 오늘은 소풍이니까, 괜찮을 거야.”

“……안 괜찮을 것 같은데. 톡이라도 보내면 대번에 전화 와서 잔뜩 까일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그냥 먹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싸우겠다는 건 아니구. 응? 같이 먹자아!”

“하아. 그래, 뭐. 내가 잔뜩 까일게. 그럼 되지.”

“……그 희세라는 애, 무서워?”

“응. 무섭지. 우리 엄마보다 무서운 것 같애. 화낼 때엔.”

합리적인 이유 없이 긍정적인 유진이. 단순히 소풍이니까 괜찮을 것이란 보증은 희세와 오래 지내 그 성격을 잘 아는 나에게는 좋은 말이 아니다. 유진이의 약간 때 쓰는 듯한 목소리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대답했다. 그래, 그냥 중간에서 내가 깨지면 되는 일이니까. 내가 쉴드가 돼 주자. 내 탓이지, 모든 일은. 민서는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나를 보고 민서는 몸서리친다. 민서 보면 희세가 또 뭐라고 할지 궁금하네. 아아. 혼돈의 카오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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