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177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09.19 17:58
조회
1,231
추천
16
글자
19쪽

09화. 힘들지만 안녕, 하고 말하기

DUMMY

‘퍽! 퍽! 퍽!’

“크헉! 왜 저만……!”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그런 말 나올 정도면.”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한국 고등학교 복도의 흔한 풍경. 희세, 성빈이, 미래는 무릎 꿇고 손 들고 있고, 나만 엎드려서 엉덩이를 맞고 있다. 엄연한 남녀차별 아닙니까 이거?! 분명히 소문으로는 선생님 여자애들도 엉덩이 때린다고 들었는데! 아니 뭐, 여자애들을 꼭 때려야 한다 그런 말은 아닌데. 나만 맞으면 억울하잖아.

선생님은 여전한 무표정한 얼굴로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더 무섭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복종의 의사를 나타낸다. 때릴려면 더 때리세요. 제 엉덩이는 그런 엉덩이(?)입니다. 다행히 선생님은 더 때리지는 않고 교실로 들어가신다. ‘시끄러. 조용히 해.’ 하고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곧 조용해지는 교실. 나지막이 다음 차례의 영어 대화가 들린다.

“오빠. 선생님 내통시킨 거 아니었어요? 저희랑 같은 배를 탄 거 아니었어요?”

“너 되게 사극에 나오는 간신처럼 말한다. 몰라, 분명 말씀은 드렸는데.”

“…….”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정되고 조용해지자 넌지시 말을 꺼내는 내 옆의 미래. 나는 얼른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손으로 비비며 대답했다. ‘내통’ 같은 어려운 정도까진 아니어도, 확실히 말씀은 드렸는데. 왜 때린 건지 알 수가 없다. 희세와 성빈이는 잠자코 입을 다물고 얘기하는 나와 미래를 바라본다.

“설마, 토사구팽?! 모든 할 일이 끝났으니 그대로 한통속으로 몰아붙여 삶아 버리는, 그런 거?!”

“그럴 리가…… 오히려 반대 아닐까. 연관성이 있어 보이면 안 되니까, 일단은 때리는 걸로.”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세게 때렸잖아요! 안 아파요?”

“아프지.”

“저도 아파요.”

“뭔데. 뭔 개드립인데.”

“데헷☆”

선생님에게 들리면 안 되기에 소곤소곤 속닥이는 말로 얘기를 나눈다. 그나마도 미래가 깝죽거리며 말해서 미래랑만. 희세는 잠자코 입을 다물고 눈도 감고 있고, 성빈이는 나에게 개드립치는 미래를 보고 어이없는 미소를 띠고 있다.

“어쨌든, 한 방 멕였군요! 거하게!”

“응. 확실히.”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되게 시원했어!”

“하하. 성빈이까지 그럴 정도면 대체 그 악행이 어느 정도길래.”

“굳이 말 안 해도 봤잖아요, 직접!! 듣기도 들었구!”

미래는 교실 쪽을 보며 싱긋 웃으며 말한다. 나는 후련하면서도 조금 착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얌전히 있던 성빈이마저 한 마디 거들 정도. 성빈이를 보며 넌지시 속마음을 꺼냈다. 대답은 성빈이 대신 미래가. 하긴. 그 녹음본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데. 좀 많이 충격이었지. 녹음한 걸 들려줬을 때, 유진이가 벌벌 떠는 걸 보고 어느 정도 현실을 자각했지만.

“이대로 끝일 리가 없잖아.”

“에? 끝났어, 뭐 더 할 게 있어? 완벽한 물증으로 애들한테 다 들려줬는데!”

“「게임 끝났어」라는 말은 채유진이 먼저 했던 말이야. 그 말대로 끝나지 않고 연장전이 되었지만.”

“에에……?”

우리를 보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며, 팔을 꼿꼿이 들고 말하는 희세. 진지하고 곧은 눈빛이 사뭇 무섭다. 반면 미래는 손을 거의 들지 않고 춤추는 것처럼 몸을 흔들며 말한다. 여전히 냉정한 투로 말하는 희세. 과연, 나희세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방심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인가. 미래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채유진이야. 또 어떻게, 얼마나 무섭게 뒤통수 때릴지 몰라. 반격? 저 쪽은 반격 못 할 것 같아?”

“그치만, 이건 반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우리처럼 단순히 말로만 도는 소문이 아니라, 확실한 물증이 있는 소문인데!”

“……너는 채유진을 몰라.”

“에이, 그건 너무 노이로제야. 끝난 건 확실히 끝난 건데.”

미래와 희세의 간단한 논쟁. 확실히, 희세 말도 일리는 있다. 우리가 반격을 했다면 유진이 쪽도 충분히 반격할 수 있지. 말도 안 되지, 어떻게 사람이 염치가 있지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할 정도라면 애초에 이런 일을 벌리질 않았겠지. 미래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확신하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뭐, 나는 어느 쪽이냐면 미래 쪽이었으면 좋겠는데. 더는 이런 진흙탕 싸움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띠리리리링~’

“……일어나.”

“넵!”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교실 앞 문이 열리고, 무표정한 선생님이 나오신다. 물끄러미 나를 내려 보더니 한 마디 하신다. 유쾌한 대답과 함께 벌떡. 선생님 나오기 직전까지 눈치 보며 무릎을 대고 있어서 사실 하나도 안 힘들다. 미래와 희세, 성빈이도 일어난다.

“……때린 건, 어쨌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뭐 감정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넵, 잘 알고 있습니다.”

“괜찮냐.”

“넵!”

“그래. 고생했다.”

선생님은 한결같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한다. 여자답지 않은 낮고 냉정한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에서 나를 걱정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군인이 대답하는 것마냥 호기롭게 대답했다. 선생님도 아마, 다른 기분이시겠지. 말로만 내 설명으로 ‘제가 왕따를 당하고 있어요!’ 하는 것과, 직접적인 녹음을 듣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니까. 내 어깨를 툭툭 치시고 교무실로 가신다. 싱긋 웃으며 선생님을 바라본다.

“아~ 뻐근해라. 손 들고 있었더니 어깨 아프네요!”

“손 내리고 있었잖아.”

“이런 때엔 다 그런 게 그런 거니까~ 그렇지, 성빈아?”

“응. 팔 아파. 어깨 빠질 것 같애.”

“하하하.”

미래의 농담에 성빈이까지 동조. 소리 내어 웃으며 둘을 쳐다본다. 성빈이는 밝게 웃으며 나를 본다. 희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 고개를 돌려 웅성거리는 애들 쪽을 쳐다본다. 수업이 끝나 교실을 나오고 있는 여자애들. 힐끔힐끔 우리 쪽을 쳐다본다. 뭔가 꺼림칙한 듯 눈치를 보는 듯한 아이들. 하긴, 어색하겠지. 따돌림 시키다 진실이 드러났으니 면목도 없을 테고.

“메~~~롱.”

“…….”

나오는 애들 가운데, 친구 몇 명에게 둘러싸여 나오는 유진이. 안색이 창백하다. 문득 이쪽을 쳐다본다. 입술을 깨물며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이는 유진이. 미래는 쌤통이라는 표정으로 익살스럽게 혀를 내밀며 놀리는 소리를 낸다. 유진이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교실로 돌아간다. 조금 멋쩍어 혀를 내밀며 희세와 성빈이를 쳐다본다. 희세는 팔짱을 끼고 ‘뭐. 할 말 있으면 해.’ 하고 말한다. ‘아니야, 돌아갈게.’ 하고 대답하는 나. 성빈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짓는다.


“미안! 미안해, 멋대로 오해해서!”

“아아아, 아니야. 괜찮아.”

사과를 하는 것도 참 어색한 일이지만, 받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어색한 일이다. 상대 쪽에서 확실히 잘못한 것이라면 사과를 받아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정작 내 쪽에서 별다른 체감을 못 하는데 상대 쪽에서 절절하게 사과를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지금 내가 딱 그런 상황이다.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사과하는 두 명의 여자아이. 한 명은 지수, 다른 한 명은 혜민이. 나랑 별로 친하지 않은 두 여자애가 이렇게 정중하게 나에게 사과하고 있는 이유는, 이 여자애들, 유진이랑 제일 친한 애들이거든. 늘 같이 붙어 다니고 밥도 같이 먹던,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밥 패밀리 같은 친밀한 사이의 애들.

“주제넘게 그런 것 가지고 애들하고 얘기하는 게 아니었는데…… 미안해.”

“미안해!”

“아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보다는, 희세랑 성빈이, 민서가 마음고생 많이 했지. 걔네가 직접 당했으니까. 걔네한테도 사과해주라. 나한테는 안 해도 되니까.”

“으, 응…….”

사과를 하는 두 여자애에게 손사레를 치며 말한다. 실은 나는 사과를 받을 만한 위인은 아니잖아. 희세랑 바람피우고 리유랑 안 좋게 헤어진 건 사실이니까. 그보다는 직접적으로 유진이에게 폭언을 들은 다른 여자애들이 더 피해를 많이 봤지. 내 부탁에 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싱긋 웃으며 ‘어쨌든 이렇게 사과하러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하고 말했다. 그제야, 두 여자애의 표정이 밝아진다.

“봐요! 이렇게 끝날 것을. The End!”

“뭐…… 쟤네가 착하지. 보통은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려 할 텐데.”

“그렇죠, 보통은. 이제 일사천리에요. 채유진의 최측근 두 명이 저희 쪽으로 넘어왔으니, 무림의 정세는 이제 저희 쪽으로 넘어온 것이 기실 확실하구요. 대의명분은 엄연히 이쪽에 있으니.”

“너 되게 사극처럼 말하는 거 잘하는구나.”

“이쪽 바닥은 원래 그런 거니까요!”

“……그쪽 바닥,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데.”

미래는 호언장담하며 옆에서 불쑥 말을 꺼낸다.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나를 보며, 꼭 사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하는 미래.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게 그녀 덕이기에, 미래가 예쁘게 보이지 않을 리 없다. 좀 드립이 과하긴 하지만.

뭐, 사건은 대강 그런 식으로 해결되어가는 것 같다. 모든 것을 계획대로 척척, 자신의 의지대로 주무를 것만 같던 대마왕 같던 유진이의 계획이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단 한 번의 반격으로. 대부분의 여자애들은 아까 내가 생각한대로 유야무야 넘어가려 하는 것 같다. 뭐, 그걸 탓하거나 할 생각은 없는데. 의외로 꽤 많은 여자애들이 직접적으로 나에게 사과를 하러 왔다. 민서나 희세, 성빈이에게도 똑같이 사과를 했겠지. 정식으로 사과를 한다는 건 나와 애들을 따돌림 했다고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 사과하기 쉽지가 않을 텐데. 어쨌든 우리가 의도한 대로, 일은 잘 풀린 것 같다.

”…….”

“음.”

그리고, 한 가지 내 예상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 하나. 따돌림의 되돌림이라고 할까. 아이들은 우리에게 사과하고, 당연히 우리를 따돌리는 짓은 하지 않고 다시금 우리와 친하게 지낸다. 내가 반에 들어오면 다들 방긋 웃으며 인사해주고, 미래조차 어느 정도 반에서 인사하고 지내는 애들이 생겼을 정도. 민서도 마찬가지. 희세는 다시금 화려하게 반의 중심으로 돌아왔고, 성빈이도 친히 지내는 애들과 다시금 친하게 지낸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우리와 상반되게, 나락으로 떨어진 단 한 사람. 유진이. 친하게 지내는 애들도 모두 유진이의 곁에 있지 않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누구보다 익숙한 느낌. 투명인간이 된 기분. 그런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유진이와 가장 친하던 두 명조차 다른 애들과 깔깔대며 웃고 이야기한다. 저런 게 가장 끔찍하고 괴로울 텐데. 묵묵히 그 광경을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인군자 출동이신가요. 왜요, 따돌림 당하는 애 구원☆? 그리고 그 여자애는 다시금 오빠한테 반하고, 하렘맴버 한 명 더 추가요? 이러고 보니까 오빠, 참 지능적이군요. 어장관리남이에요.”

“그런 거 아니야. 아닌 거 알면서 그런 말 하고 있어.”

“아닌 거 알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제가 무슨 말 하려는 지 알잖아요?”

“……뭘 어떻게 해야 태클을 안 걸래.”

“뭘 어떻게 하면 태클을 걸 거에요. 그것만은 싫으니까.”

내 어깨를 툭, 붙잡으며 잔뜩 비꼬는 말을 하는 미래. 고개를 돌려 미래를 보며 말했다. 한바탕 말싸움을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에 벌써부터 나는 언짢은 표정으로 미래를 쳐다보며 말한다. 미래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분위기다. 우선 자리에 앉는다.

“유진이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야. 잘했다는 건 더더욱 아니야. 잘못했지. 그치만, 잘못 했다고 따돌림 당하는 게 정당화 되는 건 아니잖아. 다시 또 다른 따돌림이 반복되는 것일 뿐이잖아, 저러면. 그건 싫으니까, 말하러 가겠다 그거야.”

“핳. 좋아요, 그런 이상론. 세상에는 이상론자만 있어선 안 되지만 뭐, 한두명 쯤은 있어도 좋겠죠. 근데, 왜 그걸 오빠가 하는데요. 따돌림 당한 당사자가, 무슨 호구새X도 아니고. 원원히 원인부터 따지고 보면, 오빠가 쟤랑 친해져서 애매하게 저희랑 접붙히려다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근데 그 짓을 또 하겠다구요? 저는, 싫은데요.”

“……어쨌든. 이거는 아니야. 이러면 우리도, 간접적으로 잘한 게 아니게 되잖아. 간접적으로 저런 상황을 만들게 된 거잖아.”

“그런 식이면 아무 일도 못 해요. 그렇게 파생되는 일까지 고려하면, 세상에 겨 안 묻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따돌림은 안 되고, 따돌림 당하는 건 불쌍하지만 그거 수습을 왜, 하필, 어째서 오빠가 하냐구요.”

“……하아.”

미래의 말에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나오는 건 한숨 뿐. 어느 쪽의 말이 틀리고 옳고,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미래의 말에 흔들리는 건, 나조차도 그런 생각이 드는 구석이 있다는 거겠지. 한숨 쉬고 잠자코 미래를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가 다른 애들 허락 다 맡으면. 희세랑 성빈이, 민서 허락 맡으면. 그 때는 괜찮겠어?”

“……할 수 있겠어요? 특히 희세. 씨알이나 먹힐까 싶은데.”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그래요 뭐. 한 번 해 봐요.”

근엄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한다. 미래는 못 이기는 척 대답한다. 평소라면 미래의 말, 무시하고 내 멋대로 하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게 아니잖아. 미래가 장난 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얘기하는 건데. 교실에서 나와 대뜸 3반으로 들어간다.

“성빈아, 희세야. 유진이랑 친구하자.”

“……??”

“갑자기 무슨……?”

“말 그대로야. 동의 받으러 왔어. 유진이랑, 친구하자.”

“…….”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대뜸 달려들어 앉아 있는 성빈이와 희세 앞에 서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희세는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성빈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다.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의견을 말한다. 입을 다무는 성빈이. 금세 눈이 험악해져 나를 올려다보는 희세.

“설마 너, 채유진이랑 다시 친구한다고 내 앞으로 데려와서 빌빌댈 건 아니지?”

“어…… 그 얘긴데.”

“절대 안 돼. 성빈이나 민서같이 물렁물렁하게 그렇다고 대답해줘도, 나는 절대 안 돼. 절대반대.”

“아아…… 어떻게 안 될까?”

“그건 나도 싫어. 웅도 네가 아무리 착해도, 그건 아니야.”

”흥. 오죽하면 성빈이가 매몰차게 안 된다고 대답하냐. 걔는 안 돼. 오지랖 좀 그만 부려, 정웅도.”

“……아아.”

희세는 단호하게 말한다. 성빈이마저 단칼에 거절한다. 희세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성빈이까지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이야. 갈 곳을 잃은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애들을 바라본다. 희세는 여전히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뭐! 걔랑 살던가 그럼!”

“아아,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네요. 돌아가겠습니다.”

빼액 소리를 지르는 희세. 주위 애들이 흠칫 놀라 이쪽을 볼 정도로 큰 소리로. 이 정도로 소리칠 정도면 굉장히 화난 것이다. 이런 때에는 얼른 고개를 숙이는 게 도리. 존댓말을 쓰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희세는 여전히 화난 듯 씩씩대고 있다. 옆에서 성빈이가 ‘왜 그래, 웅도가 너무 착해서 그런건데─’ 하고 달래는 성빈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교실을 나섰다.


“하아…….”

한숨을 쉬며 복도 창문에 서서 바깥을 쳐다본다. 담배 같은 게 있다면 이런 때에 피우지 않을까. 그런 기분이다. 내가 정말, 너무한 걸까. 직접 유진이에게 당하지 않아 이런 선량한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배알도 뭣도 없는 호구새X이라 이런 것일까. 그냥 그렇다. 악독한 유진이랑, 이건 별개잖아. 그렇다고 따돌림을 합리화할 순 없는 거잖아. 생각이 머릿속에서 꼬인다.

“ㅁ, 뭐해? 쉬는 시간 다 끝나가는데.”

“어어. 조금…… 고민.”

“고오오오……민?”

특유의 살짝 더듬는 투로 주뼛주뼛 다가와 말을 거는 민서. 잔잔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민서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욱 내 옆 쪽으로 다가와 말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서에게 설득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됐다. 뭘 설득이고 나발이고 하겠나. 어차피 희세랑 성빈이, 미래는 무조건 반대일 텐데.

“예전에, 여기 여고 처음 와서 사귄 여자애가 있었는데. 리유라고. 그 애, 묘하게 따돌림 당하고 있었거든. 나랑 지내면서, 그런 트라우마 같은 게 나아서 극복했거든.”

“으, 응. 들었어. 여자친구…… 아니야?”

“……그렇지. 지금은 헤어졌던. 희세랑 바람피워서.”

“아아, 미, 미안.”

잠자코 얘기하다 핵심을 찌르는 민서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정정해줬다. 여자친구는 아니니까. 민서는 굉장히 당황해서 손톱을 깨물며 대답한다. 싱긋 웃으며 창 밖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어쨌든. 그래서 누구든, 따돌림 당하는 건 영 못 보겠거든. 중학교 때, 나도 같았거든. 따돌림을 주도한 건 아니지만, 입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거. 그게 무슨 마음인지 잘 알아, 그게 잘못된 것인줄도 알고. 하지만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거야. 잘못됐다는 걸 누가 꼬집어서 말해주기 전에는. 근데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내가 말해주겠다는 건데.”

“응, 응 맞아! 그래서 나는 웅도 네가 좋은걸?”

“으응? 내가?”

“아, 아, 아, 아니이! 그, 그게 그러니까! 치, 친구가 돼 줬으니까! 나나나, 나도, 그, 그…… 따돌림 당하는 것 같은 느낌 비슷한 거였으니까…….”

“아, 그렇지. 그거야, 그냥 친구인데 뭐.”

“으, 응, 그냥 친구…….”

잠자코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말하려니 마음이 풀린다. 들어주는 것만으로 좋으니까. 거기에 민서는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며 대답한다. 근데 어째서인지 민서는 말하다가 잔뜩 당황해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대화를 곱씹어봐도 잘못된 건 없는 것 같은데. 내 대답에 겨우 안정됐는지 민서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어쨌든, 그랬는데. 아무리 그래도, 유진이한테 말 거는 건 무리인가봐. 애들이 다 하지 말라네.”

“……나도, 솔직히 유진이는 조금 무섭구, 싫지만. 웅도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애.”

“아니이~ 당장 너부터도 무섭구 싫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

“치, 친구 허락 맡고 사귀는 건 아니잖아! 그러면, 그냥 웅도 너랑만 친하면 되는 거 아니야? 유, 유진이.”

“그게…… 그…… 그렇네.”

“응! 머, 멋대로 하는 것도, 어떨 때엔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응…… 그래, 고마워. 얘기하니까 좀 풀리는 것도 같다. 고마워!”

“으, 응, 별 것도 아닌데 뭐.”

답 없는 상황이었는데, 민서와 얘기를 나누다보니 조금은 실마리가 잡히는 것도 같다. 기분도 많이 풀렸고. 민서는 여전히 빨개진 얼굴로 겨우 대답한다. 유진이와의 대화를 떠올려서 그런가. 괜히 얘기 꺼냈나 싶다. 쉬는 시간이 끝나 민서와 함께 교실로 돌아간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9 쉬는 날. +10 15.10.09 762 16 19쪽
188 11화 - 3 +9 15.10.08 927 23 18쪽
187 11화 - 2 +8 15.10.07 805 20 20쪽
186 11화. 고난의 행군 +12 15.10.06 874 17 19쪽
185 10화 - 5 +8 15.10.04 933 24 22쪽
184 10화 - 4 +8 15.10.03 826 24 18쪽
183 10화 - 3 +16 15.10.01 1,006 18 20쪽
182 10화 - 2 +8 15.09.29 1,050 16 21쪽
181 10화. 약속했어, 기다려 줘. +12 15.09.24 1,022 18 16쪽
180 09화 - 4 +12 15.09.22 951 25 17쪽
179 09화 - 3 +8 15.09.21 1,032 26 21쪽
178 09화 - 2 +9 15.09.20 891 21 17쪽
» 09화. 힘들지만 안녕, 하고 말하기 +8 15.09.19 1,232 16 19쪽
176 08화 - 4 +12 15.09.16 937 18 19쪽
175 08화 - 3 +10 15.09.15 1,063 19 21쪽
174 08화 - 2 +12 15.09.13 1,003 20 19쪽
173 08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16 15.09.11 958 20 19쪽
172 07화 - 3 +10 15.09.09 1,096 17 20쪽
171 07화 - 2 +16 15.09.08 935 17 19쪽
170 07화. 말했을 텐데. +10 15.09.06 1,035 20 18쪽
169 06화 - 4 +6 15.09.04 997 18 23쪽
168 06화 - 3 +10 15.09.01 1,046 20 21쪽
167 06화 - 2 +8 15.08.30 1,004 19 19쪽
166 06화. 일장춘몽 +12 15.08.27 1,219 68 20쪽
165 05화 - 4 +18 15.08.24 1,212 25 18쪽
164 05화 - 3 +14 15.08.22 1,104 21 19쪽
163 05화 - 2 +8 15.08.20 942 27 19쪽
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3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7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20 2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