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백내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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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적군은 공산주의로 인해서 계급을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서, 기강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기에 군기가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한 얼간이는 장난으로 수류탄을 던지다가 수류탄이 폭발하는 일도 있었다. 군인 출신의 니콜라이는 골머리가 아팠다.
"수류탄 던지지 말라고!! 뒤지고 싶냐!! 싸움이 장난인줄 아냐!!"
"이봐! 공산주의 사상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맞아! 우린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아! 명령이 아니라 토론으로 어떻게 싸울지 정해야 해!! 나는 더 이상 니콜라이 자네 명령을 듣지 않을 걸세!"
니콜라이는 자신의 머리를 다 쥐어 뜯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았다.
'이 폐급 얼간이 새끼들!!'
오후 2시, 적군의 안드레이, 블라디미르, 예카테리나 3인방은 점심을 먹고는 저 멀리 보이는 백군의 참호를 바라보았다. 이들은 물자가 부족해서 잠망경 또한 없었기에 이렇게 고개를 빼끔 내밀 수 밖에 없었다. 소심한 안드레이는 재빨리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러다 총 맞는다! 너네도 고개 숙여!"
"어차피 여기 못 맞춰!"
블라디미르와 예카테리나는 그래도 쫄았는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너무 지루하다보니 다시 장난기가 돋았다. 예카테리나가 외쳤다.
"저..저기 뭔가 움직였어!"
"빨리 쏴버려야지!!"
블라디미르는 백군의 참호를 겨냥한 상태로 식은 땀을 흘리며 집중했다. 정말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온 몸의 신경이 집중했고,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흘렀다. 그리고 저 멀리서 무언가 움직이는 순간, 블라디미르는 방아쇠를 당겼다.
딸깍!
정확히 움직이는 형체를 향해 총을 발사했는데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딸깍 딸깍
"이거 왜 안 나가!!"
블라디미르는 니콜라이에게 소총을 가져갔고, 니콜라이는 소총을 직접 수리해주었다.
"이렇게 하면 발사됩니까?"
"나도 모르네! 발사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네!"
블라디미르는 투덜거리며 거치적거리기만 하는 소총을 들고는 참호로 돌아왔다. 좁은 참호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이 소총을 들고 다니는 것도 일이었다.
'이 망할 놈의 소총!!'
며칠간 참호에서 지냈더니 온 몸의 이가 생겨서 불알이 가려웠다. 그 좆같은 새끼들은 팬티 속에 서식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예카테리나가 없었다면 최소한 긁기라도 하는건데 예카테리나가 있어서 마음대로 긁을 수 조차 없었다.
"이따가 냇가에 목욕이라도 하러 안 갈래?"
안드레이가 말했다.
"총 맞으려고 환장했나? 절대 안된다고!"
어릴 때부터 비교적 풍족하게 자란 이 삼인방은 슬슬 여기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가 속으로 생각했다.
'난 적어도 한 놈은 쏴볼줄 알았는데 총도 안 나가지 맨날 참호나 파지 지루해 죽겠네...'
안드레이가 주위를 살피고는 블라디미르와 예카테리나에게 말했다.
"상황보고 돌아가자!"
블라디미르가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돼!!"
블라디미르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쳐맞고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반발감으로 적군에 가입한 것 이었다. 블라디미르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지금 돌아가면 내 애비가 날 비웃을게 분명해. 기왕 왔으니 총 한 번이라도 쏴보고 돌아갈거야."
예카테리나가 말했다.
"나도 당당히 싸워보고 돌아갈거야! 여자도 할 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어!"
안드레이는 이 커플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막상 싸울때 똥오줌이나 지리지 마라."
"웃기네! 난 총알 따위는 겁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블라디미르는 참호 밖으로 대가리를 내밀었다.
"하하! 이거 보라고!"
안드레이가 블라디미르를 밑에서 잡아당기며 외쳤다.
"이 빌어먹을 새끼! 빨리 안 내려와!!"
예카테리나가 깔깔거렸다.
"꺄르륵!"
블라디미르는 더 오기가 생겨서 고개를 위로 쳐내밀었다.
"쏴봐라! 못 쏘지!!"
순간, 저 멀리 보이는 백군 참호 쪽에서 뭔가 번쩍였다.
쉬이잇!
총알이 블라디미르의 귀 옆을 스쳤고, 뒤에 쌓아둔 모래 주머니에 박혔다.
퍽!
"헉!!"
블라디미르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예카테리나는 모래 주머니에 박힌 총알을 바라보았다.
"이..이게 뭐야?"
블라디미르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모래주머니를 바라보았다. 그 때, 니콜라이가 허리를 숙인 채로 참호를 걸어왔다.
"무슨 일이냐?"
이 삼인방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총알을 맞은 모래주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니콜라이가 시뻘개진 얼굴로 꾸중했다.
"놈들은 총의 품질도 우리보다 좋고 조준경도 있고 저격수도 배치했다! 네 놈들이 못 맞춘다고 놈들도 못 맞출거라는 생각하면 대가리 날라간다!"
그 때, 수염이 무성한 껄렁한 보리스가 뒤에서 외쳤다.
"이봐 니콜라이! 저 녀석들 너무 기죽이지 말라고!! 장난 칠 수도 있지!!"
보리스는 느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삼인방을 쳐다보고는 블라디미르에게 말했다.
"신발 꽤 좋은거 신었네?"
블라디미르는 왠지 모르게 보리스라는 이 작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드레이가 재빨리 말했다.
"좋은거 아닙니다. 이 친구 부모님도 저랑 같이 농사 지었습니다."
보리스는 뜻모를 야비한 미소를 짓고는, 예카테리나를 눈여겨보며 참호 속을 걸어갔다. 예카테리나가 속삭였다.
"왜 거짓말치는 거야?"
"저 녀석들한테 부모님 공장 운영한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그렇게 지겨운 근무가 끝나고, 3인방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점령한 마을로 같이 걸어갔다.
"다들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지?"
"백군 녀석들 때문이야! 조만간 우리가 혁명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야!"
이 작은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얼굴에 깊게 패여있는 심술굳게 생긴 매부리코 할머니는 말 없이 자신의 마을을 점거한 적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뚱뚱한 아주머니도 입 옆에 주름이 져 있었다. 웃고 있더라도 엄청 화난 표정으로 보였을 한 지독하게 못생긴 아주머니, 그리고 농사일로 얼굴에 그슬리고 미간에 주름이 가득한 한 아주머니는 텅 빈 커다란 눈으로 입은 굳게 다물고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눈치없고 멍청한 삼인방도 이들이 적군을 증오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한 단발 소녀는 나름 고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 어린 소녀조차도 어찌나 얼굴에 수심과 고통이 가득했는지 이마에 주름이 져 있었다.
포대기로 아이를 안고 있는 아직 젊은 아주머니는 숨을 헐떡이며 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이 여인들 대부분은 겁에 질려서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 이다. 마구간에 도착하고, 예카테리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해."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배우지 못해서 어리석은 거야! 우리가 혁명을 하면 결국 농민들한테 제일 도움이 될텐데 말이야."
그 때, 마을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안돼!! 이건 안돼!!"
보리스는 한 아주머니의 품에서 쌈지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빼앗고 있었다.
"이 망할 아줌마가!! 저리 꺼져!!"
보리스는 개머리판으로 아주머니를 후려쳤다.
퍼억!!
'저..저거!!'
그 아주머니가 울부짖었다.
"이 썩어빠진 새끼들!! 네 놈들 모두 천벌을 받을거야!!"
우리의 3인방은 이 광경을 보고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예카테리나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안드레이가 예카테리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만 둬.."
3인방은 마구간에 돌아왔다. 예카테리나가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왜 아무도 안 말리는 거야?"
안드레이가 궁시렁거렸다.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면서 돈은 좋아하네."
그 때, 밖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타앙!
"뭐..뭐야!!"
3인방은 마구간 틈으로 바깥을 살펴보았다. 그 보리스가 하늘을 향해 소총을 갈기고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재산을 갈취하고 있던 것 이었다. 보리스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늙은 할머니가 갖고 있던 금반지까지 빼앗았다.
"이 돈은 모두 혁명을 위해 쓰일 것 이다!! 그렇게 되면 농민들이 지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며 보리스는 할머니의 금반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안드레이가 블라디미르와 예카테리나를 보며 화난 표정으로 외쳤다.
"빨리 돌아가자고!! 이딴 강도 새끼들이랑 뭘 싸운다는거야!!"
블라디미르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저..저 사람만 그런거잖아! 무..물론 저런 짓은 잘못되었어! 하지만 혁명을 하려면 이런 불합리한 부분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거야!"
예카테리나도 외쳤다.
"마..맞아!! 나도 큰 결심을 하고 싸우러 온 거야! 집에 돌아가지 않고 나도 같이 싸울거야!!"
그렇게 말하고 삼인방은 총에 기름칠을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때, 밖에서 트럭이 정차하더니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났다.
"우리가 뭘 가져왔는지 보라고!!"
삼인방은 호기심에 마구간 밖으로 나갔다. 트럭에는 기관총이 있었다!!
"저..저게 기관총이야?"
지금 적군은 쓸만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기관총을 노획한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공이었다. 정찰하러 갔다가 기관총을 노획한 이 녀석들은 의기양양해했다.
"이거만 있으면 놈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을거야!!"
"기관총 쏠 수 있는 녀석 있냐?"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뭐 그냥 쏘면 되겠지!"
삼인방은 마구간에 돌아와서 총에 기름칠하는 일을 했다. 한참 정적이 흐르다가,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다음에 정찰은 우리가 가는게 어때?"
안드레이가 외쳤다.
"안돼!! 정찰은 엄청 위험하잖아!"
예카테리나가 말했다.
"정찰 갔다가 우리도 저런 무기 노획해 올 수도 있는 거잖아..."
결국 그 날 밤, 삼인방은 자원해서 정찰을 가기로 했다. 니콜라이가 땅에 지도를 그리며 이들에게 상세하게 명령을 내려주었다.
"이 쪽에는 놈들이 지난번에 파두었던 참호가 있다! 지난 정찰에 따르면 놈들은 모두 철수한 걸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다시 놈들이 자리잡았을 수 있으니 극도로 유의한다!"
니콜라이는 못 미더운 얼굴로 이 삼인방을 쳐다보았다. 블라디미르, 안드레이, 예카테리나 셋 다 조만간 자신들도 노획을 해올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니콜라이가 이들에게 물었다.
"내가 어느 길로 돌아오라고 했지?"
예카테리나는 막대기를 이용해서 땅바닥에 대충 그었다.
"여기 갔던 길로 돌아오는거 아닌가요?"
안드레이가 지적했다.
"거기가 아냐. 이 쪽으로 우회해서 다른 길로 돌아오는 거야."
니콜라이는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애써 참으며 이들에게 말했다.
"괜히 노획하느라 시간 끌지 말고 정찰만 하고 후딱 돌아온다. 알겠나!"
그렇게 삼인방은 시커먼 어둠 속에서 자세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정찰을 가기 시작했다. 현재 백군이 자리잡고 있는 참호는 한참 멀리서 불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삼인방은 그 멀리 자리잡고 있는 백군의 참호가 아니라, 비교적 가까운, 백군이 최근에 점거했던 참호를 정찰하고 오면 되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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