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간기 한스의 삶 9
한스는 걸어가다가 대로 옆에 주저 앉아서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피로 물든 자신의 정장을 바라보았다.
'이 상태론 택시도 안 태워주겠군..'
"이보게!! 한스!! 자네 괜찮나?"
테오도어가 돌격대와 함께 한스에게 달려왔다.
"내 상처가 아닐세."
"기관총 사수는 탄이 떨어지고 권총으로 자살했네!!"
기관총 사수는 독신자 숙소 3층, 맨 안 쪽에 위치한 방에 거주하던 한 남자에게 돈을 주어 내보내고 며칠 전부터 그 곳에서 이번 학살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혹시나 기관총 탄이 떨어지기 전에 경찰이 복도에서 접근하면 신호가 울리도록 발목 높이에 트랩까지 설치해두었다. 3층 복도에 가장 안쪽에 있는 그 기관총 사수의 방에 접근하기 위해서 경찰이 복도로 살금살금 걸어갔다가는, 발목 높이에 끈을 건드리고, 이 신호가 방으로 전달되어 전등이 켜지는 방식이었다.
이 학살자는 샷건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 만약 전등이 켜졌다면 기관총 사격을 멈추었을 것 이다. 그리고 문으로 다가가서 소리에 집중하다가, 인기척이 들리면 바로 문을 향해 샷건을 갈겼을 것 이다.
경찰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놓고 기관총을 쏘아대던 그 사수는 탄을 모두 소모하자 권총을 자신의 입 안에 겨누어 자살했던 것 이다. 뒤늦게 독신자 숙소 복도로 진입한 한 경찰은 발목에 실에 걸려서 우당탕 자빠졌다.
"으악!!"
잠시 뒤 방에 들어간 경찰은 벽면에 튄 핏자국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기관총을 발견했다.
또한 경찰은 아주 용의주도하게 이번 사건을 미리 종이에 정리하며 준비해둔 흔적을 발견했다. 그 자는 정문으로 사람들이 탈출할 것 이라는 것을 알고, 사격 범위가 나오는 곳으로 방을 며칠 전부터 빌려놓고, 여관 주인에게 들키지 않게 준비하고 있었던 것 이다.
한 경찰은 아주 정갈한 글씨체로 깔끔하게 쓰여져 있는 범인의 학살 계획을 읽어 보았다. 이는 정신병자의 글씨도 아니었고 무척이나 초연하고 냉정한 상태에서 일을 벌인 것을 보여주었다. 한 신참 경찰이 구역질을 참으며 물었다.
"이 새끼는 도대체 왜 이런 학살극을 벌인 걸까요?"
고참 경찰은 범인의 책상 위에 있는 '레 미제라블' 책을 들어올렸다. 범인은 이 책에서 혁명 부분에 책갈피를 꽂아두었다. 한 경찰이 분노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 시발새끼!!"
하지만 고참 경찰은 아무 말 없이 주변을 더 수색했다. 한편, 테오도어는 한스를 기자들에게 데리고 가서 사진을 촬영하게 했다. 테오도어가 한스에게 외쳤다.
"좀 더 분노한 표정으로!! 아까 전에 자네가 공산주의자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했을 때처럼!!"
펑! 퍼엉!!
사진 촬영이 끝난 다음에야 테오도어는 한스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테오도어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이건 나치당의 호재일세!"
"호재라고?"
테오도어가 외쳤다.
"당연하지! 자네가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부터 구했지 않나? 사람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걸세! 그리고 반공을 위해 그들은 나치당에 표를 주겠지! 국가인민당, 사회민주당의 표는 물론이고 가톨릭 중앙당의 표도 끌어올 수 있을 걸세! 조만간 자네 연설을 잡아주지!"
테오도어는 한스의 피 묻은 스와스티카 완장을 보며 외쳤다.
"이 완장은 버리지 말고 다음 연설때도 차고 나오게나!"
한스가 말했다.
"이보게 테오도어. 혹시 이번 맥주홀 연설때 내가 아니라 다른 나치당 주요 인물이 연설하기로 했나?"
"아닐세! 처음부터 자네가 연설을 맡기로 했네!"
"다른 나치당원들도 오려고 했는데 못 온 건가?"
"다들 다른 일정이 있었네! 지금 최대한 공격적으로 지지율을 높여야 하는 시기일세! 괴벨스 그 친구는 일주일에 네 다섯번 연설을 한다고!"
"돌격대는 왜 늦게 온거지?"
"일이 있었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맥주홀 들어온 새끼들은 교전 경험도 없는 어리숙한 녀석들이었다..하지만 기관총 사수는...'
테오도어가 한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외쳤다.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앞으로 있을 연설을 준비하자고. 연설을 할 때 기자들이 자네를 촬영할걸세. 그리고 청중들의 호응이 좋았던 자세를 골라줄테니 그 자세를 연습하게. 그러면 자네도 괴벨스 그 친구만한 연설의 대가가 될 수 있을 거세."
테오도어는 계속해서 떠들었다.
"한스, 자네는 반공의 상징이 될 걸세!"
한스가 말했다.
"난 그닥 한게 없네. 공산당은 테러집단으로 찍혀서 지지율이 급락하겠지만 다른 당의 표가 나치당에 올지는..."
테오도어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한스 자네는 아직 군중을 모르는군. 공산당 지지율이 떨어지겠지만 결집층은 이탈하지 않을 걸세. 이번 사건이 음모라고 헛소리를 늘어놓겠지. 이렇게 되면 나치당과 공산당의 싸움이 되는 걸세."
"이번 사건이 음모?"
"당연하지! 온갖 음모론을 주장하고 신문을 통해서 오히려 자네를 비방할걸세!"
무언가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한스는 이를 무시했다. 테오도어가 외쳤다.
"이 공산주의자 벌레들을 모두 박멸하자고!"
한스가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전까지 한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휠체어에 탄 할머니를 구하러 갔던 용감한 맥주홀 여종업원 코제트는 시체가 되어 있었다. 팡틴이라는 이름의 할머니는 휠체어에서 반쯤 내려온 채로 쓰러져 있었다. 한스가 중얼거렸다.
"그래! 박멸해야지!
한스의 말에 돌격대들도 외쳤다.
"공산주의자를 박멸하자!!"
이번 사건에 대해 빌헬름 2세는 분노와 슬픔을 표했다.
[강경 공산주의자들은 철저하고 비열한 공격을 준비하여 온 독일 국민을 슬픔에 빠트렸습니다. 이들은 1차 대전 당시 독일과 싸웠던 적대 세력보다도 야비한 방식으로 독일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모두 일어납시다! 이들과의 싸움은 독일인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공산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유감 표시와 함께 이번 일과 전혀 관련이 없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공산당 내부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경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해야한다는 의견으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또한 노동조합 측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해 유감과 슬픔을 표하며 절대로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맥주홀에서 권총을 쏘았던 새끼 중에 얼굴이 으깨어지고 반 병신이 된 마리우스는 발가벗겨진 상태로 물고문을 당하고 얻어 맞았다.
"모...몰라!! 난 아는건 다 말했다고!! 으악!!"
그 얼간이 마리우스는 물론이고 사망한 다비트, 유스틴도 공산당 당원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다비트와 유스틴과 이번 일을 모의한 것은 실토했지만, 기관총을 난사한 인물은 전혀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난 진짜 저 새끼 모른다고!! 나도 사람을 죽일 생각은 아니었어!! 으악!!"
퍽!! 퍼억!!
경찰들은 분노해서 이 얼간이 마리우스의 똥꾸멍에 레미제라블 책장을 찢어서 담배처럼 말아서 꽂은 다음에, 여자 직원들도 모두 와서 보도록 했다. 여직원들은 이 흉측한 모습에 모두 비명을 질렀다.
"꺄악!! 꺅!!"
경찰들은 여직원들에게 몽둥이를 주고는 이 간악한 공산주의자를 벌주라고 했다. 싫다고 하던 여직원들도 몽둥이를 이용해서 마리우스의 엉덩이가 시뻘겋게 부어오르도록 때렸다.
찰싹!! 찰싹!!
애송이 같은 마리우스는 엉덩이를 맞을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으악!! 아아악!!"
심한 고문이 끝나고 마리우스는 질질 짜며 외쳤다.
"난 공산당에 투표만 했다고! 그 날도 그냥 다른 녀석들 따라간거라고!! 으흐흑!!"
다음 날, 신문에서는 이번 테러가 공산당과 연관이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확보되었다는 기사가 1면에 실렸다. 국가인민당, 사회민주당, 가톨릭 중앙당 모두 이번 사건에 분노를 표했고, 원래도 연설을 많이 하던 괴벨스는 하루에 두 번씩 연설을 했다. 커다란 서커스 홀에서 괴벨스가 외쳤다.
"공산주의자들은 독일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와 전쟁을 원하십니까!"
그 말에 군중들이 외쳤다.
"네!!!!!!!!!!!!"
공산당 측에서는 절대로 이런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 안된다고 했지만, 이번 사건은 몇몇 공산주의자들을 자극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공산주의자들의 전단지가 흩뿌려지고 이번 사건에 주동자로 알려진 기관총 사수, 구스타프 브라운의 이름을 여기저기 페인트로 썼다.
[구스타프 브라운! 우리는 당신의 희생을 기억하겠다!!]
새벽에 이들은 길거리에 전단지를 살포했다.
[구스타프 브라운의 용기와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오로지 혁명으로만 독일 체제를 바꿀 수 있다! 일어나라!!]
이 시각, 한스는 피 묻은 스와스티카 완장을 찬 상태로 스튜디오에서 사진사 앞에서 연설 자세를 취한 다음 촬영을 하고 있었다.
펑!! 퍼엉!!
테오도어는 한스의 사진 중에 하나를 골라주며 외쳤다.
"이 자세가 좋군! 이 자세를 취하며 연설을 해보게!"
한스는 그 자세를 흉내내며 외쳤다.
"나치당은 공산주의로부터 독일을 수호하겠습니다!"
"자네도 하다보면 훌륭한 연설가가 될 수 있을걸세! 히틀러도 치밀하게 연습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 이네."
귀족들과 기업가들이 나치당에 불법 정치 자금을 막대하게 후원하고 있었기에 테오도어는 며칠 전부터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보게 한스, 자네 종교는 믿나?"
"안 믿네."
"왜 안 믿나? 종교만이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공포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 심리적 안식처가 될 수 있지 않나?"
"난 수 많은 시체들을 봤어. 죽어가면서도 성경 구절을 말해달라고 하는 부상병도 있었지. 하지만 30분 뒤 그들의 낯빛은 창백해지고 심장은 뛰지 않고 입과 코에서는 숨결이 느껴지지 않게 되지. 죽으면 끝일세."
"자넨 너무 부정적이군."
"신이 나를 증오해서 말일세."
"정치 자금 지원 받기 위해서는 종교 단체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네! 아무튼 다시 촬영하지! 좀 더 슬프고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치켜들고!"
촬영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테오도어는 한스를 한 성당으로 데려갔다. 그 곳에는 수녀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 날 한스는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갔다. 안전을 위해서 에밀라와 카를은 친정으로 피신 시켜둔 상태였다.
한스는 텅 빈 집에서 굳어버린 빵조각을 먹고 씻고는 침대에 들어갔다. 아까 전에 성당에서 봤던 수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스는 떨리는 자신의 손발을 바라보았다.
'으버버....으버...'
여전히 그 기억은 잊혀지지가 않았다. 잘 생활하다가도 갑자기 퍼뜩퍼뜩 떠오르곤 했고 그 때마다 한스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그 기억이 떠오르는 주기가 길어지더니, 이제는 10분에 한 번 떠올랐다. 어디선가 기관총 소리같은 딱콩 소리가 들려왔다.
드드득 드득
귀를 막았음에도 그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아악!!! 엄마!!!'
그로부터 며칠 뒤, 한스는 여태까지 맥주홀과는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서커스홀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스는 자신의 연설 내용을 타이핑해둔 종이를 바라보았다. 테오도어가 외쳤다.
"10분 남았네! 연습한대로만 하면 되네! 긴장하지 말게나!"
한스의 스와스티카 완장과 나치당 뱃지에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밖에서는 청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스는 연설문이 쓰여져있는 종이를 구겨서 땅바닥에 버리고는 수 많은 청중들이 있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참호에서 진격할때 저 쪽에 보이는 불꽃이 번쩍거리는 기관총과 수 많은 소총들은 전부 나를 겨냥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긴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졌다. 잠시 뒤, 한스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책을 들고 단상에서 외쳤다.
"이 책에서 그들은 혁명을 위해서 10살 남짓한 어린 아이를 선동하고 총알받이로 만들었습니다!"
테오도어와 준비했던 연설문은 이미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한스는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여태까지는 분노를 늘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동정심, 인류애가 이 자들에겐 없습니다. 어린 아이도, 힘 없는 노인도,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서라면 아무 죄책감 없이 총알 받이로 몰아갑니다!"
한스의 연설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테오도어가 감탄했다.
"뭐야 저 녀석 잘하잖아?"
한스가 외쳤다.
"이들은 선동에 약한 취약 계층을 선동하고는 총구 앞으로 내몹니다! 그들은 정말로 약자를 돕고 싶어했던 것 일까요? 평등한 세상을 원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을 뿐 입니다!"
한스가 주먹을 올리며 외쳤다.
"이 공산주의자 해충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박멸해야 합니다!!"
21세기, 한스 파이퍼의 후손 루카 파이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이 영상을 보고 있었다. 한스의 연설 영상 이후에 해설자가 외쳤다.
"여전히 맥주홀 기관총 테러 사건에는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다큐멘터리 회차가 끝나고 루카가 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그 때 아나스타샤가 루카의 텐트 지퍼를 열고는 외쳤다.
"루카, 맥스! 이제 너네 차례야!!"
그 말에 루카는 맥스를 깨운 다음 텐트 밖으로 나가서 삽질을 하며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가 카메라를 들고 이 모습을 찍었고 엠마가 2차대전 당시 군인들이 먹던 레이션을 보며 외쳤다.
"다이어트용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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