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간기 한스의 삶 4 나치당에 입당하는 한스
나치당에 입당하라는 히틀러의 조언은 백수가 된 한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제안이었다. 괴링, 괴벨스 또한 이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한스가 말했다.
"고맙네. 하지만 나는 기술자로서의 내 일에 집중하고 싶네."
"언제라도 생각 바뀌면 들어오게나."
한스는 히틀러와 함께 자리에서 앞으로의 정치 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에 독일에서 인종주의적인 사상이 퍼지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하네. 지금 대중은 실업과 불황으로 인하여 자존감이 떨어지고 분노하고 있네. 그렇다고 정치 세력들이 지지를 얻기 위해서 엉뚱한 쪽으로 대중의 공격성을 돌리게 선동하는 것은 옳지 않네."
"물론이지! 증오를 이용해서 표를 받는 것은 쉽지만 그런 지지는 물거품 같아서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르지.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에게도 지지율을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와 빵이지 증오가 아닐세!"
"이제는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표를 얻어내는 것도 중요할걸세."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히틀러가 말했다.
"자네는 참 머리가 좋단 말일세!"
한스가 말했다.
"난 언변도 없고 정재계에 정치 자금을 받을 수 있는 인맥도 없다네."
"하하! 자네는 너무 겸손하네!"
괴벨스와 괴링, 루돌프 헤스가 한스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한스는 신경쓰지 않았다.
'다들 반겨주는 것은 기분이 좋군!'
그 다음, 한스는 히틀러, 괴벨스, 괴링, 헤스 등과 함께 캬바레를 갔다. 캬바레에서도 여가수가 춤을 추며 공산주의를 풍자하는 노래를 불렀다.
"남의 땅은 다 내거! 기업가들 돈도 다 내거! 시위는 니들이 해! 하지만 경찰 오면 제일 먼저 도망가지!!"
경찰 옷을 입은 배우들이 나타나자 붉은 옷을 입은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달아났고 어린 아이 역할을 하는 배우만 감옥으로 끌려가는 연기를 했다. 그 여가수는 계속해서 노래를 했다.
"공산주의하면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어! 진짜야! 총을 들고 싸우라고!"
여가수는 그렇게 말한 다음에 군복을 입은 연기자들이 나타나자 다른 사람을 그 쪽으로 모조리 밀어버리고 자신은 군중 속으로 숨어버리고는 외쳤다.
"난 어디나 있지!!"
한스는 이 공연에 꽤나 감명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풍자를 할 수 있군! 정말 독창적일세!"
히틀러가 말했다.
"영화, 연극, 연설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이용해야 하네!"
한스는 나치당 모임 참여 이후로도 계속해서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나올거라던 실업수당도 역시나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실업수당이 안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집에 생활비를 어떻게 대라고!!'
여느 때처럼 가장 저렴한 샌드위치와 레모네이드를 사먹으려고 했던 한스는, 근처에 있던 무료 급식소에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앞으로도 일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에, 한스도 그 줄에 가서 섰다.
'실업수당 나올 때까지만 여기서 먹자...'
깡통을 들고 있는 노숙자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모자도 갖춰쓰고 코트를 입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멀쩡한 직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죄다 실업자가 되었던 것 이다. 한스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병 시절 생각나는군...'
그렇게 무료 급식소에 줄을 서 있는데, 누군가 한스를 보고 외쳤다.
"한스!!"
"에밀라?"
잠시 뒤, 한스는 에밀라와 함께 근처 공원에 앉아있었다. 한스는 손에서 식은 땀이 났다. 에밀라가 말했다.
"미리 말하지 그랬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스가 말했다.
"면접은 보러다니고 있어. 조만간 일자리 구할 수 있을텐데 괜히 걱정끼치고 싶지는 않았어."
에밀라가 웃으며 한스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
"앞으로는 집에 들어와서 새 일자리를 찾아보자."
그렇게 한스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한스는 면접이 없었지만 에밀라에게는 면접을 본다고 하고는 자신의 영지로 가는 열차에 탑승했다.
열차는 덜컹거리며 움직였고 한스는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한스도 솔직히 히틀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스는 기술자로 일하는 것이 좋았고 그에 열정을 갖고 있었다.
'시대에 휘말리는 것은 전쟁 한 번으로 충분하다..'
히틀러나 믿음이 가는 친구였지만 지금 한스는 마음이 복잡했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스는 자신의 영지에 도착했다. 저녁 노을은 한스의 영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으며,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은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농부는 한스가 온 것도 모르는 채로 열심히 땅을 일구고 있었다.
한스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는 자신의 영지를 맨발로 걸어다녔다. 밑에서 흙냄새가 올라왔고, 이 냄새가 좋았기에 숨을 크게 들이마쉬었다.
휴지 조각이 된 주식 쪼가리와는 달리, 이 땅은 한스의 발을 굳건히 받쳐주고 있었다. 한스가 영지를 방문하지 않을 때도 늘 땅을 비옥하게 일구고 있던 농부가 흙이 잔뜩 묻은 감자를 한 알 캐서 한스에게 보여주었다. 한스가 말했다.
"공장이고 주식이고 다 무너져가는데 땅만은 여전하군요."
농부가 말했다.
"인류는 땅을 위해 싸울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한스는 흙이 잔뜩 묻은 감자를 손에 쥐고는 바라보았다. 한스의 영지에 저녁 노을이 지면서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다. 얼굴에 잔뜩 주름이 진 농부가 말을 이었다.
"모든 짐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은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어머니 대지 뿐 입니다."
농부의 주름진 얼굴 또한 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잠시 뒤, 한스는 맛 좋은 감자들은 한아름 안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흙이 잔뜩 묻은 감자를 보며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치즈 섞은 으깬 감자다!'
한스는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밖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영지에서 나오는 돈이 있으니까 걱정 없다! 일자리는 다시 구할 수 있을 거다...농작물이 비싸게 안 팔리더라도 이걸 먹으면 그만이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아갈 거야. 난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잖아? 또 시대에 휘말리고 싶진 않아!'
한스 뿐 아니라 오토와 카를도 한스와 꼭 닮아서 으깬 감자 요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때, 한스는 스테판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스는 자신의 어머니 엠마의 집으로 향했다.
'잘 계시겠지?'
한스가 문을 두드리자, 스테판이 문을 열었다.
"한스 아저씨!!!"
스테판은 엄청나게 한스를 반가워했고, 뒤이어 엠마도 나왔다.
"한스! 오랜만이구나!"
잠시 뒤, 엠마는 한스가 가져 온 감자로 치즈가 들어간 으깬 감자 요리를 했다. 스테판도 무척이나 이 요리를 좋아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거에요!"
스테판도 한스와 입맛이 똑같았던 것 이다. 한스가 생각했다.
'이 녀석 생활비는 앞으로 어떻게 대주지?'
집에 돌아가보니, 영화사로부터 편지가 와있었다. 한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쟁 영화 '철십자기 펄럭이며' 를 제작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그렇게 하게 되면 한스에게 영화사가 자문료를 지급할거라는 말이 마지막에 적혀 있었다.
'이거면 당분간 생활비를 댈 수 있다!'
얼마 뒤, 한스는 군복을 입고는 훈장을 모두 달고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한테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다. 시나리오 작가가 물었다.
"전투할 때 두렵지는 않았습니까?"
한스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가끔 등에서 식은 땀이 납니다. 준장이 된 이후로도 두려워서 팬티에 똥오줌을 지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스는 이렇게 말했다.
"조국과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 에밀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싶다고 한스에게 말했다. 에밀라는 예전부터 연기를 공부했고, 에밀라의 친구 중에 한 명이 영화사 사장의 딸이었고 에밀라에게 작은 기회가 생긴 것 이었다. 한스가 말했다.
"하고 싶으면 해야지."
에밀라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영화 촬영하면 생활비에도 보탬이 될 수 있을 거야!"
에밀라의 말에 한스는 표정이 굳어졌지만 에밀라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난 아직 일자리를 못 구했는데...'
한스는 자신의 서재에서 계속해서 설계도를 그렸다.
'불황은 오래 가지 않을거다! 분명 내 설계도는 빛을 발할 날이 올거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한스는 취업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에 에밀라가 흐느끼고 있었다.
"한스! 흐흑..."
소년사관학교에서 돌아온 오토가 한스에게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한스가 물었다.
"오토 왔구나! 무슨 일이야?"
한스는 오토의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 오토가 말했다.
"넘어졌을 뿐이에요."
하지만 오토의 팔에도 선명한 멍자국이 있었다. 에밀라가 외쳤다.
"군사학교에서 다른 애들한테 맞은거 같아!"
오토가 외쳤다.
"우리 기수는 다 당하는거에요! 저만 당하는게 아니라구요!"
한스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이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밀라가 말했다.
"이런걸 학교가 방관하는 경우가 어디있니? 당장 학교에 가서 항의해야 해! 한스, 내일 같이 홀슈타인에 가자! 아버지한테도 말할 거야!"
현재 오토가 다니는 소년사관학교는 홀슈타인에 있었다. 그리고 손자들을 아끼는 뮐러씨가 만약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누구보다 노할 것이 분명했다.
오토가 난리를 쳤다.
"절대 안돼요!! 그렇게 하면 다른 녀석들이 저를 비웃을거에요!! 독일의 장교가 되기 위해서 이 정도 고통 쯤은 견뎌야 합니다!! 군대에서는 군인만의 규칙이 있는 법 입니다!"
고작 10살 정도 밖에 안된 오토가 소년사관학교 생도라고 세일러복 입고 군인만의 규칙 어쩌고 하는 모습을 보고 에밀라는 기가 막혔다.
"이런 곳에 너를 보낼 수는 없어! 한스! 뭐라고 말 좀 해줘!"
한스는 굳은 표정으로 오토에게 물었다.
"알았다 오토. 그런데 누가 이런건지는 알아야겠다."
오토가 말하기를 주저하자 한스가 다시 말했다.
"학교에 찾아가지는 않겠다. 어떤 녀석이 이런거냐?"
오토가 말했다.
"2학년에 막스 베르너, 클라우스 켈러 이 녀석들이 주동해서 우리 기수를 매일 두들겨패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년에 우리 기수가 2학년이 되면 애네들은 베를린에 프로이센 왕립학생사관훈련단에 가기 때문에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잠깐만 막스 베르너라고? 클라우스 켈러?"
"네. 그 보병전술 책 쓴 베르너 아들이요."
한스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고, 에밀라가 한스를 불렀다.
"한스! 어디 가!"
한스는 융커들의 주소가 쭉 적힌 책에서 베르너의 주소가 적힌 페이지를 뜯어내고는 거기 펜으로 표시를 했다. 그리고는 짐가방을 꺼내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에밀라가 흐느끼면서 오토에게 군사학교를 그만두라고 하고 있었다. 한스는 아주 차분하게 서랍 속에서 예전에 미군 장교에게서 노획했던 권총을 꺼내고는 총알을 확인했다.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이다..'
한스는 권총을 짐가방에 넣어두었다.
'방학이니 그 녀석 아들도 있겠군...아들 앞에서 애비가 죽는 꼴을 보여줘야...'
한스는 그 때 자신이 노획한 일본군 군도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군도를 챙기러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하지만 군도를 가져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열차로 갖고 가기 힘들겠지..'
방으로 돌아와보니, 에밀라가 한스의 짐가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스?"
에밀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게 무슨..."
그 때 오토도 들어와서는 한스의 짐가방에 베르너의 주소가 적힌 종이와 권총을 보고는 외쳤다.
"안돼요!!!!으앙!!!!!"
오토가 깜짝 놀라서 울부짖었고 자신의 방에서 책을 보던 카를도 뛰어왔다. 한스는 애써 오토를 다독였다.
"그런거 아니다. 요새 치안이 안 좋아서 권총은 호신용으로..."
에밀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한스에게 말했다.
"이 권총은 내가 가져갈게."
한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밀라에게 말했다.
"미안해. 내일 홀슈타인으로 가서 학교장에게 내가 말해볼게."
다음 날, 한스는 홀슈타인의 소년사관학교에 방문했다. 소년사관학교장이 한스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안 그래도 특강 때문에 한 번 연락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한스는 굳은 표정으로 소년사관학교에 폭력 사태에 대해서 항의했다. 소년사관학교장이 물었다.
"어린 생도들이 군기를 잡는데 있어서 다소 지나친 부분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만, 이는 장차 독일을 위한 훌륭한 장교를 육성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절차입니다."
한스가 물었다.
"이런 가혹 행위, 부조리는 군기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일단 방학이 끝나는대로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소년사관학교장의 태도로 보면 그 주의라는 것이 아주 형식적일 것이 분명했다. 그가 한스에게 물었다.
"현재는 군에서 은퇴하고 기술자로 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이 사건이랑 무슨 상관이지?'
한스는 소년사관학교를 나와서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했다.
덜커덩 덜커덩
한스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았다. 여기저기서 우익, 좌익 단체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공산주의로 독일 민족을 해방해야 한다!!"
"독일인은 모두 봉기해야 합니다!!"
이 단체 녀석들은 어떤 사상이 있어서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었고, 건달, 깡패들로 구성된 사병 조직이었다. 민간인들은 물론이고 상점 주인들은 제발 이 단체가 자신들의 가게 주위에서는 시위를 하거나 무력 충돌을 하지 않기를 바랬다. 한스를 태운 택시 기사가 말했다.
"저 녀석들 저러다 사고칠 것 같습니다!"
한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뒤, 히틀러는 직접 한스의 상의에 나치 뱃지를 달아주었다.
"한스, 나치당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네!"
괴벨스, 괴링, 헤스 등 많은 나치당 인사들이 이를 옆에서 축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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