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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대한제국 랭커강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3.29 22:54
최근연재일 :
2021.06.01 02:05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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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579
글자수 :
17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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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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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0. 근정전의 소재앙 (1)

DUMMY

황궁.

어전회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대신들이 한 명씩 등청하며 가벼운 인사와 함께 회의 전 미리 조율할 내용을 서로 언질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근정전 분위기는 더없이 뒤숭숭했다.

딱히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외무대신 한명후 백작의 급작스런 파면.

그 이후 처음 열리는 어전회의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은 전제군주가 통치하는 국가다.

제국의 모든 권력은 황제에게 집중된 형태.

황제는 국가의 통치를 위해 다시 그 권력을 자신의 수족과 같은 행정부관료들에게 분배했다.

그렇기에 관료들의 권력 역시 하늘을 찔렀다.


제국재상을 겸직하는 재무대신을 제외하면,

대신급 관료는 한성의 모든 행정부 공무원을 통틀어 최고위직에 속했다.

그렇기에 아직 제위에 오르지 못한 황태자가 가볍게 날려버릴 사람이어선 안되었다.

그것은 자신들 모두의 목숨과도 같은 문제였기 때문이다.


가문의 일로 제국대에서 난동을 부렸다고 했다.

문제는 그 직후, 황태자의 호출로 일가 전체가 박살이 난 후 재산을 몰수 당했다는 것이다.

대신들 중에서 재산이 많기로 소문나있던 그였기에 몰수된 금액도 천문학적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손주를 폭행한 자를 위협하다가 그리되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사유가 무엇이든 간에, 황제가 두문불출하는 지금 이토록 가혹한 처벌을 내린 것이 아직은 어린 황태자라는 사실은 대신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황제의 선위는 아직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과거 군주의 부재로 어전회의를 여러차례 주관해온 황태자는 본인의 색과 방향성을 최대한 감추며 대신들을 정중히 대해 온 터이다.

폭군의 통치가 끝난 이후 성군의 치세가 열릴것을 기대했던 대신들에게는 가히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여기서의 '성군'이란 대신들이 쥐고 흔들기 좋은, 유약한 군주에 불과했다.


"허어.... 제국이 어찌 되려는가."


노회한 대신 몇명이 자그막히 한숨을 토로했다.

어전회의가 시작되기까지 남은 약간의 시간을 이용해, 머리를 맞댄 자들도 있었다.

표정이 특히나 밝지 못한 대신 몇명이 근정전 옆의 분과회의실에서 조용히 말을 나누었다.


"패왕의 피가 당최 어디 갔겠습니까?"


지긋한 나이의 보건대신이 운을 띄었다.


"한명후 백작의 과가 적지 않다고 칩시다.

허나 최근 십여년간 국제 외교무대에서의 활약이라는 뚜렷한 공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실 우리들 역시 그렇게 털리면 먼지가 나오지 않을 자가 어디에 있겠소?"


산업대신이 거들었다.

제국의 산업과 통상을 관리감독하는 막강한 권한 덕에, 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자였다. 그렇기에 외무대신과 가장 합이 잘 맞는 자이기도 했다.


"아무튼, 어전회의 때 분명히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가만히 묵과했다가는 곧 나와 또 여러분들의 차례가 올 것이오. 아직 황태자의 제왕학은 끝나지 않았소."


몇 명의 끄덕거림.

오래 지나지 않아 어전회의가 열렸다.


* * *


황태자의 입장과 함께, 어전회의 정례보고가 순차적으로 시작되었다.

오늘 회의 중에는 대신급 관료의 새로운 임명에 관한 안건이 의결되어야 했다.

이척의 권위에 일말의 의심을 품은 몇몇 대신들은 그때를 노렸다.


"다음으로 외무대신의 성좌(省座)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공석임에 따라, 차기 외무대신의 임명에 관한 안건이 논의되어야 하옵니다.

황무성은 실무자로써 잔뼈가 굵은 외무성 부대신을 승급하여 대신으로 제수하실 것을 제안드리옵니다."


황무대신 윤지창 후작의 발언.

사전에 이척과 조율된 무난한 인선이었다.

인사권은 황제의 고유 권한이었기에 사실상 거수기와 같은 통보를 거치면 외무대신의 임명은 순조로울 예정.

대신들의 반론이 없자 임명을 의결하려던 순간이었다.


바로 그 때였다.


"황태자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번 외무대신의 파직과 재산의 몰수에 있어 수사과정의 적법한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함이 마땅히 옳은줄로 아뢰옵니다."


기습적으로 나온 말.

이척이 눈을 돌려 발언자를 찾았다.

산업대신 권중현 자작.

외무대신과 막역한 사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놓인 명패의 이름이 이척에게 묘하게 익숙했다.


'권..권중현(權重顯)?'

'설마 을사오적의 농상공부대신 그놈말인가?'


"허어.."


어이가 없던 나머지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역사가 바뀌고, 땅의 주인이 달라졌을지언정 권력의 냄새를 맡는 귀신같은 능력을 지닌 자들이 고위직에 오르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간의 어전회의, 그리고 관료들의 이름에 집중하지 않았던 그의 잘못이기도 했다.

이 제국이 현실에서 기반했다는 사실을 종종 잊었던 그였기에, 지금에와서야 저자의 이름을 주의 깊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조만간에 친일파놈들을 기억나는대로 싹 쳐내야겠군.'


완전히 달라진 세계선인만큼 상상치 못한 곳에서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었고, 부귀영화와 권력을 위해 나라를 기꺼이 팔았던 그들은 이곳, 위대한 대한제국에서도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국가에 손해를 입히는 짓을 반복할 것이다.

이척이 청산해야 할 친일파와 매국노들의 명단을 생각하는 사이 몇명의 대신들이 산업대신의 반기를 거들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러한 선례는 장차 대신들의 권위를 크게 손상시킬 것이옵니다.

애초 일가의 적장자가 제국대학의 교직자에게 폭행을 당하여 벌어진 일이오니, 배움을 추구하는 학자가 주먹을 휘두른 것은 가히 죄가 가볍지 않다 할 수 있사옵니다!"

"외무대신의 죄는 그 경중과 그의 공을 엄격히 참작하여 다시 따져본 후에 처벌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척은 슬며시 옆을 돌아보았다.

당황한 듯한 황무대신 윤지창 후작의 얼굴.

그리고 팔짱을 낀채 눈을 감은 재무대신 김자운 공작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싸움에서 빠지겠다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다.

황제의 앞에서 감히 입도 열지 못하던 자들이다.

조선의 그 작은 근정전으로 되돌아온 것 마냥 목청을 높여 이척을 힐난 하고 있었다.

마치 황태자의 역량과 힘을 시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따위로 나온다 이거지?'


이척의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갔다.

그가 천천히 준비 중인 거대한 개혁은 군사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억지로 끌어올린 국력과 군사력.

식민지 블록경제로 연명하는 대한제국의 경제는 현대인인 그가 보기에 빈틈이 너무도 많았다.

그 빈틈 사이로 권력과 재력을 움켜쥔 자들은, 어설픈 법의 틈새를 파고들며 더 큰 부를 거머쥐었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서민들은 거리에 휘날리는 대한제국의 연전연승 호외를 보며 대한인으로써의 긍지를 마음속에 가득 채웠을지언정 여전히 부유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기에도 이정도는 아니었지.'


외무대신의 세금탈루 수법만 봐도 그러했다.

단순히 차명으로 돌려진 토지와 공장의 명의.

거기에 기초적인 수준의 매출축소.

조작된 회계장부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결국 그의 개혁은 대신들과 명문세가들로 비롯된 대한제국의 기득권세력과 정면충돌을 앞둔 운명이었던 것이다.


핵심은 그것을 밀어붙일 만한 권력과 세력.

이척은 아직 그 힘을 갖추지 못했다.

길게 잡아 수년 간 조금씩 힘을 늘려야 하리라.

황제가 계속 칩거를 계속한다면 언젠가 일어날 영미제국들과의 충돌에서 그 역시 친정을 나서야 할 것이다.


그 때였다.


* * *


"콰앙!"


두꺼운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

소강상태에 접어든 회의장을 박살내버릴 듯이 울려펴진 굉음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 움츠러 들었다.


소리 자체에 놀란 사람은 없었다.

소리가 난 곳이 문제였다.

어좌, 용상의 일월오악병풍 병풍 앞.

분명 방금 전까지 텅 비어있었던 곳이다.


태양제, 고종이 그곳에 있었다.

평소 잘 입지 않던, 금빛 황룡포를 걸친 황제.

고종이 안광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황태자의 뒤에서 모두를 노려보았다.

십수년의 어전회의에 참석했던 대신들 모두가 하나의 트라우마라도 가진 듯, 일제히 몸을 움츠린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이 무지랭이만도 못한 벌레같은 것들아."


근정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황제의 옥음.

호령에 감히 대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네놈들이 지금 모조리 죽고 싶은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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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14. 베링해의 모비딕 (1) +2 21.05.08 438 11 9쪽
28 13. 장백산의 광기 (2) +2 21.05.07 443 9 10쪽
27 13. 장백산의 광기 (1) 21.05.06 520 10 10쪽
26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2) 21.05.04 474 12 9쪽
25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1) 21.05.03 523 15 8쪽
24 11. 선위와 즉위, 그리고 ... +4 21.05.03 554 10 7쪽
23 10. 근정전의 소재앙 (2) 21.05.01 541 12 10쪽
» 10. 근정전의 소재앙 (1) +4 21.04.29 566 11 9쪽
21 9. 전율하는 기둥 (2) +2 21.04.29 587 12 8쪽
20 9. 전율하는 기둥 (1) +1 21.04.27 647 13 9쪽
19 8. 대영제국 특명전권대사 21.04.26 621 13 9쪽
18 7. 판을 뒤엎는 자 (3) +2 21.04.25 595 13 8쪽
17 7. 판을 뒤엎는 자 (2) +1 21.04.24 619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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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6. 제국 설계자 (2) 21.04.21 612 13 7쪽
13 6. 제국 설계자 (1) +2 21.04.20 636 11 7쪽
12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3) +1 21.04.20 611 14 9쪽
11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2) +3 21.04.19 636 13 10쪽
10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1) 21.04.18 674 13 10쪽
9 4. 쾌속비선 비익조 (2) 21.04.17 644 14 9쪽
8 4. 쾌속비선 비익조 (1) +1 21.04.16 731 13 9쪽
7 3. 강림과 회군 (2) 21.04.15 775 12 9쪽
6 3. 강림과 회군 (1) +2 21.04.14 898 13 9쪽
5 2. 제도(帝都) 한성 (3) +1 21.04.12 1,024 13 9쪽
4 2. 제도(帝都) 한성 (2) +5 21.04.05 1,159 19 8쪽
3 2. 제도(帝都) 한성 (1) 21.04.03 1,315 2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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