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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대한제국 랭커강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3.29 22:54
최근연재일 :
2021.06.01 02:05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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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28
추천수 :
579
글자수 :
179,356

작성
21.04.2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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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6. 제국 설계자 (3)

DUMMY

근정전 중앙.

사십육개의 넓고 낮은 계단위에는

화려한 금빛 용상이 자리했다.

광활한 어전의 구조는 그 용상을 향해

모든 것을 집중시킬 수 있는 구조였다.

아니, 애초에 이 공간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해와 달이 같이 떠있는 험준한 산맥.

거대한 일월오악병풍(日月五岳屛風)이 어좌를 감쌌다.

그 위로는 대한제국의 황실과 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거대한 오얏꽃 한송이가 찬란한 금빛을 반사시켰다.

제국의 영토에서 나는 모든종류의 보석이 오얏꽃의 명암을 이루어 극히 사치스러운 모양새.


황제는 바로 아래,

용상 위에 편히 앉아 턱을 괴었다.

근 일주일을 구름 위에서 함대를 지휘하던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온하고, 또 광오한 모습.

단지 비어있던 용상에 되돌아온 것 뿐이다.

그것만으로 이 거대한 어전을 꽉 채울만큼의 거대한 존재감이 발산되며 모두를 짓눌렀다.


"흐음.. 네놈, 뭔가 다르구나."


턱을 앞으로 당긴 고종이 눈매를 가볍게 모으며 중얼거렸다.

친정에서 돌아와 근정전에 자리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모두를 내보내고 황태자와 독대한 것이었다.


착륙장에서부터 황궁 근정전까지는 지척이었다.

거대한 전용 어차를 타면 반각(7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

애초에 출정식도, 공식적인 선전포고도 없이 야음을 틈타 떠난 원정이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떠났던 그날만큼이나 조용하게 근정전의 어좌로 돌아왔다.


고종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두손모아 고개를 숙인 황태자를 뜯어보았다.

조금은 창백해진 얼굴에 늘 그렇듯 제국육군정복 차림이었다.

황제는 용상의 팔걸이에 조각된 정교한 금룡 장식을 쓰다듬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북경의 비사(秘史)는 전쟁대신에게서 들은 것이냐."


그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 황제 스스로 잘 알면서 묻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은 또한 황태자의 의중을 떠보는 것이기도 했다.

속으로 이척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천하의 황제가 수족처럼 부리던 제 아들에게서 난생 처음 느꼈을 인도양 한복판에서의 이질감이 그 역시 느껴졌던 탓이다.

또한 그것은 이 몸뚱이의 주인이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황제를 놀라게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그것으로 놀랐다면 서운할 일.

이척은 고개를 꼿꼿이 들며 핵폭탄을 던졌다.


"유지량 대원수는 무덤까지 가져갈 묵언의 맹약을 그리 쉽게 저버릴만한 인물이 아니옵니다. 황제폐하."


"뭐라?"


잠시 말을 멈춘 이척은, 지금껏 준비했던 말을 내뱉기 전 마지막 순간의 짧은 몇 초간 다시 한 번 고민하며 숨을 들이켰다.

과연 이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소자, 잠시 혼수에 취하여 잠든 동안 이 제국의 과거와 미래의 모든 비사들을 단숨에 보았사옵니다."


"미래? 네놈이 나약해 빠진 건 진작에 알았다만 이제 괴력난신에 기대기라도 하는 것이냐."


이제 핵폭탄을 던질 차례.

다행히도 그를 독대하겠다는 황제의 의중에 따라 다른 모두가 어전을 비운 상태였다.

똑바로 황제를 주시하며 이척은 신성한 용상의 계단을 향해 한걸음씩 올라섰다.

대한제국의 지존을 제외하고 지금껏 감히 그 계단을 범한 인간은 없었다.


경악하는 표정의 황제 앞까지 올라온 그가 조용히 황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한제국은, 앞으로 이십년이 지나기 전에 처참하게 멸망합니다."


* * *


"으하하하하!"


황제는 입을 크게 벌려 웃었다.

마주선 이척은 미동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황제를 주시했다.

한참을 웃던 황제의 파안대소가 잦아들었다.

고종은 입꼬리를 뒤틀며 일어섰다.


"따라와라."


벌떡 일어난 황제가 어좌 뒷편, 일월오악병풍 사이의 뒷벽을 슬쩍 밀었다.

벽인줄로만 알고 있던 것은 금빛 석전을 꼼꼼히 붙인 육중한 철문이었다.

문 안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고종.


방 안은 열평이 채 안되는 작은 밀실이었다.

밀실 내부 벽은 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숫자가 써진 묵직한 십수개의 검은 문들.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향한 듯 보였다.


"이곳은 근정전에서도 가장 내밀한 공간이다. 네놈이 방금 지껄인 것은 어전에서 함부로 꺼낼 말이 아니다.

어디 계속 해보거라."


방안에 있는 수수한 나무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황제가 그에게 나머지 의자를 턱짓했다.


"폐하께서 인도양 한가운데, 영국의 함정 코 앞에서 배를 돌리신 것이 그 뒤틀린 역사의 시작입니다.

영국놈들이 미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태평양함대 본대가 남반구를 돌아 함정에 빠진 폐하의 함대를 뒤편에서 칠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황제가 고개를 꺾으며 반문했다.


"안다. 제물포함의 보고를 받았지.

그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건 반저항 기관 뿐이다. 헌데... "

"함정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네놈이 미래를 보고온 증좌라도 되는줄 아는게냐? 그저 네놈의 전쟁성에 쳐박힌 영길리와 미리견의 간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 아니더냐."


황제가 독설을 퍼부었다.

예고된 멸망으로 주의를 끄는데는 성공했다.

그렇다면 판을 뒤엎을 차례였다.


"······."


* * *


밀실에서 부자가 독대를 시작한지 한 시진은 족히 지났다.

이척은 그가 플레이한 마지막 대한제국의 기억을 하나씩 훑어나갔다.

일본정벌과 지나전쟁, 시백력전쟁의 눈부신 승리를 이끌어온 제국.

그러나 결정적인 인도양에서의 참패..


가장 찬란한 제국의 시절이 그의 재위기간 중 몰락의 시작으로 바뀐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군주가 있을까?


수십 년간 계속된 제국의 끔찍한 양면전쟁.

지나와 요동에서 거두어들이는 식량으로 풍족했던 제국은 긴 전쟁 끝에 모든 자원이 고갈되었다.

동남아의 밀림과 지나해에서 영국군과, 넓은 태평양과 일본총독부 전역에서는 미국군과 혈전을 벌이며 국력을 쏟아부었다.

거대한 나무가 서서히 말라죽듯이 제국 역시 서서히 쇠락했다.


모든 상식을 뛰어넘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핵병기, 몰락해가는 제국의 과학기술은 쇠퇴하여 결국 미국의 자본 앞에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제도 한성에 떨어지는 한 발의 폭탄과 거대한 화염, 그리고 충격파.

그가 본 대한제국의 마지막 미래는 가감 없이 황제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저 남은 것은,

칠흑 같은 어둠 뿐이었사옵니다."


황제는 말이 없었다.

최후의 패배가 남긴 여운을 곱씹듯, 침묵속에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고종이 입을 열었다.


"정녕 네놈은 혼절해있던 동안 태종대왕이라도 만나고 온게 분명하구나."


툭 내뱉는 다음 말.


"제국의 전권을 주마.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네놈의 것이 될 제국이 아니더냐.

네놈이 진정 제국의 미래를 엿보았다면, 나보다는 대한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할터."


이척이 방금 들은 귀를 의심했다.

황제는 근정전이 아닌, 다른쪽 문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황궁, 침소가 있는 방향.


문을 열려던 그가 멈춰서 조용히 말했다.


"단, 이 권한에는 끔찍할 만큼 거대한 책임이 함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황제는 떠났다.

긴장이 풀린 그는 밀실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렇게 잘 풀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방해를 하지 않겠다는 약조만으로도 선방.

최악의 경우 그를 황태자에서 폐하고 야심 많은 이강을 새로운 제국의 국본으로 세우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의 플레이에 따라 충실히 제국을 움직여온 황제였다.

그의 직위가 황태자라고 해서,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전략은 틀리지 않았다.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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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2) 21.05.04 474 12 9쪽
25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1) 21.05.03 523 15 8쪽
24 11. 선위와 즉위, 그리고 ... +4 21.05.03 553 1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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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0. 근정전의 소재앙 (1) +4 21.04.29 565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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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7. 판을 뒤엎는 자 (3) +2 21.04.25 594 13 8쪽
17 7. 판을 뒤엎는 자 (2) +1 21.04.24 618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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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제도(帝都) 한성 (2) +5 21.04.05 1,159 1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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