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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대한제국 랭커강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3.29 22:54
최근연재일 :
2021.06.01 02:05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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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글자수 :
179,356

작성
21.04.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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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7. 판을 뒤엎는 자 (1)

DUMMY

대한제국 전쟁성

꼭대기층 집무실.


대한제국 군대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마치 실핏줄처럼 퍼져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물같은 군을 유지하기 위해, 황궁 바로 건너의 전쟁성 건물은 제도 한성의 기라성같은 마천루 사이에서도 입면적이 가장 큰 건축물에 속했다.


거대한 전쟁성 로비는 늘 분주했다.

바닥은 대리석을 잘라내어 정교하게 짜맞추었다.

거대한 방패문양의 인장 중앙, 오얏꽃과 그것을 감싸며 보호하는 두마리의 용.

강성한 육군과 해군이 황실을 보호하는 아주의 방패가 되라는 의미다.


공중강습휘장을 가슴에 달은 근육질의 참령이 고속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뒤편으로는 새하얀 제국해군 정복을 입은 참모부의 장성들이 짧은 단망토를 휘날리며 로비를 가로질렀다.


천삼백만 군대의 절대적인 통수권자는 황제였다.

지존의 바로 아래에서 제국군의 군령권을 가진 이척은 군에 관련한 모든 업무의 실무권한을 쥐었다.

군의 큰어른이자 지난 수십년간 대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대신, 유지량대원수 역시 표면적으로는 그를 보좌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황태자의 집무실은 동궁이 아닌 전쟁성 꼭대기 층에 있었다.


이순신함보다 거대한 주력전함의 건조를 위한 해군 제1조선소의 증축문제를 한참동안 논의하던 군수관찰사가 자리를 정리하며 그에게 경례를 올렸다.

황태자 이척은 집무실 책상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황제는 나를 시험대 위에 올렸다.'


몇 일 전 그가 저지른 행동은 단지 무엄하다는 표현을 아득히 넘어서는 도발이자, 반역이었으며, 또한 도박이었다.


'즉결 처형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을 테지..'


도박의 판돈이 컸던 만큼 그가 얻어낸 배당금 역시 두둑했다.

그러나 한 판에 만족해선 안되었다.

도박판은 이제 막 시작일 뿐.


황제는 그날 이후 두문불출이었다.

궁으로 돌아왔음에도 어전회의를 주관하지도, 장성급 지휘관의 임명식에 참석하지도 않고 처소에 틀어박혔다.

모든 것은 황태자의 차지였다.

그리고 이척은 그 의미를 아주 잘 알았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광오함과 확신에 대한 근거를 빠른 시일 내에 황제에게 보여야만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고종의 신임은 거두어질 것이다.

그 때가 된다면 그는 저질렀던 방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리라.

물론 그럴 일은 없었다.


중요한 것과 급한 것.

이 세상 모든 일은 위 둘 중 한 가지에 속한다.


"급할 때는, 역시 지름길로 가야겠지?"


이척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혼잣말을 했다.

바로 옆에서 그의 업무를 보조하던 손 보좌관 역시 급히 따라나섰다.

방문을 지키던 황실근위대의 눈에 황태자의 비릿한 미소가 보였다.


* * *


제국대학의 말단 조교수는 대한제국에서 학문을 꿈꾸는 모두가 바라는 선망의 직업이었다.

조교수로 임용된 후에 승진 심사를 통과하면 종신교수가 보장되는 것은 물론, 정년 역시 대단히 긴 편이다.

특히 퇴직 후에 제국 공무원연금의 가장 높은 '가'등급 수령자라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대학에서 가장 젊은 조교수라는 별칭을 지닌 천재 공학자, 김창현 교수는 요 근래 꽤나 위기에 몰린 상태였다.

정치를 할 줄 모르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외골수.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이 합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발단은 이러했다.

제국대학이 아시아 최고의 대학이라는 타이틀과 무관하게, 여느 다른 대학이 그렇듯 귀족자제의 기부입학은 당연한 것이다.

한성 남부의 공장지대에 수십여개의 제조공장과 일대의 토지를 소유한 문경 한씨 가문은 그 콧대 높은 한성 자본가들 사이에서도 한 수 접고 들어간다는 세가였다.

신분이 타파된지도 수십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세가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다.

제국 선포 이전부터 토지와 재산을 끌어모은 그들이었다.

그들이 무진년 친위정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선해서가 아니라 당시 세도정치의 주류(主流)에서 밀려나 있던 까닭이다.

자본의 가치가 날로 올라가는 오늘 날, 그들은 모아둔 부를 바탕으로 제국 고위직 공무원에 줄줄히 입관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외무대신 한명후 백작이었다.

문경 한씨 가문의 수장인 그를 중심으로 가문의 장성한 젊은이들이 외무성에 특히 많이 배치되었다.


가문의 적장자라는 삼대독자 한 명과 그의 절친 둘이 한번에 강의실로 비집고 들어온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사사건건 그의 강의내용에 시비를 걸며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동안에도 꾹 참았다.

그러나 그들이 제국대 중앙도서관에서 여대생을 희롱하는 모습을 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이.. 이런 육시를 할 놈들 같으니!"

"으악.. 억!"


그는 무겁기로 철퇴에 비견한다는 소재공학총론 원서를 들고 세명의 학생을 한번에 두들겨 팼다.


비실비실하던 반가의 자제놈들이라 그런지 손맛이 아주 좋았다.

그 후 당연하게도 김창현 교수는 대가를 처절히 치뤄야 했다.


외무대신 한명후 백작과 외무성 구주(歐洲)담당관 한석윤 장령이 다음 날 아침 소재공학과 본관으로 쳐들어왔다.


"그 근본도 없는 무지랭이 같은 놈이 우리 세가 막둥이의 다리뼈를 부러뜨렸단 말이오!!!"

"즉시 해고하고 신병을 우리쪽으로 넘기시오. 내 온몸의 뼈를 조각내어 죽일 것이니."


격노하는 그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 학부장과 부총장, 그리고 제국대학 총장마저 달려나와 줄지어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관여하던 소재개발연구명령에 그가 한발 걸치고 있지 않았다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 예정이었던 것이다.


결국 조교수 김창현은 개인연구비 삭감통보, 녹봉의 반절 이상을 감봉, 그리고 조교수 직위 역시 연구명령이 종료되는 시점까지로 강등되었다.

직위가 종료되는 순간이 그의 제삿날이었다.


외무성 옥상에 이유도 없이 올라간 제국대학 조교수가 술에 취한 상태로 발을 헛디뎌 오십칠층 아래로 떨어졌다는 조그만 한성일보 기사를 가족이 볼 생각을 하니 하루하루가 끔찍해 연구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 * *


죽은 듯 근신하던 그에게 누군가 인편을 보냈다.

알고 지내던 제국전쟁기술연구소의 분과장으로부터 연구소에 직접 방문해서 실험을 하나 도와달라는 급한 연락을 받은 것이다.

고온고압에서의 내구성을 지닌 신소재 개발.

그가 수 년간 매달렸던 연구과제를 위해 잠시 협력한 적 있던 유능한 분과장이었다.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한성 노면전차 순환선을 타러 발걸음을 옮겼다.

우울한 마음과 반대로 세종대로의 바삐 오가는 차와 사람들은 그를 더더욱 침울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인도 옆에 잠시 멈춘 거대한 화물차 한대에서 검은 옷을 입은 십수명의 남자들이 쏟아져나와 그를 에워쌌다.


"무슨.. 무슨짓들이오! 대체 누구요!"


두꺼운 암막천을 그의 얼굴에 싸맨 남자들은 우악스럽게 어깨를 붙들고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순식간에 백주대낮의 세종대로에서 납거된 것이다.


'문경 한씨 놈들이다.. 나는 이제 끝이야. 이놈들이 기어이 황제폐하의 연구를 아직 마치지도 않은 나를..'


절망에 가득 찬 그가 회한에 찬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달리던 화물차가 속도를 줄이고 앞으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새 지하로 들어간 것이다.


"덜컹"


멈춰선 화물차에서 끌어내려진 그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혀졌다.

거칠게 벗겨진 암막천 너머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쏘아대는 조명 탓에 눈이 부셔 잘 보이지 않았다.


"너무 거칠게 대했구먼, 장차 우리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재인데."


그를 위로하듯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극도의 긴장이 풀린 김창현 조교수가 쓰러지듯 혼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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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14. 베링해의 모비딕 (1) +2 21.05.08 438 11 9쪽
28 13. 장백산의 광기 (2) +2 21.05.07 443 9 10쪽
27 13. 장백산의 광기 (1) 21.05.06 519 10 10쪽
26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2) 21.05.04 474 12 9쪽
25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1) 21.05.03 523 15 8쪽
24 11. 선위와 즉위, 그리고 ... +4 21.05.03 554 10 7쪽
23 10. 근정전의 소재앙 (2) 21.05.01 541 12 10쪽
22 10. 근정전의 소재앙 (1) +4 21.04.29 565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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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8. 대영제국 특명전권대사 21.04.26 621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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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제도(帝都) 한성 (2) +5 21.04.05 1,159 1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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