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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대한제국 랭커강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3.29 22:54
최근연재일 :
2021.06.01 02:05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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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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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글자수 :
17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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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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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8. 한성의 황금빛 밤

DUMMY

으리으리한 마천루가 즐비한 세종대로의 뒤편.


제국의 엄숙한 위엄을 상징하는 행정부의 본청 이면에는 억눌려온 한성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환락가와 술집들이 즐비했다.


어느덧 차가워진 초겨울의 밤공기가 어둑해진 한성의 뒷골목에 스며들었지만, 거리가 뿜어내는 열기와 욕망을 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유한 자본가들을 위해 금빛 기와를 뽐내는 고급스러운 고층 기루들과 그보다는 주머니가 가벼운 자들을 위한 복층 주막들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어서옵쇼~! 전승기념 행사중입니다!

이화주(梨花酒) 술상 차림이 오늘까지만 반절로 에누리올시다!”


주루의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흔드는 호객꾼의 외침이 거리거리마다 들려왔다.

주방 한켠에서 구워지는 석쇠 위의 너비아니가 진한 육향을 뿜어내자, 지나가던 행인 몇 명이 그 냄새에 홀리듯 주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전쟁성에 있는 내 친척이 똑똑히 들었다 했네!

미리견 태평양함대를 통째 박살 낸 것이 바로 그 흑조사단이라 이 말이야!”


반대쪽 2층 주막의 난간에 마련된 평상에는 한쪽 팔을 난간에 느긋히 기댄 자들이 탁주를 기울이며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압도적인 전승(全勝).

한성의 거대 언론사들이 일제히 발행한 호외가 거리 곳곳에 나뒹굴었다.

상기된 표정으로 이곳을 거니는 모두는 조국이 거둔 위대한 승전보에 깊이 취해있었다.

아직은 관록을 입증하지 못한 젊은 황제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거둔 짜릿한 승리였다.


대한제국에서 국제정세를 보는 식견이 가장 높은 자들이 모인 곳이 한성이다.

작금의 시대는 바야흐로 천하삼분지계.

그 말이 처음 등장한 곳은 저 광활한 중원 땅이었건만, 이제 대한은 그 천하를 중원보다 수십, 수백배는 넓은 이 세계 전체로 확장시켰다.


한성 관청에 근무하는 고관대작이건 바닥에서 굴러먹던 노름꾼이건 간에 대한이 양쪽의 백인 제국에게 호시탐탐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번의 승전보가 더욱 짜릿한 이유는, 그것이 그간 모두의 마음 한 켠에 자리했던 불안감을 일거에 해소시킨 쾌거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한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총칼을 맞대며 혈전을 벌였던 백인 제국인 러시아는 그 승전에도 불구하고 아군이 흘린 피가 적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은 지금껏 우리가 싸워온 동방의 소국과는 차원이 다른 저력을 지닌 강대국이다.”


몇몇 호사가들은 한러전쟁에서 대한이 흘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 다음 전쟁을 염려했다.


그런 우려가 단숨에 휘발되어 버린 것이다.

반백년 전까지 매년 봄이면 굶어죽지 않을 궁리를 해야 했다던 끔찍한 빈국은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옛날 일이 되었다.

천박하고 폭력적인 저 왜국놈들에 이어 오만하기 그지없는 청나라까지 단숨에 정복한 대한이 아닌가.


겨울밤을 즐기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 * * 


"와하하! 오늘같은 날 더 마시지 않고선!"


중저음의 호방한 목소리가 껄껄대며 웃었다.

상처하나 없는 부드러운 백여우 털을 덧대어 만든 고급스러운 갖옷을 걸친 사내.

얼핏 보아도 애국사업가임에 틀림 없었다.

그의 어깨에 기댄 채 걸음을 함께하는 여인은 부쩍 추워진 날씨에도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치파오를 입은 채였다.


부유한 민족자본가가 젊은 지나 여성과 연애하는 것은 이제 한성 뒷골목에서 흔한 풍경이었다.


그들 뒤로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사내 두 명이 뒤따르며 취기에 비틀대는 주변 행인들을 이따금 밀쳐댔다.


"으히히.. 장형 내 그래서 말이오. 히익! 미.. 미안하오."


"물러서라! 네놈이 함부로 몸을 갖다댈 분이 아니시다!"


거리의 분위기를 망치며 전진하던 이들은 이내 커다란 건물로 들어갔다.


“대인을 뵙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정문을 삼엄하게 지키던 흑복의 거구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일행을 내부로 안내했다.


기둥마다 하늘로 승천하는 용이 새겨진 으리으리한 술집이었다.

고위급 관료나 부유한 자본가, 이국의 외교관들만이 드나들 수 있다는 금화루(金花樓).

호화로움의 극치로 장식된 실내 장식을 빠르게 지나친 일행이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된 특별고객용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꼭대기 층에 멈춰서자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거대한 미닫이식 창호의 양 끝에 대기중이던 기생들이 고개숙이며 문을 당기자, 층 전체를 사용하는 거대한 방과 그 너머의 탁 트인 한성 주택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식탁위에 가득 차려진 산해진미의 술상.

잠시 그 장면을 눈에 담은 사내가 품에 착 안긴 그의 애인과 경호원을 보며 차례로말했다.


“흐흐.. 잠시만 나가있거라. 잠깐이면 된다.”

“쥐새끼 하나 못들어오게 감시해라.”


탁...!

방음문이 조용히 닫히자 표정이 바뀐 사내가 급히 창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성 동쪽이 한눈에 보이는 창가에 딸린 좁은 발코니, 벽에 몸을 붙이고 서 있던 남자가 급히 나타난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너무 천박하고 요란한게 아닌가. 송가.”


나이가 그의 반절도 채 안되는 듯한 젊은 남자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힐난하듯 입을 열었다.


황망히 갖옷을 벗은 사내가 머리가 땅에 닿을 듯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대인! 그저 오늘 같은 날에는 거리의 화려함에 묻어가는 것이 더욱 안전할 듯 하여..”


“쯧...!”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남자가 품속에서 적색으로 밀봉된 서류를 꺼내들었다.

먹이를 손에 쥔 주인을 바라보는 개처럼, 사내의 눈에 숨길 수 없는 탐욕이 어렸다.


“이번달까지 손에 넣어야 할 회사들과 필요한 자금이 처리될 계좌다. 차질이 있어선 안된다.”


“예... 옙! 여부가 있겠습니까!”


두손으로 공손히 받아든 그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안 그래도 최근 부상하기 시작한 한성의 금융 토박이들이 그의 사업체 몇 개에 서서히 자금 압박을 가해오던 터였다.


연락도 접선도 오직 눈앞의 남자가 결정하는 것이었기에, 그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에게 닿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저자였다.


그 역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천문학적인 거금을 지원하며 그를 살리고 또 키워낸 것은 그보다 더 큰 목표를 달성하는 위함일 것이라고.


처음엔 시티오브런던이나 월스트리트의 금융재벌이 자신을 이용해 제국의 경제계에 장난질을 치려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원이 이어지고, 점차 자산의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서, 저 남자의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어떤 특정한 세력 그 이상의 존재일 것이라는 두려운 의문이 커져만 갔다.


‘내가 설마 매국의 선봉에 서고 있다면...’


이 세상에 대가 없는 돈이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당연 독이 든 성배일 것이다.

상관 없다.


그 독이든 성배의 물 한모금조차 마시지 못해 탈수로 속절없이 죽어간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때 몰락하며 파산의 위기에 몰렸던 개성 송상을 다시 대한제국의 오십대 기업 중 하나로 끌어올려준 은인이었다.


“대인께 온 마음 다해 충성을 바칩니다.”


다시금 공손히 고개를 숙인 사내였다.


“곧 네놈의 충성심이 증명될 날이 올 거다.”


바람에 흩날리듯, 조용히 울린 그의 마지막 말.

숙였던 고개를 들자, 고급스러운 발코니에 남아있는 것은 그 혼자 뿐이었다.

잘 봉인된 두툼한 적색 봉투를 품 안에 깊숙이 집어넣은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사라졌던 그의 오만함이 얼굴 가득 피어나왔다.


* * *


잠시 뒤, 금화루의 주방과 연결된 후문.

주변을 살핀 후 조용히 빠져나온 남자는 한명이 겨우 지나갈 좁은 골목길을 따라 잰걸음을 이었다.


한참을 걸어 골목에서 빠져나온 곳은 청계천을 따라 닦인 널찍한 대로.

길가에 주차된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모든 조명을 끈 채 어둠에 조용히 동화되어 있었다.

후방석의 유리창이 슬며시 내려가자, 안쪽을 향해 짧은 귓속말을 건넨 남자가 즉시 몸을 틀어 차에서 멀어졌다.


묵빛 승용차의 상석에 앉은 푸른 눈의 사내가 복잡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문질렀다.

잠시 후, 미끄러지듯 출발한 차는 텅 빈 한밤의 세종대로를 가로질렀다.


“역시, 우리가 잘하는 건 따로 있으니.”


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곳곳에 불이 들어온 거대한 마천루들을 빠르게 지나친 차량이 황궁의 동북쪽, 삼청동으로 향했다.


삼청동 끝자락 언덕 위의 웅장한 석조건물.

그곳에는 주한 미국 대사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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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9. 승자독식 (1) 21.05.27 325 12 8쪽
» 18. 한성의 황금빛 밤 +2 21.05.26 328 11 9쪽
39 17. 압승, 그 이후 (2) 21.05.25 365 13 10쪽
38 17. 압승, 그 이후 (1) +1 21.05.24 339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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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3) +1 21.04.20 611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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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1) 21.04.18 674 13 10쪽
9 4. 쾌속비선 비익조 (2) 21.04.17 644 14 9쪽
8 4. 쾌속비선 비익조 (1) +1 21.04.16 730 13 9쪽
7 3. 강림과 회군 (2) 21.04.15 775 12 9쪽
6 3. 강림과 회군 (1) +2 21.04.14 898 13 9쪽
5 2. 제도(帝都) 한성 (3) +1 21.04.12 1,023 13 9쪽
4 2. 제도(帝都) 한성 (2) +5 21.04.05 1,159 19 8쪽
3 2. 제도(帝都) 한성 (1) 21.04.03 1,314 20 8쪽
2 1. 제국의 운명 +2 21.04.02 1,646 26 13쪽
1 0. 프롤로그 +2 21.03.30 1,981 2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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