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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대한제국 랭커강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3.29 22:54
최근연재일 :
2021.06.01 02:05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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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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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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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7. 압승, 그 이후 (2)

DUMMY

고색창연한 대리석으로 치장된 방.

백악관의 가장 깊숙한 심처(深處)인 오벌룸에 틀어박힌 안주인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시가를 입에 물었다.


벌써 3개피째 연달아 피워댄 것이다.

금박 로고가 감긴 최상급 몬테크리스토 시가.

잘 말린 시가의 끝부분에 끼워진 시가커터가 찰칵하는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이내 매끈한 단면으로 잘려나가는 몸뚱이.

앉아있는 한 명을 제외한 모두에게 저 커터는 그들의 목을 잘라낼 기요틴처럼 보였다.


“작전에 투입된 함대 전체가 한 척을 제외하고 포획... 해전에서 대패를 당한 것도 아닌데 모조리 사로잡혔다고? 심지어 케머런까지 한번에?

말해보게 레이몬드.

그 원숭이놈들이 우리 몰래 백인함대 전용으로 쓸 초대형 그물 같은 거라도 개발해낸 건가?”


거대한 원목 테이블 위에 차례대로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할 서류와 펜들은 바닥의 카펫트에 나뒹굴고 있었다.


"역사적인 대패."

“노란 원숭이들에게 당한 치욕적인 참패.”

"미련한 테디, 태평양함대를 그대로 들어 동양놈들에게 갖다 바치다."

"뻥 뚫린 태평양, 대한제국은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하는가."


이를 악물며 한 문장씩 내뱉는 남자.

미합중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의 눈에 살기가 가득히 어렸다.


“당장 이번달 말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 1면을 장식할 헤드라인이네.”

“주둥이가 있다면 뭐라도 말해봐! 어서!”


해군 정복에 군용 넥타이를 조여맨 해군부장관의 뒷목에 식은땀이 흘렀다.


“각.. 각하. 분함대 사령관의 보고서에서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무기 체계가 등장했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놈들이 판 함정이었습니다.”


“그 함정에 머릴 들이민게 바로 네놈이야.”


“이번 작전은 전적으로 제 불찰입니다.

책임을 지고 물러...”


쾅..!


"네놈의 그 하찮은 직책을 집어던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이마에 바람구멍이 나기 싫거든 닥치고 있게, 레이몬드."


대통령의 통수권을 상징하는 상아색 리볼버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책상위에 얹어졌다.

격노한 테디(Teddy)가 으르렁거리며 맞은편에 도열한 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합중국을 다스리는 최고위급 관료들.

그의 앞만 아니라면 이 대륙 전체에 걸쳐 압도적인 권력과 위세를 가진 엘리트들이었다.

북미대륙 전체와 남미대륙의 일부를 통치하는 거대한 국가는 지금 전례없는 위기에 처했다.


대답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시선이 그들을 훑자, 가장 왼쪽에 서 있던 남자가 한걸음 나섰다.

그를 흘깃 바라본 대통령의 표정이 바뀌었다.


“각하. 우리의 자유태평양함대는 베링해 일대의 어업활동을 지원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늘 정기적인 순찰을 돌고 있었습니다.”


백악관의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윌리엄 태프트 국가안보보좌관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곳은 거친 바다로 유명하지요.

갑자기 몰아친 폭풍과 급격한 기상이변이 더해졌던 어느날 밤, 항로를 이탈한 함대가 대한제국 영해를 우연히 침범한 것입니다.

그곳에 설치된 저놈들의 신형 폭뢰에 제대로 얻어 맞은 사이, 그 틈을 노린 간악한 제국놈들이 구름위에서 공격을 해온 겁니다.”


“빌어먹을, 서로의 책임이 있다.. 뭐 이건가.

소설쓰는 실력이 늘었군, 윌리엄.

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진 않아. 계속해보게.”


“그.. 그렇지만 포로로 잡힌 병사들이 자그마치 수만명입니다. 그들의 입을 모두 막을 수는 없습니다. 각하...”


살집가득한 얼굴에 외눈안경을 낀 국무장관, 조지프 험프리스가 더듬거리며 반론했다.

시어도어 행정부 내 군사외교정책의 복심(腹心)으로 평가받는 태프트의 눈이 얇게 떠졌다.


“제가 넘어가 포로협상을 진행하겠습니다.

저들도 미합중국 시민들의 거대한 분노를 마주하진 못할 테니, 분명 협상에 임할 테지요.

우리의 전함을 몇 척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방호순양함과 호위함이라도 돌려받아야 합니다.”


“보안 문제. 국무장관의 말도 틀리진 않았네.”


“예. 저 역시 동의합니다.

미드웨이에 건설이 끝난 군사기지를 즉시 대규모로 확장해야 합니다. 돌려받은 함정과 병력들을 그곳에 격리하고 정보를 통제하겠습니다.”


“미드웨이 환초 말이오? 세곳의 섬을 합쳐봐야 고작 6제곱킬로미터도 안되는 작은 땅에 수십척의 배와 병력을 수용하는 게 가능하겠소?”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레이몬드 장관이 그를 향해 걱정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본섬의 외곽에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확장하고, 본섬에 있던 기존의 방파제를 연장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껍니다.”

“그런데 레이몬드 장관.

애초에 이 무리한 계획이 왜 이곳에서 수립되는 중인지 생각하고 말하는 거요?”


태프트의 얇게 뜬 눈에 광망을 번쩍였다.

흰 콧수염 아래 숨겨진 작은 입이 부지런하게움직였다. 원 역사대로라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주도하며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용인한 밀약을 주도했을 그였다.


필리핀 초대총독이라는 화려한 경력이 사라진 지금의 세계에서, 그는 원래보다 더욱 테디의 곁을 가까이 지키는 최측근이 되었다.

이 간교한 정치인은 평화로운 시대보다 난세에 특히 더 강한 면모를 보였다.


“놈들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할 걸세, 윌리엄.”


“물론입니다 각하.

이번 교전은 우리의 완벽한 패배이니까요.”


가볍게 눈을 돌린 그가 레이몬드 장관을 슬쩍 돌아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해군부 장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알래스카. 그리고 쓸모없는 얼음으로 가득한 캐나다 방면의 북해빙해를 넘기시지요.

물론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음.. 형식은 대한제국이 우리로부터 구매해가는 형태로 하면 좋겠군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슈어드의 냉장고를 중고로 처분할 때입니다. 각하.”

“우리 대륙에 원숭이놈들이 그 더러운 발을 걸치는걸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지지만, 뭐 그정도 카드는 내밀어야 우리의 함대를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껍니다.”


“흐음...”


“이것이 제가 말씀드린 시나리오입니다. 각하.”


보안 도장이 찍힌 얇은 서류가 권총만 한 자루 덩그러니 놓인 텅 빈 책상 위에 올려졌다.


“이 시나리오조차도 공개되면 비난을 피할 순 없을 겁니다. 그때 의회에서 태평양함대의 재건 계획을 비준해주셔야 합니다.

나머지는 우리의 애국심 가득한 국민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저 동양제국을 향한 적개심을 잘 이용한다면 생각보다 잘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통령의 시선이 방 뒤편을 향했다.


오벌룸 뒤쪽의 벽에 기대어 있던 백발의 노인, 헨리 롯지 공화당 대표가 얼굴을 감싸쥐며 신음소리를 냈다.


“젠장... 테디. 이건 미친짓이오. 지금 당신과 행정부는 의회를 상대로 사기(fraud)를 치려는 거잖소.”


단호한 표정의 대통령이 콧수염을 뻣뻣이 세운 채 고개를 저었다.


“헨리, 이대로라면 공화당은 완전히 끝이오.

선전포고도, 의회비준도 없이 일으킨 싸움에서 함대 주력을 들어먹은걸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대체 어떻게 될꺼같소?

그럼 자네 정치생명도 여기서 끝장이야.”


“그.. 그렇다고 이걸..”


“나도 알고 있소.

우리 국민들은 패배라는 단어를 참 싫어하지.

근데 그것만큼 좋아하는 단어도 있소.

그게 뭔지 아나?

바로 ‘정당한 복수(vengeance)’요.”


말을 잇지 못한 롯지의원이 고개를 떨구었다.

어쩌면 이미 너무 멀리 온건지도 몰랐다.

제국주의의 첨병을 자청해온 공화당의 당대표 역시 이번 작전에 깊숙이 관여했고, 패전의 책임 또한 적지 않았다.


“어차피, 곧 이런 전투 따위는 우습지도 않게 될 거요. 삼년 내로, 세계는 거대한 전화(戰火)에 휩싸이게 될 테니.”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선 루즈벨트가 그 거대한 체구를 꼿꼿이 세우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제군들. 입은 무겁고 행동은 빨라야 할 걸세.

제국도, 왕국도 결국 구시대의 잔재에 불과하단 걸 똑똑히 보여줄 때이네.”


벽난로에 기댄 그가 일사불란하게 고개를 숙인 그들이 빠르게 오벌 룸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헨리 롯지는 방금 그가 말한 삼년 후가 대통령의 재선 임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해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전율했다.


미합중국은 아직 전시체제로의 완전한 전환을 단 한 차례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 * *


한성, 황궁.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황제의 어두운 처소에서 조용히 내려닫은 눈을 뜨자, 지구가 반사하는 태양빛이 강렬하게 동공을 수축시켰다.


압도적인 승전보는 이미 한성 전역에 퍼졌다.

저 멀리, 쿠릴열도를 따라 일본총독부의 북해도 군항으로 향하는 태평양함대의 포획함들이 보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놈들의 표정이 선하군.”


미국은 제국이 아니다.

이 패전을 정상적으로 알리는 순간이 그들의 정권이 뒤집어지는 순간일 것이 분명했다.

분명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양념된 진실과 그것에 맞춰진 협상 결과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 틈새를 비집고 최대한의 이득을 거두는 것이 중요했다.


‘전쟁을 원했다면 하와이까지 밀어버렸겠지.’


작전이 진행중이던 당시, 베링해 남단의 하늘 위에는 근위함대가 포함된 대한제국의 통합함대가 웅크리고 있었다.

비상상황을 대비한 지원목적이었으나, 나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남은 태평양 분함대와 하와이 모항을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까..”


그리고 대한의 적은 태평양 건너의 저놈만이 아니었기에.

저들의 오만을 공포로 바꾸는 것은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다가올 전쟁에 휩싸이기 전까지 그 아름다움을 뽐내기라도 하듯,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그토록 찬란하고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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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강림과 회군 (1) +2 21.04.14 898 13 9쪽
5 2. 제도(帝都) 한성 (3) +1 21.04.12 1,023 13 9쪽
4 2. 제도(帝都) 한성 (2) +5 21.04.05 1,159 1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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