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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대한제국 랭커강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3.29 22:54
최근연재일 :
2021.06.01 02:05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27,353
추천수 :
579
글자수 :
179,356

작성
21.04.15 00:50
조회
775
추천
12
글자
9쪽

3. 강림과 회군 (2)

DUMMY

지하대심도 비밀터널을 통해 제국기술연구소로 황태자 이척이 쳐들어가기 직전, 그러니까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뜬 이후 제정신을 차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시진도 채 되지 않았다.


"하루넘게 잠을 못잔다고 이런 디테일한 꿈을 .. 꾼다고?"


울부짖으며 달려온 흰옷을 입은 한무리의 사람들이 이척을 둘러싸고 일제히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꽤나 원시적으로 생긴 청진기와 진단도구들, 아마도 깨어난 그의 건강을 확인하려는 듯한 모습.


"저.. 저리치워!"


얼떨결에 터져나온 외침에 소스라치듯 놀라는 그들의 모습에 오히려 당사자가 더욱 놀라 움찔거렸다. 이내 방 한쪽 구석으로 물러선 그들이 남녀할것없이 일제히 부복하며 울부짖기 시작하자 이 말못할 괴이함은 점차 극대화되기 이르렀다.


"송구하옵니다. 황태자전하..!!"

"죽여주시옵소서..!!"


"······."


이척은 손을 내저어 그들을 방 밖으로 내보낸 채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게 끔찍한 악몽이 아닌건 분명했다. 적어도 그는 이 상황이 선명한 VR이나 몰래카메라같은, 현실적으로 이해라도 할 수 있는 것이길 바랬다.

그러나 간절한 바람은 진작에 틀렸음을 그 역시도 알고 있었다.

아우성을 치던 자들에게 둘러쌓인 잠깐 사이에, 좌우를 살피다 벽 한쪽에 있던 거대한 지도에 써진 글자를 읽었던 것이다.


이제는 조용해진 방 안에서 이척은 다시 벽을 천천히 뚫어져라 주시하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층고가 10미터 이상 되는 듯한 끔찍하게 거대한 방, 집채만한 유리가 끼워진 반대편 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천장에 은하수처럼 알알이 박힌 조명과 중앙에 내려온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인공적인 빛들을 찍어누르며 지도를 환하게 밝혔다.


그가 바로 직전, 수십시간 동안 내내 보아온 지도였다.

여러 플레이 선택지가 있는 게임에서 한영웅, 한국가, 한세력만 주구장창플레이하는 게이머는 원챔충라고 불린다.

물론 그 게이머가 그 선택지를 기막히게 잘 플레이한다면 장인이라고 불리고 또 존경받기도 했다. 『제국의 운명』에서 대한제국만 처음부터 끝까지 주구장창 플레이해온 '원챔충'이자 '장인'인 그에게 있어 이 지도는 어쩌면 수십, 수백시간 동안 보아온 지도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도 하단에 써진 유려한 필체의 글씨와 한자가 선명하게 보였던 탓이다.


『대한제국 국토강역도』

『大韓帝國 國土疆域圖』


천장부터 바닥까지 꽉찬 지도는 신성한 대한제국 본토와 직할령, 그리고 식민지의 총독부에 따른 체계적인 구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아래에 조그맣게 써진 글자 '광무32년'까지.


"허.."


이척이 할말을 잃고 찬찬히 지도를 훑었다.

제국은 바다 건너 식민지를 운용하지 않는 일관된 전략을 폈다. 3개 열강국 중 가장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뽑아내는 거대한 육군과 달리, 상대적으로 약세이며 육성에 많은 비용이 드는 해군은 원거리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해 제국에 더 큰 출혈을 강요했다.

그건 바다를 그들의 함선으로 뒤덮은 영국놈들이나 잘 하는 짓이었다.

따라서 국외로 무력을 투사 할 만큼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대한제국은 기존 국토 외곽선을 계획된 분쟁과 음모, 괴뢰정부수립과 군사력의 투사 등으로 조금씩 확장시켜왔다.


'아프리카와 남미에 식민지를 건설한 경험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지도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이척이 『제국의 운명』 플레이 초기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희소자원을 탐내 무리하게 편성한 원정 사단과 지구 반대편에 건설한 식민지는 유지와 효용가치적인 측면에서 늘 패배를 향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정말, 내가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말인가.."


그가 혼잣말을 조용히 내뱉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방안에 다른 이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넓은 방 한 귀퉁이에 끝에 차렷자세로 서있던 젊은 남자는 검은 근무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채였다. 이척은 그에게 가볍게 눈짓을 보냈다.

턱끝을 꼿꼿이 든 부동자세 임에도 내내 황태자를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즉시 절도 있게 걸어온 남자가 꺾어지듯 정중히 인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병환에서 완쾌하심에 지극히 감축드립니다. 황태자전하! 소인은 전하의 곁에서 오년간 업무와 지시를 모셔온 황실3급비서관 손영석이라 하옵니다."


'비서관? 비서관이라면 내 시중을 드는 사람인가.'

'아니 그걸 떠나서, 이놈...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자기소개를 했다.'


깨어난 직후부터 내가 행한 모든 걸 보고 있던 사람이다.

쓰러진 내내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머무르던 자이니 분명 내가 들어오기 이전의 몸 주인이 가장 아끼고 믿을 수 있는 존재일 터였다.


'아니, 실은 저놈이 그저 그런 존재이길 바랄 뿐이지.'


이척은 마음속으로 짧게 심호흡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방금전 아우성치며 달려온 자들은 분명 황실의 의료진일 터, 이 몸의 원래 주인의 건강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음에 틀림 없었다.


"내가 쓰러진 지 얼마나 지났나? 또 이 일은 누구까지 알고 있는가?"


"황태자전하께서 우환으로 잠시 긴 오수(낮잠)에 드신이 오늘로 딱 보름이 되었나이다. 분명 이번 원정군의 조직과 군령을 지휘하시는 동안 깊은 과로가 그 원인이라 모두가 짐작하였습니다."


'오수라니, 청산유수로구만.'


이척이 이 비서관의 유려한 언변에 감탄하는 동안, 잠시 침을 삼킨 손비서관이 마저 입을 열었다.


"황제폐하의 지엄하신 황명으로 황궁과 제국정부 십육성의 고위급 관료를 제외하고는 엄격히 정보를 통제하였사옵니다. 황상께서는 원정을 떠나시는 당일에도 전하께서 시급히 쾌차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 명하시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그리도 아낀다니 실로 황송할 따름이라 비웃으며, 이척은 문득 원정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원정이라 하면.. 근위함대를 이끌고 친정을 나가셨다는 말인가?"


"황.. 황태자 전하께서 진두지휘하신 이번 원정이.. 혹여 이를 준비하신 기억이 없으신지요?"


그대로 되물으며 눈을 크게 뜨는 비서관의 모습.

메멘토였나. 자신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뭐든 까먹는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증상부터 우선 파악하려고 드는 모습이 비서관의 머리 돌아가는 속도를 눈으로 보는 듯 하여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괘씸했다.

비서관이 내게 해준 정보를 조합하여 되돌려줄 한마디를 곱씹어 던졌다.


"내가 머저리라도 되었냐고 묻는 것이냐? 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황제폐하께서는 황궁에 굳건히 군림하셨느니라. 심기의 변화가 있으시어 친정을 거두시지는 않으신가 묻는 것이다."


따끔한 질책에 파랗게 질린 손영석 비서관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전세가 역전되었음을 자인한 까닭인지, 유려한 보고가 줄줄 흘러나왔다.


"송.. 송구하옵니다 전하! 폐하께서 오늘로 인도양 정벌에 출정하신지 열흘 하고도 사흘이 더 지났나이다. 어제 야간 마지막으로 원정함대가 위치 정보를 전쟁성 본청으로 보내온 이후 전투준비태세를 마치고 무선침묵을 개시하였사옵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수립하신 인도양전역의 기동작전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바, 버마 아라칸 산맥에 이미 제국 해군육전단 열두개 사단이 완편되어 전쟁성과 깨어나실 황태자 전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주력 육군이 대영제국 인도부왕령의 캘커타 공습을 개시할 것입니다."


모든 준비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음을 보고하는 비서관이었지만 그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도에 써있는 년도.. 그리고 가장 영광스러웠던 대한제국의 최대 강역..'


오늘 이곳에서 깨어났다는 변명으로 될일이 아니었다.

이 정도까지 대놓고 힌트가 있었는데도 알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은 전적으로 그의 실책이었다.

그가 마침 오늘 이곳에서 깨어난 이유.


전조 조선의 칠천량 해전을 가볍게 뛰어넘는 참사.

대한제국 역사상 길이남을 최악, 최대의 대패.


자신의 오판과 첩보의 부족으로 불러온 인도양에서의 쓰라린 악몽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듯 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상, 대한제국은 결코 패배할 일도, 패배해서도 안된다.'


'내가 그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최우선적으로 함대를 돌려야 했다.

위도 17도. 경도 87도 인도양 한복판에 도달하기 전에.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황태자 이척은 이불을 집어던지며 문밖을 향해 튀어나갔다.

잠옷차림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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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15. 작전명: 드래곤하트 (1) +2 21.05.11 398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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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3. 장백산의 광기 (2) +2 21.05.07 443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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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4. 쾌속비선 비익조 (2) 21.04.17 644 14 9쪽
8 4. 쾌속비선 비익조 (1) +1 21.04.16 731 13 9쪽
» 3. 강림과 회군 (2) 21.04.15 776 12 9쪽
6 3. 강림과 회군 (1) +2 21.04.14 898 13 9쪽
5 2. 제도(帝都) 한성 (3) +1 21.04.12 1,024 13 9쪽
4 2. 제도(帝都) 한성 (2) +5 21.04.05 1,159 19 8쪽
3 2. 제도(帝都) 한성 (1) 21.04.03 1,315 2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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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프롤로그 +2 21.03.30 1,982 2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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