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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대한제국 랭커강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3.29 22:54
최근연재일 :
2021.06.01 02:05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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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글자수 :
179,356

작성
21.05.2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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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9. 승자독식 (1)

DUMMY

대사관을 향해 접근하는 차량 뒷좌석.

그곳에 앉은 사람은 주한 미국 대사인 필립 프레드릭이었다.


‘이렇게 서서히, 차분히 해야 할 일을 어쩌면 그리도 무식하게 망쳤는가.’


운전석에 앉은 부관이 그의 탄식을 익숙하다는 듯 흘려냈다.


십수년째 진행되어온 거대한 프로젝트가 그 수확의 날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가 총괄하는, 미 행정부의 공식 명령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빈약한 대한제국의 경제력을 동맹국의 경제인들이 지원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사업이다.

그러나 그 정체는 치명적인 독을 서서히 주입하는 것과 같았다.


거대한 식민지의 생산력과 소비력을 바탕으로 하는 대한제국의 블록경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 위용이 강대해 보였다.

그러나 금융제국을 지배하는 노련한 경제인들의 눈으로는 갓 태어난 신생아와 다름이 없었다.


축적된 자본력과 최첨단 금융기술로 만든 폭탄은 실제 폭탄보다 더 크게 터지며 훨씬 더 많은 재산과 인명을 일시에 쓸어버릴 수 있었으니.


월스트리트가 주도했고, 철도재벌가인 벤더빌트 가문이 후원하며 수립된 계획.

이것은 극비리에 추진되어온 백년대계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계획이 당겨져야 했다.


‘벤더빌트 가주께 보고드리기가 무섭군.’


긴 탄식 끝에 생각을 정리한 프레드릭이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사관은 몇일 전부터 계속 그래왔듯, 물샐틈 없이 봉쇄된 상태였다.


“정지! 전방 차량은 정지하라!”


어깨에 금줄을 찬 군인들이 차를 막아섰다.


거대한 대사관 건물 외벽의 입구.

그 앞에 삼엄한 기세로 경계를 선 자들은 한성을 지키는 대한제국 병사들이었다.

차량 우측으로 다가온 장교 한 명이 손짓으로 유리창을 열 것을 지시했다.


“빌어먹을, 잠깐 외출한 걸 뻔히 알면서.”


뒷좌석의 프레드릭 대사가 창문을 내리며 짜증을 냈다.


“Present identification.”

(신분증을 제시하시오.)


뒷좌석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린 위병장교가 기계적인 발음으로 신분증을 요구했다.

프레드릭 대사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대한제국 인장이 찍힌 외교관 여권을 내밀었다.


“Philip Frederick.

Ambassador to the United States.”

(필립 프레드릭. 미국 대사요.)


‘빌어먹을, 내 얼굴을 뻔히 아는 놈이.’


그사이 운전석과 조수석, 후방의 트렁크를 샅샅이 수색한 병사들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위병사관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통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전포고는 없었지만 양국 모두 현상황을 전시상태에 준하는 단계로 여겼다.

아마도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 역시 지금쯤 비슷한 고초를 겪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정문을 넘어 대사관 관내로 진입하자 긴장하며 대기중이던 안쪽의 미 해군 육전대 소속 병사들이 경례를 올렸다.


공식적인 미국의 영토로 진입한 대사의 얼굴에 편안한 기색이 살짝 비쳤다.

그것도 잠시, 본국의 무능한 정치인과 군인들에 대한 분노가 금새 솟구쳤다.


‘관전무관까지 파견해가며 난리를 쳤던 놈들이 어쩌자고 이런 대책 없는 짓거리를...’


공포에 지배당한 워싱턴의 외교가가 기어이 일을 벌렸다.

한국의 부양함대와 본격적인 함대결전을 준비해야 하는 군부의 위기감을 부추긴 것이다.

태평양의 주인이 바뀌는 것을 용납 할 수 있는 미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그 역시 마찬가지.

그랬다면 적어도 계획이라도 착실히 세웠어야 하는게 아닌가.

최소한 월스트리트의 행사를 방해하진 말았어야 했다.


본관의 로비로 들어가자마자 한 남자가 그를 향해 잰 걸음으로 다가왔다.

흰 군복을 입은 무관의 손에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대사님. 워싱턴에서 급전이 왔습니다.”


“뭔가?”


“곧 이번 교전에 대한 전후처리를 놓고 고위급 특명전권대사를 파견할 거라고 합니다.”


“······.”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이미 얼마 전 한차례 황궁에 초치(招致) 당하고 온 그였다.

노련한 상황제가 그러했듯이, 그의 유지를 이은 젊은 황제 역시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하며 위협적인 살기를 뿜어내는데 큰 재주가 있었다.


“아메리카의 서부 해안 일대가 모조리 불타는 것이 정녕 귀국이 바라는 것인가?”


용상위에서 차갑게 그를 내려다보며 조소하는 황제의 눈빛에는 정제된 분노가 어른거렸다.

그것도 잠시,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은 황제는 그가 제일 듣고 싶지 않던 말을 꺼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귀국이 파견한 전권대사와 나누겠소.

외무대신은 나를 대신하여 초치한 대사에게 마땅히 항의토록 하라.”


한마디로, 급이 낮은 자와 굳이 더 말을 섞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부복한 그의 몸이 분노로 살짝 떨렸다.


평대사인 그의 직위는 줄곧 문제가 되었다.

영국은 이미 삼년 전에 최고위급 귀족인 노퍽 공작가의 수장을 한국에 보냈다.


인도부왕령의 총독보다 높은, 사실상 영국 귀족의 우두머리급 인사를 이 땅으로 보낸 것이다.

그것은 바다의 절반을 지배하는 지구 반대편의 섬나라가 이 머나먼 가상적국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었다.


국왕과 영국의회의 지지와 권한을 지닌 하워드 공작은 특명전권대사로 부임했다.


‘그러니 황제를 암살하려는 초유의 시도가 발각되었을 때에도 어떻게든 수면 아래로 가라앉힐 수 있었던 게지.


그 역시 본국에 수차례 이 부분을 건의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즉위식 때에도 영국은 총리인 에스퀴스 백작이 직접 행차하며 그 의전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에 비해 미국은 부통령과 몇 명 되지 않는 수행원을 달랑 보냈을 뿐이다.


그것은 분명 멸시였고, 또 오만이었다.

그간의 감정이 그대로 이어온 결과, 오늘의 이 참담한 결과가 있던 것이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발굴지’를 급습해 반저항기관을 몰래 빼낸다는 ‘드래곤하트 작전’은 애초 너무나 위험하고 또 어설픈 작전이었다.


본국의 정치인들에게 유럽과 동양에서 치솟은 전쟁의 불길은 너무도 멀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태평양과 대서양, 천혜의 방벽을 좌우에 둔 채, 손을 몰래 뻗어 달콤한 과실을 탐한 대가.


그 결과, 치욕적인 리틀빅혼(Little Bighorn)의 패배를 가볍게 뛰어넘는 역사적인 참패를 당한 것이다.


‘전멸에 가까운 피해... 아니, 이 정도면 차라리 전멸이 나은 수준이지.’


통상적으로, 부대가 전투로 20% 이상의 손실을 입으면 전투를 지속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해 전멸로 간주한다.


분함대로 나누어 출정했다고는 하나, 베링해로 진입한 태평양함대 본대의 100%를 잃었다.

심지어 그 잃은 함대는 그대로 주인이 바뀌어 대한의 깊숙한 영토 안, 북해도의 군항으로 옮겨졌다.

전멸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황.


결국, 지금 태평양에서 날아오는 특명전권대사는 인질로 잡힌 수병들과 포획된 함대의 일부라도 돌려받기 위해 반대 급부를 제시해야 한다.

짧은 그의 식견으로는 그 대가가 무엇인지 감도 채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온다던가?”


“그.. 그게.”


주재무관의 말이 떨리는 모습에 프레드릭은 그와 접점이 있는 사람임을 눈치챘다.

눈빛으로 빠른 대답을 종용하자 이내 낮은 목소리로 이름 하나가 튀어나왔다.


“태프트.. 국가안보보좌관 윌리엄 태프트가 온다고 합니다.”


“이런 젠장. 그 인종차별주의자를?”


워싱턴에서 그가 제일 혐오하는 남자.

비대한 체구의 염소수염 정치인이 지금 태평양을 건너 오는 중이었다.

그는 이번 협상에 동석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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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3. 장백산의 광기 (1) 21.05.06 519 10 10쪽
26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2) 21.05.04 474 12 9쪽
25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1) 21.05.03 523 15 8쪽
24 11. 선위와 즉위, 그리고 ... +4 21.05.03 554 1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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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0. 근정전의 소재앙 (1) +4 21.04.29 565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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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7. 판을 뒤엎는 자 (2) +1 21.04.24 618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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