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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대한제국 랭커강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3.29 22:54
최근연재일 :
2021.06.01 02:05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27,318
추천수 :
579
글자수 :
179,356

작성
21.05.0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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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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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0쪽

10. 근정전의 소재앙 (2)

DUMMY

채앵!


용상 우측, 거치대에 늘 올려져 있는 검.

대한제국 황제의 군권을 상징하는 칼이다.

이화문보검을 집어든 황제가 칼을 뽑았다.

오얏꽃 문양이 새겨진 조선환도의 칼날이 시퍼렇게 빛나며 근정전의 모두를 훑었다.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내 들어주지."


순식간에 좌중을 휘어잡더니 이내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이건 마치 순한 양떼사이에 뛰어든 이리,

아니 이정도면 장백산 대호(大虎)에 가깝다.


'공포에 의한 통치, 전형적인 철인군주인가.'


이척이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제아무리 폭군이며 전쟁광이라는 황제였건만, 결국 한 아이의 아비인 모양이다.

벽 안쪽, 내밀한 내실에서 이런 상황을 기다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격노가 충만한 지금의 황제에게서는 그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어전을 감쌌다.

어전회의의 진행을 담당하는 황무대신 역시 감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척이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향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황제폐하, 기체후일향만강 하셨사옵니까."


이척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뢰의 시선을 보이는 지존.

황제의 패도에 그저 움츠러들었던 대신들이 그제야 움직였다.

뒤늦게 몇 명이 엉거주춤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을 가볍게 무시하며, 고종황제가 칼을 거두고 용상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황제는 언성을 높였다.


"내 몇 일 행차하지 아니하였거늘, 대신들의 작태가 참으로 한심하구나.

지금 감히 과인 앞에서 같잖은 붕당놀음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재상과 황무대신은 무얼 하는가."


이어지는 질책.

가볍게 고개를 숙인 노공작, 김자운대신이 모두를 대신했다.

산업대신을 가볍게 노려본 그가 용상을 향해 아뢰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상황이 한순간에 역전되었다.

어전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것은 감히 반기를 들었던 대신들이 되었다.

중립을 지켰던 김자운 공작조차 돌아섰다.

황제의 심기가 거슬린 이상, 재무성 산하 세무범죄조사국과 공직자수사청이 총동원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니, 그 전에 근위대가 근무지와 저택으로 들이닥치는게 더 빠를지도 몰랐다.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가 수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흐음... 태자는 어전회의를 속행토록 하라."


"예. 폐하. 명을 받드나이다.

황무대신은 속히 다음 안건을 상정하시오"


황지창 후작이 서류를 넘기며 발언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회의가 진행되었다.

더 이상 통치의 권위에 의심을 품은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외무대신 한명후 백작에 대한 사후처결도 그러했다.


"전하. 외무대신은 제국의 관료로써 솔선수범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신과 세가의 가산에만 신경쓰며 모범이 되지 못했으니, 남은 명예 역시 거두어야 함이 옳사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제국 귀족원 명부에서 그 이름을 영원히 파내는 '기록말살형'에 처함이 마땅한 줄로 아옵나이다."

"또한 관직에 머무르는 문경한씨의 모든 공직자를 조사하시어 부패와 부덕함을 추궁하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꼴이 참으로 우스웠다.

조금 전까지 외무대신을 두둔했던 대신들이 앞다투어 그의 시체를 물어뜯기 바빴다.

저들은 스스로의 본성이 이토록 천박하게 어전을 울리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딱히 말릴 필요는 없었다.


"경들의 뜻대로 하시오."


분명 저자들은 유능한 관료들이다.

그랬기에 그 특출남이 보였고, 성과로 이어져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 터.

아무리 디테일이 중요한 게임이라고 해도 그가 제국 관료 전체의 배치를 감독할 수는 없었다.

직접 관리하며 배치하지 않는 유닛은 선택한 관료제의 시스템에 따라 자동으로 채워지고 또 승진한다.

그러니까 그의 책임이 아니라 용상에 앉은 자의 임명권이라는 뜻이다.


'물론 황제의 성격상 업무의 성과가 있다면 다른 과오를 크게 터치하지 않았겠지만..'


이척이 속으로 되뇌이며 안건을 넘겼다.

물흐르듯 이어진 회의와 안건들.

오래 지나지 않아 어전회의는 곧 끝났다.


* * *


이척은 황제와 단둘이 이동했다.

용상에서 슬며시 보내온 눈빛에 따라오라는 황명을 읽은 것이다.


위이이이잉...


근정전과 바로 연결된 고속승강기는 단숨에 황궁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황제가 머무르는 꼭대기 층의 처소는 뒤편으로 넓은 옥상정원을 가졌다.

한성의 찬란한 빛과 반대쪽.

북악산의 어둠을 굽어보는 정원 사이사이로 고풍스러운 가로등이 위치해 있었다.


"나는 운명이라는 놈을 믿지 않는다."


앞서 가던 황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폐하. 제국을 지금의 반석에 올려두신 것은 모두 폐하의 통치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폐하 자체가 이 제국의 운명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이곳은 보는 눈과 귀가 없는 곳이다.

태자는 말을 편히 하거라."


"예, 아바마마."


고개를 돌린 황제가 뒷짐을 풀며 정원을 가득 메운 이국의 화초들을 들여다 보았다.


"과인의 의지가 이 제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의지가 진정 나의 뜻이었는 지에 대해 네가 되묻는다면, 그것에 답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라."


"어인말씀이시옵니까."


"내가 중요한 결정을 내린 모든 순간에, 나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길을 골랐을 뿐이다.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것이 과연 과인의 의지였는가.

아니, 어쩌면 내 의지로 선택한 순간이 과연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처음에는 의지에 저항하려 했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


황제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를 뒤따르는 이척의 머리속이 요동쳤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 수 없다.

이곳에 온 이래 처음으로, 이척은 황제로부터 미지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생각을 알았는지, 황제가 보폭을 조금씩 줄였다.


"재위 초기에 가졌던 나의 저항심은 이 제국의 성장과 함께 덧없이 사라졌다.

그것은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고, 왜국과 청국을 복속시켰으며, 이 세계의 명운을 걸 만한 존재로 나를 키워내었으니 말이다."


"나를 이끈 의지가 언제나 완벽했던건 아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전투에서 패배했던 적 역시 적지 않았지.

네놈이 말했던 북경에서의 비사.

그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결단해야 함에도 할 수 없는 기분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지시를 내리던 세계의 의지가 멈추었던 순간을..

나와 유지량은 전쟁의 한복판,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한제국의 정병들은 북경에서 무의미하게 죽었다.

의지는 돌아왔고, 지나는 정벌했으나 그것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과인은 그때 확신했느니라.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이 제국에 서려있음을.

나는 그저 그 자식이 조종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음을."


"······."


이척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황제는, 그저 단순한 유닛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지배하며 짓누르던 그 초월적인 의지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인도양에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네놈이 편지를 보내왔지."

"그 의지라는 녀석이 내 머릿속에 속삭이는게 아니라 현실에 튀어나와 편지를 쓴다면 꼭 그럴 것 같은 내용이었다."


그가 대답할 틈조차 없이, 황제가 계속 말을 이었다.


"황궁으로 돌아와서도, 네놈은 내 면전에서 제국의 멸망을 소리쳤다.

과인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네놈이 과거와 미래를 떠들어 대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황제는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특수유닛이었다.

특수능력 『혜안(慧眼)』 레벨을 3 이상 올린 군주는 신하와 관료들의 능력과 마음을 손쉽게 꿰뚫어볼 수 있었다.

그 능력을 키워낸 것이 바로 이척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그 혜안으로 황태자를 들여다본 것이다.


"처소에 머무르는 동안 이 제국의 역사와 나, 그리고 너를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결론과 함께 또한 한 가지 질문을 얻었지."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너는 내 아들, 이척이 아니라는 것이다."


황태자의 표정에 이채가 서렸다.

황제는 그의 권위와 신기로 지금 막 하나의 벽을 무너뜨리는 중이다.

혜안을 가진 군주이기에, 단지 게임 속 유닛이기를 거부해온 것인가.

결론에는 대답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질문이었다.


이윽고 정원 중앙에 멈춘 황제.

거대한 태극의 중심 점에 위치한 분수대 앞.

지금 누군가 그에게 대한 제국 전체의 중심이 어디인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곳을 택할 것이다.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궁금하지 않아."


황제 이형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 아들, 황태자의 이척의 눈 너머에 있는 나를 보려는 듯이.

처음으로 그가 '나'를 보았다.


내게 천천히 입을 여는 황제.


"이척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네놈.

나와 대한제국을 지금껏 제멋대로 해온 네놈이 어째서 이곳에 강림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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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9. 승자독식 (2) +6 21.05.28 348 11 12쪽
41 19. 승자독식 (1) 21.05.27 325 12 8쪽
40 18. 한성의 황금빛 밤 +2 21.05.26 327 11 9쪽
39 17. 압승, 그 이후 (2) 21.05.25 365 13 10쪽
38 17. 압승, 그 이후 (1) +1 21.05.24 339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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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5. 작전명: 드래곤하트 (3) +4 21.05.14 394 12 9쪽
33 15. 작전명: 드래곤하트 (2) +3 21.05.12 377 13 10쪽
32 15. 작전명: 드래곤하트 (1) +2 21.05.11 398 9 7쪽
31 14. 베링해의 모비딕 (3) +1 21.05.10 408 9 9쪽
30 14. 베링해의 모비딕 (2) +2 21.05.09 422 14 11쪽
29 14. 베링해의 모비딕 (1) +2 21.05.08 438 11 9쪽
28 13. 장백산의 광기 (2) +2 21.05.07 442 9 10쪽
27 13. 장백산의 광기 (1) 21.05.06 519 10 10쪽
26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2) 21.05.04 474 12 9쪽
25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1) 21.05.03 523 15 8쪽
24 11. 선위와 즉위, 그리고 ... +4 21.05.03 553 10 7쪽
» 10. 근정전의 소재앙 (2) 21.05.01 541 12 10쪽
22 10. 근정전의 소재앙 (1) +4 21.04.29 565 11 9쪽
21 9. 전율하는 기둥 (2) +2 21.04.29 586 12 8쪽
20 9. 전율하는 기둥 (1) +1 21.04.27 646 13 9쪽
19 8. 대영제국 특명전권대사 21.04.26 621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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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6. 제국 설계자 (1) +2 21.04.20 636 11 7쪽
12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3) +1 21.04.20 611 14 9쪽
11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2) +3 21.04.19 636 13 10쪽
10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1) 21.04.18 674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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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 제도(帝都) 한성 (3) +1 21.04.12 1,023 13 9쪽
4 2. 제도(帝都) 한성 (2) +5 21.04.05 1,159 1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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