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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웹소설작가 은찬입니다.

대한제국 랭커강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은찬(恩燦)
작품등록일 :
2021.03.29 22:54
최근연재일 :
2021.06.01 02: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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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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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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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9. 승자독식 (3)

DUMMY

“저 친구는 표정 관리를 저리 못하는데 용케도 고위직에 올랐군.”


계단에 내려오기도 전에 하얗게 질린 태프트의 얼굴을 본 내가 짧은 총평을 남겼다.


공식적인 방문이 아닌 이상, 정전까지 넘어가 시간을 끌 필요는 전혀 없었다.


뒤따르는 자들 역시 둘 뿐이었다.

대한제국 재상이자 재무대신인 김자운 공작.

그리고 전쟁대신으로 이번 작전을 직접 끝맺은 유지량 대원수.

그리고..


‘갑자기 밀고 들어온 이 노인네까지..’


영국의 특명전권대사 하워드 공작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국 측 대통령 전용함이 도달할 시간에 맞춰 급히 입궁하여 내게 알현을 청한 그였다.

아직 영국의 MI6가 창설되기에는 수십 년 이상 남은 지금, 한성에 돌아다니는 비밀첩보사무부 소속의 스파이들이 내 예상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는 뜻이었다.


‘언제 한번 익문청을 시켜 싹 갈아엎어야···.’


내 속마음을 안다는 듯, 손사래를 친 그가 황망히 변명했다.


“폐하.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던 것은 워싱턴 쪽에서 얻은 정보 덕분입니다.

혹여 불필요한 오해를 하실까 저어되어···.”


웃기지도 않는 궤변이었다.

전권대사가 출발한다는 정보가 워싱턴에서부터 한성까지 오려면 가장 빠른 배편으로 몇 주의 시간이 족히 더 필요하다.

이미 1866년에 뚫린 대서양 전신으로 미국과 영국은 연결되었지만, 광활한 태평양에 전신이 깔릴 예정은 없었다.


저 노인의 직책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내쫓았을 것이 분명했다.

특명전권대사는 해당 국가의 원수를 대행하는 막중한 권한을 지녔다.

열방(列邦)의 평화를 사랑하는 조지5세의 명령에 따라, 미국의 기습공격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분노에 찬 하워드 대사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대영제국의 이권을 수호하는 첨병에 선 자가 열방의 평화니, 기습의 책임을 운운하다니.


그럼에도 저자를 이곳에 세운 이유는 재빠른 상황판단으로 자국이 서야 할 위치를 결정한 것,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


“이제야 오는군.”


고급스런 탑승교를 뒤뚱거리며 내려온 남자.

내 위치까지 깔린 붉은 카펫을 걸어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머리 위로 미국 국기와 이름, 그의 직책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대한제국 황제폐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미합중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각하의 명령을 받고 온 특명전권···.”


“알고 있으니 되었소. 옆쪽, 착륙장 대기실을 협상장으로 준비해 두었소.”


외교적 결례를 넘어 모욕.

태프트의 얼굴이 이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지금처럼 카드가 압도적인 경우, 어설픈 기세 싸움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대화란 평등한 자들이 나누어야 하는 것.

앞으로 이어질 협상은 대화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


“흐음..”


착륙장 한쪽에 위치한 대기실은 만들어진 이래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본격적인 전후협상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양국.

애초에 이만한 완승을 한 이상, 필연적으로 국토선과 영해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나의 의지가 깃든 거대한 지도가 한쪽 벽에 걸려있었다.

포커페이스를 되찾은 태프트가 먼저 말했다.


“귀국은 폭풍으로 항로를 이탈한 우리 해군을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했고, 또 나포했습니다.

우리 미합중국은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우발적으로 발생한 이번 교전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귀국이 불법적으로 나포한 태평양함대의 모든 군함과 병력을 지금 즉시 반환하십시오.”


“반환한다면?”


“미합중국은 이번 교전에서 발생한 인적, 물적 손실에 대한 귀국의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또한 양국관계 개선의 상징으로 알래스카와 북극해 일대의 영해권을 할양하겠습니다.”


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미국다운, 미국만이 내뱉을 수 있는 오만 가득한 문장들.

루즈벨트의 심복이 직접 온 이상, 그가 내뱉은 저 말도 안되는 개소리는 저들이 짜 맞춘 그 날의 공식적인 진실임이 틀림없었다.


“정말... 개소리가 우습지도 않군.”


“폐하! 저는 미국을 대표하여 온 특명전권대사입니다.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시지요.”


계속되는 무례에 참지 못한 태프트가 발끈했다.


“뭐, 예의를 갖춰 말하리다.

우선, 대사의 말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소.

북극해 일대의 영해권은 현재 삼국이 공동관리하고 있는 느슨한 형태로, 그걸 귀국이 내게 통째로 넘긴다면 저 옆에 앉은 분께서 용납하지 않을 거요.”


“물론입니다. 폐하. 대영제국의 심기가 참으로 불쾌하군요.”


당황한 태프트의 옆쪽에 앉은 하워드 대사가 차가운 말투로 운을 떼었다.

성급히 카드를 내보이던 차에 미처 영국의 존재를 고려하지 못한 그의 실책이었다.

이것은 나를 찾아온 하워드 대사를 굳이 이곳에 동석시킨 이유이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귀국은 우리 대한의 신성한 영토에 병사들을 침투시켜 존귀한 보물을 빼돌렸소.

조준하지도 않고 쏘아댄 함포사격에 ‘발굴지’ 인근의 삼림이 좀 불탄 것도 있고···.

나포 작전 중에 열일곱 명이 전사하고 쉰다섯 명이 상처를 입었소. 그것 역시 깊은 피해요.”


“폐하. 확인된 증거는 베링해 공해 수역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태평양함대가 귀국의 불의(不義)한 기습을 받아 포획되었다는 사실 뿐입니다.

그런 천인무도할 모함을 하시려거든 확인할 수 있는 증좌(證左)를 제시하십시오.”


막무가내로 버티며 억지를 쓰는 모습.

그것 말곤 쓸 수 있는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잘 알면서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져오라.”


옆에 앉은 유지량 대원수가 서류철을 펼쳤다.

월계수 잎과 화살을 쥔 독수리 문장.

그 아래로 상세히 적힌 작전명령과 날인까지.


“이런 빌어먹을.”


혼잣말로 중얼거린 태프트의 한마디가 상황을 정리했다.


“기함의 함장실에서 획득한 명령서요.

이 문서의 진위는 당신이 더 잘 알겠군.

위쪽 결재란에 당신의 서명도 있으니 말이오.”


“폐하.. 이, 이건···.”


“이것 말고도 더 많이 있소.

그 어설픈 공중강습부대의 착륙지점에 배치된 요원, 해군정보국 소속이라고 자백까지 했지.

함포사격 당시의 장면을 관측한 영상도 있소.”

“하나하나 다 보실 텐가?”


잠깐의 침묵.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기라도 하는 표정.

태프트의 말끝이 살짝 떨렸다.


“폐하께서는 무엇을 원하십니까?”


마침내, 내가 처음부터 원했던 협상장의 분위기가 성립되었다.


“베링해, 알류샨열도, 알래스카,

그리고 하와이.

거기에 더해 구 캐나다령의 북위 60도 이상.

그곳에 있는 모든 영토를 할양하시오.”


“...!!!”


경악하는 영미 양국 대사.

내색하진 않았지만 김자운공작과 유지량대원수 역시 눈을 크게 떴다.


“폐...폐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 우리 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거라고 보십니까?”


“제가 협상의 당사국은 아닙니다만, 미국과 우리 영국은 폐하의 대한제국과는 다릅니다.

이 결과는 국민이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하워드 대사 역시 옆에서 거들었다.

나는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부터 국민, 국민 하는데 말이오.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데 정녕 국민의 허락을 받고 한 것인지 나는 확신이 서질 않는구려.

과인은 선전포고도 없는 비겁한 기습 공격을 당하고도 가만히 넘어갈 위인이 못 되오.”

“귀국의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들의 집이 불타는 것은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지 보겠소.

넘겨주지 못하겠다면, 힘으로 가져야겠지.”


입술을 깨문 태프트 대사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폐하께서 미합중국에 선전포고를 하신 것으로 제가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대한의 북방함대와 남방함대가 하와이 본섬의 외곽에서 접근 중이오.”

“본 협상이 결렬되는 즉시, 포로로 잡은 태평양함대 전 장병은 지나식민지의 내륙 깊숙이 옮겨져 강제 노역에 동원될 거요.”

"어디, 계속 하시겠소?"


“······.”


* * *


내 마지막 일격으로 협상은 마무리되었다.


얼마 후, 양국의 최종합의문에 서명한 태프트 대사가 충격에 휩싸인 채 타고 온 전용함에 다시 올랐다.

하룻밤, 여독을 풀기를 권했으나 극구 사양한 그의 얼굴에선 어떠한 여유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쟁을 가볍게 걸 수 있는 군주는 많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


베링해와 태평양을 나누는 알류샨열도, 그리고 알래스카를 손에 넣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미국 태평양 주권의 심장부인 하와이와, 본토와 직접 맞댄 캐나다 북부를 삼키는 것은 대한제국 자체에도 큰 부담이 가는 일이었다.

한러전쟁 이후 제국이 대량으로 획득한 혹한의 무주지는 아직도 안정화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한편, 나포한 태평양함대는 주력 전함 9척을 제외한 모든 함대와 수병을 반환하는 것으로 협의가 이뤄졌다.

물론 거기에는 대가가 따랐다.


하와이조약의 일시적인 효력 정지.

사실상 이번 협상에서 내가 노린 진정한 보상이 바로 이것이었다.


향후 10년간, 대한제국이 생산한 반저항기관 의 20%를 미국에 판매해야 할 의무는 현 시간부로 중단된다.

하와이조약은 기관의 출력이 크게 개량되거나, 다음 세대 수준의 새로운 변형이 이루어질 경우 해당 기관으로 공급해야 하는 독소조항이 붙어 있었다.

지금까지 행해진 것은 소규모의 출력개량 뿐.

워낙에 사기적인 능력을 지닌 터라 어느 국가가 이것을 차지하던 결국 강대국들의 압박에 밀려 비슷한 공급조약이 맺어지는 운명이었던 놈이다.


그럼에도 10년간의 공급중단 조건을 태프트가 어렵사리 받아들인 것은, 그 위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저항기관의 본격적인 2세대가 등장하지 않은 지금, 차세대 개량이 완료된 기관의 위력을 아는 존재는 이 세계에서 내가 유일했다.


합의문에는 대한제국의 황제인 나와 미국 측의 태프트, 그리고 양국의 합의에 대한 보증인으로 참석한 영국의 하워드가 각각 서명을 마쳤다.


그야말로 세계의 흐름을 바꿀 만한 조약이었다.


미국 대통령의 독수리 인장이 박힌 전용함이 떠올라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하워드 대사는 고개를 저으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폐하께서는 어디까지 보고 계신겁니까?”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곧 미국 정계는 저 합의문으로 인해 폭풍의 핵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불안한 평화는 오래 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대륙의 거인이 잠시 침묵에 빠진 동안, 나 역시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었다.


인터페이스창의 컨트롤 모드는 내가 이 기능을 이곳에서 처음 발견한 이래, 줄곧 ‘군사용’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이제 모드를 바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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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15. 작전명: 드래곤하트 (1) +2 21.05.11 398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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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3. 장백산의 광기 (1) 21.05.06 519 10 10쪽
26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2) 21.05.04 474 12 9쪽
25 12. 절대군주의 혜안(慧眼) (1) 21.05.03 523 15 8쪽
24 11. 선위와 즉위, 그리고 ... +4 21.05.03 553 10 7쪽
23 10. 근정전의 소재앙 (2) 21.05.01 541 12 10쪽
22 10. 근정전의 소재앙 (1) +4 21.04.29 565 11 9쪽
21 9. 전율하는 기둥 (2) +2 21.04.29 586 12 8쪽
20 9. 전율하는 기둥 (1) +1 21.04.27 646 13 9쪽
19 8. 대영제국 특명전권대사 21.04.26 621 13 9쪽
18 7. 판을 뒤엎는 자 (3) +2 21.04.25 594 13 8쪽
17 7. 판을 뒤엎는 자 (2) +1 21.04.24 618 12 7쪽
16 7. 판을 뒤엎는 자 (1) +3 21.04.23 630 12 8쪽
15 6. 제국 설계자 (3) +1 21.04.22 638 13 8쪽
14 6. 제국 설계자 (2) 21.04.21 612 13 7쪽
13 6. 제국 설계자 (1) +2 21.04.20 636 11 7쪽
12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3) +1 21.04.20 611 14 9쪽
11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2) +3 21.04.19 636 13 10쪽
10 5. 군령(軍令) : 적색갑호 (1) 21.04.18 674 13 10쪽
9 4. 쾌속비선 비익조 (2) 21.04.17 644 14 9쪽
8 4. 쾌속비선 비익조 (1) +1 21.04.16 730 13 9쪽
7 3. 강림과 회군 (2) 21.04.15 775 12 9쪽
6 3. 강림과 회군 (1) +2 21.04.14 898 13 9쪽
5 2. 제도(帝都) 한성 (3) +1 21.04.12 1,023 13 9쪽
4 2. 제도(帝都) 한성 (2) +5 21.04.05 1,159 19 8쪽
3 2. 제도(帝都) 한성 (1) 21.04.03 1,314 20 8쪽
2 1. 제국의 운명 +2 21.04.02 1,646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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