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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하이의 서재입니다.

1티어 천재작곡가의 특별한 덕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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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하이
작품등록일 :
2024.08.06 12:23
최근연재일 :
2024.09.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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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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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회사를 차리라는 소린가?

DUMMY

38화

아직 끝나지 않은 비로와의 작업을 제치고 달려갈 만한 건수는 내게 있어 그리 많지 않다.

그중에 하나는 체육대회였지.

그런데 심지어 그 체육대회 축구 결승마저도 제칠 수 있을 만한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유지현의 뮤직비디오 촬영이었다.

그것도 내 곡으로 찍는 뮤비 촬영이면 말해 뭐 하랴.


‘이건 하늘이 무너져도 가야지.’


게다가.


-정우 님, 오고 계세요?

“네, 지현 님. 지금 거의 다 도착했어요.”

-조심히 오세요. 아직 찍기 시작하려면 멀었어요.


아직 뮤비 촬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통화까지 오지 않나.


흐흐, 웃는 내 얼굴을 택시 기사님이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지만.

내 얼굴에서 싱글벙글한 미소가 지워지는 일은 없었다.

미리 봤던 뮤직비디오의 콘티가 영 이해가 되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아마 이 콘티를 짠 뮤직비디오의 감독과, 이를 함께 고민했을 A&R팀은 머리에 쥐가 났을 것이다.

글로 된 가사만 보면 언뜻 의미가 이해가 되긴 해도, 그걸 영상으로 풀어내는 건 완전히 다른 난이도일 테니까.


‘인셉션이나 매트릭스 같은 명작들도 그렇지.’


러닝타임이 2시간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100%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천지이지 않나.

나도 그 영화들은 여전히 잘 이해가 안 되긴 한다.

그런데 뭐 크게 상관없다.


‘그냥 재밌으면 된 거지.’


그런데 이 뮤비는 꼴랑 3분 30초다.

미래와 현재를 오가는 이런 내용을 그 짧은 시간 안에 제대로 풀어낼 수 있으면 그가 크리스토퍼 놀란이리라.


‘그런데 뭐, 이것도 딱히 상관없지. 요새 아이돌 뮤비들이 거진 다 이런 추세잖아?’


떡밥과 연출들로 의미부여하다가 끝나버리는.

그래서 볼 때 정신 똑바로 차리면서 머리를 굴리고, 다소 어거지의 해석 영상을 보고, 별걸 다 해야 그나마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뮤비는 사실상 그냥 음악 들으면서 아티스트 얼굴 보려고 보는 거라서, 미감 보는 게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이쁘게 잘 뽑히면 장땡이란 말이다.


물론 이 콘티를 짠 감독의 입장에선 다를 수 있으나.


‘작곡가인 내 생각이 그렇다는데 뭘.’


이를 두고 직업정신이 부족하다느니, 열렬한 팬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느니 따져도 소용없다.

나는 유지현에 대한 팬심을 음악 공부로 승화한 사나이.

나 같은 케이스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나.

이렇듯,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생각하는 게 아주 약간 다른 것뿐이다.


“아, 작곡가님 오셨-”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A&R의 양 팀장이 날 발견하여 인사를 건네려는데.


“아이고! 우리 작곡가님! 어서오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강 팀장이 더 큰 목소리로 날 반기며 양 팀장의 말을 끊었다.

양 팀장이 강 팀장을 노려보는데.

그런 사내 정치나 신경전은 내 알 바 아니고.


“지현 님은 어디 계세요?”


내겐 유지현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쪽으로 오세-”

“하하! 대기실에서 아직 준비하고 있어요. 여기예요.”


이번엔 반대로 강 팀장의 말을 끊은 양 팀장을 따라 이동하니.


그곳에 여신이 있었다.


“와아······!”

“정우 님, 오셨어요?”


내가 잠시 오해할 뻔했다.

뮤비 감독은 뭘 좀 아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래, 이거지!’


결국엔 뮤비는 아티스트가 이쁘고 멋지게 나오면 장땡이다.

감독도 필시 이를 알았으리라.


이 경우엔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들이나 A&R팀의 활약도 크겠지만.

누가 얼마나 의견을 냈는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오늘······ 레전드네요.”

“네?”


유지현이 놀라며 눈이 살짝 커졌다가, 이내 반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지는 미소를 그렸다.


“다행이네요. 이쁘다는 뜻이죠?”

“네, 엄청요.”

“하하. 고마워요. 열심히 관리한 보람이 있네요.”


어째서인진 몰라도 그녀는 보라색의 벨벳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아무튼 진짜 미친듯이 예뻤다. 넋이 나갈 정도로.


“그런데 이거 비하인드로 찍고 있는 거 보이시죠? 하하. 나중에 영상으로 나오면 민망하실지도 몰라요?”


녹음할 때 비하인드를 찍었던 것처럼, 지금도 뮤비 비하인드를 찍고 있었는데.


“상관없어요. 얼굴은 이미 팔리기도 했고.”


내가 뭐 못할 말 했나?

다들 부럽다며 돌을 던질 수는 있어도, 내 말을 부정하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얼마 뒤 시작된 본격적인 뮤비 촬영.

털복숭이 감독은 아주 신이 났는지, 펄쩍펄쩍 뛰며 잔뜩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그렇게! 표정 좀 더 아련하게!”


심지어 보라색 원피스에 이어, 승마복, 그리고 교복과 더불어 두꺼운 후드티에 파란색 잠옷까지.

스타일도 몇 번이나 계속해서 바뀐다.


감독 또한 유지현의 팬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조금 이상하다.


‘왜지? 왜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이를 보는 내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분명 유지현의 바뀌는 스타일들을 나도 계속 보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기분이 상당히 좋기도 한데.

너무 즐거워서 미칠 것 같은 와중에, 또 짜증이 화악! 밀려오는, 그런 모순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이상하다.

같은 팬을 발견하면 오히려 좋아야 하는 게 정상인데.

왜 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왜 이렇게 저 감독이 날 힐끔거리는 게 신경 쓰이는 거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상대가 이곳이 자신의 덕질 공간이며, 자신의 덕질 작품을 찍고 있는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게 내 눈에 훤히 보여서 그런 것 같다.


분명 내 곡에 대한 뮤비를 찍고 있는데도 그렇다.


나 정도쯤 되면, 상대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척 보면 안다.

내공이 기감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지금 표정 아주 좋아요! ‘다름 아닌 제 생각에는’ 좀 더 눈웃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누가 저 따위의 어색한 말투를 쓰냔 말이다.

나 들으라고 저러는 게 틀림없었다.


‘자기 생각대로 휘두르고 있다 이거지······?’


저놈도 나랑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이곳이 내 덕질 공간이고, 내 덕질 작품을 찍고 있다 여기고 있다는 게, 저 털복숭이 감독의 눈에도 훤히 보이고 있나 보다.


“씹······.”


그는 중간중간 나를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고.

그럴수록 내 속에서는 화르르- 불길이 타올랐다.


양 팀장과 강 팀장 사이에 파지직- 스파크가 튀는 것처럼.

털복숭이 감독과 나도 그랬다.


‘패착이야.’


좀 더 컨셉이 명확한 곡을 썼더라면.


‘내 상상대로, 내 영감을 바탕으로 유지현이 뮤비를 찍었을 텐데.’


이 뮤비는 사실상 저 감독의 영감을 바탕으로 유지현이 촬영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뮤비는 음악의 들러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선 그렇지 않았다.


‘음악은······ 뮤비의 배경음에 지나지 않았어.’


적어도 이 현장에서는 그랬다.

여기가 뮤비 촬영장이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만.


‘애매모호한 컨셉을 잡으니까 주도권을 뺏기지!’


컨셉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매우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컨셉이 뚜렷한 곡이 필요해.”


뮤비에 내 영감과 의견이 십분 적용될 수 있게끔.


뭐, 이런 것까지 다 관여하는 작곡가를 두고 업계에서는 ‘프로듀서’라고 부르긴 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욕심으로 시작했으리라.

모든 걸 다 내 뜻대로 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말이다.



***



“정우 님 표정이 조금······ 안 좋아 보이시는데. 괜찮아요?”


3일에 걸친 뮤비 촬영이 모두 끝나고, 간단한 뒤풀이 자리.

우리 소속사 식구들만이 있는 이 삼겹살집에서 유지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 왔다.


“3일 다 안 오셔도 됐는데, 조금 쉬시지. 많이 피곤하시죠?”


그녀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 방긋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어떻게 하루라도 빠질 수가 있겠어요. 하나도 안 피곤해요. 오히려 의욕이 넘치네요.”


진심이다.

3일간 나는 지독한 패배감을 맛봤는데, 이 패배감을 외면하는 대신 가슴에 차곡차곡 쌓으며 곱씹었다.


군자보구(君子報仇) 십년불만(十年不晩).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이 설욕은 절대 잊지 않으마!’


다음에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망할 털복숭이 감독놈.


“의욕이요?”

“아, 뭐, 앞으로도 열심히 곡 만들어야겠다, 뭐 그런 마음이라는 거죠. 하하!”


유지현의 바로 옆자리에서 삼겹살을 구울 수 있는 영광스러운 날이다.

그러니 칼을 갈고 있는 마음과 달리, 이러쿵저러쿵 안 좋은 얘기나 떠들어댈 수는 없다.


얼굴도 활짝 펴야지, 활짝!

목소리도 좀 더 밝게 올리고!


“정우 님은 비로 선배님 작업 끝나면 뭐 하실 거예요?”


쌈을 싸며 아무렇지도 않게 건넨 이 질문에 사위가 고요해졌다.

A&R이고, 매니저들이고, 고기를 뒤집다 말고 돌처럼 굳어서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내 다음 행보에 다들 이렇게나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아! 민감한 건데 제가 너무 스스럼없이 물었죠?”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유지현은 싸고 있던 쌈도 내려놓으며 손사래를 쳤는데.


‘뭐, 못 할 질문했다고.’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뻔한 거 아니겠나.


“당연히 지현 님 곡 써야죠.”

“네······? 저 아직 미니앨범 발매도 안 했는데요? 다음 컴백이 언제일지도 모르는데······.”


훗. 아직까지도 나를 모르시나?

나는 죽음을 앞두고도, 그녀가 부를 거라 상상하며 음악을 공부했던 찐팬 아닌가.

그따위 털복숭이 감독, 그래봤자 1년 차 병아리 팬 따위가 범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난 유지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

꿀이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그런 것들이 제가 지현 님 곡을 안 쓸 이유가 되나요? 지현 님이 미니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든 아니든, 휴식기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그냥 제가 쓰고 싶어서 쓰는 거예요. 전 누가 뭐라 해도 지현 님의 1호 팬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진심을 담아 말하니.


“크흠, 한잔할까? 소주 가득 따라줘. 더, 더. 찰랑거리게.”

“어우! 된장찌개가 맛있네.”

“왠지 속이 니글거리는데, 마늘 없냐? 아니, 구운 거 말고 생마늘이 필요한데.”


다들 언제 나만 보고 있었냐는 듯 시선을 돌리며 분주해진다.


“······오······.”


유지현 역시도 눈동자가 떨리며 기계적인 탄성을 터뜨린다.


‘······씹.’


너무 오바했나 보다.

이게 다 그놈의 뉴비팬 때문이었다.

원래 축구도 세 경기 내내 원정팀에 가면 정신이 메롱해져서 이상한 플레이를 펼치곤 하지 않나.


지금의 내 상태가 그러했다.

아직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



유지현의 곡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편에서 계속 떠나지 않고 있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작업은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수고했다, 정우야. 진짜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는데.”


비로는 복잡하게 심경이 뒤엉킨 얼굴로 말했다.

드디어 12곡의 재편곡과 재녹음이 끝났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괴로웠겠지.

완성된 지금, 기쁨과 보람, 감격을 느끼기도 하겠고.


“형이 다 만들어 놓은 거에 숟가락만 얹은 거죠.”

“아니야, 내가 혼자 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 아예 엎어버렸을 수도 있어. 내 입장에서 보면 네가 다 한 게 맞아.”


다 엎을 생각을 이때부터 하고 있었구나?

그럼 내가 다 한 게 맞긴 하지.

원래 안 나올 뻔한 걸 나오게 한 거니까.


비로는 한동안 여운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홀가분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고마워. 네 덕분에 많이 배웠다. 지금이든 나중이든, 원하는 거 있으면 편하게 말해도 돼. 무리한 거라도 어떻게든 들어줄 테니까.”


그는 내게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다.


“제가 더 많이 배웠죠.”

“겸손은.”


그는 픽, 실소를 흘리며 말했지만, 나는 겸손을 떨자고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다.


비로의 요구는 점점 까다로워졌었다.

고민하던 게 다양하기도 했고, 즉시 피드백이 세세하게 들어오기도 했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모두 내게 영양분이 됐다.


‘진짜 배운 게 너무 많아.’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그의 가치관과 노하우, 영감과 경험을 쪽! 빨아먹은 듯하다.


“정우야, 이제 뒤풀이해야지. 어디 갈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대게 사줄까?”


난 몸을 일으키며 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왜? 아, 피곤하겠구나?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 그럼 푹 쉬고 다음 주에 볼까? 이참에 우리 크루원들도 소개시켜 줄게.”


난 이 말에도 고개를 저었다.


“곡 작업하고 싶어서요.”

“······어? 바로?”

“네.”


배운 건 많아서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긴 했는데.

나 혼자만 작업하다가 이렇게 같이 의견을 맞춰가니 조금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다.


머릿속 창작욕이라는 놈이 점점 크기를 키워가다 못해, 찌뿌둥하다며 자유롭게 풀어주라고, 몸부림치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하! 너도 참······ 난놈이긴 하다.”


비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날 새삼스레 보더니.


“근데 넌 대체 왜 인하우스 작곡가로 들어온 거야?”


이상한 질문이다.

이렇게 당연한 걸 왜 묻는지 모르겠다.

의문이 들긴 하나, 답을 못할 건 또 없지.


“그야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으니까요. 인하우스 작곡가가 기회의 땅이잖아요. 해외 초일류 프로듀서들이랑 경쟁해야 하는데,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죠.”

“내가 그걸 모를까.”


내 말이 그 말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 왜 이런 걸 묻는지.


이런 생각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자, 비로는 황당하다는 듯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네 실력에 그런 걸 걱정할 필요가 있냐는 거야.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며칠 내내 작업했으면서 뒤풀이도 안 하고 곡 쓰러 가겠다는 애가 그런 걸 왜 걱정해? 재능도 넘치고, 영감도 넘치고, 열정도 넘치는데.”

“어······.”


이것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긴 하다.


“저도 제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서······?”

“하하!”


작곡에 대해 자신이 있었던 것 이상으로 일이 술술 풀려가고 있다.


인하우스를 선택한 내 생각의 저변에는, 해외 프로듀서들에 비해 내 실력이 꿀릴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뭐 어때요.”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다른 회사랑 작업하는 것도 자유롭잖아요. 그리고 김성진 피디님이나 다른 피디님들처럼 실력 좋은 분들도 인하우스인데요? 그분들도 재능이랑 열정, 영감 넘치는 건 똑같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유지현 님 찐팬이거든요.”

“네가 엄청난 팬이면 뭐······. 그런데 이젠 사정이 좀 달라졌지? 이미 친해졌잖아. 뮤비 촬영도 3일 내내 다녀오기도 했고.”

“그렇긴······ 하죠?”

“그리고 솔직히, 네가 정말로 유지현 님하고만 작업하길 원했으면 내 음악을 들어보겠다고 나섰을까? 너, 다른 음악도 해보고 싶은 거지?”


노바는 둘째 치고, 박재현도 과제로 시작했으니까 차치하고.

비로와 작업한 건 순전히 내 의지로 행한 일이긴 하다.

노바처럼 주정원이 다가와서 인연이 생긴 것도 아니고, 동정심이 고개를 들어서도 아니었지.


안타까움과 팬심?

조금 있긴 했으나, 당시의 노바와 비로의 입장은 너무 다르지 않나.

이를 핑계 삼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건 어쩐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 같았다.


비로의 말대로 솔직히 나 또한 다른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 참이다.


유지현의 곡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계속 이렇게 범위를 넓히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긴 하다.

비단, 전용 프로듀싱 룸이라는 미끼가 없더라도 말이다.


‘내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기도 하고.’


비로는 자세를 고쳐 잡고는 잘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제는 네가 회사 차려도 유지현한테 곡 주는 데엔 문제없을 거야. 해외의 다른 초일류 프로듀서들처럼.”


갑자기 회사라니?

날 더러 회사를 차리라는 소린가?


뭔가 부채질하는 것 같은, 나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뭐라 하지도 못하겠다.

그리고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라서 조금 솔깃한 것도 있고.


그래, 내가 OMG 소속이 아니라고 하이즈랑 블랙원에게 곡을 못 줄까?

그렇지 않을 거다.


그럼 유지현은?

그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어쩌면 최강최악의 경쟁상대라고 생각하던, 해외의 초일류 프로듀서들과 같은 입장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나를 경계해야지, 내가 다른 사람들을 경계할 입장은 아닐 것 같긴 하다.


“그냥 이런 선택지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나도 여기에 들어오고 나서야 후회되더라고. 진작에 이렇게 큰 회사를 왔으면 어땠을까, 하고.”


아무래도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그것 때문인 듯하다.

본인이 힙합 레이블에 있다가 여러 논란에 스트레스를 받았어서.


“네 한계를 정해둘 이유는 없을 것 같아. 네가 하는 음악처럼, 생각도 좀 더 자유롭게 하면 좋지 않을까? 어리고 능력도 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다고. 나를 봐. 내가 아이돌 기획사에 들어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걸? 그런데 내가 망했어? 아니잖아.”


망하기 일보직전이었지.

물론 그게 OMG에 들어온 탓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이제 진짜 나를 친한 동생으로 생각하나?

이런 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걸 보면 말이지.


앨범을 완성했다고 뽕이 아주 제대로 산 탓도 있는 것 같긴 한데.

박재현이나 구창식한테 그러는 것처럼 어깨를 누를 수가 없다.


‘비로의 어깨를 어떻게 누르냐고.’


명성도 명성인데, 이 사람의 실력과 재능이 지금도 엄청나다는 걸 바로 옆에서 피부로 느끼지 않았나.


“참견은 여기까지만 할게. 네가 나한테 이제 남이 아니라서 이렇게 말한 거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 말아줘.”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럼 다행이네. 아무튼 잘 생각해 보고, 뭐 상담하고 싶은 거 있거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아! 그리고······.”


그는 씩, 미소를 지으며 덧붙여 말했다.


“피처링 필요한 일 있으면 말만 해. 몇 개라도 해줄 테니까.”

“와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줌과 동시에.

그는 내 손에 묠니르까지 쥐여주었다.


명절 때, 어른들이 용돈 50만 원씩 챙겨주면서 훈계하면 고개를 조아리고 경청해야 하는 법.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조언도 잘 생각해 볼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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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 곡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21 24.08.24 18,410 336 16쪽
20 원하는 게 있으면 투쟁하여 쟁취하라 +11 24.08.23 18,608 331 15쪽
19 투자에 대한 확신을. +18 24.08.22 18,772 351 15쪽
18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싫다 이거지 +21 24.08.21 18,942 334 13쪽
17 설마 진짜 그 엘라겠어? +9 24.08.20 19,274 370 13쪽
16 재회 +12 24.08.19 19,352 375 12쪽
15 실리보단 신의 +22 24.08.18 19,580 365 15쪽
14 유지현은 대체 왜 저런대? +11 24.08.17 19,722 361 12쪽
13 강동 6주까지 되찾은 서희처럼 +11 24.08.16 19,897 373 13쪽
12 누굴 고르는 게 더 이득일지는 명백하잖아 +14 24.08.15 19,876 392 13쪽
11 이거, 저희가 하고 싶은데 +18 24.08.14 20,316 369 16쪽
10 곡은 제대로 뽑히긴 했네 +9 24.08.13 20,586 381 12쪽
9 혹시 아스날 좋아하세요? +14 24.08.12 20,976 367 14쪽
8 혹시 직접 연주해도 될까요? +13 24.08.11 21,176 376 12쪽
7 그냥 잘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8 24.08.10 21,480 375 14쪽
6 그 바람막이 +18 24.08.09 22,056 373 15쪽
5 재혼으로 가자 +14 24.08.08 22,650 399 14쪽
4 화선예술고등학교 +17 24.08.07 23,109 424 12쪽
3 혹시... 제 팬이에요? +15 24.08.06 24,267 434 15쪽
2 하니까 되던데? +22 24.08.06 26,789 436 15쪽
1 스물여섯 임정우, 개 같이 부활 +30 24.08.06 31,711 5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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