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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하이의 서재입니다.

1티어 천재작곡가의 특별한 덕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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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하이
작품등록일 :
2024.08.06 12:23
최근연재일 :
2024.09.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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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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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0,067

작성
24.09.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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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글자
18쪽

진짜 문제와 더더욱 큰 문제

DUMMY

유지현의 ‘영원한 메아리’ 녹음은 어제 바로 끝이 났다.


‘그런데 컴백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고 했지?’


싱글이 아닌 미니앨범이기도 하고, 단독 타이틀이 아닌 더블 타이틀이라서 그렇다.


뮤비도 두 개, 무대 퍼포먼스도 두 개.

이렇게 준비해야 하니 직원들도 바쁠 테고 그녀도 바쁘겠지.


‘그때까지 차트 유지는 힘들려나?’


아무리 차트 지박령이 됐다고 해도, 그때까지 유지하는 건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밑에는 그래도 조금씩 바뀌는데, 최상위권은 진짜 미친 콘크리트네;;

-노바 행복사ㅋㅋㅋ 차트 개편 수혜 제대로 입었음.

-유지현도 그럼ㅋㅋ


당장의 인터넷 댓글들은 이러하긴 했는데, 슬슬 힘이 빠질 때가 됐지.


‘이때부터였지?’


실시간 차트가 거의 콘크리트처럼 변하던 시기가.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집계 방식이 개편됐기 때문인데, 덕분에 최상위권은 아직도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박재현은 그 최상위권에서 내려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곡의 특성상 오래 갈 수 있는 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하이즈는 여전히 3위고, 유지현은 여전히 2위였으며, 노바는 계속 1위다.


그녀들을 포함해, 지금 차트의 최대 수혜자는 내가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명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만 있는데.

그 결과는 이렇게 나타났다.


“임정우 작곡가님을 향한 의뢰가 엄청 많아요.”


OMG엔터의 소회의실.

A&R팀의 양 팀장님이 직접 나와, 방금 인쇄한 듯 따끈한 A4용지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오시는 길에 또 추가돼서 새로 뽑았습니다. 여기 적힌 곳들이 전부 다 임정우 작곡가님을 콕 집어서 말씀하신 곳들이에요.”

“와아. 이렇게나요?”

“하하. 좀 많죠? 다 작곡가님의 능력이 출중하셔서 그래요. 벌써 연속으로 1위를 두 번이나 하셨잖아요. 아직 1위를 못 한 곡이 없고.”


뭐, 기껏해야 두 곡밖에 내지 않은 덕도 있겠지.

앞으로 표본이 늘어나면 분명 1위를 하지 못하는 곡들도 많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약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여기는 걸까.

어려서 창의력이 팔딱팔딱 뛴다고 여기는 걸까.


이 리스트에 적힌 이들은 그 숫자도 숫자인데, 면면들도 굉장히 화려하다.

대형 기획사와 중소 기획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며, 인기 아이돌과 비인기 아이돌, 신인과 베테랑도 마구 섞여 있다.


빳빳한 종이를 들고 리스트를 찬찬히 쭈욱 훑고 있는데.

역시나.


‘하이즈랑 블랙원도 있구만?’


역시나였다. 리스트를 보러 오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이 두 그룹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거든.

부모님 족발집에서 박재현은 진작에 언질을 했었고.

소하윤은 뭐, 처음 마주쳤던 그때도 눈빛이 장난이 아니긴 했지. 박재현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뒤에도, 내게 어필하고 싶은 듯 음방에서 무대를 보고 가라며 말하기도 했다.


“작곡가님.”


양 팀장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 리스트들에서 고르셔도 좋은데요. 저희 회사에서도 작곡가님이랑 작업하고 싶으신 분들이 상당히 많으시거든요.”


아, 이런 방식이었구나? 인하우스인데도 타사의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는 걸 권장한다는 게.

일단 리스트는 주되, 이렇게 이쪽 먼저 신경 써달라며 은근슬쩍 어필하는 것이다.


‘그래, 뭐.’


자사의 아티스트들이 원하지 않고 있다면 모를까.

원하고 있다니까 그래도 같은 회사 먼저 챙기는 편이 좋겠지?


정 다른 회사 아티스트랑 작업하고 싶으면, 우리 회사도 하나 챙겨주면서 하면 되는 거고.


“저희 팀이나, 매니지먼트 팀장님들 전부, 그리고 본부장님까지도 작곡가님께 거는 기대가 커요.”

“어휴. 부담스럽네요.”

“에이! 부담이라뇨. 지금까지 보여주신 게 있는데. 아니, 지금 스트리밍 사이트 켜봐요. 실시간 차트 1위 작곡가가 누군지. 그거 작곡가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A부터 Z까지, 기반 다지기부터 콘크리트 붓고, 벽돌 쌓고, 꼭대기 설치까지 혼자 다 하신 거잖아요! 그걸 이 회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요. 요즘 그렇게 하는 작곡가 진짜 없어요! 작곡가님이 굉장히 특별하시고 특출나신 거라니까요?”


이 사람, 혓바닥 드리블이 아주 현란하다.

팀장 자리를 말빨로 땄나?

그런데 또 완전히 입에 발린 말은 아니고, 전부 다 사실이기도 하다.


‘흠흠. 나처럼 하는 작곡가가 아주 드물긴 하지.’


요즘은 작곡이나 편곡이 ‘각각’ 팀 단위로 들어가기도 하니까.

나처럼 작곡이며, 편곡이며 다 혼자 하는 사람은 진짜 없다.

심지어 작사에까지 크레딧이 올라가 있지 않은가.


“당장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충분히 고민하시라고 이 리스트를 드리는 거니까요.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누구랑 작업하고 싶은지, 나는 마음속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까지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만 작업했었고, 이 리스트 안에도 인연이 있는 곳이 두 팀이나 있긴 한데.


‘막상 그렇게 끌리지가 않네.’


애초에 한 명밖에 없었다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 텐데,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생각이 깊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이 깊어진 탓일까?

내 머릿속에선 여기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사람이랑은 아무래도 힘들겠지?’


그 사람은 천재인 데다가 베테랑이기도 하니까.

그 단단한 에고에 끼어들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하다.

설령 같이 작업한다 해도 일방적으로 수업만 받다가 쫓겨날 가능성도 농후하지.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욕구가 들긴 한다.

아무래도, 난 미래까지 이어질 그의 실망스러운 행보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품고 있으니까.


“작곡가님, 편하게 생각하셔도 돼요.”


소회의실을 나서고 함께 탄 엘리베이터.

양 팀장님은 내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작곡가님은 마음에 끌리는 대로 하셔도 되는 위치입니다. 여러 시도를 해도 되는 때이기도 하고요. 어리셔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직 신인이니까요. 스타일이 굳혀지기 전에 다양한 시도를 하면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제 식구를 챙기라고 어필은 하되, 강요하지는 않겠다는 건데.


‘이 사람은 내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모르겠지.’


알면 난처한 표정만 지었으리라.

난 고민하던 얼굴을 풀고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양 팀장은 직접 로비까지 나를 배웅해 주며 꾸벅 머리를 숙였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저 사람, 처음 봤을 때랑 인상이 다르다.

한 식구가 됐다고 이러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내가 성적이 좋아서?


“양 팀장이 최근에 입지가 조금 그래.”

“아! 깜짝아!”


바로 옆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쳐다봤다.

얇게 휘어진 눈매로 웃고 있는 아저씨.

또 이 사람이다.

유환석 피디.


“흐흐. 놀랐어? 아무튼, 양 팀장이 유지현 후속곡 일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타격을 입었어. 그래서 작곡가들한테 아주 잘해주고 있단 말이야. 믿고 붙들고 있을 만한 게 작곡가들 지지밖에 없거든.”


아, 양 팀장의 친절한 태도 뒤에는 그러한 연유가 있었구나.


“음.”


이 사람을 멀리하려고 했는데, 의문이 들 때 툭, 튀어나와서는 말끔하게 해소해 준다.

이런 면에선 은근 나쁘지 않을지도?


“뭐,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너같이 유망한 작곡가한테는 엄청 잘해줬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아, 네.”

“1위도 축하하고. 곡 잘 듣고 있어. 기세가 참 좋아?”

“하하. 네, 감사합니다.”


이제 정보도 들었으니 슬슬 멀어져 볼까.

살살 눈치를 살피며 막 발걸음을 뗐는데.


“아! 그리고 비로 못 봤어?”


내 발바닥이 로비 바닥에 착, 붙었다.


“예? 비로 님이요?”

“어, 오늘도 회사에 왔다고 하던데? 광고 미팅인가, 프로그램 미팅인가, 인터뷴가 아무튼. 하아. 그때 그냥 어물쩡 넘어가 버려서 한 번 잡고 얘기 좀 하면 좋겠는데······.”


비로가 회사에 있다는 말을 들으니.

댐이 무너진 것처럼, 억누르고 있던 욕심이 폭발적으로 터지며 전신을 가득 채운다.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그래,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계산을 했다고?

내가 언제부터 몸을 사렸다고?


난 죽을 날짜를 받은 후, 공부해 봤자 의미가 없음을 알고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던 사나이.

기어이 죽음으로부터 거슬러 올라와, 유지현에게 곡을 주는 데 성공한 사나이.


쫓아내면 쫓겨나는 거고, 거절하면 거절당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된다 해도 나는 기어이 어떻게든 뚫어내려 할 테지만.


“피디님, 지금 비로 님 어디 계실 것 같아요?”

“형.”

“네?”

“형이라 부르라고 했잖아.”

“······네, 형.”


유환석 피디는 씩, 웃어 보이더니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의욕이 아주 활활 타오르는 눈이네. 좋아, 한 번 부딪쳐봐. 같이 찾아보자고.”


이 사람, 독심술도 익혔나?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한다.



***



우리는 인하우스 작곡가다.

그래서 비로를 찾는 건 금방이었다.

그런데 아무나 붙잡고 물어물어 비로를 찾아왔을 때와 달리, 그에게 말을 붙이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오늘도 여전히 온몸으로 예민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는 까닭이다.


‘심지어 그때 일도 있었지.’


뒷담화를 깠던 일.

물론 비로 또한 내가 뒷담화를 주도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그럼에도 이미지가 좋게 박혀 있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거······ 입장만 바뀌었지, 그때랑 비슷하네?’


주정원 때 그랬지 않은가.

뒷담화를 한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옆에 있던 친구였지만, 그녀는 지레 겁을 먹고 내게 쉽사리 다가오질 못했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그걸 생각하면······ 비로도 그럴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쉽게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렵게 생각하면 뭐 어쩔 건가.

쉽든 어렵든, 난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는데.


“크흠!”


그런데 나보다 결심이 더 빨랐는지.

유환석이 먼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끌었다.


담당 팀인 3팀의 김 팀장과 막 회의를 마쳤는지, 얘기를 나누며 복도를 걷던 비로.

그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의 시선이 유환석을 잠깐 보고는 내게로 못 박힌다.

저번엔 나를 잠깐 훑고 유환석에게 박혔는데 말이지.


“하하! 비로 님, 또 뵙네요? 저 유환석 작곡가라고, 팬입니다. 그땐 실례가 많았어요. 옛날부터 워낙 요 입이 문제라. 근데 그냥 막 내뱉는 거지, 진심은 아니거든요. 진짜 팬이에요. 음악, 옛날부터 너무 잘 듣고 있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비로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선선히 넘어가 주었다.

딱히 말투에 날이 서 있지도 않고 표정도 태연한 게, 뒤끝이 없는 모양이다.

음악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만 까따롭고 예민하게 굴 뿐, 평소의 성격이 그렇게 까칠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런데 내가 꺼내야 할 얘기는 음악 얘기다.


‘아마 반응이 다르겠지.’


나는 혀로 아랫입술을 가볍게 쓸고는 입술을 뗐다.

마침, 그의 시선이 또다시 내게 향한 순간이었다.


“저도 팬이에요. 작곡가 임정우입니다.”

“네.”


본론을 꺼내기 전에, 우선 확인해야 할 게 하나 있다.


“팬으로서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팬들이 원하는 음악을 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

“······!”

“······!”


모두의 눈이 커다래졌다.

다들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리며 비로의 눈치를 살피는 사이, 비로는 실소를 흘리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제가 지금 만들고 있는 음악 들어본 적 있으세요?”


물론 들어봤지, 나는.

아니, 그건 3년 뒤의 음악이니까, 지금 만들고 있는 거랑은 좀 다르려나?

하지만 지금 또한 3년 동안 내지 않은 시점이니, 이런 말을 할 만한 근거가 될 수는 있을 거다.


“아뇨. 그런데 왠지 꼭 들어보지 않아도 대충 알 것 같아서요.”


눈을 감은 비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가락으로 제 미간을 쓸었다.


“갑자기 저한테 와서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쪽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는 압니다. 팬들이 기대하는 대로,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말하고 싶은 거죠? 하도 안 나오니까 괜히 새로운 거 시도하면서 헛짓거리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말하면서 점점 그의 반응이 격해졌다.

뭐, 그렇다 해도 차분한 것에서 살짝 울컥한 정도에 그치긴 했지만.


내 생각을 그가 먼저 상세히 말하는 걸 보니, 아마 평소에도 많이 시달린 모양이다.

A&R도 나랑 비슷하거나 똑같은 소릴 했겠지. 팬들도 그렇고.


비로는 어느새 날카로워진 눈빛을 하곤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런데 전 지금까지 제 색깔에 맞는 음악을 하면서도 항상 똑같은 앨범을 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팬들도 저한테 더 기대를 보내는 거예요.”


‘뭐······ 얼추 맞긴 한가?’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니까 돌이켜보면서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거지, 발매한 직후엔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만들긴 했다.

그러니 더욱더 그를 찬양하고, 가수들 또한 그의 팬이 된 것일 테고.


그런데, 사실 우리가 백분토론을 하거나 철학을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음악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보니.

이걸 계속 꼬투리 잡고 이러쿵저러쿵 입씨름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진짜 문제는, 그가 이러한 태도로 인해 지금까지 3년간 신곡을 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3년 뒤에야 겨우 달랑 한 곡밖에 내지 못한다는 거지.

그 뒤로 내가 죽을 때까지도 신곡은 내지 않았다.


그리고 더더욱 큰 문제는 뭐냐면.


‘그렇게 어렵게 하나 낸 곡이 날 포함해서 팬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는 거야.’


비로는 내게 말했다.


“매번 새롭게 낸다는 게 어렵긴 하지만, 어렵다는 게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거든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이거 하나는 분명했다.

그와 함께 작업하게 된다 하더라도, 적지 않게 힘이 들 거라는 것을.


‘좀 빡세긴 하겠네.’


하지만 지금 비로가 말했듯.

어렵다는 게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나는 내 가슴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면 그뿐.


어째서인지, 비로는 술술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내게서 동의를 구하려는 듯했다.

격려나 응원, 공감이 필요한 시점인 건가?


하지만 난 “아, 그렇죠.”, “음. 그런 거였군요?”하면서 맞장구칠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

그럴 거였으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지.


“비로 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 만들고 있는 음악들 저도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 팀장과 유환석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비로의 미간은 찌푸렸다.


“왜요? 제 앨범 맡아보시려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시선들을 받아넘겼다.

내친 발걸음이라 해야 할까, 막상 대화를 시작하니 그 이후는 그리 망설여지지도 않는다.


“네, 한번 해보게요.”

“하. 지금 만들고 있는 음악을 들어보지도 않으셨으면서 쉽게 말씀하시네요. 최근에 성적이 좋으니까 다 만만하고 쉬워 보이나 봐요?”


어? 비로도 날 알고 있구나?

이건 좋긴 한데, 오해를 받고 있다.


난 고개를 저으며 또박또박 답했다.


“쉽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방금 그러셨잖아요. 어렵다는 게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고,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라고.”


나는 눈매가 슬슬 부드럽게 풀리는 그를 향해 연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혹시 알아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일자로 다물려 있던 비로의 입꼬리는 픽, 하는 웃음과 함께 슬쩍 올라갔다.


“미완성된 곡 12개 들려드릴게요. 정규앨범 낼 생각이라서요.”


어? 뭐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날 알고 있더니, 내 음악을 그렇게 좋게 들은 건가?


김 팀장과 유환석이 믿지 못할 광경을 봤다는 듯 턱이 빠질 듯이 벌어지고 있는데, 얼떨떨한 건 나도 비슷했다.

우리 중에 멀쩡한 건 오직 비로뿐이었다.


“12개 중에 하나라도 완성시키면······ 뭐를 해드려야 좋으려나.”


내가 음악을 들어볼 수 있냐고 물어봐서 그런지, 그는 내게 새로운 곡을 맡기는 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재편곡만 떠올리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뭘 해야 할지는 일단 음악을 들어봐야 알 것 같다.

지금 상태가 어떤지는 나도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해주긴 뭘 해줘.’


레이블 출신이라 그런가, 자연스레 선물을 떠올리고 있다.


“그냥 사인 하나만 해주세요. 저희 부모님 족발집 하시거든요.”


그거면 충분하다.

어차피 보수야 뭐, 내 몸값에 맞춰서 회사에서 알아서 책정해서 줄 테니까.

비로의 음악에 참여한다면, 거기서 떨어지는 저작권 수입 또한 엄청날 테고.


그런데 이것까지 성공하게 되면······.


‘나도 이제 정식으로 프로듀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건가?’


A&R이 녹음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프로듀서 말이다.


‘그 R&B계의 거물인 비로의 음악도 맡아서 하는데, 아이돌을 못하겠냐고.’


내 눈은 비로에게 떼어져, 옆에 있는 유환석에게로 향했다.

회사 내에 전용 프로듀싱 룸이 있는, 인하우스 작곡가 최상위 7명 중 한 명.


‘김칫국을 시원하게 드링킹하고 있는 거긴 한데······.’


그래도 왠지 한 발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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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1

  • 작성자
    Lv.99 musado01..
    작성일
    24.09.06 19:28
    No. 1

    잘 보고 갑니다.

    건 필 하세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6 다크스나
    작성일
    24.09.06 21:04
    No. 2

    저렇게 피해의식에 쩔어 있으니까 망하지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4.09.06 22:33
    No. 3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고르르
    작성일
    24.09.07 01:52
    No. 4

    스토리가 주는 자꾸 옆으로 빠지고 부가 계속 대두되는데..

    재미와 흥미가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찬성: 8 | 반대: 0

  • 작성자
    Lv.61 크크모
    작성일
    24.09.07 06:07
    No. 5

    왜 비로한테 집착하는거임???? 주인공 곡 원하는 가수들이 널렸는데??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96 흑곰이랑게
    작성일
    24.09.07 10:24
    No. 6

    궁금한게 초반부에 유지현에 목숨걸 정도로 좋아해놓구선
    그냥 여기저기 다 찔러보고 곡 만드는거같내요 이럴거면 전속은 모하러하는건지 궁금, 자기 하고싶은데로 할거면 스튜디오 차려서 누구나 곡을 줄수 잇게 하는게 좋지않나요?
    이 글보면 자기의 뮤즈는 유지현이라고 말하는데 생각보다 유지현의 비중은 1/10밖에 안되는거 같음
    그냥 말만 유지현 유지현 그러는데 하는 행동보면 비중이 상당히 적음
    말이랑 행동이 다르니... 전속 왜하는건지 아직도 의문임
    스튜디오 만들려면 돈나가니까 그 돈이 없어서 소속사끼고 전속하는건가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99 hango
    작성일
    24.09.08 10:34
    No. 7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4.09.08 12:40
    No. 8

    잘 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78 덕혜력
    작성일
    24.09.11 08:06
    No. 9

    까따롭고..까다롭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狂天流花
    작성일
    24.09.15 14:42
    No. 10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별그리고나
    작성일
    24.09.15 14:54
    No. 11

    최애도 그렇고
    이번 남가수도 그렇고
    현실의 누구들 생각나서
    가수로 별로 안땡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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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진짜 모르겠네···. +23 24.09.12 13,411 374 15쪽
40 ······너였구나? +19 24.09.11 13,919 353 14쪽
39 금시계, 금목걸이, Cash(검은) +22 24.09.10 14,254 358 15쪽
38 회사를 차리라는 소린가? +12 24.09.09 14,731 371 18쪽
37 너 목······ 갈라졌어. +32 24.09.08 15,031 376 18쪽
36 [ 나의 천재 PD ] +22 24.09.07 15,008 436 13쪽
» 진짜 문제와 더더욱 큰 문제 +11 24.09.06 15,684 346 18쪽
34 아름다운 구너들의 밤 +10 24.09.05 15,803 373 14쪽
33 혹시 방송에 얼굴 나와도 되나요? +15 24.09.04 15,872 365 14쪽
32 <비밀의 발코니> +15 24.09.03 16,263 333 14쪽
31 R&B계의 거물 +16 24.09.02 16,720 348 16쪽
30 제발 저희 버리지만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14 24.09.01 16,949 348 15쪽
29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15 24.08.31 17,010 375 13쪽
28 그 곡이면 달랐을 수도 있었는데 +16 24.08.30 16,922 377 15쪽
27 나만이 알고 있는 우리들의 멜로디 +15 24.08.29 17,163 384 14쪽
26 <Dancing In The Breeze> +11 24.08.28 17,437 377 15쪽
25 내 고백을 차버린 남자가 너무 잘나감 +10 24.08.27 18,155 362 19쪽
24 이걸 작곡한 애가 진짜 천재거든요 +9 24.08.26 17,739 371 13쪽
23 <Top Of Top> +13 24.08.25 18,015 348 15쪽
22 확실히 어려서 그런가, 낭만이 있어 +14 24.08.24 17,956 346 15쪽
21 이 곡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21 24.08.24 18,415 336 16쪽
20 원하는 게 있으면 투쟁하여 쟁취하라 +11 24.08.23 18,611 331 15쪽
19 투자에 대한 확신을. +18 24.08.22 18,773 351 15쪽
18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싫다 이거지 +21 24.08.21 18,943 334 13쪽
17 설마 진짜 그 엘라겠어? +9 24.08.20 19,277 370 13쪽
16 재회 +12 24.08.19 19,357 375 12쪽
15 실리보단 신의 +22 24.08.18 19,587 365 15쪽
14 유지현은 대체 왜 저런대? +11 24.08.17 19,730 361 12쪽
13 강동 6주까지 되찾은 서희처럼 +11 24.08.16 19,902 373 13쪽
12 누굴 고르는 게 더 이득일지는 명백하잖아 +14 24.08.15 19,882 392 13쪽
11 이거, 저희가 하고 싶은데 +18 24.08.14 20,322 369 16쪽
10 곡은 제대로 뽑히긴 했네 +9 24.08.13 20,593 381 12쪽
9 혹시 아스날 좋아하세요? +14 24.08.12 20,981 367 14쪽
8 혹시 직접 연주해도 될까요? +13 24.08.11 21,178 376 12쪽
7 그냥 잘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8 24.08.10 21,482 375 14쪽
6 그 바람막이 +18 24.08.09 22,062 373 15쪽
5 재혼으로 가자 +14 24.08.08 22,658 399 14쪽
4 화선예술고등학교 +17 24.08.07 23,113 424 12쪽
3 혹시... 제 팬이에요? +15 24.08.06 24,274 434 15쪽
2 하니까 되던데? +22 24.08.06 26,795 436 15쪽
1 스물여섯 임정우, 개 같이 부활 +30 24.08.06 31,719 5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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