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속보
왜지?
왜 지금껏 내 죽음에 대한 이유를 고민하지 않았지?
당연히 이 몸에서 깨어나자마자 알아봤어야 할 일이다.
뜻하지 않게 생긴 복잡다단한 사정 때문이라고 퉁 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 많다.
혹시 두려웠나?
아니면 새 삶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있어서?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과거와의 단절을 원했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생각에 휘청거릴 때 연분홍이 입을 열었다.
“왜 안 가? 아직 볼일이 남았어?”
문득 궁금해졌다.
연분홍은 왜 내가 당한 사망사고 기사를 따로 가지고 있었을까?
“아뇨. 그냥 저 기사가 눈에 밟혀서요.”
“기사?”
상자로 고개 돌린 연분홍의 눈살이 구겨졌다.
손을 뻗어 재빨리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야! 괜히 얼쩡거리지 말고 가.”
확실히 뭐가 있긴 있다.
빙긋 웃어 보이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민해야 할 문제, 내 죽음에 관한 기사를 마주했다.
특별할 게 없다.
사회부 단신의 스트레이트 기사다.
육하원칙에 맞춰 기자의 의견 없이 건조하게 사실만 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
[농로에 들어선 트럭과 과한 추월이 빚은 비극]
몇 번을 읽고 그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직도 그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난 이미 추월을 끝낸 상태였고, 피하려고 들었다면 트럭은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식은 내 운전석을 향해 핸들을 틀었다.
기가 막히게도 기사 속 묘사는 달랐다.
내가 무리한 추월로 피하는 트럭을 가로막았다는 식이다.
나는 바이라인에 뜬 기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기사 창을 닫았다.
*
다음 날부터 서소혜의 성형 의혹에 관한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시작은 전직 기자가 운영하는 유튜브였고, 해동은 결국 서소혜에 관한 기사를 싣지 않았다.
브로커와의 인터뷰가 실린 사회부 단독기사는 불길이 옮겨 붙은 성형 의혹 기사에 무참히 짓밟혔다.
문화부 팀장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후속 기사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면서 한풀 꺾였다.
연분홍이 직접 나서 서소혜의 소속사를 설득한 결과였다.
서소혜와 소속사 인터뷰를 단독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문화부의 연예 담당 기자들이 일정 조율에 나섰다.
그리고 연예면에서는 전쟁이 시작됐다.
단발성 폭로와 함께 시작된 우라까이 전쟁이.
우라까이 전쟁의 신호탄은 언제나 국가기간 뉴스 통신사가 쏘아 올린다.
특히 기사화하기 애매한 뉴스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포털에 떡하니 자리 잡은 한 줄짜리 속보창을 주시하던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극적인 문구로 도배된 ‘제목 장사’에 돌입한다.
나는 특종 수첩을 펼쳤다.
[단독 – ‘오보 사태’ 모든 걸 건 철퇴에 언론사들 날벼락]
음······.
잠시 엉뚱한 기대를 했었다.
죽어서 다른 사람 몸에 자리 잡기도 하는 마당에 특종 수첩이라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기대를 말이다.
서소혜 건이 오보라고 해도 언론사들이 철퇴를 맞을 만한 건수는 아니었다.
이런 류의 오보는 심심찮게 등장하고 또 사라지기도 하니 말이다.
콧방귀를 시원하게 날리고 가방 한구석에 특종 수첩이라는 애물단지를 쑤셔 넣었다.
그렇게 서소혜 건은 내 기억에서 멀어졌으며, 난 날품팔이에 버금가는 노동 환경으로 내몰렸다.
속칭 언진재라고 불리는 언론진흥재단 신입 기자 교육 전까지, 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데스크(라고 쓰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취재 기자를 닦달하는 인간들이라고 읽는) 놈들의 잔심부름을 했다.
뭐, 나쁘지 않았다.
내가 퇴사한 이후 지형이 변한 해동일보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보는 나름 유익한 시간이 됐으니까.
신문사 내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꼴사납게 구는 이해연과의 작은 신경전이 있긴 했지만, 마음이 하해와 같은 내가 거국적인 차원에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신입사원 교육은 귀찮은 티를 팍팍 내는 사회부 최창일에게 속성으로 들었다.
대부분이 교육 자료로 쓰이는 것들을 훑고 궁금한 걸 묻는 형식이었는데, 이미 아는 것들이라 딱히 물을 만한 게 없었다.
“궁금한 거 없어?”
“네.”
“읽긴 읽은 거야?”
“읽었습니다. 궁금한 건 유튜브하고 인터넷 블로그 뒤져서 해결했고요.”
미심쩍은 눈초리로 날 보던 최창일은 취재 가이드북에 있는 내용을 몇 가지 묻기 시작했다.
너무 기초적인 것들이라 살을 적당히 붙여서 대답했다.
뭐지, 이 자식?
꼬투리라도 잡을 작정이었나?
뜻대로 되지 않아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살보도권고 기준에 대해서 말해봐.”
너 이 자식, 잘못 걸렸다.
내가 또 이 자살보도권고 기준에 대해서는 장인이거든.
“전반적인 설명을 하라는 건가요, 아니면 최근 권고기준인 3.0 버전의 권고기준에 대해 읊어보라는 건가요?”
특집 기사를 쓰면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발간한 자살보도권고기준의 해석에 대한 책자도 싹 다 훑은 사람이 나다.
게다가 이 문제를 가지고 저 녀석의 윗대가리인 연분홍에게 조언까지 해주기도 했고.
최창일 놈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다섯 가지 원칙이나 말해!”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생명재단이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의 다섯 가지 원칙에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 있습니다. 기사 제목에 ‘자살’ 대신 ‘사망’이나 ‘숨지다’ 같은 표현을 쓰고,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나 장소, 그리고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으며, 사진과 동영상 사용은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 등입니다.”
나는 언뜻 이 자식이 쓴 기사가 떠올라 한마디 더 덧붙였다.
“참고로 생명재단에서는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단어도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게 되면 죽음을 선택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걸 보니 제가 쓴 기사는 기억하는 모양이다.
입술을 씰룩인 최창일은 다시 두툼한 파일첩을 내주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이것까지 다 읽고 내용 숙지해. 끝나면 나한테 찾아오고.”
“그러죠.”
“그러죠? 너 선배한테 대답하는 요령도 전달 못 받았어?”
전달받긴 했다. 윤서희라는 동기 아닌 동기를 통해 비공식적인 루트로.
윤서희의 입장도 있고 해서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한마디 하려던 최창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좀 이따 보도록 하고, 언진재에 같이 들어갈 동기들 인사부터 먼저 해. 내가 소개 해줄 테니까.”
슬슬 얼굴들을 볼 때도 된 거 같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인상을 구기며 들어오는 최창일을 보며 연분홍이 물었다.
“이길래 교육은 어떻게 돼가?”
한숨을 내쉰 최창일이 입맛을 다셨다.
“교육자료 던져주니까 알아서 다 하더라고요.”
“뭔 소리야, 타이틀만 적힌 걸 보고 어떻게 알아. 너 혹시 대충 파일만 던져주고 만 거 아냐?”
“그것보다 선배, 우리도 채용 연계형 인턴을 제대로 뽑아 보는 걸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뜬금없이 그건 왜?”
“이길래요, 3주 신입 교육을 받은 애들보다 교육 내용을 더 잘 파악하고 있어요. 이것저것 내용을 물어봤는데, 어떤 건 저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고요.”
연분홍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네가 너무 설렁설렁 알고 있는 거 아냐?”
최창일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더니 없다더라고요. 기가 막혀서 이것 저것 물어봤는데, 막힘없이 줄줄 읊어 대는 거예요. 취재 가이드에 있는 거야 그렇다 쳐도 타이틀만 있는 보도권고 기준까지 다 꿰고 있었어요.”
“뭐?”
“유튜브하고 블로그 찾아가면서 다 확인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좀 놀랐어요.”
그때 경제부 차장이 연분홍에게 다가왔다.
“연 팀장. 그 있잖아, 나사로······, 이름이 뭐였더라?”
“이길래요?”
“맞다. 이길래. 전에 있던 이길래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잘 매치가 안 되네. 걔, 타사에서 경제부에 있었대?”
“설마요. 인턴을 경제부에 꽂아 쓰는 데가 어딨어요.”
“그렇지? 그게 정상인데, 걔는 어떻게 국토교통부 돌아가는 꼴을 잘 알지? 경제 전공인가?”
최창일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걔, 철학과인가 사회학과인가 나왔을걸요?”
연분홍도 미간을 좁히며 거들었다.
“경제 전공했다고 어떻게 국토교통부 돌아가는 걸 알아요. 뭔 일 있었어요?”
경제부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상인데······, 사실 애가 놀고 있는 거 같아서 내가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내용 정리해서 가져오라고 시켜봤거든? 근데 주택정책과 주무관한테 전화까지 해서 따졌다더라고. 보도자료 내용이 이상하다고. 이대로 기사 써도 되겠냐며 협박까지 했다고 주택정책과장이 나한테 전화가 왔어. 그거 아직 확정안이 아니니까 기사 쓰는 건 좀 미뤄달라고. 보도자료 바로 다시 낸다면서.”
연분홍과 최창일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서로를 마주 봤다.
눈살을 구긴 연분홍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뭔 그래서야. 출입처에 나가 있는 놈 작살을 내놓고 지금 물어보러 온 거지. 요새 신입 교육할 때 이런 디테일한 실무 교육도 하나? 우리 부장이 이런 거 교육할 사람은 아닌데?”
그때 디지털 소통팀 팀장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선배, 혹시 그 인턴 어디 있어요?”
연분홍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인턴이라니? 혹시 너 없을 때 지원 나갔던 신입 말하는 거야?”
“아, 신입이었어요? 여하튼 걔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왜!”
“아니, 걔 일머리가 딱 우리 팀 같아서요. 혹시 부서 배정 안 됐으면······.”
“뭔 헛소리야. 너 혹시 섬에 혼자 사니? 사내 수습 교육 돌아가는 거 몰라? 아직 마와리도 안 돌았어!”
“아, 그렇겠구나.”
한숨을 내쉰 연분홍이 그들 둘을 쏘아보며 말했다.
“다 가요. 나 이제 일 해야 하니까.”
*
언진재 파견 교육 당일.
열 시 반까지 정동에 있는 언진재에 도착해야 해서 조금 일찍 고시원을 나섰다.
기자의 원칙적 이동 수단은 택시다.
하지만 아직 취재비나 수당이 나오지 않아 부득이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다.
또다시 언진재 교육이라니.
수습 딱지를 떼고 기자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있다.
언진재 파견 교육을 냉혹한 마와리에 던져지기 전에 주어지는 꿀 같은 휴양이라고.
인정하기 싫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약 2주간 진행되는 언진재 교육은 고상하고, 또 자유로우며 무엇보다 평화롭다.
언진재 간부의 거창한 언론관에 관한 일장 연설로 시작하는 교육은 언론윤리를 비롯해 각 전문 기자들의 특강 등으로 구성된다.
취재 요령과 보도 사진 찍는 요령 등도 교육했던 거 같다.
물론 선배 기자들의 피비린내 물씬 풍기는 취재 경험을 영웅담처럼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신입 기자들에게나 적용될 얘기다.
이미 이 바닥에 이골이 난 나로서는 적당한 허풍과 과장이 더해진 그런 얘길 신기한 듯 들어줄 자신이 없다.
흥에 겨워 열과 성을 다해 떠들어 댈 그들을 떠올리며 표정 관리 연습을 해보기도 했는데, 솔직히 먹힐지는 미지수다.
뭘 하지?
그냥 멍 때리고 있어야 하나?
잡일만 하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역시 난 천성이 취재 기자인 모양이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욕도 먹고 부대끼면서 날 것 그대로의 현장을 취재하는 게 마음이 편한 걸 보면.
지하철 안의 승객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고 있다.
동영상을 보는 사람, 웹툰을 보며 낄낄거리는 사람, 개중에는 뉴스를 넘겨 가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다.
지하철 문에 기대 있던 젊은 여자가 옆에 서 있는 친구로 보이는 여자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야, 이거 봐. 서소혜 자살 기도했나 봐.”
“뭐?”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는데?”
“진짜?”
너나 할 거 없이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나 역시 그 행렬에 동참해 전화를 꺼내 들었다.
[1보-성형 의혹으로 질타받던 서소혜 의식을 잃은 채 긴급 후송]
[속보-주말극으로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 서소혜 응급실 입원]
기가 막히는군.
끝난 줄 알았던 서소혜 오보 건은 이제 막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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