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인생은 말이지
정체가 궁금하고 나쁘지 않은 제안을 한다고?
점심으로 뭘 먹어야 저런 헛소리를 할 수 있을까?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이해연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뭐?”
못 들은 척은.
“사양하겠다고요.”
“너 지금 내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굳이 들을 필요가 있을까요?”
“하, 이건 또 무슨 참신한 날벼락이래. 너, 개념이 없어?”
슬슬 뱃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온다.
참아야지, 암, 참아야 하고 말고.
나는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대기 화면을 보여줬다.
이해연이 눈살을 와락 구긴다.
“뭐 하는 거야!”
“점심시간이 아직 20분 남았습니다.”
“점심시간 뺏었다고 지금 시위하는 거야?”
얘도 참 개념이 없네.
“선배는 하루에 몇 번이나 행복하십니까?”
이해연이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뭐라고?”
“저한테 하루 두 번 정해진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식후에 태우는 연초 한 대죠.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근무 휴게시간인 식사 시간까지 어겨가며 하는 제안이 이 행복을 포기할 만큼 좋은 제안일까요?”
“하, 참. 요즘 MZ 무섭다는 소리를 이렇게 체험하네. 너 개념 없어?”
죽었다 깨어난 걸 확 실감했다.
MZ? 여기서 웃으면 안 되겠지?
나는 종이컵을 입에 물고 전화를 꺼내 얼른 메모를 시작했다.
“너 뭐 하니? 왜, 노동부에 신고라도 하게?”
메모를 마치고 입에 문 종이컵을 다시 들며 이해연에게 말했다.
“아뇨, 기획 기사로 좋은 아이디가 하나 떠올라서요.”
“뭐라고?”
“어쩌면 세대를 갈라치는 용어가 세대 간 격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자기방어기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번 제대로 조사해 볼 가치가 있을 거 같습니다.”
진심이다.
내가 MZ? 이건 극찬을 넘어 역사에 길이 남을 찬사다.
이름보다 꼰대로 더 자주 불리던 내가 MZ라니.
녹음하게 다시 한번만 얘기해주면 안 될지를 물어볼까 고민할 때 이해연이 버럭 소리쳤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게 진짜!”
이해연이 지른 고성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얼굴이 벌게진 이해연은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에 든 종이컵을 안타깝게 내려다봤다.
“에이, 다 식어서 다시 타야겠네.”
남은 커피를 쭉 들이켜고 이해연을 바라봤다.
“용무 있으시면 디지털 소통팀으로 오세요.”
어처구니를 빼앗긴 얼굴의 이해연에게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아, 점심시간 끝나고요.”
나는 봉지 커피를 다시 타기 위해 탕비실로 향했다.
*
노트북으로 뉴스들을 훑어가며 빈둥거리고 있을 때, 정아영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저기요······.”
“뭐 더 시킬 일 있어요?”
정아영이 주저주저하며 입술을 뗐다.
“그건 아니고······. 뭐 좀 물어봐도 돼요?”
아프지 않게 살살 물으라고 하면 욕먹겠지?
“그러세요.”
정아영은 출력한 종이를 내게 보였다.
“이런 단어가 갖는 의미나 정확한 사용례는 어떻게 찾아봐야 해요?”
슬쩍 보니 오전에 내가 손 본 카드기사 문구들이다.
뭐라고 설명하지?
조인트 까이고 욕먹으면서 배운 게 반이고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면서 기억해 둔 게 반인데······.
앞에 건 얘기하면 안 되겠지?
“우리말과 우리 글에 관한 책들이 꽤 많아요. 그리고 기사에 나오는 표현도 많이 참고하고. 아, 속보성 기사보다 느긋하게 배 두드리면서 쓰는 칼럼이나 사설이 표현은 정확해요.”
내용은 제멋대로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정아영은 입술을 오물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언시 준비하면서 그런 것도 스터디했어요?”
나는 스터디 같은 걸 한 적이 없다.
이전 버전의 이길래는 어쨌는지 모르고.
한데 언론고시를 거론하는 것도 그렇고, 문장 표현에 관심을 두는 것도 그렇고, 얘, 기자를 지망했던 것 같다.
기대로 가득한 눈도 반짝이고 있다.
“이런 건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하는 것보다 자주 접하면서 어감의 차이를 익히는 게 좋아요. 하지만 솔직히 크게 의미 없어요. 요즘에는.”
나는 노트북을 끌어당겨 포털을 띄웠다.
검색창에 ‘불문에 붙이고’를 치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주르륵 뜬 기사의 헤드라인을 정아영에게 보여줬다.
[여당 비대위원장 “불문에 붙일 것”을 요구]
[찬반 여부는 소신 문제. 표결 내용 “불문에 붙이기로”]
“이게 둘 다 십 대 종합일간지라는 신문사 정치 기사 헤드인데도 이 모양이잖아요.”
잠시 생각한 정아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 잘못된 건지······.”
“불문은 묻지 않는다는 뜻으로 붙이다가 아닌 부치다가 어울리는 말입니다. 맞대서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붙이다가 아닌 거론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의미의 부치다가 맞죠. 더 웃긴 건 이거예요.”
나는 스크롤을 내려 같은 신문사의 칼럼을 클릭했다.
[붙이다와 부치다 제대로 알고 써야]
기사를 훑고 나를 바라보는 정아영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게 현실입니다.”
한숨을 내쉰 정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로 돌아가려던 정아영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리고······, 소문이······.”
무슨 말이 나올지 뻔해 빙긋 웃으며 말을 가로막았다.
“괜찮아요. 욕먹고 손 가락질 받는 건 익숙하니까.”
“아······, 네?”
“뭐 더 할 일 있어요?”
“아뇨. 다른 건 없어요. 다른 분들에 비해 정리를 빨리 해 주셔서. 나머지는 제 일이에요.”
그래? 그럼 뭐하지?
입맛을 다시고 다시 뉴스 창을 띄웠다.
사회 섹션 기사는 대충 다 본 것 같고······, IT 과학 섹션은 별론데······.
이렇게 죽치고 앉아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기사를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끊임없이 기사를 생산하면서 정작 기사의 소비에는 상당히 인색한 게 기자다.
기자가 남의 기사를 보는 첫 번째 시선은 이거다.
어디 물 먹은 거 없겠지?
기자들은 특정 이슈에 대해 혼자 놓쳤거나, 특종 내지는 단독 타이틀을 걸 수 있는 기사를 흘렸을 때 물 먹었다는 표현을 쓴다.
이 물 먹었다는 게 단순히 실수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능력 내지는 커리어와 직결되는 터라 아주 민감하게 반응할 수 없다.
우습지도 않지.
그 문제로부터 딱 한 걸음 물러서니 기사를 기사로 소비하게 된다.
턱을 괴고 끝도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을 훑어 나갔다.
이놈은 기사를 발로 썼네, 이 자식은 통신사 뉴스 베껴 쓰기 바쁘네, 등의 품평을 늘어놓고 있을 때였다.
“저기요, 잠시만요.”
이마빡에 ‘나 이 바닥 뉴비요’라고 써 붙인 거 같은 여자가 날 불렀다.
“무슨 일이죠?”
“이길래 신입 기자 맞죠?”
하, 설레네.
신입 기자라······. 좋네, 젊어진 느낌······이 아니라 젊어졌구나.
선한 인상에 화장기만큼이나 숫기도 없어 보인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에 면접을 다니며 입었을 거 같은 정장을 입고 있고.
“맞습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표정을 보아하니 ‘너의 신상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있으니 얼른 따라 나와’라는 얼굴이다.
“네. 그러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열일 중이던 정아영의 곁눈질이 따라붙는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정아영은 일을 계속하며 짧게 대답했다.
“네.”
*
풋내나는 뉴비가 날 끌고 간 곳은 비상계단이었다.
널린 게 소회의실인데, 이런 으쓱한 곳을 선택한 건 눈칫밥 먹고 사는 신입이라서겠지?
아니면 대화의 주제가 그만큼 음습하단 예고인가?
계단참에 멈춰 선 여자애가 숨을 고른다.
“저어······,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뭐지? 이거 혹시 전설로만 전해 듣던 ‘번따’인 것인가?
이어지는 여자애의 말에 내 망상은 산산조각 났다.
“그······, 우리 기수와 같이 교육을 받게 되신다고 들었어요. 선배들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동기들 단톡방이 있긴 한데······, 초대하는 문제를 두고 다들 말이 많아요. 그래서······, 당분간은 제가 중요한 내용들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역시 예상하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체감 사이의 간극은 넓었다.
기분이 상한 것도, 서운한 것도 아닌데 어째 거지 같다.
“마음 써 줘서 고맙긴 한데, 동기들 사이에서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서요. 나중에 곤란해지지 않겠어요?”
여자애는 입을 한번 꼭 다물었다가 말했다.
“그래도 전달할 건 전달하는 게 옳은 거 같아요.”
애가 싹수가 좀 있네.
짓밟히지 않고 잘 크면 좋은 기자가 되겠다.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모르면 모르는 대로 편할 수도 있으니까.”
여자애는 어울리지 않게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큰일 날 소리 마세요. 당장 언진재 교육 끝나면 선배들 대면식을 시작할 텐데, 대면식 할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단 말이에요.”
아, 그런 게 있었지.
대면식이라는 말에 불쾌한 기억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근심이 가득한 여자애의 얼굴을 보니 여전한 똥군기를 잡는 구닥다리 대면식의 행태가 만연한 모양이다.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그럼 전화번호 주세요.”
전화번호를 불러주기 무섭게 문자를 전송한다.
전송된 문자를 보자 현기증이 났다.
지랄도 이런 생지랄이 따로 없었다.
윤서희라고 이름을 밝힌 여자애가 안심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이건 전기수에 돌았던 톡인데, 미리 입수한 거예요. 언진재 끝나면 바로 마와리 돌면서부터 지켜야 할 준수사항이라고 하니까 꼭 숙지해요.”
할 말이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윤서희가 먼저 떠나고 계단참에서 전달해 준 톡 내용을 다시 읽어봤다.
예의범절이라는 명목으로 보낸 지시 사항은 톡이나 문자에 답을 하는 요령부터 적혀 있었다.
다나까를 쓰라거나 선배와 주고받은 연락의 마지막은 마침표를 찍은 ‘네.’로 대답해야 한다거나 질문은 반드시 두세 번 고민한 후에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해야 한다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것들이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어느 시절 다나까야.
게다가 뭐? 톡을 뭐가 어쩌고 어째?
그 뒤는 더 가관이었다.
대면식은 바로 위 기수부터 시작되니 선배의 이름과 얼굴, 소속 부서와 단독기사까지 모두 외우란다.
심지어 쓸모도 외울 이유도 없는 이메일까지 외우라니 이것들이 돌아도 단단히 돈 것 같다.
그 짓을 열 기수를 거슬러 올라가며 한다니, 고개가 절로 내저어진다.
나 때는 그게 당연했다.
나 때는 학폭의 주체가 선생이었고, 군대에서도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얻어터지던 야만의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21세기 문명사회의 자유언론을 수호한다는 언론사에서 아직도 이 지랄 중이라니.
이건 시대 착오를 넘어 시대 착각에 가까운 행태다.
그 순간 깨달았다.
대한민국의 레거시 미디어들이 죽어라 죽어라 하는 이유는 뉴미디어나 상업 자본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한 집단의 미래는 그 집단이 외치는 비전에서보다는 전통이라는 허울을 쓰고 행해지는 폐습에서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해동은 사명부터 갈아치워야 한다.
해동은 니미, 냉동도 아깝다.
짧은 순간이지만 깊게 고민했다.
이거 때려치울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 먹었다.
다른 곳이라고 낙원일까.
내가 무슨 거국적으로 대한민국 언론 풍토의 새역사를 쓸 것도 아니고 좋게, 좋게 가자.
사람이 너그럽게 ‘흐린눈’으로 넘기는 것도 있어야지.
인생사 둥글게 둥글게, 좋잖아.
크게 숨을 고르고 발을 옮겼다.
둥글게도 좋지만 여기 너무 춥다.
부지런히 발을 놀려 비상구 문을 열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이해연의 면상에 기절하실 뻔했다.
“아! 깜짝이야!”
하, 기가 막히네. 내가 더 놀랐어, 이 여자야.
뾰족한 얼굴의 이해연이 날 매섭게 쏘아봤다.
“점심시간이 끝난 지는 한참인 것 같은데, 왜 여깄지?”
역시 인생은 장담할 게 못 되는구나.
둥글게는 니미.
나는 이해연을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화재를 비롯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긴급 피난 경로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인생은 직진이다.
코 베이지 않게 두 눈 똑바로 뜨고 칼날 같은 현실 위를 미친 듯이 질주하는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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