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 참조(reference) - 6
- 뚜르르르~.
<네, 형님!>
"통화 괜찮냐? 바쁜데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괜찮습니다. 운동 마치고 씻으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근데 무슨 이십니까?>
"뱀파이어랑 대판 싸워야 하는데 혹시 생각있냐?"
패트릭이 앞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극을 한껏 받은 크리스는, 제노의 예상대로 예스맨이었다.
<예! 물론입니다!>
"한 번 더 잘 생각해봐. 마수가 아니라서 허탕칠 수도 있어."
<상관 없습니다. 실전에 의의를 두면 됩니다.>
"오케이, 그럼 준비하고 패트릭한테 가 있어라. 우리집 현관문이랑 벙커입구 비번 알지?"
<넵! 1시간 안에 도착하겠습니다!>
"급할 거 없어. 천천히 와서 도착 문자나 날려. 내가 여기저기 통화해야 하거덩. 이만 끊는다."
<네! 금방 뵙겠습니다!>
- 뛱.
그는 전화를 한 군데 더 돌렸다.
<예~, 여보세요~?>
"하하. 안녕하셨습니까, 강 신부님. 저 제노입니다."
<오, 그렇구나. 어쩐 일이냐?>
"혹시 구마사제 중에 아시는 분이 계신지 여쭤보려고요."
<......>
두 박자 쉬고 다시 들려온 강병섭 신부의 목소리엔 큰 걱정이 녹아 있었다.
<...제노야, 요즘 무슨 힘든 일 있니?>
"예? ...아!"
말뜻을 이해한 제노가 웃음을 뿜으며 말했다.
"아휴! 오해이십니다, 신부님! 저 자살하려는 거 아니에요! 게다가 저는 무슨 부마자 같은 게 아니라서 구마의식을 해봤자 죽지도 않습니다."
<그럼 구마사제는 왜? 뭐 할라고?>
"흐흐, 미네소타주의 밤거리를 쏘다니는 흡혈귀들이 있어서요. 그쪽 관련한 정보를 좀 얻어볼까~해서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헛, 그래? 음... 내가 아는 놈이 있긴 한데, 그 놈도 그런 건 잘 모를 껄?>
"일단 다리만 놔주십쇼. 한 번 여쭤보고 아니면 말죠 뭐. 하하하."
로마 교황청에서 양성한 구마사제쯤 되면 훌륭한 소통창구가 되고도 남았다.
<그래, 그래, 알았다. 내가 그 놈한테 전화해서 네 연락처를 전달하마. 바로 통화하라고 할께.>
"헤헤. 감사합니다, 신부님~."
<말로만 감사하지 말고 자주 얼굴 비춰. 아까도 아이들이 먹보 삼촌은 언제 또 놀러오느냐고 물어보더라.>
"흐흐, 이번 사건 해결하고서 꼭 시간내겠습니다~."
<오냐, 약속지키거라.>
"옙! 들어가십쇼~."
이후로도 제노의 통화는 간헐적으로 계속됐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6단계 분리 이론, 즉 '인간관계는 6단계만 거치면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회이론을 실제로 검증할 수 있었다.
<찬미 예수님. 저는 도미니 베르타구스 형제회의 '후베르토(Hubert)' 수도원장입니다. 교구장님께 말씀을 전해듣자니 특별한 제보가 있으시다고요?>
- 꿀꺽.
제노는 비공식 이단심문소와의 첫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 언어영역을 풀가동했고, 이어진 약 30분의 통화시간이 그에겐 마치 30시간처럼 느껴졌다.
* * * * *
제노는 회의실을 나선지 3시간 만에 FBI지부로 되돌아왔다.
- 저벅. 저벅.
이번 그의 복귀가 유달리 눈에 띄고 소잡스러워진 이유는, 그의 뒤로 부지런히 따라붙는 크리스 때문이었다.
"엣쿵!"
"옴마야!"
"나 어뜨케..."
"어마마맛, 어쩜 좋아..."
이동중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성들은, 머쓱해서 싱긋 웃는 크리스의 눈인사에 하나같이 심장을 부여잡고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젠장.'
연애와 관련하여 불지옥 난이도를 걷는자로선, 다른 의미로 심장이 저려왔다.
'하, 인생 시부엉새...'
어느새 촉촉해진 눈두덩이를 달래며 목적지에 다다른 그는, 크리스를 사람들에게 소개시켰다.
"팀장님, 증원 인력 데려왔습니다."
"아, 이 분은 지난번에..."
"예, 맞습니다. 참고로 저 못지 않은 스페셜리스트이고, 제가 차린 회사의 임원이기도 합니다."
제노는 크리스의 등짝을 대견스레 팡팡 치며 말했다.
"이번 사건 종료때까진 이 친구를 외부활동 중에 무조건 대동한다고 여기십쇼. 자자, 인사해라, 크리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크리스 울벳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의 기운찬 자기소개와 동시에 회의실 바깥에선 난리가 났다.
- 들었어? 크리스래, 크리스!
- 어쩜~, 이름도 완전 잘 생겼어!
- 헤으응~, 감미로운 목소리는 또 어떻고! 절로 녹는다, 녹아~.
- 앗!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수사보조 모집할 때 지원할 껄!
- 그러니까 내 말이!
"아니, 이것들이!!!"
건설적인 회의는 다소 뒤늦게 이뤄졌다. 어이 터진 데미안이, 마치 여고생들처럼 복도밖에 옹기종기 모여 귀동냥하는 여성진을 득달같이 쫓아내는 과정부터가 선행되어야 했던 탓이었다.
"어흠흠, 죄송합니다. 내가 다 쪽팔리고 민망해서 이거 원... 아무튼 시작하시죠. 제노 씨."
데미안으로부터 발언권을 넘겨 받은 제노가 말했다.
"소득이 제법 있었습니다. 바티칸 쪽에서도 2년 전쯤에 디스타토레의 활동을 포착하고서 예의주시해온 모양입니다."
"""!!!"""
정확한 표현은 스토킹에 가까운 감시였다. 미국 내에서의 무력 사용은 여러모로 정신나간 짓이었기에, 뱀파이어들의 살인증거를 확보하여 당국에 신고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정한 것이라 하겠다.
'그래야 경찰들을 피해 도망치는 놈들을 뒤쫓아가서 은밀히 덮칠 수가 있으니까.'
물론 그는 이와 같은 바티칸의 비공식 작전수행 방식을 설명에서 쏙 제외시킨 채 말을 계속했다..
"그동안 뚜렷한 물증을 얻지 못해서 골머리 썩고 있었다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따라다녀봤자 수박 겉핥기 식으론 한계가 분명하니 당연한 일이었죠."
여기까지 이야기한 제노는, 이 회의실 내의 최고 결정권자인 해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FBI가 수사중이라고 말씀드리니까 무척 반색하시더군요. 딱 1가지 조건만 수락해주시면 디스타토레의 위치 및 인물정보 일체를 공유해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음, 기대 이상으로 훌륭합니다. 그런데 그 조건이라 하심은..."
"그게... 현장동행입니다. 가급적 먼저 돌입하게 해달라고..."
"......"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주님의 개'를 자처하는 이단심문관들이, 뱀파이어들을 다짜고짜 뚜까 팰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자문위원으로써 제노 씨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대단히 긍정적입니다. 진압병력의 피해를 현저히 줄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동물은 수의사에게, 인간은 의사에게 맡겨야 하는 것과 같이, 범인 체포와 괴생명체와의 드잡이 간에 요구되는 전문성은 상이했다.
더군다나 가톨릭의 사제들은 뒤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신앙을 위해 본인의 삶과 욕망을 모두 포기한, 다른 말로 처자식이 없는 수도자들보다 이런 업무에 최적화된 전력은 찾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도 모든 회차를 통틀어 각성자를 가장 많이 배출해낸 직업군이 바로 '신부'와 '수녀'였다. 이들은 정식으로 서임되기까지의 기간이 최소 10년인 데다가, 중도포기자 비율이 평균 40%에 육박할 만큼 수련과정이 혹독하기까지 했으므로 당연하다만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이단심문관 수도회 내의 훈련과정과 규율은 그보다 몇 배나 지독했으니, 더 말해봤자 떠드는 주둥이만 아플 터였다.
"흠, 그렇지만 민간인을 투입한다는 사실이 무척 꺼려집니다."
"해리 팀장님, 조금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큰 관점이요?"
"예, 이건 FBI에 있어서 엄청난 기회입니다. 이를테면 바티칸과의 끈끈한 공조를 맺기 위한 포석인 셈이죠."
"음..."
"잘만 하면 FBI에겐 고도로 숙련된 '괴물전담 기동타격대'가, 반대로 이단심문관들에겐 신앙을 마음껏 증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겁니다. 서로 윈윈! 그야말로 환상의 콜라보! 어떻습니까? 시험해볼 가치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국장님과 부국장님께서도 혹하실 만한 제안이지 않겠습니까?"
썩어도 준치라 했던가? 대악마 루치펠의 직계자, 대군주 루카스의 파편 조각 비스무리한 제노의 사탕발림은, 해리의 귀를 팔랑거리게 했다.
"...크으음..."
"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서둘러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 도미니쿠스(도미니 베르다구스의 줄임말) 형제회의 총원은 50명 미만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나 연방조직이 먼저 침 바르는 순간 끝입니다. 끝."
"...제노 씨께선 회사를 차라신 뒤로 설득력이 더욱 좋아지셨군요. 알겠습니다. 지부의 보안회선을 이용해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저랑 같이 가시죠. 제가 책임지겠다고 옆에서 거들면 한결 수월할 겁니다."
상부의 재가는 오래지 않아 뚝 떨어졌다. FBI의 국장과 부국장 또한 '오늘이 마지막 찬스! 품절 임박!'이란 제노의 마케팅전략을 끝내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 * * * *
다음날 오후 5시. 아직 노을이 지지 않은 애매하게 이른 저녁 시간대.
대략 2시간만 지나면 형형색색의 불빛이 새벽 2시까지 현란하게 춤을 출 나이트클럽. 그 건물 옥상의 어느 물탱크 위에선 30대 중반의 백인 남성이 십자 성호와 함께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중략)... 구원의 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에게 복을 내리시고 저희 마음을 새롭게 하셨으니, 이 성수를 사용하여 힘을 얻는 저희가 영혼의 생기를 되찾아... (하략)..."
이내 물탱크 뚜껑을 열어젖힌 그는 약 2kg의 하얀 소금을 쏟아내면서 기도를 이어갔다.
"주여,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으로부터 저희를 구하소서."
이후 로프를 허리에 엮어낸 그는 '아멘'을 외치며 으슥한 골목 방향으로 몸을 날렸는데, 마치 중력을 무시하는 듯 벽을 달리는 그의 모습은 여느 특전사들보다도 더 능숙했다.
- 타다다닷, 휘릭~. 처억.
중간에 공중제비까지 돌며 소리 없이 지상에 착지한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제노와 크리스를 향해 말했다.
"퇴마의식이 준비됐습니다, 제노 형제님."
"수고하셨습니다, '펠릭스(Felix)' 수사님. 바로 시작하시죠. 여기 뒷문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예, 그럼 이만. 모든 것은 주님의 뜻대로."
수도사가 빠른 속도로 걸어나가자, 건물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7개의 인영들이 그 뒤로 스르륵 따라붙었다.
"와아..."
그 영화 같은 광경을 두고 크리스가 감탄사를 작게 터트렸다.
"저 수사님들 각성 안 하신 거 맞죠?"
"어. 각성한 상태가 아닌데도 저 정도야."
"워~, 각성하면 장난 아니겠는데요?"
"그렇지. 저 분들이 각성까지 한 상태에서 단체로 달려들면, 전혀 약화되지 않은 중형 마수 서너 마리와도 맞장 뜰 정도였거든."
이 대답에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이상하네요."
"뭐가?"
"저렇게 대단하신 분들을 제가 왜 모르고 있나 싶어서요."
"어... 음... 그게... 사실은 말이다..."
"?"
"그으... 루카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제일 먼저 최선두에서 공격하셨던 분들이라서... 그래."
"......"
루카스와의 전투 때마다 생존자가 전무하다는 사실은 몹시 유명했기에, 그 말뜻을 선뜻 이해한 크리스가 한 마디 했다.
"으휴, 왜 저한테 먼저 저분들을 만나서 한번 떠보라 부탁하셨는지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형님께서 노심초사하실만 했네요."
"흐흐, 맞아. 혹시 저분들 중에 회귀자가 섞여 있으면 어쩌나 하고, 내가 엄청 쫄려서 그랬다. 지난 3회차의 비극이 반복되면 안 되잖냐. 그치?"
"어휴..."
크리스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순간, 작은 폭발음과 함께 비상벨이 울렸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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