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살생부
'쉐도우 플래너'는 내린 글입니다. 지금은 제 습작을 올리는 공간이고, 파일럿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오는 글은 순전히 저의 창착물이고, 허구의 산물임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힙니다.
나에게도.
불치병에 걸려 무정한 어미에게 버려지고, 그래서 내게 유일하게 남게 된 하나뿐인 내 아이에게도.
더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난 죽음을 생각했다.
무수한 죽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난 자살은 선택할 수 없기에 제외했다.
부족한 아비지만 하나뿐인 자식에게 차마 자살을 선택한 아비로 남고 싶지 않았다.
물론 자살을 선택하지 않은 다른 이유도 있다.
그것은 내게 아직 유효한 고액의 생명보험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고액의 생명보험에든 것은 아니다.
난 한때 잘나가는 앱제작자였다.
불치병에 걸린 내 아이를 위해 만든 ‘착한동생’이란 앱을 내 아이의 핸드폰에 설치하기 위해선 마켓에 올려야 했기에 올려놓고 병원에 들러 아이의 스마트폰에 설치해줬다.
평소 아이의 반응을 참고해 만들었기 때문에 아이는 좋아했고 나도 아비 노릇을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한데 뜻밖에 ‘착한동생’이란 앱이 입소문에 힘입어 일주일 만에 생활비를 해결해주더니 한 달 만에 1년 치 수입을 대체해버린 것이다.
난 부랴부랴 후배들을 끌어들여 언어를 추가했다.
내 예상은 옳았다.
언어를 추가한 것만으로 폭발적으로 다운로드가 늘어나더니 어느새 난 유명인이 돼 있었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착한 동생’을 업그레이드하며 틈틈이 제작했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포함한 게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혼자 만들어 쓰는 것은 좋았지만 이를 사업화를 하니 이곳저곳에서 특허 소송이 들어왔다.
그때 난 참 순순했다. 아니, 멍청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내 순순한 창작품임에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에 당당했고 그만큼 격렬히 대응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거의 일 년에 가까운 소송에서 패한 것이다.
그리고 소송에서 패한 후 한 달 만에 모든 걸 잃었다.
빚에 허덕이는 처지가 되자 믿었던 후배는 물론 친분이 있던 이들이 멀어져갔다.
이윽고 어디서도 날 고용하지 않았고, 아이의 병원비를 독촉하는 전화가 왔다.
난 지금 선택해야만 한다.
미래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딱하나 고액의 생명보험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결국 해약할 수밖에 없겠지?!”
이미 한번 해지를 통보받았다.
아직은 빚은 갚겠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는 상태지만, 더 버틸 수도 없고 버텨봐야 득 될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해코지나 지나 당하고 하나뿐인 기회를 날릴 게 분명했다.
“휴~”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마치 신이 자신을 미로에 가두고 가는 길마다 막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요즘 어려웠다.
결코 사면초가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안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상처가 덜 주고 죽는 가를 연구하는 것뿐인가!’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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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저주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곳에 적으라, 누구도 죽음에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대가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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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전 세계의 스마트폰 사용자는 같은 화면을 맞이해야했고, 자살을 고민하는 ‘신이현’도 그중에 하나였다.
신이현은 스마트폰 화면을 온통 차지한 광고를 보고, 어느 미친 해커의 짓이라 생각하면서 도 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놈만 아니었으면…’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마지막 조각을 내 손에서 직접 받아간 놈이 떠올랐다.
비릿한 미소를 짓고, 문을 나서며 크게 웃던 놈.
모든 일의 원흉임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하며 떠나가는 동료, 후배들과 이곳저곳 다니며 융자를 원할 때 은행에서 얻은 암시로 놈이 원흉임을 알았지만, 증오밖에 할 수 없게 했던 놈.
‘네오위즈’의 ‘남규만’ 사장.
신이현은 원흉인 남규만을 생각하며 스마트폰에 손모양의 아이콘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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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너희가 선호하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진행한다.
죽이고자 하는 자의 이름을 적고, 대가를 치르기로 하면 살생부에 적힌 자를 진실의 심판대에 세운다.
진실이 밝힌 후 투표한다.
찬성이 2/3를 넘으면 바로 죽음을 선사하지만, 절반을 넘었을 때는 신청자의 목숨을 담보로 죽음을 선사할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걸 자신이 있는 자.
여기 원수의 이름을 남기라. _________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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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읽을수록 장난 같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이를 실행할지 상상이 되지 않는 만큼 역으로 믿음직해 보였다.
자꾸 원수와 아이가 떠올라 한쪽 끝에 있는 X를 누를 수 없었다.
‘이 광고가 사실이라면 원수도 갚을 수 있고, 보험금도 탈 수 있지 않을까?’
한번 떠오른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
.
.
“어차피…”
‘죽기로 했잖아! 되든 안 되든 한번 해보자.’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살생부에 ‘남규만’라고 적고 다음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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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선택이 애처롭지만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의 목숨을 걸겠는가?
그럼, 너의 육성으로 원한다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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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은 동정하는 듯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자신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한데 장난스레 날아온 메시지는 날 애처롭다고 말하며 도와주겠단다.
물론 내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만 저 한 마디에 희망을 발견한 난 크게 감동하였다.
“원한다.”
감동이 컸기 때문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야? 미친놈이야? 라는 의미로 따갑게 쳐다봤지만, 그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난 당당히 서서 다시 스마트폰에 대고 크게 외쳤다.
“그렇다. 나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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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뜻대로 이뤄질 것이다.
대기번호: kr-09
대기시간: 08:59분
만약 목숨을 가지고 장난하는 자가 있다면 아주 큰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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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작품을 쓰기 전까지 제 습작을 판단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한 곳입니다. 추천도 추천이지만 꼭 느낌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에 향방이 걸렸거든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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