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이상혁 - 1
'쉐도우 플래너'는 내린 글입니다. 지금은 제 습작을 올리는 공간이고, 파일럿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오는 글은 순전히 저의 창착물이고, 허구의 산물임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힙니다.
* * *
전 세계는 겨우 이틀이지만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었다.
‘심판의 날’이라 명명된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이후 하루에 10번의 심판이 있었다.
나라가 작아 하루에 끝난 곳도 있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스마트폰에 등장한 ‘심판의 날’ 광고가 사이트로 제작돼 온라인에 등장한 것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비밀리에 도메인을 차단하려는 움직였지만, 서버를 찾을 수 없어서 난관에 빠졌고, 결국 연구하기로 하고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일이 터졌다.
이라크 대통령이 죽는 일이 발생했다.
첫 번째 심판의 날.
대통령 궁 근처에 마련된 심판대에 대한 보고를 접한 이라크 대통령은 민심의 동요를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해서 시민의 접근과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국민은 전쟁으로 가뜩이나 불만이 많았는데 구원의 존재라 생각하는 아누비스(Anubis)의 심판을 볼 수 없게 하자. 이에 불만을 품었고 살생부에 올렸다.
두 번째 심판의 날.
6번째 피고로 심판대에 오른 이라크의 대통령은 자기 입으로 진실을 폭로(暴露)한 채 이집트의 저승사자로 잘 알려진 아누비스(재칼(jackal: 개과 짐승)의 머리를 지닌 인간의 모습의 저승사자)의 손에 이끌려 인공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이후 누구도 심판을 저지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판을 방해하지 않고, 인명구조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진풍경이 벌어져 ‘평소에 잘하지’라는 비난을 샀다.
그것 말고도 크게 두드러진 일이 있었다.
대다수 인간은 이 진실의 심판이 일회성이라 여겼다.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처럼 한번 심판대에 섰으니 그의 처벌은 끝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임이 두 번째 심판의 날에 드러났다.
진실의 심판에서 절반의 표를 받고 살아남은 자들이 저울에서 내려온 후 기자와 경찰의 질문에 거침없이 진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는 저승사자의 배려였는데 일주일간 진실을 말하게 암시를 건 것이다.
시실 이 암시는 일주일 한정이지만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질문을 받을 때 자신이 원치 않아도 비밀을 폭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암시의 효과가 약해져 기간이 짧아진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무도 몰랐기에 진실을 말하는 당사자도 사건을 덮으려 했던 권력자도 사건을 가볍게 처리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되자 경찰과 검찰도 진실의 심판에서 얻은 자료와 진술로 원고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고, 그렇게 해야만 했다.
인제 와서 덮기에는 너무나 공개된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인해 사회구조가 흔들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가장 신경을 곤두세운 곳은 정치인, 의원, 대기업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이야 개인의 문제지만 의원이나 정치인, 대기업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많은 일반인의 희생시켰고, 그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무척 심각했다.
한데 아이러니한 게 정치인, 국회의원은 상대적으로 빗겨가는 듯했지만, 대기업은 그 반대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국민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게 맞지만, 정치인, 국회의원 등은 개인의 원한이 아닌 단체에 대한 분신이라 누구 한 사람을 특정해서 원수라고 칭할 수 없었고 그래서 몇몇을 제외하곤 심판대에 오르지 않았다.
반대로 대기업은 특정인과 단체, 기업 등 상대적으로 약자의 이익을 자신들이 가진 권력으로 가로채 왔기 때문에 원수로 여기는 자가 많았다.
여기에는 SL 그룹도 속했다.
그리고 국내 대기업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만큼 상황의 심각성은 더했다.
그 심각성은 SL 그룹의 회장 남의건이 둘째 날 심판대에 올라서면서 입증됐다.
그나마 다행은 것은 그가 절반을 못 미치는 표를 얻어 살아남았다는 거고, 가진 권력이 상당해 자택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암시에 의한 효과인 줄은 모르지만 더는 자신의 입에서 진실을 폭로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거였다.
지금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살아남기 위해 온갖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신이현과의 문제를 조속히 처리해 대외적으로 알려야 할 필요성이 커졌고, 그러기 위해 신이현을 찾은 이상혁은 꼭 설득해야만 했다.
그래서 병원까지 찾아와 서두르는 것이고, 그의 아들 현의 병원비를 내고, 병실을 옮긴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예, 신이현이 나타났습니다. …그게 지금 아들을 먼저 만나야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네, 알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준다는 약속을 받았으니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물론, 자신 있습니다. 저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저희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내놓았으니… 알겠습니다. …예, 예.”
보고를 마친 법무 1팀장 이상혁은 ‘휴~우’하고 길게 한숨을 내쉰 후 특실을 바라봤다.
‘원한이 깊은 것 같지만, 그도 죽었고, 당장 살아남아야 하니 협상을 받아 드릴 거야…한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만큼 쉽지는 않겠지.’
이상혁은 이 일에 꼭 성공해야 했다.
SL 그룹이 살려면 꼭 합의(合意)를 이끌어내야 했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가족도 산다.
그에게 SL 그룹이 원수겠지만, 우리에겐 삶에 꼭 필요한 일자리고 희망이었다.
‘나도 신이현 당신처럼 가족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못할 짓을 많이 했지만 어쩌겠습니까.’
물론 변명임을 안다.
사실 죽이지 않았을 뿐 자신도 이미 여럿의 삶을 파괴한 후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법무팀에 배속된 후 아무것도 모르고 업무를 시작했지만, 점점 더 깊게 관여하게 되고, 나중엔 공범(共犯)이 되어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처해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해왔던 일이지만 자신의 죄를 모르지 않기에 늘 후회와 번민(煩悶) 속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심판의 날 이후 세상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점에 내가 있으니 체감(體感)하는 정도는 남과 아주 달랐다.
SL 그룹 쌓아온 업을 빨리 해결하려는 것처럼.
앞으로 많은 기득권층이 업을 해결하고자 돈을 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 거나 더 평등해질 거로 생각하진 않지만 새로운 권력자들이 생길 게 뻔했다.
그리고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권력자들도 속출할 것이다.
그 속에 자신이 속한 SL 그룹이 속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잘해야 한다.
그를 조사한 자료에 오래전부터 기부했던 자료,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싫은 소리를 못하고, 착하다는 평판이 주를 이뤘다.
그러기 위해서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그의 약점인 여린 인간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여린 인간성을 약점이라고 칭하니 내가 꼭 악당 같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권력의 속성 중 한 가지가 바로 인간성 상실이다.
SL 그룹이 바로 좋은 예다.
신이현도 작은 기업을 운영했지만, 조사결과 타락한 거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SL 그룹에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 본 경험이 있으니 약자의 삶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치부조차 공개하는 과감성과 진실, 정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이상혁 가진 비장의 한 수였다.
이상혁은 비장의 수를 믿었기에 협의 결과엔 자신 있었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불쌍하고, 이 상황이 놓인 자신이 서글펐다.
* * *
신이현은 퀘스트로 얻을 보상을 상상하다가 이상혁이 떠올라 밖으로 나갔다.
이상혁은 날 반갑게 맞이하며 극빈처럼 대우했고, 난 이상혁의 안내로 조용한 병실에서 마주 앉았다.
“먼저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찾아올 거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셨으니 얘기를 들어봅시다.”
“예, 우선 이것부터 받으십시오.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서류는 보지도 않고 물었다.
“이게 답니까?”
“그, 그럴 리가요. 원하시는 게 있다면 최대한 들어 드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선 신이현님의 소유였던 것과 피해에 대한 보상, 신이현님이 정상적으로 운영했을 때의 소득에 대한 200%…”
내라 소류조차 보지 않으려 하자.
이상혁은 서류의 내용을 조목조목 집어 얘기했다.
그의 입에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온갖 배상이 쏟아져 나왔다.
액수에 놀라고, 대범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지키고 싶은 거냐? …나도 그랬다. 이놈들아.’
신이현도 자신이 이룬 기업과 동료 그리고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 한편으로 놈들을 이해했고, 순간이나마 동정했다.
‘이런, 내게 동정심이 들게 하다니…역시, 치밀한 놈들이야…그렇다고 해서 그냥 믿을 수는 없지 않겠어.’
놈들이 치밀한 만큼 뭔가 치밀한 복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상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상혁 씨도 아시겠지만 전 사실 SL 그룹을 믿지 않습니다. 해서 서류를 증명할 시간과 보상 내용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성급한 줄은 알지만 제가 직접 준비한 겁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제 목숨을 걸라시면 걸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렇다 하더라도 검증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만…”
‘스르륵’ 의자가 뒤로 밀려났다.
이상혁이 벌떡 일어나더니 무릎을 끊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발 내 애원이 통해야 할 텐데.’
“제발 제 말씀 좀 들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
신이현은 상대의 행동에 난감해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이상혁의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심판의 날과 세계의 변화, SL 그룹과 정치권 등 권력자들의 처지를 설명하며 국가가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됐고, 비록 대기업 소유자가 나쁜 놈이지만 없어선 안 될 존재라는 상투적인 말은 물론 자신이 그동안 해온 일을 설명하며 시간이 촉박한 이유와 서류와 SL의 선택이 늦었지만, 진실이라는 것을 설명하며 SL 그룹이 아닌 직원들을 위해서 선처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제가 나쁜 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은…제, 제 가족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발 제 가족과 아니 SL 그룹에 목숨을 걸고 있는 직원의 가족들을 위해 부탁합니다.”
“……”
‘쿵! 쿵!’ 고통도 무시한 채 머리를 땅에 박으며 애원했다.
“제발… 부탁합니다. 당신도 모든 것을 잃었을 때의 고충을 이미 겪었으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부디…인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아……”
이상혁의 생각대로 신이현은 마음이 약해졌다.
새 작품을 쓰기 전까지 제 습작을 판단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한 곳입니다. 추천도 추천이지만 꼭 느낌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에 향방이 걸렸거든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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