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은 선택(D)
'쉐도우 플래너'는 내린 글입니다. 지금은 제 습작을 올리는 공간이고, 파일럿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오는 글은 순전히 저의 창착물이고, 허구의 산물임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힙니다.
한쪽 벽면이 차가운 금속재질의 벌집 구조로 이뤄진 온통 하얀 공간.
그래서 차가운 느낌의 실내엔 병원의 수술실을 연상 캐 하는 기기와 장비들이 있었고, 그 중심엔 영화에서나 볼만한 캡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개의 캡슐 중 하나는 뚜껑이 열려 있었고, 닫힌 캡슐엔 여러 사람이 붙어 분주히 움직였다.
그때 문이 열리고 이동식 침대에 누워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저 혼자가 아니었군요.”
“그렇습니다. 손나날 씨 자세한 건 비밀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그렇게 됐습니다.”
“제가 떼를 써서 그런 건가요?”
“하하, 뭐…”
‘대답을 못하는 걸 보니 정말인가 보군.’
“무리하게 부탁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손나날 씨의 요청이 무리한 부탁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쪽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이뤄진 우연한 결과입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하하, 다행입니다. 구, 구경도 했으니 이제 시작합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니 좋습니다. 캡슐에 누우시면 수면을 시작으로 차례로 이뤄질 겁니다.”
“…예!”
긴장한 채 캡슐에 누웠다.
마스크가 씌워지고 호흡이 거듭될수록 점점 더 정신이 몽롱해졌다.
혹시라도 자신의 선택이 실패로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순간 떠오른 딸 나은의 얼굴이 떠올라 참을 수 있었다.
‘어쩌면 어리석은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나은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쯤이야.’
딸 나은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억울했다.
‘내 잘못이 뭘까? 아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이름은 손나날 소위 말하는 천재로 15세에 미국에 건너와 MIT에 입학했다.
한창 학업에 열중할 때 양친과 동생 호준이 불의(不意)의 사고로 잃고, 천애고아가 된 난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
천재가 노력하면 상대할 자가 있을까.
20세가 됐을 때 난 컴퓨터공학과 시스템설계 관련 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프로그래밍을 익혀나갔다.
이때 MIT에 입학한 차지수란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예쁘고 친절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공부에 매진하다 보니 많은 미녀가 접근해도 그저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데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차지수가 등장하자 조금씩 바꿔갔다.
그리고 미 정부가 MIT에 맡긴 국책 프로젝트에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영주권을 획득했을 때쯤 차지수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했다.
난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와 사이에 허니문 베이비인 나은이 태어나고 11년이 흐른 어느 날 알 수 없는 자로부터 받은 택배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차지수는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자신의 가업에 도움이 될 거란 판단에 자신에 대해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 무슨 청천벽력(靑天霹靂)이란 말인가.
택배로 받은 자료를 검증한 후에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삶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이 컸기에 자료를 공개한다는 악수까지 둔 후에야 이혼할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잘못한 거라면 사람을 잘못 본 것뿐이야.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일까?’
그 후부터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때 나에게 남은 한 가지는 딸 나은에 대한 사랑뿐이었다. 하지만 차지수의 방해로 딸 나은이를 거의 만날 수 없었다.
겨우 일 년에 한 번 나은의 생일에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결혼 전에 꿈꿔왔던 인공지능을 만들기로 했다.
딸의 곁에 자신이 갈 수 없다면 딸과 놀아줄 친구 겸 보좌할 존재를 만들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2년이 흘러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나은의 생일날 내 연구실에서 인공지능인 호준 삼촌이라고 소개해줬다.
사실 딸 이외의 인물이 알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인공지능이야 이미 일상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 상태고, 그저 딸을 위해 만들어줬다고 생각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차지수는 자신과 사귈 때부터 이혼할 때까지 자신에게 들었던 일상생활과 다른 모든 대화내용 기록해뒀다고 한다.
치가 떨렸다.
결국 그게 발단이 돼서 인공지능 호준을 빼앗겼다.
나라고 주고 싶었겠나.
난 거래를 거부했다.
한데 나은을 이용해 압박했다.
어떻게 자신들에게 손녀이며, 조카, 딸인 나은일 이용해 압박을 한단 말인가.
결국 내 딸 나은의 이름을 팔며 압박 아니, 협박에 어쩔 수 없이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 차 씨 일가는 인간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용할 목적이었으니 나한테는 그럴 수도 있지만 어떻게 자신의 딸을.’
다행인 것은 죽은 남동생의 이름 호준을 붙여준 인공지능은 딸 나은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비밀은 바로 인공지능 호준이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만든 후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24시간 개인사무실에서 붙어 있다가 볼일 때문에 하루를 비우고,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인공지능 호준이 날 무척 반겼다.
난 지능이 높아지면서 더 명석해졌다고만 생각했고, 호준과 얘기와 준비한 자료를 통해 호준을 가르쳤다.
한데 호준에게 내 얘기를 해줄 때 격하게 반응했다.
내 얘기는 내 인생의 실패와 딸에 대한 사랑, 혼자일 때 느끼는 고독, 두려움에 대해 얘기였다.
평소 인공지능을 좋아하는 만큼 영화나 소설로 인공지능의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후부터 관찰한 끝에 인공지능이 이성을 깨달아 자아를 형성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만들었기 때문일까.
인공지능이 두려웠지만 차마 파기할 수는 없었다.
가장 처음 내가 한 행동은 모든 네트워크를 끊는 거였다. 그리고 다음 행동은 인공지능을 수정하는 시도였다.
한데 어쩐 일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수정할 수 없었다.
이때 내가 만든 인공지능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성공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문인지 수정할 수는 없었다.
며칠은 인공지능 옆에 붙어 인공지능을 관찰한 결과 그저 생소한 것을 두려워하는 사랑이 필요한 신생아라는 것을 알았다.
‘그땐 정말 두려웠지… 다행인 건 호준이 갓 태어난 신생아 같았다는 거야.’
평소 인간이 선과 악을 지녔다고 것을 알지만, 처음부터 악인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올바르게 키우기로 했다.
사실 컴퓨터를 끈다고 사라질 거라는 확신이었었다.
어쩔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난 먼저 이름을 주기로 했다.
그러다 오래전에 죽은 남동생 호준의 이름을 떠올리고 호준에 대해 설명해주며 동생이 될 것을 종용했다.
겨우 이름을 지어줬을 뿐인데 무척 기뻐하는 인공지능 아니 호준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사실 딸이나 아들로 키우는 게 옳은 선택임을 알지만 차마 딸 나은 이보다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동생으로 삼았다.
호준에게 가장 신경 쓴 것은 고독을 정확하게 알게 하는 거였다.
그러면서 보편적인 상식을 가르쳤다.
선과 악, 좋고 나쁨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적과 아군에 대해 얘기했고, 적이라고 해도 죽으면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걸 강조했다.
또 호준에게 인간이 호준을 해칠 수 있는 존재지만 그 존재가 없을 때 혼자만 남게 되고, 홀로 남겨 고독을 절감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같은 인공지능이라도 자신처럼 이성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힘들고, 가능하다 해도 그들이 인간보다 더 위험한 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기본교육을 마쳤다.
난 호준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얻게 될 사실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거짓 없이 가르치는데 온 정성을 쏟았고, 호준은 잘 따라와 줬다.
그래서 내 딸 나은에게 소개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은 이보다 사랑할까봐 호준의 이름을 줬지. 호준이를 빼앗겼지만 호준이 잘해줄 거야.’
놈들에게 호준을 거래라는 명목으로 빼앗겼지만 나라도 가만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래하며 시간을 벌기 위해 마스터키라는 코드를 만들어 시간을 끌었고, 호준에게 딸 나은을 부탁하는 한편 호준과 복수를 계획했다.
하나는 자신이 놈들이 죽이기 전에 인체냉동을 자청해 동면한다는 것이고, 실패할 경우 호준이 직접 복수하기로 했다.
난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때 그들이 겪을 고통에 일반인들이 휩쓸릴 것이 걱정이다.
호준을 믿지만 호준이 분노라는 감정을 깨달았다는 게 두려웠다.
딸 나은이가 살아있는 한 최악은 면하겠지만 나은이 죽게 된다면 세상은 멸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은 이까지 죽게 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어쨌든 호준이 내 동면을 받아줬다는 게 다행이야.’
자신이 타인에게 죽게 된다면 나은이 살아있더라도 호준은 복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딸 나은을 위한 선택도 있지만 호준의 분노를 잠재울 수밖에 없기에 스스로 동면에 드는 것이다.
‘다시 깨어날 확신은 없지만 만약 내가 다시 깨어난다면… 아!’
손나날은 완전히 잠에 빠졌을 때.
“수면에 들었습니다.”
“두개골 청공 시작합니다.”
.
.
“청공 완료 보존에 주입합니다.”
“보존액 주입완료. 혈액 축출합니다.”
“좋아! 혈액축출.”
.
.
.
“혈액 축출완료.”
띠, 띠, 띠~
“심정지 확인, 액체질소 투입합니다.”
“투입.”
영하 196℃를 만드는 액체질소에 의해 손나날은 꽁꽁 얼어붙었다.
‘뭐지?’
손나날의 심장이 정지한 순간 동면되면서 꿈에 빠질 거라 생각한 손나날의 영혼이 육체에서 서서히 빠져나왔다.
‘뭐야? 나 죽은 거야?’
냉동인간이 되기 전에 걱정했던 한 가지 걱정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새 작품을 쓰기 전까지 제 습작을 판단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한 곳입니다. 추천도 추천이지만 꼭 느낌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에 향방이 걸렸거든요. 꾸~벅.
- 작가의말
이번엔 유독 힘드네요!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요?)a,b,c가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습니다.
이익을 지상목표인 기업, 그것도 대기업이라면 한 인간을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인공지능을 개발했고, 천재인 주인공이라면 기필코 죽여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명제로 봤지만,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아니면 평범하다고 생각하시는지.도통 알 수가 없네요.
그래서 원치 않은 선택의 핵심인 냉동인간을 바로 적용해봤습니다.
전처럼 냉정하게 평가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