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던전 - 1
'쉐도우 플래너'는 내린 글입니다. 지금은 제 습작을 올리는 공간이고, 파일럿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오는 글은 순전히 저의 창착물이고, 허구의 산물임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힙니다.
* * *
영운은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하게 화장실을 찾았다.
투명 마법을 해제한 영운은 볼일을 보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의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라야 했다.
대머리 사내는 어디 가고, 봉두난발의 청년이 거울에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머리가 자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거울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20년 전보다 조금 더 풍성해진 것 같은데…’
맞다.
예전에는 머릿결이 가늘어 숱이 적어 보였었다. 한데 얼핏 보면 사자갈기처럼 보일 정도로 풍성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뭐, 선천적인 대머리도 아니고, 로드가 날 마법사로 만드는 과정이 개정 대법과 같은 것이니까 당연하겠지… 하지만 어색한데.’
어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직접 머리를 자르고, 면도기로 미는 게 어디 쉽겠는가.
처음엔 스트레스로 말미암은 탈모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지만, 비듬 걱정하지 않아서 좋았고, 10년이 넘자 익숙하기도 하고 자신의 트레이트마크(특징, 상징)로 삼을 정도로 어느 정도 자긍심도 생겼던 것이다.
‘…급한 것도 아니고, 우선 자리를 잡고 자르던 기르던 하자. …한데 오늘은 특히 냄새가 고약하네.’
대충 생각을 정리한 영운은 나름대로 단정하게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클린마법으로 온몸을 깨끗이 씻은 후에야 냄새 때문에 화장실을 급히 나섰다.
화장실을 나섰지만, 냄새는 여전히 퀴퀴했고, 주변의 소음도 참기 어려웠다.
‘오늘만 유난히 냄새가 심한 건 아닌 것 같고, 그것 때문인가?’
영운은 드래곤 총 로드와 수련할 때 들었던 내용과 신체제어에 대한 교육이 떠올랐다.
마나로 활성화된 신체는 마나를 이용해 제어하는 방법이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급히 떠오른 제어방법을 사용했다.
익숙하지 않아 계속 신경을 써야 했지만 조절하는 방법이 성공했다.
‘당분간 촉각은 나도 모르게 적응한 것 같고, 시각이야 집중하면 대상이 뚜렷해지는 효과니까 상관없고, 미각이야 먹어보고 조절하면 되겠지만, 후각과 청각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당분간 고생해야겠는데… 그래도 제어할 수 있으니 다행인가?’
다행히 지독한 냄새는 제어방법이 없더라도 막는 법은 있으니 참을만했다. 하지만 소음은 아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정도였다.
어느 정도 제어방법이 익숙해지자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영롱이 때문인가? …뭐 영롱이가 귀엽고, 예쁘니까 당연한가?!’
한껏 정성스럽게 영롱의 등을 쓸어내리며.
“훗, 우리 영롱이가 좀 특이하기는 하지. 영롱이 이제 당분간 머물 집을 만들러 가자.”
딸 바보가 보일 행동을 영운은 자신도 모르는 세 행하고 있었다.
“캬~옹.” - 집?
“너와 내가 마음 놓고 돌아다닐 곳 말이야… 음, 레어 같은 곳.”
“캬~옹.” - 레어, 좋아.
‘설명하면 조금씩 표현이 느는구나!’
“좋다니 다행이구나, 임시지만 신분을 구하기 전까지 필요하니까 준비해야지.”
“갸르릉.”
영롱은 머리를 영운의 팔에 척 붙이고, 갸르릉거리며 만족한 듯 보였고, 대화상대가 없는 영운은 계속 영롱이에게 설명하며 목표한 돈이 생겼기 때문인지 아주 여유로워 보였다.
제어방법에 익숙해지자 주변의 소리가 구분되기 시작했고, 영롱이도 영롱이지만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한 연인의 얘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오빠 저 사람 어때?”
“누구?”
“저기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사람 말이야. 입고 있는 옷은 등산복 같은데 상당히 세련되고, 고급 진 것 같지 않아… 음, 상표도 그렇고, 옷감도 처음 본 것 같아서…”
사자갈기를 한 영운을 발견한 남자가 대답했다.
“아! 사자갈기 스타일의 저 남자… 정말 등산복 같은데 디자인이 아주 세련됐네! …외국에서 사온 게 아닐까?”
“오빠는 알 것 같아서 물어본 건데 혹시 모르는 상표야?”
“응, 올해 국내에 출시한 메이커인데 저런 제품은 처음 봐.”
“그래? 여성복도 있을까?”
“아마 있지 않을까? 시간이 되면 같이 사러 갈까?”
“정말! 아이 좋아라.”
“에이고 귀여워, 되도록 빨리 시간 내서 같이 가보자.”
“응, 머리만 빼면 그럭저럭 봐줄 만한데 아쉽다.”
“뭐?”
“…아, 아니야 오빠. 오빠가 더 멋있지 헤헤헤.”
연인은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중이다.
여자인 이해연은 연예인을 꿈꾸지만, 실력이 없어서 남자를 등에 업으려는 중이었고, 남자인 차지혁은 조만간 대기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집안의 둘째였는데 여자가 마음에 들어 이유를 알면서도 두고 보는 중이다.
둘이 서로의 욕심은 다르지만 자주 몸을 섞다보니 정이 들어 만남을 꾸준히 지속해왔고, 사내가 제주도에 업무로 내려갈 때 남는 시간에 데이트하려고 같이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들은 아직 모르지만, 둘에게는 자식이 생겼다.
제주도에서의 일로 여자가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조만간 알게 되어 결혼한다.
집안의 반대가 있었지만 1990년대는 아직 낭만이 남아 있던 시기였고, 사랑, 자식 등이 결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차지혁이 둘째라는 게 결혼을 가능케 했다.
90년대의 국내 정서는 둘째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않는 대신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었다.
차지혁은 시간을 내어 연인인 이해연과 매장을 들렀다가 그냥 나와야 했다. 그리고 못내 아쉬운 아는 지인과 직접 만들게 된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지대했고, 꿈꿔왔던 일이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꿈은 접었지만 그만큼 영운이 입던 옷의 특징을 잘 기억했기에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구현했고,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헌데 반응이 아주 좋아서 자신과 친구들의 자본만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차지혁은 성공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기억 속의 사자갈기를 한 사내를 모티브로 한 로고와 인연을 기억하기 위해 ‘Relation Wear(관계를 입다.)’란 뜻의 메이커를 등록한다.
차지혁은 영운의 모습에서 미래를 봤고,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줄 거라 믿었다.
어쨌든 이 뜻하지 않은 스침이 남자를 등산복 디자인에 뛰어들게 했고, 국제적인 등산복제조업체를 만들게 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연이었고, 은행사건과 달리 영운도 모르는 두 번째 큰 나비효과가 되었다.
두 연인의 대화를 들은 영운은.
‘에고, 내 머리카락이 좀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사자갈기라니… 그건 그렇고, 너스페이스가 너무 눈에 띄나?’
주위를 살펴보니 정말 너무 눈에 띄었다.
다른 사람이 입은 옷들은 촌스러웠지만, 자신의 옷은 너무 고급스러웠던 것이다.
‘이거 큰일인데 얼른 아무거나 사서 갈아입어야겠어.’
영운은 멀리 갈 필요 없이 면세점에서 마음에 드는 옷과 선글라스를 산 다음 갈아입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금고에서 가져온 돈이 한화도 있기는 했지만 거의 달러와 엔화 마르크, 파운드화가 주류였지…’
영운이 가져온 돈은 달러가 제일 많았고, 마르크와 파운드 그리고 한화 순이었고 한화가 가장 적었다.
가지고 있어봐야 일상생활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음, 얼마 후면 IMF에 돌입할 거고, 외화가 부족해 금 모으기도 했으니 팍팍 써주자. 흐흐흐.’
영운은 페스이체인지 마법을 걸고, 선글라스를 쓴 상태로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달러와 엔화를 중점적으로 풀었다.
물론 틈틈이 사람 없는 곳에서 싹쓸이한 물건을 아공간에 담으며 나름대로 조심했다.
이후 면세구역의 가게를 모두 들러 돈을 쓴 영운은 마지막으로 환전 가능 금액까지 환전한 다음에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택시 승강장에 대기 중이던 택시에 올라.
“청와대 근처까지 부탁합니다.”
“청와대요?”
“예, 오랜만에 귀국했는데 갈 곳이 없네요. 그래서 청와대라도 구경하고, 근처 호텔에서 쉬려고요.”
“아! 알겠습니다.”
영운도 유산 덕택에 호텔에서 살아봤기에 호텔이 좋았다. 하지만 숙박시설에 머물려면 신분증이 필요하고, 신분증이 없기에 신분을 사회생활에 대한 고민과 생각은 당분간 접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드래곤 로드가 부탁한 후손의 부화였다.
아공간에 담긴 알의 상태는 확인해서 안심이지만 2m나 되는 알을 아무 데나 꺼내놓을 수는 없기에 던전을 만들기로 했고, 가장 안전한 산을 생각하다가 청와대 뒷산이 떠올라 북악산에 던전을 만들 계획이었다.
택시는 차선을 바꿔가며 양화대교를 건너 목적지로 향했다.
택시기사는 틈틈이 이말 저말을 하며 귀국을 환영했고, 별다른 내용은 없지만 고마웠다.
또 오랜만의 귀국이라면 광화문도 구경하자며 광화문 돌담길을 통해 목적지로 향했고, 작은 배려가 이익을 위한 선택일지 몰라도 흐뭇했다.
미래에도 누리지 못한 호사를 누리게 해준 택시기사에게 1만 엔짜리 지폐를 건네며 감사의 말을 전한 후 당황하는 기사에게 웃음으로 답하고 돌아섰다.
늦은 시간에 입국했기에 자정이 가까웠다.
영운은 느림 걸음으로 주변을 확인하고, 표지판을 참고삼아 청와대를 돌아 북악산에 올랐다.
인적이 끊긴 어두운 북악산은 영운에게 미지의 두려움을 안겨줬고, 영운의 이동에는 지장을 주지 못했지만 두려움까지 없애주지는 못했다.
‘으스스한데. 초인이 됐지만, 이 겁은 안 없어질 것 같아.’
영운은 영롱을 위안삼아 꼭 안고 산을 계속 올랐다.
주인의 두려움을 알았는지 혀로 손을 핥아 위로하는 듯 했다.
‘귀여운 놈.’
사실 아직 영운이 초인이랄 순 없었다.
영운은 지금 5서클 마법사로 일반인에 비하면 초인이랄 수도 있지만 7서클은 돼야 완벽한 초인이랄 수 있기에 어정쩡한 상태였다.
영운은 자신이 마법사며 초인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연한 생각이었고, 진정한 초인이 되려면 초인으로서의 자각이 먼저 필요했다.
또 원래부터 겁쟁이였던 영운이 한순간에 대범해질 수는 없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시각이 좋아져 못 찾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 어둠에서 목적지를 찾기에는 무리일 것 같은데… 실프를 불러 부탁할까?’
던전을 만들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랜만에 정령계로 돌아간 실프를 금방 부르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롱을 꼭 안고, 두려움을 참으며 북악산을 계속 오르며 주위를 살폈다.
한참을 오르고서야 곳곳에 설치된 철조망을 찾았다.
‘휴, 저 철책 넘어가 청와대 영역이겠지.’
이곳이 영운이 찾던 장소다.
영운이 생각하기에 안전한 장소는 청와대 영역이면서 되도록 청와대와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바로 북악산에서 제일 높은 곳의 철책이 있는 이곳이다.
어떻게 보면 철책 근처가 더 위험할 수는 있겠지만, 환상마법을 이용해 시야를 가릴 생각이고, 땅을 파서 던전을 만들 생각이기에 들킬 염려는 거의 없다.
환상마법이 걸려서 침입하더라도 자연히 되돌아 나가게 될 것이다.
영운은 어둠을 틈타 조용히 철조망을 넘어 청와대 영역으로 들어갔다.
다시 근처에서 가장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수색했다.
마침내 청와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숲이 무성하고, 북악산 쪽으로 거대한 바위를 등지고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최적지를 발견했다.
“임시로 쓰기엔 지나치게 좋지만 뭐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영롱아 넌 어때?”
“캬~옹.” - 좋아 주인.
“앞으로 떠나기 전까지 여기가 네 놀이터가 될 거야.”
“갸르릉.”
“하지만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해… 사람은 잡아먹으면 안 돼.”
“캬~옹.” - 사람?
“나같이 생긴 게 사람이야 알았지?”
“캬~옹.” - 응 주인.
“그리고 이곳에는 고대와 달리 먹을 게 없을 거야 배고프면 꼭 나에게 달라고 해야 해.”
영운의 손을 핥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 작품을 쓰기 전까지 제 습작을 판단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한 곳입니다. 추천도 추천이지만 꼭 느낌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에 향방이 걸렸거든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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