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가족
'쉐도우 플래너'는 내린 글입니다. 지금은 제 습작을 올리는 공간이고, 파일럿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오는 글은 순전히 저의 창착물이고, 허구의 산물임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힙니다.
영롱의 따스한 온기가 심신을 안정시켰다.
둘은 아공간에서 틈틈이 먹을 것을 꺼내먹으며 각자의 일에 충실했다.
그저 별거 아닌 것 같은 행동이지만 배가 부르고, 영롱이 덕분에 심신이 안정되자 차츰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었다.
‘그러고 보니 돈이 없네! 직접 가족을 볼 수는 없지만, 선물이라도 가져가야 할 텐데… 금이라도 드릴까?’
금과 보석 아티팩트는 많지만, 현대에선 팔기도 곤란하고, 주목 받게 될 확률도 높아 위험하다.
이상한 놈들이 많아서 시기하거나 시비를 거는 놈, 누명을 씌우는 놈들 등 온갖 군상이 만연해 위험하다.
‘금과 보석을 거래하려면 증빙 서류도 필요하고, 무리야. 아티팩트는 더 위험하겠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미래의 변화와 평행이론에 의한 분기점, 나비효과였다.
‘그런 건 개에게나 주라 그래.’
영운의 생각처럼 우선 과거로 회귀했으니 이곳이 자신이 경험한 과거일 수도 아니면 또 다른 평행차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비효과가 생기든 말든 미래는 영운으로 인해 변할 거다.
‘이미 내가 넘어온 순간부터 변했어. 여기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미친 짓이야… 그것보다 선물이 났겠지?’
영운은 단순했다.
고생한 이후로 가족이 항상 우선이었다.
영운은 시련을 겪은 이후 가치관이 바꿨는데 ‘하나도 못하는 놈이 둘 걱정하는 것은 웃긴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 가족에게 뭘 줄까를 먼저 생각했다.
‘선물이 먼저일까? 가족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일까?’
“이런 바보 가족부터 확인해야지… 영롱아 투명 마법을 걸고 이동할 거거든 그러니 앞으로 조용해야 해.”
“캬~옹.” - 응. 그림자 답답해.
“알았어! 자, 출발!”
힘찬 함성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이동한 영운은 투명 마법을 걸고, 플라이를 시전한 체로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한 영운은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이동할 때.
[김포행 00편 비행기에 탑승할 고객님은 2번 게이트로 와주십시오.]
‘오, 잘됐다.’
방향을 바꿔 2번 게이트를 향한 영운은 승객과 직원 몰래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륙 안내방송이 나오고 모두가 자리에 착석하자 빈자리에 앉아 가족이 있는 집까지 이동할 방법을 모색했다.
한 시간이 못돼서 김포공항에 도착한 영운은 국내선이라 쉽고 빠르게 공항을 나설 수 있었다.
한데 영운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미래에도 많던 놈들이 왜 안 보이지?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런 복잡한 곳에 아무도 없다니… 혹시 단속기간인가? 그럼, 그냥 갈까? 아니야. 조금 더 찾아보자.’
영운은 눈 씻고 찾았지만 쉽게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씨, 안양까지 내려가려면 버스비라도 구해야 하는데… 어디는 거냐 어서 나와라! 제발… 에이~씨 하필 미래에서 가져온 차가 스포츠카를 닮은 머스탱일 게 뭐냐?’
그랬다.
영운이 미래에서 가져온 차가 있었다. 한데 이차가 2015년형 머스탱이라는 게 문제였다.
2015년형 4인승 머스탱 컨버터블은 눈에 띄어도 너무 눈에 띈다는 게 문제였다.
영운이 나비효과를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지만 굳이 대놓고, 자랑하거나 개입할 생각은 없었기에 머스탱을 꺼낼 수 없고, 또 신분증도 운전면허증도 없기에 현금을 구하려는 것이다.
영운은 현금을 공항을 무대로 활동하는 소매치기를 털 생각이었다.
한데 소매치기를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사방을 주시하던 영운은 마침내 한 놈을 찾았다.
놈은 공항리무진을 같이 타는 것처럼 하며 바싹 붙어 틈을 발견하고, 3인으로 구성한 듯 시야를 방해하며 한 여성을 털었다.
‘앗싸! 저렇게 자연스러우니 발견하기 쉽지 않지.’
영운은 발견하자마자 블링크로 놈들의 배후에 도착한 후 미리 메모라이징해둔 속박마법으로 두 놈을 꼼짝 못 하게 하고, 여인의 두툼한 지갑을 꺼낸 놈을 쇼크 마법으로 기절시키는 동시 놈의 손에든 지갑을 툭 쳐서 자연스럽게 떨어트렸다.
갑자기 쓰러진 자를 발견한 이들이 놀란 순간 지갑의 주인인 여인도 뒤돌아섰고, 마침내 자신의 지갑을 발견하고, 서둘러 자신의 주머니를 확인했다.
“어머!? …앗 내 지갑! 이 나쁜 놈.”
“소매치기다.”
“뭐요? …이런 어서 경찰에 신고해요. 기사 아저씨는…”
여인으로 말미암아 소매치기로 발각되자 주변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그때 혼란한 틈을 이용해 속박마법으로 굳은 두 놈의 주머니를 뒤져 놈들의 것으로 보이는 지갑을 슬쩍해 자리를 떴다.
‘오, 역시 남의 돈을 터는 놈들이라 현금이 많군.’
돈을 털린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차피 누구의 것을 훔쳤는지도 알 수 없고, 소매치기가 잡혀도 증명할 수 없는 돈은 나라에 귀속되니 소매치기를 잡아준 것만으로 만족하며 미안함을 달랬다.
기갑에서 지폐만 꺼낸 후 클린(clean)마법으로 지문을 지운 후에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로 이동해 투명 마법을 풀었다.
“이제 편하게 마음껏 구경하며 이동하자.”
색, 색.
영롱이는 조용히 하라고 했더니 아예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영운은 조심히 안양행 공항리무진을 찾았고, 마침내 올라탔다.
시간이 흘러 목적지에 도착한 영운은 공항리무진에서 내려 평촌 근처인 호계동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섰다.
목적지에 다다랄 수록 초조했다.
‘오면서 본 거리는 익숙해… 아마도 집에는 가족이 있을 거야. 한데 문제는 과거의 또 다른 나와 만남이 가능한가가 문제야.’
평행차원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지만 단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소설이나 학자들이 평행차원에 자신과 같은 영혼을 소유한 나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서로가 만나면 강한 쪽이 약한 영혼을 흡수한다든지 죽여 흡수하고 강해진다는 등 갖가지 상상이 난무했었다.
비슷한 내용의 영화 ‘하이랜더’가 있었고, 영운도 재밌게 봤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다른 가족은 몰라도 굳이 과거의 다른 자신과 만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고, 굳이 불확실성에 도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곧 IMF로 망하게 될 과거의 자신이 걱정되지만 그건 자신이 도와주면 해결될 거라 믿었기에 되도록 과거의 자신과 만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목적지인 호계동에 도착했다.
‘가물거리지만 기억과 같아.’
자주 들렀던 빵집, 만홧가게, 공중전화부스 등 집으로 향하면서 익숙한 광경이 펼쳐지자 추억이 샘솟았다.
과거의 영운은 이곳에 살았다.
양친과 5살 위의 형 기택과 3살 아래인 여동생 수현이 5층짜리 22평 아파트 1층에 살았다.
이때가 나름으로 가장 유복했다고, 또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영운과 형인 기택은 나이 든 것도 있고, 평소 습관 때문에 아주 늦게 집에 들어왔다.
형인 기택이 얼마 전 결혼을 해 집에 없는 게 당연하지만 영운은 사업한다는 이유로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이 많았다.
보통 젊은이들이 대개 그렇지만 영운과 기택이 늦는 이유는 달랐다.
이유는 아버지 술만 드시면 불만을 가족에게 특히 엄마에게 화풀이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게 습관인 된 형과 영운은 커서도 마찬가지였고, 자식이 부모를 제압할 수도 없기에 그저 참고 사시는 엄마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늦은 나이에 조금이나마 철이 드시고, 형과 영운이 커서 많이 조심하는 편이라 많이 나아졌지만, 술만 드시면 영운도 속이 벌렁벌렁 거릴 정도였으니 엄마와 여동생은 오죽했겠는가.
엄마 덕택에 시골에 정착한 후 여동생의 푸념을 들었을 때야 여동생의 고충을 이해했다.
영과 영운은 밖으로 나돌아서 아버지의 술주정에서 해방됐지만, 여동생은 오히려 독박을 쓴 상태가 된 것이니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낫 뜨겁고, 여동생에게 한 잘못이 떠올라 고개가 저절로 숙여질 정도다.
‘참 못났었지. 한데 뭐하고 계시려나?’
아버지는 아직 직장에 계실 거고, 엄마는 집안에서 또 TV를 보고 계실 것이다.
엄마는 다 좋은데 집 밖으로 나오시는 때가 잦지 않았다.
찬거리를 살 때와 마실, 운동하실 때뿐이다.
아마도 아버지가 원인인 것 같다.
아버지의 불만은 몇 가지였는데 자신이 하는 사업을 막았다는 것과 엄마가 부업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거로 트집을 잡았다.
젊었을 때 돈만 생기면 사업한다고, 들고 나가서 말아 드셨기에 엄마는 부업으로 생활을 책임지셔야 했다.
그리고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아버지가 들고 나가셨다고 하셨다.
엄마가 부업을 포기한 이유가 돈을 벌어봤자 또 들고 나갈 게 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마 맞을 것이다.
영운의 엄마는 드라마도 보시지만 평소 뉴스와 시사, 교양, 교육, 건강 등 배움에 목말라하셨고, 그것을 즐기셨던 기억과 절대 자식에게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설득해서 자유를 많이 보장해주셨다.
아마 엄마가 더 현명한 것이 부러워 트집을 잡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영운이 살았던 아파트 뒤에 놀이터가 있었다.
1층이라 조금 시끄러웠지만 쉽게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게 지금은 오히려 놀이터가 반가웠다.
영운은 놀이터의 나무그늘 아래 서서 발코니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위저드 아이를 시전한 상태라 자세히 보였기에 엄마가 이동하실 때까지 기다렸다.
한 시간.
…
또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마침 엄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러 안방에서 나오셨다.
‘아, 엄마! …많이 젊어지셨네!’
그랬다.
20년을 거슬러 온 만큼 아직 50대인 엄마는 더 젊어 보이셨다.
영운은 투명 마법을 걸고, 발코니 가까이 이동해 엄마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슬픈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운이 이유 없는 눈물을 흘린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형의 결혼식 날 직접 사진사가 되어 결혼식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던 중이었다.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결혼식을 마치고, 폐백을 올리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며 감정이 복받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쁜 감정에 영운 스스로 무척 놀랐었다.
영운은 평소 가족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족에게 무정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가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사랑이라고 확신했다.
엄마에게 시선을 고정한 체 생각을 떨쳐버렸다.
퇴근 시간이 되어 애증의 존재인 아버지가 퇴근하셨고, 4수를 포기한 후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던 여동생의 귀가로 멀리서나마 모든 가족을 만났다.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지만 가난을 어떻게든 처리해드려야겠지?’
가족 아니 형의 가족까지 챙겨야할 상황이 되자 가문을 부흥시킬 궁리에 빠졌다.
한데 이때 친숙함과 함께 왠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이 알 수 없는 느낌은 뭘까?’
점점 더 알 수 없는 불안이 버스정류장 쪽에서부터 엄습해왔다.
친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원인을 생각하다가 또 다른 자신인 과거의 영운이 떠올랐다.
‘설마! 영운이 돌아오는 건가? 그럴 리가? …아!’
맞다.
과거의 영운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어찌 그날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1997년 10월 27일 주가 500선 붕괴가 우려되는 사태가 빚어지며 영운은 그동안 친구의 만류(挽留)로 이자를 내며 버티던 휴짓조각이 된 주식을 처분했다.
미리 처분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휴짓조각이 된 상황이라 차일피일 상황을 주시하던 중이라 집에 올 틈이 없었을 텐데 집에 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빨래와 옷가지 밑반찬을 가지러 오는 것 같다.
‘휴,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아쉽지만 미리 생각했던 대로 자리를 피하자.’
새 작품을 쓰기 전까지 제 습작을 판단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한 곳입니다. 추천도 추천이지만 꼭 느낌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에 향방이 걸렸거든요. 꾸~벅.
- 작가의말
대인33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귀환을 기점으로 전작들에 없는 새로운 줄거리가 생겼습니다.
더 많은 질책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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