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 - 1
'쉐도우 플래너'는 내린 글입니다. 지금은 제 습작을 올리는 공간이고, 파일럿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오는 글은 순전히 저의 창착물이고, 허구의 산물임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힙니다.
영운은 그동안 김인문 변호사가 마련해준 스마트폰과 자신의 폰 두 개를 가지고 다녔다.
이유는 전화가 한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울렸기 때문이다.
모두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김인문 변호사의 경고가 떠올랐다.
영운이 전화를 받지 않자 얼마 후부턴 가족의 전화도 비슷한 처지가 되어 할 수 없이 인문에게 스마트폰을 가족 수만큼 부탁해야만 했다.
SNS 시대에 가족의 한동안 대인관계가 힘들 것 같지만 걸려오는 전화에 학을 떼고는 알아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영운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 후부터 가족은 하루에 한두 번꼴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켜 꼭 필요한 전화나 메시지를 확인한 후 꺼뒀고, 크루즈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인문이 준 스마트폰으로 모든 일을 처리했었다.
영운은 지금 두 군데서 공사가 시작했다.
한곳은 얼마 전에 산 가족이 머물 집이다.
모든 것이 훌륭해 보였지만 낡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해서 보강하는 한편 화장실과 주방을 좀 더 현대식으로 고치는 아주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다른 한 곳은 시골 가게 터의 재건축이었는데 준비는 됐지만, 아직 시작하지는 못했다.
기존 건물에 세 들어 있던 이발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설계는 김인문 변호사와 잘 아는 설계사무소에 맡겨서 영운이 원하는 수준의 설계도를 얻었고, 건설사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후배 광은의 소개로 지역 건설사를 소개받아 계약했다.
지금 건설자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영운에게는 두 명의 동네후배가 있었다.
한 명은 피시방을 맡게 된 백수 후배 삼성이고, 다른 한 명은 전에 등산용품을 준 광은이었다.
솔직히 동네후배가 영운에게 해준 건 많지 않다.
삼성인 거의 없고, 광은이가 예전에 2백만 원을 빌려준 적이 있었다.
덕분에 간이 피시방의 컴퓨터 3대를 늘릴 수 있었고, 나름으로 효과를 톡톡히 봤다.
무엇보다 후배들이 간혹 찾아와서 심적으로 의지가 됐다.
두 후배 중 백수인 삼성인 피시방을 맡기기로 했기에 남은 한 명 광은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한 가지는 건설사를 추천받아 인맥을 쌓게 해줬고, 다른 하나는 평소에 가지고 싶어 했던 포크레인(굴착기)을 사서 건네줬다.
후배 광은에게 듣기론 19세부터 굴착기를 운전했단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사고도 쳤다고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가정이 어려워져 굴착기면허를 취득해 시작했다는데 이유는 뜨지 못했다.
이후 군대를 다녀와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지독하게 벌어 5천만 원을 저축했을 때 가족이 계속 발목을 잡아 한순간에 무일푼이 됐다.
그때는 영운도 있었기에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된 후 조금 더 벌어보겠다고, 빚을 내 중고 포크레인(굴착기)을 사서 직접 일거리를 찾아 일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대금을 제때 지급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래서 일을 많이 해도 수중에 돈은 늘 빠듯했고, 빚을 냈기에 이자가 나갔다.
또 중고를 샀기에 고장이 잦아 수리비도 장난이 아니라는 푸념을 들었기에 전에 들었던 내용을 기억해 후배 광은이가 원하는 모델의 최신형 포크레인(굴착기)을 사서 건네고, 돈을 벌면 갚으라고 전한 후 전화를 끊었다.
영운은 두 후배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그렇게 걷어냈다.
그 외에 영운이 가장 신경 쓰는 일은 자신의 주변을 들쑤시는 놈들에 대한 조사였다.
이를 위해 흥신소라는 곳을 처음 들러 일을 맡겼다.
흥신소 직원들이 할 일은 자신을 찾는 이들의 뒤를 밟아 신원이나 소속만 확인해주는 일이라 어렵지 않게 고용할 수 있었다.
결과를 다 받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곳은 참으로 다양했다.
모 정치인사무소, 이름도 생소한 각종 자선단체, 조폭, 지역 유지, 대기업에서도 찾아왔다는 보고서를 받았다.
나중에 상대해야 할 자들이라는 생각에 하나도 빠짐없이 따로 적어 놨다.
그리고 마침 자신도 잠적 준비를 완료했다.
이제 고인께 물려받은 것들을 살피면서 자신을 찾는 놈들이 쫓을 단서를 만들어줘 자신이 국내에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게 남았다.
많지도 않았다.
호텔과 가까운 소요산 연구소와 제주도 별장 여의도 오피스텔이다.
‘오피스텔에서 챙길 것도 있으니 잠깐 들러서 가지고 가자. 오피스텔도 감시하겠지?’
영운은 그동안 준비해둔 여권, 휴대용 태양광충전기, 태블릿 PC와 심심할 때 보기 위해 영화, 미드, 야동 등 잡다한 것들을 넣어둔 1테라 SSD를 5개와 윈스 최가 굳이 챙겨준 잡지 두 권을 챙겼다.
영운의 계획은 오피스텔을 시작으로 소요산 연구소, 제주도 별장을 들러 단속한 다음 페리를 통해 일본으로 가서 잠적할 생각이다.
그리고 가족과는 달리 배낭여행으로 세계 일주를 계획했다.
그동안 꿈꿔왔기에 들은풍월도 있고, 놈들이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배낭여행을 선택했고, 여행에 필수품과 지침서를 꼼꼼히 점검해 준비했다.
제일 중요한 여권을 편법으로 두 개 만들어 하나 배낭 한쪽에 넣어뒀고, 카드도 분실할 때를 예상해 비자카드를 따로 신청해 준비해뒀다.
또 외국은 한국과 같지 않아 초고속인터넷이 없는 곳이 많고, 느리다는 얘기가 많아 굳이 비싼 돈 주고 1테라 SSD(Solid State Drive: 반도체 형태의 저장장치)를 5개나 준비했다.
충격에 지장이 없고, 빠르며 대용량이라 하나에 수백만 원하지만, 전력소비가 적고, 오지에서 휴대용 태양광충전기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이었다.
‘이 정도면 오지에서도 충분히 쉴 수 있겠지?!’
하나하나 점검하며 준비한 며칠이 떠올랐다.
“이상 없구나! 자, 이제 출발!”
짐은 간소했다.
머리엔 정글모자, 유명 등산복과 넣을 공간이 많은 등산용 조끼, 빅사이즈 배낭과 등산용 스틱 한 쌍, 허리에 조금 두툼한 허리색과 튼튼한 등산화가 전부였다.
미끼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고인께 받은 차중 BMW Z4 컨버터블을 몰고 출발했다.
* * *
영운은 얼마 후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굳이 일부러 티를 낼 필요는 없기에 탈출하기 좋은 곳에 차를 주차하고, 오피스텔로 들어섰다.
누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고, 영운은 정글 모자를 눌러쓴 체 빠르게 이동해 승강기에 올라탔다.
다행히 경비실을 지나친 후엔 한산했다.
“휴, 비싼 오피스텔에 사는 게 편할지도 모르겠는데?!”
단독주택보단 관계자 외에 출입할 수 없는 이런 곳이 자신과 가족에게 적당해 보였고,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을 되새긴 후에야 8층에 도착했다.
띵.
승강기가 도착했다.
한데 열리는 틈에 사람이 서있는 게 보였다.
영운은 잽싸게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강제로 문을 닫았다.
가장 취약할 거로 생각했던 입구에 역시나 버젓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휴, 끈질긴 놈이구나! 헌데 어떻게 들어왔지?”
놈들은 건물에 사는 자들을 매수해서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넋 놓고 있었다면 아마도 꼼짝없이 들켰으리라.
영운은 1층에 내려가 경비실에 상황을 알리고 잠시라도 틈을 줄 것을 요청했다.
경비에 의해 8층에 대기하던 자들이 쫓겨나고 영운은 오피스텔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간을 지체하면 놈들이 더 많이 모이겠지?’
아마도 놈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
이미 의심의 소지를 준 이상 시간을 끌면 곤란했기에 김인문 변호사에게 받은 유산관련 서류와 고인의 귀중품이든 상자를 들고, 바로 오피스텔을 나섰다.
오피스텔을 나서자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영운의 특징이랄 수 있는 대머리는 정글모자로 감춰졌고, 고인의 물건 중 선글라스를 꺼내 썼기에 어느 정도 틈이 있다고 생각하고, 경비실을 거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BMW Z4 컨버터블로 향했다.
“저가다, 서라.”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던 놈들이 BMW Z4 컨버터블을 확인하더니 알아본 모양이다.
떼거리로 달려왔다.
“이런 스펄!”
영운도 덩달아 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자신이 더 차에 가까웠다.
차에 오른 영운은 상자를 보조석에 놓고, 시동을 걸고, 무작정 달렸다.
영운은 내비게이션을 소요산 연구소로 설정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종잡을 수 없이 방향을 꺾었다.
특히 신경 쓴 것은 신호가 바뀌기 전에 속도를 내서 진입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도 주차장 표지판이 보이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멀리서 커피를 마시며 지켜보는 치밀한 방법도 사용했다.
그러기를 몇 번 안심한 영운은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소요산 연구소로 향했다.
정상적으로 찾아온 적이 처음이라 내비게이션이 없었으면 상당히 곤란할 뻔했다.
‘…세상 참 편해졌어. 이 산골짜기 가지 내비게이션이 작동하다니.’
약간의 고충을 예상했지만, 문명의 도움으로 쉽게 도착한 연구소는 폭탄 맞은 듯 처참했던 외관이 말끔히 고쳐져 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깥 대문과 달리 내부로 들어서려는데 최첨단 도어락(Doorlock)로 인해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했다.
김인문 변호사에게 묻고서야 초기 상태라 기본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새로 설정하면 앞으로 자신 외에는 출입이 힘들 거라는 말에 초기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홍채인식과 음성, 비밀번호로 삼중 보안을 설정하고 들어섰다.
내부까지 깔끔히 정리돼 있었다.
김인문 변호사는 상당히 꼼꼼한 구석이 있었다.
썰렁한 연구소를 돌아보며 사건 당일이 잠시 떠올랐지만 이내 털어버리고, 2층에 도착한 후 우선 두 분이 사용하시던 방을 먼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 분의 침실에 들어섰다.
침구, 의류, 생활용품 등을 따로 분리해 정리했다.
두 분의 침실은 큰방을 공간만 커튼으로 구분해 사용하셨던 것 같다.
커튼을 걷으니 두 분의 침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다.
고인의 말씀대로 상당히 친분이 두터웠던 사실을 자연히 알게 되었다.
개인 사물 중에 중요해 보이는 것은 따로 라면 상자에 담고, 서책유도 따로 분리해서 책장에 정리했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두 분의 개인 노트북은 챙겨가기 위해 다른 상자에 넣어뒀다.
‘어쩌면 그만큼 두 분이 외로웠던 게 아니었을까?’
생활용품을 정리한 영운은 두 분이 연구실로 들어섰다.
연구를 겸한 실험실이라 생전 처음 보는 기계들이 가득했다.
당시의 처참함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때 그 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먹먹한 심정으로 다스려야 했다.
두 분의 모습을 떠올리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삼가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바람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께 감사와 함께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잠시 숙연했던 감정을 추스르고, 이곳에 온 목적을 실행했다.
‘고인이 말씀하신 도우미는 아마 인공지능일 거야. 어디 있을까?’
신세호 님이 떠나시기 전에 영운에게 분명히 자신을 도울 존재가 있다고 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고인을 장례식에 찾아와 면담을 신청한 곳 중 푸시알람의 대표가 신세호 박사님의 인공지능을 이용하고 있다는 말에 확신했다.
지하에 있다는 힌트를 주셨고, 우연히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알자 바로 슈퍼컴퓨터가 들어갈 만한 곳을 찾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곳은 한 곳이었고, 내려가 보니 온갖 잡동사니투성이다.
분명히 있음을 알기에 두 분이 숨겼을 지하로 내려가는 방법을 추리했다.
다른 공간이 있다고 가정하면 1층의 면적과 지하실의 위치를 제외한 체적을 계산해 의심되는 곳을 찾았다.
바로 거실의 벽난로의 뒤편이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벽난로의 뒷부분이 겹친 곳이 의심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차분하게 꼼꼼히 찾던 중 마침내 손때가 탄 곳을 찾았다.
“오, 드디어 찾았다. …여기군. 손때로 보면 눌렀던 것 같은데.”
꾹 스르르
“역시! 한데 키패드?”
새 작품을 쓰기 전까지 제 습작을 판단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한 곳입니다. 추천도 추천이지만 꼭 느낌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에 향방이 걸렸거든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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