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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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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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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08.0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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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03화 - 3

DUMMY

“……조용하네.”

“뭐, 그렇지.”

조용한 공간. 어색한 공기에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희세 역시 무미건조한 말투로 휴대폰을 보며 대답한다. 아…… 어색하다……. 연인이 아닌, 애매한 관계인 여자애와 단 둘이 이런 공간에 있는 건 정말 어색하고 난처한 일이구나. 처음 알았다. ……아니 보통 그걸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 않아?! 나란 놈은 대체 왜 그러는데, 나!!

관람차 안. 정신과 시간의 방이 이런 느낌일까. 희세도 나도, 어색한 공기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다. 관람차를 타자고 한 건 희세. ‘관람차는 왜? 재미없을 것 같은데.’ 라는 내 말에 희세는 ‘속도감 있는 것만 타지 말고 이런 것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하고 대답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관람차에 탔다. 그리고 이렇게나 어색하다.


힐끔 희세를 쳐다본다. 평범하지만 예쁜 차림의 희세.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고 있지만 묘하게 요염해 보인다. ……무슨 생각을?! 요염은 개뿔! 그냥 보통 때의 희세잖아! 아 그럼 그냥 보통 때에도 저렇게 색기를 뿜고 다니는 건가. 역시 나희세야, 가차 없지. 아니 그게 아니라!

“뭐해.”

“……너 보고 있지.”

“변태야?”

“너를 보고 있으면 변태인 거야?”

“이상한 생각 했잖아.”

“……들켰군.”

“풋.”

가만히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말을 거는 희세. 희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나는 눈이 마주쳐 모안한 기분이 돼 대답했다. 희세의 시비에 능수능란하게 대답한다. 희세에게 휘둘리긴 하지만 그래도 일방적으로 관광 당하지는 않는 경지니까, 이제는. 내 능청에 희세는 피식 웃는다.

“리유하고도 이런 건 안 해봤는데, 나 같은 애랑 하고 있으려니까 어색하지?”

“……그걸 아는 사람이 대체 왜 타자고 한 겁니까.”

“오늘 노는동안만큼은 적어도 너는 내 남친이니까. 이 순간만큼은.”

“……그런 거였어. 나는 전혀 모르는 계약인데. 불공정 계약 아님?”

“어. 그런 거야.”

내 죄책감을 꿰뚫는 희세. 나는 분위기를 타 희세를 흘겨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하게 대답하는 희세. 그 말에 더 대답할 말이 없다. 충격적인 희세의 발언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한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답하는 희세. 더 난감하다.

“옆에 앉아도 되지? 이러라고 있는 관람차니까.”

“……이미 제멋대로 앉아놓곤 허락은 받을 필요가 있나.”

“툴툴대기는. 아─ 좋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앉으며 상큼한 목소리로 말하는 희세. 적지 않게 당황스럽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한다. 희세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더 난감해질 테니까, 상황이.

마주 앉았을 때에도 은은하게 좋은 향이 났는데 옆자리에 희세가 앉으니 달달하고 은은한 향이 화악 코에 끼얹듯 좋은 냄새가 난다.

관람차 의자는 묘하게 좁다. 분명 둘이 앉으라고 만든 것 같은데 나나 희세나 덩치가 크지 않은데도 둘이 앉으니 좁다고 느껴질 정도. ……아마 그런 용도(?)로 만든 거겠지, 일부러. 밀착돼서 희세와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돼 더욱 부끄러워진다.

“웅도 너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 리유 같은 스타일? 아무래도 여자친구니까?”

“내 이상형을 말하는 게 의무사항입니까.”

“하. 주제에 뻗대네. 말해주지 않을 거면 상관 없어. 리유한테 오늘 재미있게 논 걸 상세하게 말하면-”

“너무 치사하지 않습니까 그건!!”

살갑게 나를 바라보며 묻는 희세. 불퉁한 태도로 대답하니 나보다 더욱 삐딱한 태도로 금세 협박하는 희세. 감히 그녀를 거역할 수 없다. 억을한 표정으로 사정하듯 말해도 희세의 표정은 완강하다.

“웅도는 역시, 가부장적인 스타일 좋아하려나?”

“멋대로 내 취향 정하지 마. 적극적인 여자애를 어느 남자애가 싫어하겠어.”

“그럼 리유랑은 정반대인데? 이상형이?”

“……사람이 늘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키고 살 수는 없으니까.”

희세의 말에 가볍게 반박하고 대답한다.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말하는 희세. 나는 뭔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리유는, 그런 이상형하고는 다른 개념이니까.

“적극적인 여자애가…… 싫지는 않다는 거지. 아니면, 좋아?”

“어…… 너 취했어? 술도 안 마셨는데?”

“멀쩡해. 왜, 술 취해야만 이런 짓 하는 이중적인 여자애 같애? 나?”

희세는 갑자기,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과도 같이 날카로운 눈빛이 되어 얼굴을 내 쪽으로 들이민다. 심장이 쿵쾅쿵쾅. 희세는 도발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금세 머릿속에서‘그 날’ 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아…… 안 돼. 돼!

‘쪽.’

“……!!”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가까이 다가오는 희세. 나는 멍청하게 다가오는 희세를, 그저 심장의 고동만을 온몸으로 느끼며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이 순간에 드는 생각이라고는 ‘희세 정말 예쁘구나’하는 것 뿐. 희세의 보드라운 입술이 내 볼에 닿았다. 순간심장박동 200이라도 찍을 기세로 명렬하게 뛰는 내 심장. 두근두근 거려? 부정맥이 안 좋아? 치 바보.

“─아핫. 너무 덥다. 사진 찍자 사진.”

“……어.”

기분 좋은 듯 얼굴이 빨개져서 말하는 희세. 희세가 이렇게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줄이야…… 나는 희세는 양반일 정도로 온통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답했다. 사실 정신이 혼란상태다. 예쁜 여자애에게 휘둘리면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구나. ‘그 일’ 이후로 다시금 몸소 체험했다.

‘찰칵’

‘쪽’

“야 너……!”

“뭐! 히히히.”

밀착할 것도 없이 이미 둘이 나란히 붙은 상태인 나와 희세. 좁디좁은 관람차 안에서 셀카를 찍는 희세. 찰칵 찍으려는 순간에 갑자기 내 쪽으로 입술을 들이민다. 희세가 수줍게 볼에 뽀뽀를 하는 모습이 카메에 찍힌다. 흠칫 놀라 더욱 빨개진 볼로 희세를 쳐다보는 나. 희세도 마찬가지로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져서 장난스레 웃으며 말한다.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나랑 사귈래?”

“……!”

“아하핫! 겁내 정색하기는. 농담이야 농담.”

나는 생각외로 보수적이다. 아니, 그냥 보이는 모습대로 보수적인가. 고백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할 만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개념 안에서는, 고백이란 건 수많은 고민과 한숨을 쌓고 고심 끝에 겨우 꺼낼 수 있는 건데. 리유한테 했을 때 그랬지. 헌데 희세는 그것을 한낱 장난 식으로 꺼낸다. 아니, 장난‘식’이 아니라 실제 장난이다. 흠칫 놀라 얼굴이 빨개져 희세를 바라보니 희세는 깔깔 웃으며 말한다. 묘하게 부끄럽다.

이제까지, 나는 희세를 이성으로 인식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나에게는 리유라는 여자친구가 있다. 아무리 희세가 요망한 짓을 해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시던 최영 장군님처럼, 나는 리유라는 지어미(?)가 있기에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희세를 이성으로 인식하지 않기 위해 뇌내망상을 비롯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여자애 쪽에서 먼저 말 꺼내고, 뽀뽀하고, 사진 찍고. ‘좋아한다’고 농담까지 하고. 농담이지만 그건 어느 정도의 감정이 없다면 불가하다고 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신이라는 녀석은 어찌나 웃긴지. 내가 하면 불륜, 남이 하면 로맨스라지만, 불륜이랄 게 있나. 사실혼 관계(?)도 아니고. 뭐라는 거야.

“희세 너…… 왜 이렇게 귀엽냐. 오늘따라.”

“나 귀여운 거 이제 알았어? 흐흥.”

“……아오. 귀여워 죽겠네.”

“귀여워 죽겠으면 어쩌게? 또 덮치게?”

“……그래도 되나?”

“그런 걸 허락 받고 하게? 남자애가? 후후후.”

“…….”

리유고 정조고 잘은 모르겠고,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읍시다. 이성과 본능의 중간상태가 된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법정 스님이 이래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라고 하신 것이구나. 모든 번뇌와 고민을 털어 놓으니 희세의 매력이 온전하게 눈으로 느껴진다.

보이는 그대로 칭찬한다. 평소의 희세는 이지적이고 도도한 요조숙녀같은 이미지라면 오늘은 상큼하고 귀여운 느낌.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요망’하다. 먼저 시비걸고 먼저 뽀뽀하고 먼저 사진 찍고. 그러면서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하는 듯 간 보는 것 같은 행동을 취하니 나는 몸이 절로 달아오른다. 그르르르, 못 참겠다, 희세! 팝콘이나 가져와라!


관람차에서의 시간은 생각 외로 길었다. 실제로 꽤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긴 시간이지만 특히 어색한 분위기로 있으려니 더욱 더디게 느껴졌다. 중간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무소유의 자세로 삶을 느끼는 대로 느끼니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관람차.”

“……응.”

조금 걸으며 희세는 말한다. 그녀의 그 말에 볼 쪽이 조금 짜릿짜릿한 기분이 든다. 뽀뽀한 게 방금 전 했던 것처럼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애써 쿨한 척 하지만 역시 나는 쫄보다.

“핫……! 저거, 사 줘.”

“옥수수?”

“응, 저 옥수수. 수원 18호.”

“뭐…… 18호? 품종 이름까지 말할 건 없는데.”

길을 걷다 이내 눈을 빛내는 희세. 노점의 옥수수를 보고 눈을 반짝인다. 먹고 싶은 모양이네. 평소 희세답지 않은 욕구에 솔직한 모습이라 귀엽다. 돈은 없지만 그것 하나 못 사랴. 얼른 가서 사 바친다.

“하앗…… 너무 커……♡ 입 안 가득 달콤한 꿀이……♡”

“너…… 너 왜 이래, 미쳤어?!”

“아하하핫. 미래한테 배운건데. 이상해?”

“그딴 걸 왜 배워 왜!! 네 이미지에 해로워, 하지 마.”

“하아……♡ 우웁, 읍……♡”

“옥수수를 왜 그렇게 먹는데! 하지 말라니까?!”

크고 아름다운 옥수수를 받아 든 희세. 나무젓가락에 꽂힌 그 옥수수를 보더니 문득 눈에 빛이 돈다. 순간적으로 굉장히 야한 표정을 지으며 신음하는 희세. 흠칫 놀라 얼른 말리며 소리 지르게 된다. 내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깔깔 웃는 희세. 이번에는 옥수수를 가로로 뜯어먹는 게 아닌, 세로로 입 안에 넣는다. 옥수수를 왜 그러게 빨아(??)먹는데! 이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희세는 잔뜩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더욱 깔깔 웃는다.

“……야.”

“왜? 신경 쓰여?”

“……아니, 팔짱은 좀, 그렇잖아.”

희세가 옥수수를 먹는 동안은 한동안 놀이기구를 타지 않고 거닐고 있다. 여기 와서 놀이기구 한 개밖에 안 탔으니, 아직은 탈 게 무궁무진하게 많긴 하다. ……청룡열차 같은 건 타고 싶지 않지만. 문득 흠칫 놀라게 만드는 희세의 당돌한 행동. 대뜸 팔짱을 끼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얼굴. 부끄러워 얼른 걸음을 늦추며 말한다. 희세는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으로 피식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한다.

본능이 이성을 이긴 상태인 나는 지금은 굳이 리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리유하고 사귀기 전에도 손은 잡았지만, 팔짱까지 끼진 않았었다. 굳이 리유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팔짱은 너무 앞서나간 것 같다. ……무엇보다 가슴이 팔꿈치랑 팔에 닿을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잖아! 간당간당하게 닿을 듯 닿지 않는 느낌이 더욱 감질맛나서 못 참겠다. 너에게 닿기를…… 크아아앗!

“팔짱은 좀 그렇고, 뽀뽀는 괜찮아? 논리가 이상한데, 웅도 너.”

“아니이…… 그거는……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었잖아.”

“흐응~ 그럼 이것도 제어해 봐. 풀고 싶으면 뿌리치면 되잖아? 완강하고 단호하게?”

“…….”

관람차에서의 일련의 일들을 말하는 희세. 나는 할 말이 없다. 아니아니, 팔짱이 뽀뽀의 하위호환(?)이라도, 그렇다고 해도 된다는 건 아니잖아. 이미 심한 범법을 저질렀으니 낮은 수준의 범죄는 계속 저질러도 된다, 이런 마인드가 곧 상습 범죄자의 정신머리인 거잖아. 고개를 내저으며 어떻게든 변명의 말을 한다.

희세는 샐쭉 눈웃음치며 말한다. 그러더니 더욱 꽈악 팔짱을 낀다. 헉……! 닿, 닿았다. 팔꿈치가, 팔뚝이. 압도적인 촉감에 녹아버려. 좀 더, 좀 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하지만 실수를 반복해도 좋으니까, 지금만큼은 좀 더…… 좀 더……!

눈이 크게 띄여져 침을 꿀꺽 삼키는 나를 보고 희세는 더욱 은밀하게 미소 지으며 아예 내 팔에 기대듯 팔짱을 낀다. ……얘 알아. 우연이라던가 그런 거 절대 아니야. 끼부리는(?) 거야. 요물일세, 요물이야. 그러면서도 나는 감히 어떻게 팔을 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느낌을 즐기고 있다.

“오. 이거 예뻐. 사 줘.”

“……이런 거, 여기서나 쓸까 밖에 나가면 100% 안 쓸 거잖아. 돈 아깝게.”

“사 줘어!”

일부러 그러는 건지, 흥이 올라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희세는 평소의 이지적인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마치 리유처럼 말을 짧게 앙증맞게 귀엽게 한다. 지나가다 머리띠 같은 것을 파는 가게에 멈춰 서서 떼쓰듯 말한다. 미키 마우스 머리띠라고 하지, 이런 거. 이런 놀이공원에서 여자애들이 곧잘 쓰는 그 머리띠. 하지만 밖에서는 쓰면 미친년(?) 취급 받는, 거의 1회용 머리띠. 1회용 치곤 꽤 비싸서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희세는 더욱 생떼를 부리며 말한다.

“여자친구 사 주세요! 어울릴 것 같은데. 이만큼 귀여우시면 밖에서 쓰셔도 예뻐요!”

“……! 아으어으이으어, 그.”

“안 사줄 거야?”

“……산다 사. 에효.”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 직원이 방긋 웃으며 말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하게 연인처럼 보이나 보다. 짐작은 했지만 다른 이에게 확정적으로 ‘여자친구’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큰 충격, 어버버 말을 못 하게 됐다. 희세는 뭔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을 쭉 펴고 말한다. 고개를 저으며 지갑을 연다. 어차피 내 재정상황은 망한 지 오래. 그래, 쓰는 김에 더 쓰자.

“귀여워?”

“어, 귀여워.”

“헤헤헷. 가자!”

“…….”

머리띠를 머리에 쓴 희세. 완전체구나. 이제 귀여운 이미지까지 장착했으니 더 이상 대적할 상대가 없구나. 솔직한 칭찬에 희세는 더욱 기분 좋게 웃는다. 다시금 팔짱을 끼고 재촉한다. 아까와 다른 반대쪽 팔에 팔짱을 껴서 다시금 새롭게 느껴지는 감촉에 아찔한 정신을 겨우 차리고, 그러면서 대답은 차마 하지 못하고 묵묵히 걷는다.

“…….”

“……오늘만, 오늘만 1일 연인이니까. 그렇게 똥 씹은 표정 하고 있지 마. 죄 지은 것도 아니고.”

“……죄 지으는 거 아닌가요.”

“누가 아는데? 모르면 됐어, 한국 사회는 그렇게 매정하지 않아.”

“아니 모른다고 넘어가면 그게 정의사회 구현이 안 되는 거 아니─”

“그럼 검사 하던가! 짜증나게. 그냥 대충 해! 오늘 하루만, 하루 연인이니까!”

“……네.”

묵묵히 말없이 감촉만을 느끼며 걸으니 희세는 넌지시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낸다. 그 말에 더욱, 감성으로 억눌렀던 이성이 되살아난다. 죄 짓는 거잖아. 리유에게. 희세는 한국 정서에 호소하는 말을 한다. 모르면 되는 게 아니라, 내 양심에 찔리니까 그러는 거잖아. 하지만 이어지는 희세의 우격다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어차피 아무리 자기혐오를 가하고 후회를 해도, 이중적인 나는 결국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으니까. 희세가 이러는 걸 묵인하는 것부터 결국 희세 말을 들어주고 있는 거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희세가 말한대로 ‘하루 연인’ 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이라도 내세우고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그야말로 정신승리이긴 하지만. 그래, 더는 생각하지 말자. 오늘 하루만, 딱 오늘 하루만 연인이야. 거기서 끝! 더 생각하지 말기!

“알았어, 갈까!”

“응.”

간신히 기운을 차리고 말하니 희세는 그제야 방긋 웃는다. 미키 마우스 머리띠를 차고 그렇게 웃으니 더할 나위 없이 예쁘고 귀여워 보이는 희세. 보는 나까지 마음이 설레고 좋다. 데이트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야 겨우, 제대로 데이트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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