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정석, 마법사의 관리는 나라에서 한다
“너.”
“응?”
“순간이동도 할 줄 아냐?”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던 연신이가 딱, 멈췄다.
그 얼굴에는 경악이 스며있었다.
···뭐지, 저 바보는.
내 앞에서 사라져 놓고 들키지 않을 줄 알았나?
한심하다는 얼굴로 연신이를 바라보자, 연신이는 파닥거리며 날개를 내저었다.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너무 강하게 부정하면 오히려 의심스럽지 않나?”
“아니, 그, 아닌데.
내가 그런 걸 할 줄 알 리가 없잖아.”
“그치?
그런 걸 할 줄 알면서 처음에 나 혼자 마차에 내버려 둔 건 아니지?
카이델이랑 처음 만날 때 그런 식으로 내버려 둔 건 아니지?
그치?”
“아, 아니···.
그, 그때는 그거잖아?
허공에서 내가 뿅 하고 나타나면 좀 그렇지 않을까?”
“순간이동 같은 거 할 줄 모른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웃던 연신이가 흠칫 굳었다.
돌 같다.
멍청이.
역시 돌멩이지, 이건.
크기도 무게도 딱 그 정도고.
아, 돌보다도 가볍나?
가벼운 돌멩이라니.
“그, 그렇지.
만약에 할 줄 알아도, 의 이야기야!
그, 그래.”
“그치?
나 혼자 갔다고 눈으로 욕할 때는 언제고.
순간이동으로 슉 하고 날아왔으면서 그렇게 날 매도하진 않았겠지.
그치?”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하다.
그때, 분명 나는 마차를 타고 왔다.
저 조그만 날개가 아무리 날아다녀도 마차보다 빠를까?
물론 빠르긴 한데···.
그래도 말보단 빠르진 않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이해는 간다.
하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순간이동쯤이야.
으음···.
생각보다 연신이, 유능할지도 모르겠네.
“그, 그럼!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하, 하, 하, 하하!”
뭐야, 저 이상한 웃음.
귀여운 놈.
나는 피식 웃고는 모르는 척해주기로 했다.
“나 나갔다 온다.”
“에엥.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순간이동도 할 줄 모르는 새대가리는 얌전히 방에 있어.
놀러 다녀도 되고.”
“할···!
할 줄 모르지.
응.
알았어.”
바보.
그거랑 날 따라가는 건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가끔 이렇게 놀려 먹어야겠네.
“갔다 올게.”
“응.
조심하고.”
“조심?”
“그냥 좀 싸해서.”
뭐야, 그냥 느낌이야?
“그냥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조심해.
신의 직감이라는 건 예언에 가까울 때가 있으니까.”
흐음···.
하긴.
뭔가 예감을 해서 알려 주는 거든,
아니면 정말로 예언 같은 거든 간에 신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겠지.
···.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 연신이를 신으로 인정하고 있네.
흐음.
“그럼 진짜 갔다 올게.”
“응.”
*********
“이제 꽤 곧잘 하시네요.”
“하하.
그런가요?”
벌써 꽤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자수를 놓고 있다.
게다가 테리가 서류하는 시간 외에는 딱 달라붙어서 가르쳐 주고 있어서인지,
똥 손 of 똥 손인 내 손으로도 언뜻 형태는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나.
이게 뭐예요?”
어느새 들어왔는지 로웰이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내 자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뭐.
기분은 이해가 간다.
내 나름대로는 장족의 발전이지만 남들 눈에는 한심할 정도겠지.
응.
“로웰.”
“정말···.
예쁜···.
모마르네요.”
모마르?
그게 뭐지?
의아함 가득한 눈으로 테리를 보자, 테리가 엷게 웃었다.
“지금 아샤님께서 수놓고 계신 것이 모마르입니다.
저번에 식물원에 갔을 때 보셨죠?”
기억 안 난다.
전혀.
눈곱만큼도.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거의 보질 못했으니까.
그래도 나는 웃으며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그 예쁜 꽃 말씀이시군요.
연보라색의.”
“네, 맞습니다.”
오.
다행이다.
자수에서의 모마르가 연보라색이길래 찍어봤는데.
실제 꽃이랑 자수의 꽃 색이 다르면 큰일이다, 싶어서 고민했는데.
하긴 뭐, 달랐어도 착각이라고 넘기면 되긴 하지만···.
“식물원···이요?”
그래서야 로웰의 약을 올릴 수가 없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로웰을 바라보았다.
“네!
제가 부탁해서 데려가 주셨어요.
정말 예쁘더라구요.
다양한 꽃이 있고, 다양한 나무가 있고···.
저 그런 데 처음 가봐서 진짜 좋았어요.”
있는 힘껏 웃으며 로웰을 약 올렸다.
뭐, 단적으로 말하면 데이트를 한 건데···.
‘테리의 성격상 분명 로웰이 꼬드겨도 가지 않았을 거다.
눈치가 없어서.
그 전의 나라면 테리가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저러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테리는 의외로 눈치가 없다.
지금도 로웰이 저렇게 온몸으로 불쾌함을 내뿜고 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나에게 웃어주고 있을 뿐이니.
“테로아님은 자주 가 보셨어요?”
“아뇨, 저도 처음 가봤습니다.
갈 시간도 없고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아샤님 덕분에 가봤네요.”
오.
로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하.
전에 식물원 가자고 꼬드겼다가 차였구나?
나는 로웰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로웰님도 가 보셨어요?
너무너무 예쁘더라구요.”
“···저는 그런 데 갈 여유가 없어서요.”
로웰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여유가 없는 게 사람이 없었겠지.
“그렇군요!
하긴 로웰님처럼 아름다운 분은 저랑은 다르니까요.
저처럼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못 가진 않으시겠지요?
부러워요.”
물론, 네가 가장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은 나랑 같이 갔지만.
아, 위험해.
아주 조금 재밌다.
“무, 물론이죠.
호, 호호호호호.”
와, 악녀웃음.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로웰님은 웃음소리도 예쁘시네요.
저는 너무 털털해서···.
혹시 어딘가의 공주님이나 귀족 아니세요?”
테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로웰을 바라보았다.
말로는 하지 않지만 그런가? 라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으이그, 이 순진한 남자야···.
당연히 비꼬는 거지···.
나는 그런 테리에게 활짝 웃어주었다.
“그, 흠흠.
테로아님, 서류에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아아, 네.”
테리가 자리로 가서 깃펜을 잡았다.
헤에.
만년필이 아니구나.
“더 서명할 서류 있나요?”
“이제 서명할 건 끝났습니다.
그것보다 테로아님···.”
“앗!”
일이 끝났다는 걸 듣자마자 나는 바늘로 손을 찔렀다.
아프다.
실수했다.
너무 세게, 빠르게 찔렀나 보다.
꽤 피가 나왔다.
“아샤님!”
테리가 놀라 내 쪽으로 달려왔다.
좋았어.
어떻게 목적은 달성했다.
너무 초과 달성해서 문제지만.
“피가···.”
내 손 아래에는 작은 피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망할.
바늘을 빼는 게 두렵다.
여기는 회복마법사도 없는데···.
돌겠네.
“요즘 익숙해졌다고 너무 방심했나 봐요.”
나는 하하, 하고 웃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그 정도까지 아프진 않지만 이래야 인간미가 있어 보이지.
대학에서 가끔 들었던 소리가 있다.
저거는 사람 같지가 않아.
라고.
언제더라···.
아마 3학년이 되고 얼마 안 돼서 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꽤 불어 있었다.
그래도 누구와도 얽힐 마음이 없는 나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 과제 내가 잘 하고, 시험만 제대로 보면 성적은 나온다.
그거면 됐으니까.
하지만 내가 좀 물렀었다.
“윽.”
어느 날, 내 지정석이 되어버린 자리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책상 서랍에 손을 넣었다.
안에 아무것도 없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책상 안에 죽은 쥐가 들어가 있었던 이후로 생긴 버릇이었다.
그걸 알고 있을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나에게 관심이 많았던 것일까.
싫다와 좋다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게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책상 서랍의 가장자리에 칼날을 고정해 놓았다.
그것도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서랍의 옆구리 쪽을 파서.
나는 작은 신음성과 함께 손을 밖으로 꺼냈다.
손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말은 하고 있지만 내게 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작게 수군거리는 그 소리에는 분명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휴지.”
나는 가방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휴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손에 둘둘 감았다.
사실 손톱의 반 정도 되는 살이 거의 떨어져 나갈 뻔했지만,
강의를 결석할 마음은 없었다.
왜냐면,
돈이 아까우니까.
뭐, 떨어져 나갔으면 나라도 병원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안 떨어져 나갔기도 하고···.
휴지로 누르니까 어떻게든 됐으니까.
“독한 년.”
그런 나를 보며 동기들은 수군거렸다.
흠.
생각해보니 열 받네.
왜 욕은 하고 지랄인가.
내가 자기들한테 뭘 했다고.
아무튼, 그때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 같지도 않다, 라던가.
기계인가, 라던가.
눈물은 있는 거냐, 라던가.
내가 기계든 사람이든 지들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아무튼, 결론은 그거다.
인간미 없는 여주인공이란 접근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러니 일부러라도 빈틈을 만들고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괜찮아요, 아샤님.”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내 손을 감싼다.
바늘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절묘하게 내 시야에서 바늘을 가린다.
오오.
“괜찮습니다.
로웰, 베로타 군을 불러와 주세요.”
“네?
절대 안 됩니다.”
로웰의 눈이 차가워졌다.
베로타···.
회복마법사인가?
바보 같은 짓이다.
바늘에 깊게 찔린 건 맞지만 죽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게 회복마법사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줬다가 성에 이야기라도 하면 어찌 되겠나.
예전에 회복 마법을 걸어줬을 때를 기억해 내보면, 꽤 탐탁지 않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엄청 비싼 거겠지, 그거.
드문 능력이고.
상당수의 소설을 생각해보면 대충 감은 온다.
마법사는 제국에서 독점한다거나···.
마법 왕국이 따로 있어서 다른 국력은 다소 약해도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고 견제받는 다거나.
마법사를 나라에서 관리하는 소설은 절대 적지 않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 마법은 보조 마법 같은 거라고 들은 적이 있다.
공격마법 같은 걸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그 와중에 회복 마법이라면···.
역시 대단한 거겠지.
“저는 괜찮아요, 테로아님.
돌아가서 봐 달라고 하면 되니까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 봐도 될까요?”
“안 됩니다.”
엑.
엑.
어째서죠.
나는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줬는데?!
“하지만···.”
“이렇게 피를 잔뜩 흘리면서 어딜 가신다는 겁니까.”
으음.
이 정도 피가 빠져나가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
초등학생 땐 내 몸 주위에 작은 피 웅덩이가 생겼는데도 죽지 않았다.
농담이 아니라 그때 500mL 한 통 정도는 아마 피를 흘렸을 것이다.
다만, 죽지는 않지만 거의 죽을 뻔하긴 했다.
다음날 일어나질 못했으니까.
“괜찮아요, 테로아님.
테로아님께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요.”
말에 은근히 의미를 넣는다.
나는 알고 있다.
당신들이 숨기고 싶은 것을.
테로아는 몰라도 로웰은 알아들을 것이다.
실제 로웰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로웰님, 마차를 준비해달라고 기사님께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알아들은 사람은 퇴장해주었으면 한다.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로웰에게 말했다.
평소라면 비꼬거나 했을 테지만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테로아님.”
“아샤님···.
어서 처치해야···.”
“괜찮아요.
저는 테로아님께서 하고 싶으신 일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요.”
못 알아들은 놈에게는 알아들을 수 있는 계기를 더 던져줘야지.
나는 아픈 듯 찌푸리며 웃어보였다.
- 작가의말
30분 내로 한편 더 올라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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