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의 정석, 말은 날뛰어줘야 제맛이지
“잘 하시는군요.”
테베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 경우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 쑥스러운 듯 미소지었다.
“아직 달리는 법은 모릅니다.
타는 방법만 배워서요.”
“아샤님이 사는 세계에는 말이 있습니까?”
“네.
아, 하지만 타고 다니지는 않아요.
말보다 더 빠른 탈 것들이 있거든요.”
테베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겠지.
이 세계에서 말보다 더 빠른 탈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전송 마법.
이 왕궁에만 해도 전송 포인트가 두 곳 존재한다.
물론,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도 가능하다.
뭔가 순간이동 장치 같아서 재미있지만, 실제는 과학이 아니라 마법이었다.
전송 마법은 어마어마한 마나를 소비하는 마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포인트.
포인트는 쉽게 말하면 마나가 아주 많은 곳이다.
그 땅에 고여있는 마나가 아주 많은 곳.
그래서 마법을 사용하기 용이한 곳이다.
게다가 이 포인트는 일종의 좌표 역할도 한다.
이 소설도 다른 소설처럼 이동할 좌표에 무언가가 있으면 사고가 난다.
그래서 각 포인트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의 포인트가 사용될 때는 어떨까.
한 포인트로 여러 사람이 전송을 시도하거나
내가 가려는 포인트에서 누군가가 전송을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현황표.
말이 표지 우리로 따지면 태블릿 같은 패널 모양이다.
거기에는 각 포인트의 사용 여부가 표시되며 사용예약도 가능하다고 한다.
“말보다 빠르다니···.”
“그래도 전송 마법보다는 느려요.”
나는 나를 태워준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말은 기분 좋은 듯 목을 숙이고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때였다.
“벌써 승마를 마쳤는가.
정말로 말을 탈 줄 아는군.”
“폐하.”
나는 말에 탄 채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의 인사가 따로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걸 배우지 않았다.
데바인과 거의 이야기조차 하지 않은 내가 예법을 알면 이상할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맞겠지.
카이델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엷게 웃었다.
“갑작스러운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그대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한 것이 처음인데 이 정도쯤 못 들어주겠는가.”
카이델이 엷게 웃었다.
카이델의 본성을 아는 나로서는 솔직히 저 웃음조차도 무섭게 느껴진다.
하지만, 뭐 그렇지···.
사람이란 게 한 가지 본성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때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카이델도 카이델의 일부겠지.
다만 그 깊숙한 곳,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진정한 카이델은···.
“이제 놔주셔도 됩니다.”
혼자서 평보를 해본 적은 없지만···.
내 생각대로 되려면 테베가 말을 타야 한다.
나는 덜덜 떠는 손을 감추기 위해 고삐를 꽉 잡았다.
지금 내가 하려는 건 까딱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승마에 있어서 생초보를 겨우 면한 수준의 내가 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카이델과 떨어졌는데 질투를 받지 않으면서 테베와 단둘이 있을 수 있고,
호감도가 순식간에 올라갈 수 있는 사건은 이런 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차피 나는 죽으면 다시 돌아갈 것이다.
첫날의 그 숲으로.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겠지.
“···.”
그렇게 생각하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두려움으로 덜덜 떨린다.
테베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불편하십니까, 아샤님?”
“아뇨, 괜찮아요.
오랜만 인데다 낯선 말이라 긴장되어서 그래요.”
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엷게 웃었다.
나를 보며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약한 척한다’라고 했던 웃음.
하지만 테베에게는 잘 먹힐 것이다.
“같이 따라와 주실 수 있나요?
아직 교관 없이 혼자 다니기엔 불안해서요.”
테베는 카이델을 바라보았다.
카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스터 경.
아샤를 잘 지켜봐 주게.
나도 간만에 승마를 즐겨야겠군.
의복을 갖추고 오도록 하지.”
됐다.
내가 승마를 한다고 하면 카이델이 저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먼저 평보를 시작하고 있어도 될까요, 폐하.”
“그러도록 하라.”
테베는 카이델에게 예를 갖춘 후 자신의 말에 탔다.
갈색의 다소 유약해 보이는 내 말과 달리 흰색의 영리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아마도 성미가 사납지 않은 녀석을 내게 붙여준 거겠지.
딱 좋다.
나는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눈을 가만히 감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괜찮겠어?
너 같은 겁쟁이가?
냉소적인 내가 낄낄거린다.
나는 내가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차피 소설이잖아?
진짜 죽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달랬다.
고통은 있겠지.
낙마했을 때의 아픔은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아이를 떠올렸다.
나의 천사.
나의 구원자.
그 아이를 위해서 나는 돌아가야 한다.
나는 눈을 떴다.
테베는 내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보의 자세는 배웠다.
좌 속보도 경 속보도 배웠다.
문제는 빠르게 구보를 해 본 적은 없다.
그래도···.
나는 이를 악물었다.
“미안해···.”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말의 귀에 속삭였다.
이해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내 최소한의 미안함의 표현이었다.
나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발뒤꿈치로 말의 배를 찼다.
있는 힘껏.
“아아아아악!”
“아샤님!”
주먹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고삐는 손에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튀어나가는 속도는 내 예상보다 더 빨랐다.
겨우겨우 자세를 바로잡아 말의 갈기를 꽉 쥐고 엎드렸다.
생각한 것보다 몸의 자세가 힘들었다.
온몸이 마치 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흔들린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앞으로 몸을 숙였다.
최대한 몸을 숙여 말의 목을 끌어안아야 떨어지지 않는다고 가일이 말했었으니까.
말은 빠른 속도로 달렸다.
나는 칼처럼 몰아치는 바람을 견디며 눈을 떴다.
앞에는 다행히 장애물이 없었지만···.
곧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테베에게 잡히더라도 일단 숲에 들어가서 잡혀야 한다.
그래야 카이델이 찾기가 힘들 테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 고삐를 조금 당겼다.
하지만 놀란 말은 말을 듣지 않았다.
숲 쪽으로 방향을 돌리려 왼쪽 고삐를 계속 당겨봤지만 계속 직진할 뿐이었다.
끄응···.
이렇게 되면 최대한 멀리라도 가는 수밖에.
나는 방향을 바꾸는 것을 포기한 채 말의 등에 바짝 엎드렸다.
“아샤님!”
예상대로.
테베의 말은 그리 멀리 가지 않아 나를 따라잡았다.
애초에 이 말은 달리기 위한 말이라기보다 승마연습을 위한 말인 듯 보였다.
그런 말이 테베의, 기사의 말보다 빨리 달릴 리가 없잖은가.
뭐, 내 생각보다는 빨랐지만.
나는 테베를 보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연기는 아니다.
사실 진짜로 무섭다.
“아샤님, 이쪽으로···.”
테베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내게 두 손을 내밀었다.
테베의 말은 내 말과 부딪힐 것 같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떨어지면 죽는다.
하지만 테베가 날 떨어뜨릴 리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고삐를 놓았다.
두 팔을 테베에게 뻗자 테베가 내 몸을 단단하게 잡았다.
그와 동시에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말이 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꺄···!”
몸이 허공에 대롱대롱 떴다.
하지만 테베는 나를 놓지 않았고, 내가 땅에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다행이다, 가벼워서···.
이래서 소설 속 여주인공들이 거의 다 마른 설정이구나.
테베는 얼어있는 나를 조심스럽게 끌어 올렸다.
테베의 품에 안기고 나서야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십니까, 아샤님.”
“로이스터 경···.”
테베가 고삐를 당겼다.
테베의 말은 우아하게 멈춰섰다.
그리고 내 말은 어딘가로 달려가 사라졌다.
···.
저 말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욕심 때문에 아마 저 말은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소설이다.
모든 것은 소설, 게임이다.
나는 애써 말에 대한 생각을 지우며 테베를 바라보았다.
테베는 드물게도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가 보일 정도로.
아.
이때 살짝 울어줘야 테베가 마음이 움직일 텐데.
아쉽게도 바람에 시달린 탓에 눈이 메말랐는지 눈물의 ㄴ자도 보이지 않는다.
우는 척 눈을 비벼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테베를 바라보고 있는데,
오히려 테베의 눈동자가 글썽이기 시작했다.
···.
엑?
“로이스터 경···?”
테베는 거의 우는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록색 눈동자가 물기 때문에 이지러진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조금 넋을 놔버렸다.
조금 전에 놀랐던 것도 사라지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테베의 눈동자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테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기분 탓인지 그 손이 떨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초록색 눈동자에 맺힌 물기를 닦아주기 위해서.
하지만 내 손은 테베의 눈에 닿지 못했다.
그 전에 테베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다행입니다, 정말···.”
테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안도감 때문일까.
아니면 나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일까.
어느 쪽이건 성공이다.
카이델을 자극하지 않고 테베에게 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주어야 한다.
카이델의 옆에 내가 있는 한,
카이델의 옆에 테베가 있는 한 언제든 나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그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죄송해요, 로이스터 경···.”
나는 조심스럽게 테베의 뺨에 다른 쪽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신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눈동자에 고여있던 물방울이 툭툭 떨어져도 테베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요···.”
나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것이 내가 테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
나는 그 뒤로 다시 방에 박혀있기로 했다.
대외적인 명분은 두려움.
오랜만에 나갔는데 사고가 일어났다.
그래서 두려워서 다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식의 이유였다.
테베와 마구간으로 돌아왔을 때,
카이델은 굳은 얼굴로 나와 테베를 맞이했다.
“···.”
“죄송합니다, 폐하.”
카이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테베는 그 앞에 엎드렸다.
테베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카이델은 테베에게 나를 부탁했다.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하는 것이겠지.
카이델은 나를 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너무 오랜만이라 순간 조절을 실수하는 바람에···.”
카이델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
그 모습이 순간 낯익은 손과 겹쳐 보였다.
피할 뻔했다.
하지만 피해선 안 된다.
이건 카이델의 손이다.
만약 피하면 카이델은 다시 집착하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의 내가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고 있지 않아서 카이델은 안심하고 있는 거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나는 얌전히 카이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카이델은 엉망으로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그리고 상처 없이 무사한 내 얼굴을 보더니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가 무사하다면 그걸로 됐다.”
그것은 내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테베에게 하는 말이었다.
알아들었을 텐데도 테베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돌아가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카이델과 함께 성으로 돌아왔다.
테베 쪽을 돌아보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부터 다시 방에 박혀있는 생활 중.
다 예상대로 진행되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
“···.”
테베는 내게 시선을 주지 않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의 차가 차갑게 식어가는데도 테베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내 말에 대답해 주기는 하지만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웃어주지도 않는다.
으음···.
···.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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