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 폭탄
소련군은 이번에는 상당한 수준으로 방어 준비를 해둔 것이 틀림없었다. 어둠 속 여기저기서 불꽃이 번쩍거렸다. 예광탄이 빗발치면서 순간, 커다랗고 노란 섬광이 번쩍거렸다.
쿠과광!
오토가 외쳤다.
"2시 방향 발사광으로 고폭탄 발사! 거리 950!"
티잉!
티거가 발사한 고폭탄은 탄도가 낮게 깔리며 나아갔다. 하지만 다시 2시 방향에서 무언가가 번쩍거렸다.
"50정도 올려!"
헤드셋에서는 뷜리겐 전차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3호차 기동불가! 사격가능!"
슐레프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1중대! 빠른 속도로 주저항선까지 전진한다!"
오토가 외쳤다.
"1소대! 수신 완료!"
"2소대 수신 완료!"
한편, 하이에는 지크프리트 4인조와 선두를 달리며 참호 속으로 뛰어들었다.
"윽!이게 뭐야!"
올라프는 고작 무릎 높이까지 밖에 안되는 참호를 보고 외쳤다.
"이거 파다 만거냐!"
하지만 그 참호에는 낙엽이 깔려있었고 위에는 그물망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하이에가 외쳤다.
"이건 가짜 진지입니다! 빨리 이동해야 합니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가짜 참호까지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오토 또한 무전을 통해 이 소식을 들었다.
"62 확인점은 보병 정찰 결과 가짜 진지로 확인되었다!"
'가짜 진지까지! 방심하면 안된다!'
오토는 어둠 속에서 상부 해치 위로 상체를 내밀었다.
퍼엉! 쿠궁! 쉬잇! 쉿! 드르륵
하늘에서 포물선을 그리는 조명탄과 여기저기서 번쩍거리는 발사광이 붉게 이곳을 비추고 있었다. 소련군은 짧은 시간 동안 상당한 수준의 방어 진지를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통나무들이 덧대어지고 흙을 뿌려놓아 항공기로부터 위장하고 있는 진지가 많았다. 육중한 티거는 통나무들을 나뭇가지 부수듯 궤도로 짓밟고 전진했다.
"1소대 주저항선 돌파!"
치열한 교전 끝에 독일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소련군이 파둔 참호에서 휴식을 취했다. 급하게 만들어둔 참호라 비좁기 그지 없었다.
그 때, 지크프리트 4인조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하이에 그 녀석이 말이야! 다리 밑에 매달려서 폭탄을 제거했네!"
"수류탄으로 로스케의 기관총을 격파했네!"
"참호에서 백병전하는데 순식간에 달려들어서 로스케 놈을 헤치웠지!"
보병들은 모두 지크프리트 4인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내가 여태까지 두 번 참전하면서 같이 싸우는 것이 자랑스러웠던게 둘 있었네! 첫째는 한스 파이퍼, 두번째가 저 녀석일세!"
전차병들은 모두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오토는 속이 부글거렸다.
'내가 여태까지 격파한 전차가 몇 대고 야포가 몇 문인데 저딴 형벌부대원을?'
에밀이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마티아스도 말했다.
"진짜 좋은 놈 같네."
이제는 전차병들까지 하이에를 두둔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크프리트 4인조가 속한 랑 소대장이 하이에에게 이번 일에 대한 증명서를 써주기로 했다. 형벌 부대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장교 2명의 증명서가 필요했다.
랑 소대장이 형벌부대 소대장 할더에게 말했다.
"둘의 증명서가 있으면 저 실력 좋은 친구가 원래 자리로 복귀할 수 있지 않소? 하나는 내가 써주겠소."
모두의 시선이 할더에게 쏠려 있었다. 형벌 부대원들도 할더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더는 속이 부글거렸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하이에에게 말했다.
"국가를 위한 용기와 희생 정신으로 큰 공을 세웠군. 이번 일은 내가 보고서로 올리겠네."
보병들과 형벌부대원들은 모두 하이에를 축하하고 있었다. 오토와 동기들은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주 영웅납셨군!'
그렇게 하이에는 소대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한편, 지크프리트 4인조는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소련군의 통신선을 찾는 임무였다. 호르스트는 바닥을 손으로 훑다가 통신선을 찾았다.
"찾았다!"
올라프는 가위로 통신선을 끊어내고 다시 파묻었다. 그렇게 넷은 통신선을 끊어낸 다음에 주변에 미리 파둔 참호 안으로 들어갔다. 참호 위에는 나뭇가지를 덮어두고 흙도 덮어서 완벽히 위장한 상태였다.
지크프리트 4인조는 그 참호 안에서 소련군 통신병이 오기를 기다렸다. 전부 얼굴에 검뎅을 묻혀놓아서 눈만 희게 번뜩거렸다. 로베르트가 입 안에서 과일 캔디를 굴려먹었다. 올라프가 말했다.
"쉿!"
부릉 부르릉
엄청난 올라프의 방귀 소리가 났다
"누구야!"
"조용히 해!"
'못 참겠다!'
로베르트, 크리스티안, 호르스트가 코를 참호 밖으로 잠시 내밀었다. 급하게 만든 참호라 비좁고 답답했다.
"비켜! 나만 공간이 없잖아!"
5분 뒤, 크리스티안이 수근거렸다.
"나 오줌 마려."
잠시 뒤, 참호 밖에 포탄 탄피가 빠져나왔고 오줌이 참호 밖으로 뿌려졌다.
부르릉 부릉
"어떤 놈이야!"
"쉿!"
어디선가 풀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지크프리트 4인조는 코를 틀어막고 귀를 기울였다. 소련군 통신병이 통신선을 고치러 온 것이었다. 그 통신병은 땅바닥을 살펴보며 통신선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는 지크프리트 4인조가 숨어있던 참호의 뚜껑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소련군 통신병은 이것도 모르고 계속 선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지크프리트 4인조가 녀석을 붙잡았다.
"우와와악!"
호르스트가 잽싸게 통신병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렇게 지크프리트 4인조는 포로를 잡고 의기양양하게 복귀했다.
만토이펠 대대장이 이 포로를 심문했다. 심문 결과 소련군은 대규모로 방어 태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어냈다.
'역시 놈들은 알고 있었군!'
이제 슐레프 중대는 명령대로 계속 남하한다면 조만간 시가전을 치뤄야했다. 방어 준비를 제대로 마친 시가지를 공격하는 것은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오토 또한 조만간 있을 시가전을 생각하며 식은 땀을 흘렸다. 현재 구데리안의 2기갑집단에서도 24차량화군단이 제일 선두였고 그 중에서도 발터 모델의 3기갑사단이 엄청난 속도로 전진하며 송곳 같은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슐레프 중대도 이 3기갑사단에 속해 있었다. 혹시나 소련군이 역포위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은 어디까지 왔을까? 소련군 병력은 어느 정도지? 도대체 어디까지 포위망을 형성하는건가?'
하급 장교인 오토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부대의 식량 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토질이 워낙 좋지 않았고, 제대로된 도로가 없어서 식량 운반이 힘들었던 것이다.
질퍽질퍽한 땅에 전차들은 거대한 궤도자국을 남겼고 엄청난 진흙이 궤도에 끼었다. 전차병들은 악으로 깡으로 굶주림을 참아야했다. 군마들도 썩은 건초를 먹으며 힘겹게 행군해야했다.
그 때 누군가 외쳤다.
"보급 폭탄이다!"
Ju52 수송기를 향해 병사들은 양손을 크게 흔들며 달려갔다.
"여기야! 이 쪽이야!"
위이잉 위이이잉
Ju52 수송기가 지나가면서 하늘에 수많은 작은 낙하산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 해파리 같은 수많은 낙하산들이 흔들거리며 내려오는 것을 보며 병사들은 미친듯이 기대했다.
"식량도 있겠지?"
"제발 담배도!"
티거 조종수 마티아스는 떨어진 보급품들을 재빨리 주워서 열어보았다.
"탄약이다!"
다른 병사들도 전부 보급품을 확인했다.
"이것도 탄약이야!"
"수류탄이다!"
"의약품이다!"
다행히 탄약은 많이 받았지만 불행히도 식량은 조금 밖에 없었다. 전차병들은 캔디롤 한 개를 다섯명이 나눠먹어야했다.
"밥도 안주고 어떻게 싸우란거야!"
지크프리트 4인조는 용캐도 구한 빵을 나눠먹고 있었다. 올라프가 보급품을 떨굴때 쓰는 낙하산 천을 자랑했다.
"이거 똥 닦을때 쓰면 좋겠다!"
"넌 먹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냐!"
한편 오토는 보급품 속에서 커다란 군용빵을 찾아내서 티거 속에서 먹고 있었다.
"우물우물"
그 때, 포수 에밀이 포탑 해치를 열고 오토가 혼자 빵을 먹는 것을 발견했다.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도 이걸 목격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오토가 외쳤다.
"자네들을 위해 내가 구한 군용빵일세!"
한편, 한스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전차 설계국! 말리셰프 공장! 하르키우 트랙터 공장까지! 소련군은 이 공장을 조만간 대피시키겠지! 그 전까지 이 곳을 점령한다면?'
한스는 집무실의 모형 지도에 있는 각 사단을 뜻하는 표식을 움직였다. 현재 오토가 소속한 3기갑사단은 엄청난 속도로 남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반면 남부에서 치고 올라와야하는 클라이스트의 1기갑집단은 생각보다 진격이 느렸다. 늪지대라서 차량을 기동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한스는 초조함을 느꼈다.
'2기갑집단에서 지원군을 보내야하나?'
한스는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굴렸다. 책상 위에서 가르랑거리던 새끼 호랑이 한 마리가 한스에게 와서 머리까지 올라오더니 머리를 쥐어 뜯었다.
"악! 그만둬! 악!"
얼마전에 한스는 이 새끼 호랑이를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그 당시 헤르만 괴링은 애완용 새끼 사자를 키웠고 융커 사회, 군인 사회에서는 이러한 맹수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것이 권력의 상징이었다.
처음에 이 선물을 받고 당황스러웠지만 어쨋거나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한스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은 새끼 호랑이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새끼였음에도 불구하고 발바닥이 엄청나게 큰 것이 범상치 않았다. 한스는 계속해서 현재 키예프 포위 작전을 고민했다.
'아무래도 1기갑집단에 지원 병력을 보내는 것이 좋겠군...'
새끼 호랑이는 이제 보고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안돼! 안돼!"
잠시 뒤, 부관이 우유가 들어있는 젖병을 두고 갔다.
한스는 새끼 호랑이를 품에 안고 우유가 들어있는 젖병을 물리고는 최근에 올라온 보고서를 읽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소작농과 농민들의 갈등이 있다고? 지금 상황이 급박한데 이게 뭐라고...'
한스는 그 보고서를 옆으로 치웠다. 이제 새끼 호랑이는 우유를 마시고 한스의 군복에 오줌을 쌌다.
"으익!"
한스는 이 새끼 호랑이를 동물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나는 도저히 못 키우겠다! 괴링 그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키운거냐!'
그 날, 한스는 오랜만에 새끼 호랑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에밀라와 마야가 한스를 맞았다. 에밀라가 눈을 크게 떴다.
"그...그건 뭐야?"
마야가 외쳤다.
"호랑이다! 내꺼야!"
마야는 새끼 호랑이를 소중히 안고는 뛸듯이 기뻐했다.
"생일 선물이죠?"
한스는 뜨끔했다. 사실 마야의 생일을 잊어버린 것 이었다.
"하하! 깜짝 생일 선물이다!"
위 그림에서 노란색 별표가 오토 부대가 소속된 24 차량화군단입니다!
- 작가의말
지금 외출 중이라 4시간 쯤 뒤에 퇴고하고 현재 오토 부대 위치 지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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