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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붓, 綠筆

공허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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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필(綠筆)
작품등록일 :
2013.07.09 20:23
최근연재일 :
2014.03.27 05:04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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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
추천수 :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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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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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0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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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 깨진 자물쇠 - 5

DUMMY

"저, 혹시 명부에서 이름들 다 지운 게 누군지 아십니까?"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이고 있는 로안의 등 뒤로 어렴풋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목소리였지만, 네즈보다는 조금 더 얇았다. 로안은 일어나서 대답을 해야 했다. 명부에서 방금 이름들을 지운 사람은 로안이었다. 그러나 로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그대로 팔을 옮겨 좀 더 편한 자세로 엎드렸다. 이 방에는 실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실은 로안이 아침 해를 보고 나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로안은 남자와 대화하는 책임을 실에게 미뤄놓은 채 꼼짝도 않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이봐요, 거기 엎드려 계신 분?"


기대하던 실의 목소리 대신 로안을 깨운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로안은 입 밖으로는 절대 내지 않을 욕설을 속으로 가라앉혔다. 로안은 그것이 몸이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불러내는 무신경한 사람에게 퍼부을 언사로는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잠시 잠든 사이에 실이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약간을 더 밍기적대던 결국 로안은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앞뒤 상황을 알 리 없는 남자는 엎드린 그대로 목만 돌려 잡아먹을 듯이 자신을 노려보는 로안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질문을 계속했다.


"여기 학회 끝나고 돌아가실 분들 명단 말입니다. 아까 아침에 확인했을 때는 분명히 다섯 분 정도 남아계셨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시나 해서."


손에 명부를 잔뜩 들고 있는 방문자는 로안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젊다기보다는 앳된 모습이었지만, 몸으로 나이를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로안은 헝클어진 머리채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 그거 제가 지웠어요. 전부 아침에 생각이 바뀌셨다고들 하셔서."


"다섯 분 전부요?"


로안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피곤하다고. 이제 알 거 다 알았잖아.' 로안은 내심 남자가 자신의 상태를 깨달아주기를 바랬다. 그녀의 충혈된 눈동자를 생각하면 로안의 기대는 그리 과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는 말을 이었다.


"여기도 그렇군요. 학회는 오늘 점심에 끝나는데, 자기 지부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네요. 하긴, 일이 오죽 커야 말이지요."


그는 아무래도 짧은 대화를 시도하려는 것 같았다. 로안은 그런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서로 면식이 없는 사람들끼리 우연한 계기로 마주쳤을 때, 눈웃음과 함께 서로 수고한다는 감정을 담은, 공동체의 따스한 일면을 보여주는 그런 대화를. 하지만 밤을 지새운 사람 앞에서 그 모든 인류의 위대한 가치들은 그저 짜증과 피곤의 원인으로 평가절하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로안은 소리를 빽 지르며 남자를 내쫓는 자신을 상상했다. '무슨 생각을, 초생 애들도 아니고.' 정신적인 손사래를 치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날려버린 로안은 느린 동작으로 의자에 앉은 몸을 돌렸다.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귀찮은 일이지만 말로 물리치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


"그러게요. 일이 너무 큰 덕분에 어제 이 방에서 제대로 잠을 잔 사람이 없더라구요."


로안의 눈꺼풀은 벌써 닫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로안은 길가의 돌덩어리도 이만큼 말했으면 자리를 비켜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모든 희망을 배신하고 말았다.


"그런가요? 음. 이 부서는 뭘 담당하고 있죠?"


양심은 무시하면 무시할 수록 닳는다고 했던가. 안 그래도 요 며칠 사이 한계를 시험 당하고 있던 로안의 참을성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문간에 선 남자는 대화를 끝내기는커녕 한층 넓은 지식 교환의 장으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악의가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이 이상하게도 로안의 분노를 가속시켰다. 소리를 지르며 이 불청객을 내쫓는 방법이 로안의 마음 속에서 진지하게 고민될 뻔했지만, 부서 역할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을 매정하게 내쫓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로안은 결국 이 사람을 내보내는 것을 포기했다. 얌전히 나가달라는 의사를 돌려 말하느니 차라리 부서를 설명해주는 편이 빠르겠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를 구원할 사람이 나타난 것은 로안이 졸린 목소리로 '저희 부서는…'으로 시작하는 장문을 외려는 순간이었다.


"저희 부서 소개는 문 옆 팻말에 붙어있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겠어요? 지금 담당자가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남자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질문에 대답하자 조금 당황한 듯이 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오른쪽을 돌아보는 남자와 목소리로 로안은 실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안은 이제 살았다는 심정으로 고개를 푹 처박고 다시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녀의 귓가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자장가처럼 흘러 들었다.


"아, 여기 있군요. 다른 부서들도 이런 식으로 되어 있나요?"


"지나가면서 궁금하시면 쭉 확인해보세요. 명부 가지러 오셨나요?"


"네. 오늘 아침에 확인했을 때랑 적힌 게 달라서요."


"아마 저 친구가 확인하고 지웠을 거예요. 가져가세요."


남자는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들고 있던 명부들에 한 장을 더 끼워 넣고는, 총총대는 걸음으로 복도를 달려갔다. 찬 기가 남아있는 문을 닫으며 방으로 들어온 실은 화롯가에 놓여있던 담요 하나를 집어 로안에게 덮어주었다. 로안은 옆으로 목을 돌려 실을 바라본 채 입술만 움직이며 말했다.


"아는 사람?"


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얼굴이 왜 이렇게 신경질적이야, 자는데 깨웠어?"


"내 얼굴이 신경질적이야?"


실은 자신의 책상에 놓인 조그마한 손거울을 들어 로안에게 보여주었다. 로안은 씁쓸한 심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대화를 시도한 상대의 용기를 칭찬해 주어야 했다.


"사람 얼굴이 아니군. 아니, 물어보는 거 대답해줬는데 계속 뭐라 말을 하니까. 난 자고 싶다고."


"왜, 붙임성 있고 좋잖아. 아마 저 사람도 하루 종일 부서들 돌면서 명부 조사하느라 피곤할 텐데, 그냥 안부 묻던 거 아니야?"


로안은 한숨을 내쉬려다가, 옆으로 기울여 엎드린 상태에서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게 내뱉은 숨으로 만족하며, 로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스스로를 변호했다.


"누가 보면 사람 매정한 줄 알겠다. 나도 알아. 그냥 너무 졸려서 그래."


"울고 있을 때 위로한답시고 말 건네는 사람이 괜히 더 미운 거랑 비슷한 거?"


"그래, 그거. 에이, 잠 다 깼다. 이러면 또 한 서너 시간은 졸려도 못 잔단 말이야."


"잘 되었네."


실은 피식 웃으며 의자를 끌어와 로안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려던 사람이 못 자게 되었는데 뭐가 잘 되었냐고 물으려던 로안은 의자 다리와 바닥이 맞닿으며 내는 끼긱거리는 소리에 잠시 귀를 틀어막았다.


"뭐가 잘 되었다는 거야?"


"엄청난 소식을 하나 들고 왔거든. 자더라도 이건 듣고 자."


"귀만 열고 있으면 되는 거지?"


"그럼."


로안은 그대로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 심산이었다. 하루를 꼬박 샌 사람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대화를 시도하다니, 이건 확실히 실의 오판이었다. 말을 전해주고 싶었으면 방금 전의 방문자처럼 자고 싶은 사람의 모든 의향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 할 말을 했어야 한다. 로안은 그렇게 하지 않은 실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실이 정확히 한 마디를 하고, 그 뒤로 일 분이 흘렀다. 놀랍게도 로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로안이 반응을 보이는데 일 분이나 걸린 이유는, 벌떡 일어나려다가 무릎을 책상에 찧고는 의자에 앉은 그대로 넘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음을 삭이며 충격에서 회복되자 눈을 부릅뜨고 실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말해봐."


"너 다 죽어가던 사람 맞아?"


"네가 다 죽어가던 사람을 일으킬만한 소리를 했잖아. 누구랑 누구?"


"직터 부서장이랑 가노피 부학장."


"세상에."


로안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 넓지 않은 방 안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던 로안은 날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세상에."


실은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만큼 거대한 소식이었다.


"잠은?"


"지금 이 판국에 잠이 어디 있어. 오늘 물이랑 기름이 섞였다는데 잠이 오게 생겼어? 그것도 기름이 물 아래로 들어갔다는데?"


얼떨결에 한 소리였지만, 꽤 정확한 비유였다. 실은 가끔 로안이 무의식적으로 사태의 핵심을 집어내는 데 놀라곤 했다. 충혈된 눈으로 내려다보는 로안의 모습과 합쳐져 그 비유는 약간의 섬뜩함마저 자아냈다.


"그래. 물이랑 기름이 섞였지."


로안은 아직 피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몸과,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정신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놀랍게도 승자는 정신이었다. 입안이 쩍쩍 달라붙는 듯한 감각과 갑자기 일어난 바람에 생겨난 급격한 현기증도 그녀의 탐구욕을 막지 못했다.


"자세히 좀 얘기해봐. 두 사람이 만나기만 한 거야? 방으로 들어가는 것만 봤어? 안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못 들었고? 아니, 그 전에, 말을 하기는 했어? 그 두 사람이라면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나왔을 것 같은데?"


"물음표에 치이겠다. 하나씩 물어봐."


"짧게 말하는 게 더 힘든 거 알잖아! 뭐든 좋으니까 이 중대한 사건에 대해 아는 대로 다 말해!"


로안의 말투는 명령조에 가까웠지만, 실은 개의치 않은 투로 말을 이었다.


"좋아. 안 쉬고 말할 테니까 잘 들어. 가노피 부학장이 뭔가를 들고 직터 부서장의 방문을 두드리는 것을 누군가가 우연히 봤다, 잠시 뒤에 직터의 방문이 열리고 가노피가 들어갔다, 안에서 말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뒤에 가노피가 들어간 모습 그대로 나왔다. 내가 전해들은 건 이게 끝이야. 안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마도 두 사람만이 알고 있겠지."


"가노피 부학장이 혼자서? 그 항상 따라다니던 제자들은?"


"아무도 없이. 혼자서."


"몰래 들어가려다가 들킨 거야?"


"아니. 여럿 모인 곳에서 그냥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는데. 순간 칼로 무 썰듯이 사람이 좌우로 쫙 갈라졌다나."


로안은 다시 의자에 턱 주저앉았다. 그녀는 한쪽 턱을 괴고는 골몰히 생각에 빠졌다. 실은 로안이 그대로 잠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녀는 로안이 밤새도록 글자와 씨름하고 숫자에게 판정승을 거둬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새벽녘에 먼저 잠들었기에, 로안이 얼마나 피곤할 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안의 두 눈은 깜빡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체 뭘 한 건지 모르겠네. 무슨 용건으로 가노피 부학장이 직터를 찾아가지? 그것도 누군가에게 발견될 시간에. 본인이 닫힌 세계 가설 지지자들을 학계의 머저리들 취급한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걸 다 감수하고도 찾아 갈만큼 급한 뭔가가 아니었을까?"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다 굽히고? 글쎄……"


로안은 그렇게 말하며 조그마한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차를 한 잔 따라 홀짝였다. 점점 더 수면에 최적인 환경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로안의 정신은 꿋꿋했다. 실도 어젯밤에 따라놓아 식어버린 차를 입에 대며 말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에서, 나름대로 손에 쥘 것을 만드느라 그랬겠지. 닫힌 세계 최고 권위자는 직터 부서장이니까."


"그래도, 그 두 사람은 서로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잖아. 앙숙이라는 단어로도 모자라고, 숙적? 적이라는 말은 좀 심했나. 생각해보니 둘의 세력 차이가 압도적이라 적이라는 말도 적합하지는 않네."


"지금은 그 우세가 반대로 되었지만 말이야."


로안은 실의 말에 씩 웃어보였다. 샤넷 다미우스가 남긴 온갖 뒤치다꺼리는 차치하고, 그녀와 같은 배를 타고 있던 두 사람은 직터와 함께 혼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사실 그 뒤치다꺼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른 학자들은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작업들이었다. 아무리 고된 일이라 밀려와도 로안과 실이 한 줌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새로운 혼학의 기초를 닦는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샤넷 본인이 없는 시점에서, 지금은 직터 부서장이 그야말로 협회의 중심이 되었지. 좀 통쾌하지 않아? 가노피 부학장이 딱히 뭘 한 건 아니지만, 그 제자들이 거들먹대면서 직터 부서장이랑 그 제자들 은근슬쩍 무시하는 건 엄청 아니꼬웠거든."


"동감. 그런데 가노피 부학장 제자들을 무작정 탓하기도 힘들다고 봐. 우리도 샤넷이 갑자기 이렇게 일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닫힌 세계에 대해서 막연히 '근거가 빈약한 소리'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잖아."


로안이 눈을 가늘게 모으며 하품을 했다. 환기의 필요성을 느낀 실은 일어나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영하라는 말을 따로 붙이는 것이 어색한 기온 - 항상 영하이기 때문에 - 의 돌풍이 실과 로안의 뺨을 거세게 치고 지나갔다. 쿰쿰한 방의 공기에 녹아들었던 의식이 강제로 또렷해지는 것을 느끼며, 로안은 손깍지를 껴 기지개를 폈다.


"그건 또 그렇네. 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얼굴만 보고 헤어졌을 리는 없어. 개인적으로 만났다는 것은 분명히 뭔가 일이 있었을 거야."


그렇게 둘은 차가 식기 전에 전부 마시려는 생각으로 동시에 잔을 들이켰다. 따뜻한 기운이 몸 안으로 퍼져나가고, 바깥에서는 쌀쌀한 바람이 불자 오히려 활기찬 기분이 들었다. 실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로안, 혹시 부학장이 사과를 하러 간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무안하니까,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갔을 수도 있잖아."


실의 추측에 로안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가노피 부학장이라면 그런 걸 개인적으로 할 사람은 아니지. 사과를 할 작정이었다면, 그 사람은 아예 협회 학자들 전부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할 사람이야."


"폐회식처럼?"


"그래, 폐회식처럼.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에 폐회식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실은 활짝 연 창문에서 몰아치는 바람에 죽어가는 불씨를 살리려고 장작을 좀 더 던져 넣었다. 장작함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내일 부로 협회에서 나무꾼을 임시로 더 고용하겠다고는 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그마저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실이 말했다.


"맞아. 그런데 별 의미는 없는 폐회식일 거야. 학회 끝나고도 열 명 중 아홉 명이 여기 남아 있을 텐데, 폐회는 무슨."


"열 명 중 아홉? 나머지 한 명은?"


로안의 당연한 물음에 실이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로안, 여기 온 사람들이 아무도 돌아가지 않으면 이 소식을 어떻게 각 지부로 알리겠어? 회지가 나오려면 열흘은 걸릴 텐데. 지나가다 들은 말인데, 같은 지부에서 온 사람들끼리 제비뽑기로 돌아갈 사람을 정했다고 하더라고."


"크으, 그것 참 슬픈 제비뽑기군. 그래도 돌아가서 해줄 얘기는 많으니까 그건 그것대로 또 재미있으려나."


"글쎄, 어쨌든 각 지부에 있던 가노피 부학장의 제자들과 직터 부서장의 제자들도 순식간에 입장이 바뀌겠지."


"흠, 그럼 엄청난 의미를 지닌 폐회식이잖아? 학회가 공식적으로 끝나자마자 돌아갈 일 할의 사람들이 학회 전체에 불러올 여파를 생각하면......"


"잠깐, 밖에서 무슨 소리 안 들려?"


실이 복도 쪽에 귀를 기울였다. 밖에서 부는 겨울바람이 창문을 비집고 시끄럽게 몰아쳤지만,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를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로안도 금방 바깥의 소란을 눈치챘다. 먼 곳부터 서서히 시끄러워지는 모습이 누군가가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지?"


"설마 가노피 부학장이 이번에는 우리 부서를......"


로안이 말도 안 된다는 뜻으로 진짜 손사래를 치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남자를 알아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자는 가노피 부학장이 아니었다. 실이 방금 전과 같은 자세로 문간에 선 남자에게 물었다.


"방금 오셨던 분이죠? 이번에는 무슨 용건으로?"


남자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예. 곧 폐회식이 시작된다고, 각 부서에 남아계신 분들 전원 참석하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는 로안과 실 사이에서, 남자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작가의말


- 이야기의 무대가 다시 레품으로. 로안과 실의 캐릭터, 조금씩 보이시나요? :D



p.s. 9/8일에 올린다고 약속해놓고 9/9일 11시 반에 올리는 몹쓸 작가...

죄송합니다. ㅜㅜ 너무 늦은 바람에 선작도 두 분이나 빠져나가시고...

다음 연재는 기필코 정시 업로드를 목표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61 쿠리오
    작성일
    13.09.11 05:13
    No. 1

    사랑합니다. 작가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녹필(綠筆)
    작성일
    13.09.11 10:03
    No. 2

    저.. 저기.. 그렇게 갑작스럽게 고백하시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작품에 주시는 애정, 감사히 받겠습니다 :D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수면선인
    작성일
    13.10.09 19:03
    No. 3

    무언가 새로운 일의 징조가.....! 이번 편은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없이 그냥 쑥 내려와버렸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녹필(綠筆)
    작성일
    13.10.09 20:21
    No. 4

    이 편의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독서를 해주셨습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의미 없어보이는 대화와 인물 등장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알 게 되실 겁니다 :D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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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3. 차갑게, 빠르게 - 1 +2 13.11.05 352 11 8쪽
24 2. 깨진 자물쇠 - 11 (終) +2 13.10.16 397 9 11쪽
23 2. 깨진 자물쇠 - 10 +4 13.10.12 356 20 12쪽
22 2. 깨진 자물쇠 - 9 +8 13.10.07 449 9 15쪽
21 2. 깨진 자물쇠 - 8 +4 13.10.04 967 19 14쪽
20 2. 깨진 자물쇠 - 7 +4 13.09.22 353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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