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깨진 자물쇠 - 4
쿠지드 사파히는 충분히 쉬지 못했다.
그는 낙타를 몰고 궁 정문으로 돌진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무리 수비대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었다지만, 사막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장식된 사파히 영주궁(宮)의 정원은 성난 낙타의 발길질에 제 모습을 유지할 정도로 견고하지 않았다. 뛰듯이 낙타에서 내린 쿠지드는 울상이 된 하인들에게 낙타 고삐를 맡기고 한달음에 궁을 가로질렀다.
사파히의 영주궁은 소영주들의 궁이 그렇듯 투그딘 대영주의 그것이나 아르문궁처럼 거대하지는 않았다. 정문에서 영주의 집무실이 있는 최심부까지는 기껏해야 직선으로 백 미터 남짓한 거리였다. 하지만 사방이 평지인 사막에서 불시의 침입을 막기 위한 궁 내의 복잡한 구조는 방금 전까지 전속력으로 낙타를 몬 쿠지드에게 끔찍한 장애물이 되었다. 쿠지드가 마지막으로 궁에 왔을 때와 지금의 궁은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고, 그는 기억에 없던 막다른 길과 행방을 알 수 없는 계단 등에 맞닥뜨리며 불평을 쏟아내었다.
쿠지드가 2층에 위치한 영주의 집무실에 도착한 것은 십 분이 넘게 지난 뒤였다. 놀랍게도 마지막 개축공사는 집무실이 위치한 건물의 1층에 있는 창문과 문을 전부 없앤 뒤, 건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를 3층에 만들어 맞붙은 건물과 이어 붙인 것이었다. 그러나 쿠지드에게 궁 중심부에 아예 섬을 만들어버린 이 대담한 건축학적 걸작에 감탄할 여유는 없었다. 그는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며 도착한 집무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와지끈 소리를 내며 힘차게 문이 열리자 쿠지드 사파히는 영주에게 고함을 내질렀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문 부서진다. 앉아라."
침착한 대답이 돌아왔다. 쿠지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큼직하게 뚫린 창 옆에 팔짱을 낀 채 기대서서 비스듬히 볕을 쬐고 있는 쿠지드의 아버지는 조각상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아버지,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앉으라고 했다."
쿠지드는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마지못해 그 위에 털썩 몸을 얹었다. 그가 심각히 불안하다는 것은 멈출 줄 모르는 한쪽 다리의 떨림이 잘 보여주고 있었다. 쿠지드는 아버지를 안고 3층 창문 바깥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현 상황의 개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해결책이지만, 그만큼 쿠지드는 방안의 어색할 정도로 가라앉은 공기에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사파히의 영주는 길게 뻗어 끝이 약간 꼬인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속이 터질 것만 같은 답답함을 애써 억누르며 쿠지드가 대답했다.
"아버지, 연락병이 저보다 느리지는 않았겠지요? 투그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못 들으셨습니까?"
쿠지드는 그 뒤로 아버지가 투그딘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며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주도권을 쥔 자신이 의기양양하게 지금 이렇게 거드름이나 피우고 계실 때가 아니라고 호통을 치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내심 아버지가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파히의 대영주는 당황하는 대신 눈을 지긋이 감고 작게 숨을 내뱉었다. 쿠지드의 귀에는 그것이 한숨처럼 들렸다. 쿠지드는 속으로 이럴 리가 없다고 외쳤다. 아버지가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것이 분명했다. 투기대회에서 일어난 사태는 절대로 이리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쿠지드는 호통을 들을 것을 각오하고 다시 한 번 상황을 환기시키려 했다.
"아버지!"
"투기대회 말이냐?"
쿠지드는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입에서 담담하게 튀어나온 단어가 쿠지드의 귓가를 메아리처럼 울렸다. 사파히의 영주는 이번에는 명백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것 때문에 네 할 일을 내버려두고 여기까지 달려왔단 말이냐?"
"그것이라니요, 아버지, 그것이라니요!"
"그럼 그것이 그것이지 무엇이냐."
대화가 선문답을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자 쿠지드는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다.
"투기대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면서 어찌 아무 일도 안 하고 계신단 말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 네 입으로 한 번 들어보자꾸나."
눈을 연신 꿈뻑이며 허탈하게 숨을 내쉰 쿠지드는 어제부터 '아버지가 아직 상황을 모르고 계실 때를 대비하여 준비한' 설명문을 되새겼다.
"아버지, 투그딘 투기대회에서 일이 제대로 터졌습니다! 저기 마호칸 사막이랑 거의 붙어있는 아야톨이라는 마을을 겨울전갈 핑계로 싹 밀어버리셨다면서요? 아야톨이랑 그 근처가 눈엣가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 사후처리를 확실히 하셨어야죠! 투기대회 우승자가 아야톨 생존자였답니다. '사파히 소영주를 문책하여 주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다른 영주들이 있는 자리에서 투그딘 대영주님이 직접 들으셨으니, 대영주님께서도 옴짝달싹 못하실 거 아닙니까! 어찌 이리도 평온하십니까, 아버지!"
마땅찮은 기색으로 열변을 토해내는 아들을 바라보며, 사파히의 영주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리기만 했다. 쿠지드는 원하던 호응이 나오지 않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칠 기세로 말을 끝마쳤다. 사파히의 영주는 숨을 몰아쉬는 아들에게 차분히 물었다.
"아들아, 네가 언제 투그딘을 떠났느냐?"
"이틀 전입니다. 마지막으로 낙타를 이렇게 빨리 몰아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전에는 계속 궁내에 있었느냐?"
"예."
"네가 궁에서 나올 때까지, 네가 가진 소식통에서 궁의 누군가가 실제로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었느냐?"
"못 들었습니다."
"지방 영주가 관할 수비대를 동원하여 위법적인 무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있다. 이 때, 대영주는 정해진 시일 안에 지방 영주의 영토에 사태의 위험성에 상응하는 규모의 조사단을 파견할 의무를 가진다. 그 기한이 몇 일이냐?"
"그것이……"
갑작스레 던져진 법학 질문이었지만, 쿠지드는 그 질문에 즉각 대답할 수 있었다. 사파히 영주의 아들 정도라면 교양 수준의 아르문 법전은 거의 외워야 했고, 쿠지드는 귀족으로서 갖춰야 할 지식 정도는 착실히 익혀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사파히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너무 급하게 궁에서 뛰쳐나오는 바람에 차마 날짜를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다.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의 입은 아버지에게 원하는 대답을 내놓고 있었다.
"……닷새입니다."
"오늘이 일이 일어난 지 며칠째냐?"
"나흘째입니다, 아버지! 아직 하루가-"
"아들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쿠지드의 얼굴은 놀란 기색을 감출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사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단언했다. 그리고 쿠지드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단언하는 말이 완벽히 틀린 것을 보지 못했다.
"네가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일에 대해 너에게 말한 적이 없으니까. 오히려 아비를 걱정하는 마음은 칭찬해주고 싶구나."
"아버지……"
쿠지드는 이제 거의 울상이 되었다. 사파히의 영주는 아들을 바라보던 몸을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드물게도 하늘에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크기의 흰 구름 한 점이 떠 있었다. 구름은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나아갔지만, 결코 멈춰서지는 않았다. 저녁까지만 어떻게든 버티면, 구름은 조금 더 습하고 선선한 북쪽으로 올라갈 시간을 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사파히의 영주는 고개를 살짝 들어 달팽이처럼 나아가는 구름을 응시했다.
"이번 일은 괜찮다. 적당히 쉬고, 되는대로 빨리 다시 투그딘으로 올라가라. 너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쿠지드는 집무실 책상에 두 팔을 힘없이 얹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리쳤다.
"아버지, 이 어리석은 아들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영토 내에서 거의 모든 권한을 지니는 영주에게, 아르문 법이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태 중 하나가 바로 무력행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마을 하나를 송두리째 날리시고 그것을 고작 도적단에게 뒤집어 씌운다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신 겁니까! 아야톨을 없앨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사파히의 영주는 등을 돌린 채 계속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서 아버지를 붙잡으려던 쿠지드를 영주의 한 마디가 멈춰세웠다.
"내가 왜 아야톨을 없앴는지, 그것을 물었느냐?"
"네, 맞습니다!"
"그 질문은 틀렸다."
쿠지드는 갑자기 아버지가 평소의 배는 거대하게 보였다. 의자에 앉아서 아버지를 올려다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창 밖을 내다보는 사파히의 영주는 거대했다. 쿠지드는 그 그림자에 숨은 깊이를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투그딘의 대영주가 조사단을 이끌고 도착하는 순간 사파히는 끝이다. 아버지가 그 어떤 정치적 술수와 연줄을 동원하여도 이렇게 거대한 사태를 완벽히 피해가는 것은 불가능할 터였다. '그런데 질문이 틀렸다고?' 여기까지 달려온 목적 자체를 부정당한 쿠지드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에서 떨어진 말이 귀에 채 닿기도 전에, 쿠지드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내가 아니다."
"예?"
사파히의 영주는 아들을 위해 한 번 더,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야톨을 지도에서 지워버린 사람은 내가 아니다."
- 작가의말
- 하루 늦었군요. 아슬아슬하게 오늘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학교가 개학한 관계로, 앞으로는 주 1회 연재에 돌입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거의 그러지 않았냐고 물으시면 저는 묵비권을...) 요일은 추후 결정될 예정입니다. 일단 당분간은 일요일로 잡아두겠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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