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할래요?
"내기? 내기하자고?"
예상치 못한 내 질문에 백 대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마치 자신이 뭘 잘못 들은 건가 싶은 표정이다.
"네. 내기요."
"무슨 내기?"
궁금하지? 백 대리는 이미 내가 던진 떡밥을 물었다.
"그 바이너리 옵션이란거요."
"응."
"제가 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뭐라고?"
백 대리는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럴 때는 표정에서 장난기 쭉 빼고, 진지함만 백 퍼센트 담아 얘기해야 한다.
나는 괜히 누가 들을세라 조심한다는 양 목소리를 조용히 내리깔고 말을 이었다.
"제가 예전부터 차트를 좀 보거든요."
"차트? 그래서?"
"제가 대리님이 저기에 어떻게 배팅하시면 되는지 알려드릴게요."
하지만, 백 대리의 반응은 차가웠다.
"야 장난해?"
"네?"
"너 내가 말 좀 섞어 주니까 신입인 거 잊고 기어오른다?"
너무 뜬금없는 제안이라는 건가, 아니면 대리의 자존심이라는 건가. 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너 방금까지 이게 뭔지도 몰랐잖아. 그런데 누가 누구한테 훈수를 두겠다는 거야! 그리고 뭐 차트? 그딴 게 여기서 먹힐 것 같아?"
"죄송합니다. 대리님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일단 태도를 바꿔 고개를 숙여 백 대리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러면서 백 대리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백 대리는 스스로 바이너리 옵션을 '홀짝'에 비유했다. 자신이 하는 것이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리고 도박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뻔하다.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고통스럽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제가 보기에 너무 확실한 종목이 있어서요."
"확실한 종목?"
"네. 아까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닌데요. 설명해 주실 때 수익률이 보였는데, 오늘 운이 좀 안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저한테 설명해 주시느라 집중 못 하신 것도 죄송하고 해서···."
아픈 구석을 슬쩍 긁어 주고.
"하,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야. 뭐 백 퍼센트 확실한 거라도 있어?"
"네."
희망의 손길을 내밀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정답을 알 수 있다면?
도박판에서 돈을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은 없고 돈을 딸 때 생기는 쾌감만 남는다.
'혹시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백 대리는 반 이상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서 결정타를 날려주면 게임 끝.
"후, 그래. 뭐 들어나 보자."
"그 전에."
"응?"
"내기잖아요."
어이없어하는 백 대리.
"하, 내기라고? 야 너 진짜 뭘 믿고 그러냐."
"그만큼 확실하니까 그렇죠. 만약 제 말대로 배팅 하셔서 수익 나면 어떻게 하실래요?"
"뭐, 돈이라도 떼어 줘?"
일단 미끼는 물었다. 궁금하지?
"아뇨. 돈은 괜찮아요."
"뭐? 그럼?"
돈 따위는 내가 벌면 되고. 내가 필요한 건 따로 있지.
"저 과외 좀 해주세요."
"과외? 무슨 과외?"
"저 진짜 일 잘 해보고 싶은데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분명 기본적인 것들인데 팀에 물어보려고 해도 도저히 적당한 타이밍을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나한테 과외를 받고 싶다?"
"네. 동기들한테서 백 대리님이 외환팀 에이스라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선생님이신 거 같아서요."
아, 물론 이건 거짓말.
그래도 뭐 자기 칭찬을 듣고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 말이 먹힌 것일까. 백 대리는 한층 풀어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웃기는 놈일세. 야 그럼 너가 틀리면 뭘 어쩔건데? 내 돈 가지고 베팅하니까 손해는 내 몫인데 너는 뭘 걸려고?"
"만약 백 대리님이 제 말을 따라 하셨다가 잃게 되면 제가 그 돈을 그대로 메꿔 드릴게요."
"뭐? 메꿔 준다고?"
"네. 제가 지금 은행 잔고에··· 여윳돈이 딱 50만 원 있네요. 50만 원 손실 날때까지 해보시는 거 어때요?"
백 대리는 계속 어이가 없는 표정이다.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는 거지 싶은 그의 표정.
하긴 나 같아도 그러겠다. 잃을 건 별로 없고 얻을 것만 많은, 좋아도 너무 좋은 조건이니까.
"어··· 뭐 나야 잃을 게 없긴 한데. 에휴, 그래! 너 말 한번 들어나 보자."
백 대리는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고 내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좋아, 걸려들었어.'
나는 화면상에 보이는 종목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는 척하다가 손가락으로 한 종목을 가리켰다.
[TC Technology : $47.05 (-1.16%)]
TC Technology. 화면상의 정보를 보아하니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종목인 것 같다. 물론 당연히 처음 보는 종목.
무언가 분석하는 척 눈에 힘을 잔뜩 주고, 혼신의 연기를 했다.
그런 내가 뭔가 못 미더운지 백 대리는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다. 선수를 빼앗기기 전에 백 대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까 배팅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할 수 있다고 하셨죠? 제일 빠른 게 언제죠?"
"5분 뒤 주가에 할 수 있는 배팅이 있어. 최종 배팅은 3분 뒤 마감이고."
"아 알겠습니다. 그거로 해볼까요?"
"음···. 나는 47불 위로 배팅하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꼭 배팅 기준이 47불이어야만 하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지금 주가가 47불에 걸쳐 있잖아."
"그럼, 43불 아래에 배팅하세요."
"뭐?"
백 대리는 나를 다시 쳐다본다. 이 새끼가 미친 건가 싶은 눈빛.
"야, 장난해? 아무리 나스닥 기술주가 변동성이 심해도 주가가 5분 만에 10퍼센트 이상 폭락할 거라고?"
"넵."
"이거 장 시작하고부터 여태까지 47불 언저리에서 횡보한 거 보이지?"
"그게 포인트죠. 대리님 방금 주가가 절대 43불 밑으로 떨어질 리 없다고 생각하셨잖아요? 그럼 당연히 배당률도 높을 거 아니에요."
"그건 그런데···"
내 말은 당연했다. 앞으로 5분 이내에 TC Tech 주가가 43불 밑으로 떨어질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배당률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만약 정말로 주가가 43불 밑으로 떨어진다면, 기대 수익률은 무려 500퍼센트!
"하··· 진짜 골때리는 놈일세. 니 말이 진짜 맞으면 내가 주말이고 뭐고 그냥 싹 다 너한테 바친다 바쳐."
"진짜죠?"
"어차피 그럴 일도 없고, 돈 잃으면 너가 메꿔 준다고 했으니까. 말 바꾸지 말고 송금이나 준비해."
백 대리가 마우스를 움직여 내가 말한 대로 거래를 체결했다.
"잘하셨어요. 저 잠시 자리에 다녀올게요."
"음? 이거 결과 안 보고?"
"잠깐이면 돼요. 바로 올게요."
내 자리로 재빨리 돌아와서 모니터를 켜 TC Technology 종목을 검색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핸드폰을 꺼냈다. 주변을 한번 잘 둘러보고 Number 어플을 실행시켜 화면을 촬영했다.
찰칵-
이번에도 화면 위의 주가는 빛이 나고 있다. 내가 관심 있는 숫자는, 바로 주가의 뒷자리 '7'.
숫자를 터치해 숫자 패드에서 '2'를 골랐다.
확인 창을 띄워놓은 상태로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은 'Yes' 버튼을 언제든지 누를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상태로.
그리고 백 대리 옆으로 다시 걸어갔다.
"지금 주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야. 너 진짜 돈 송금할 준비 해라. 지금 43불 가까이 가기는커녕 올라가고 있어."
배팅으로부터 5분을 알려 주는 화면상의 타이머. 어느새 시간은 줄어들어 30초만을 남겨두고 있다.
30초, 29초, 28초 ··· 10초.
정확히 타이머가 10초를 남겨둔 시간. 주머니 속의 핸드폰 화면을 터치했다.
[정말 이 숫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한 번 선택하면 변경이나 취소가 불가능합니다]
-Yes
화악-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화면이 잠시 빛났다.
띠디딩-
[Breaking News : Lawsuit Against TC Technology...]
화면 오른쪽 아래에 뭔가 알림창이 떴다.
뉴스? 회사가 무슨 소송을 당했다고?
백 대리는 마우스를 옮겨 뉴스를 확인하려고 시도했다. 그 짧은 순간, TC Tech 주가는 격동하기 시작했다.
챠르륵-
[TC Technology : $45.08 (-5.29%)]
화면 위에는 빨간 장대 음봉이 생겼다. 미국 장은 한국과는 반대로 빨간색이 음봉을 나타낸다.
짧게 시작한 음봉의 길이. 눈 깜짝할 새 길어지고, 주가는 계속 출렁였다.
남은 시간은 불과 7초.
[TC Technology : $43.7 (-8.19%)]
백 대리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하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알았나 싶겠지. 하지만, 주가는 아직 배팅한 43불 밑을 뚫고 내려가지 않았다.
남은 시간 5초.
[TC Technology : $42.05 (-11.66%)]
2초.
1초.
띠링-
5분이 다 지났다는 알림음이 울린다.
최종 시간 2초를 남겨두고 주가는 정확히 뒷자리만 '7'에서 '2'로 바뀌었다.
최종 주가는 정확히 내가 정한 가격인 한 주당 42.05달러에 안착했다.
[평가 손실 : +2,472,160원]
플랫폼 거래 수수료를 제하고 생긴 수익. 백 대리는 할 말을 잃었다.
"야!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다고?"
"넵."
백 대리는 손을 들어 얼굴을 한번 쓸더니,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나 자신의 침묵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백 대리는 질문을 쏟아냈다.
"야 너 일은 왜 하는 거냐?"
"이 정도 실력이면 헤지펀드에서 일하면 떼부자 되겠는데?"
"아니다! 왜 펀드에서 일해? 그냥 스스로 뭐 하나 차리던가?"
백 대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백 대리에게 나는 차분히 되묻는다.
"대리님. 이 방식대로 최대로 굴릴 수 있는 금액이 어느 정도일까요?"
"글쎄··· 이게 워낙 작은 시장이라서. 작기 때문에 사내에서도 일단 신경 안 쓰는 거고. 한 금액이 3천만 원 넘어가면 배당 20퍼센트 이상 배팅할 수 있는 종목 찾기 힘들걸?"
"거래 종목은 몇 개나 있는데요?"
"안 세어 봐서 잘 모르겠는데. 한 백 개쯤 되려나?"
3천만 원의 20퍼센트면 600만 원. 배팅액을 늘리지 않는다고 해도 매일 600만 원이 생기면 금전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나는 능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일단 이전에 로또 티켓만 봐도 그렇다.
로또 티켓에 능력을 적용하려고 했을 때 두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그렇다는 건 한번 사용한 대상에 대해 중복 적용이 안 된다는 뜻인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언젠가는 이 능력을 써먹을 만한 종목이 다 떨어지게 된다. 완전히 이 방식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셈이다.
그리고 내게 있어 돈은 성공의 일부분일 뿐이다. 나는 성공의 파편이 아닌 전부를 원한다.
"민성 씨랬지?"
"네, 대리님."
"민성 씨. 이거 한 번 더 하자."
백 대리는 안달 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다른 종목 뭐 골라볼 거 없어? 만약에 배팅 실패해도 민성 씨가 안 물어줘도 되니까 다른 거도 좀 짚어줘 봐, 얼른!"
그렇지만 꼬리를 너무 길게 달고 갈 수는 없다.
"죄송해요. 아까 그거만큼 확실하게 신호가 오는데 더 보이지 않네요."
"아니, 자세히 좀 봐봐."
"진짜 안 보여요."
내 확언에 백 대리는 실망했는지 눈가가 쳐졌다.
"그럼 어떻게 주가가 거기까지 움직일지 알았는지 간단하게라도 좀 알려주면 안 될까?"
"영업 비밀을 그렇게 쉽게 알려드려 버리면 제가 남는 게 없죠."
이 말을 하며 백 대리를 향해 웃어 보였다.
백 대리도 자기가 한 질문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가를 깨닫고 뒤늦게 나를 따라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행동은 마치 마술사가 모자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것을 본 어린아이가 비밀을 알려달라고 조르는 것과 같았으니까.
"대리님."
"응?"
나는 백 대리를 부르고 그의 책상에 오전에 써 놓았던 필기를 펼쳐 보였다. 그 옆에는 하 대리에게 받았던 입문서 더미를 내려놓았다.
"정산하셔야죠."
"지, 지금? 늦었는데."
"대리님 계좌에는 이미 수익이 찍혀 있는데요?"
계산은 확실히 해야지.
"으, 알았다. 얼른 하자. 삼십 분이면 되겠지?"
"아까 분명 주말이고 뭐고 다 주시겠다고 했잖아요."
"아 그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 바빠."
"어? 이렇게 나오시면 제가 오늘 있었던 대리님의 엄청난 트레이드를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고 싶을 것 같은데요."
"아··· 씨."
백 대리는 한숨을 푹 쉬더니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완전 잘못 걸린 것 같지?
맞다. 잘못 걸린 거.
나는 백 대리를 향해 다시 웃어 보이고 질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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