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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트라이베카
작품등록일 :
2021.05.1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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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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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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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한진생명

DUMMY

한때 영어로 하는 욕은 한국말로 하는 욕보다 덜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추석이나 설날 특선 영화로 접했던 헐리우드 영화.


그 영화 속 악역들은 하나 같이 선글라스 하나 달랑 끼고 나와 욕설을 내뱉는다. Fuck이니 Shit이니 하는 꼬부랑말의 향연.


그 말들은 별로 와닿지 않았다. 악당들이 그렇게 험한 말들을 싸질러 봤자 의미 없었으니까.


결국엔 주인공은 악당들을 죽이고 여주랑 키스하며 엔딩씬을 맞는다. 영어로 하는 욕설은, 약간 과장을 보태 어린애들이 칭얼대는 것처럼 들렸다.


"YOU STUPID DUMB FUCKER!! @*!@($&*@!%%!"


취소한다.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솟아있는 주 과장이 원어민 발음으로 쏟아내는 속사포 욕은 정말 엄청났다.


앞에서 그 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남자. 내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햐, 과장님 또 저러시네."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네요."


자주 저러세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 걸 애써 참았다.


"응. 그렇지 않아도 출장 직전에도 한 번 뒤집어 놓으셨는데."

"무슨 일이길래요?"

"저 앞에 있는 사람 누군지 알아?"


6층에 있을 때만 해도 대충 누가 누구인지 알았다. 직함까지는 정확하게 모르더라도 얼굴이랑 이름 정도는 눈에 익었다.


그런데 7층에 온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잘 모르겠다는 티를 내자 하기훈 대리가 말을 계속했다.


"고객사 관리하는 영업 팀 이효상 대리인데."

"그런데요?"

"주 과장님이 지난 몇 달 동안 공들여서 준비해 놓으신 투자 피칭 미팅이 있거든. 그게 아마 오늘이었던가?"


하 대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맞네, 오늘. 그런데 이 대리가 실수한 게 하나 있어."

"실수요?"

"응. 우리 미팅에 국내주식운용부 사람들을 초대했어."

"아!"


박창섭 팀장과 최민호 팀장 사이의 텐션.


사내 권력 구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둘은 올해 이사 승진에서 부딪힐 예정이다.


올해 팀 실적 중간보고는 10월 말경에 진행된다.


이 중간보고가 11월에 있는 승진 심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주 과장도 박 팀장을 서포트 하느라 아마 엄청 머리털 빠지고 있을 거다.


"몇 달 동안 준비하신 거면 큰 건인가 봐요?"

"한진생명 알지? 내가 기억하기론··· 투입 예상 금액이 5천억 정도이었던가."

"5천억이요?"

"응. 다음 달부터 일 년에 걸쳐서 분기별로."

"그게 다 해외자산에 배정된 거예요?"

"그랬었지. 이젠 모르는 거지만."


한진생명. 국내 2위 규모의 생명보험사.


금융계에서 잠깐이나마 굴러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바닥에서 보험사는 깡패다. 자산 규모도 크고, 투자 전략도 대체로 깔끔하다.


그래서 증권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객사이기도 하다. 거래는 쉽고, 규모는 크니까. 거래만 할 수 있다면 마진도 크다.


"그런데 그게 왜?"

"원래는 주 과장님만 미팅 들어가시기로 했거든. 그쪽은 투자 총 책임역도 나오기로 했고. 일단 첫 미팅만 잘 풀리면 우리한테 거래량 다 넘어오는 건 당연한 거였는데 일이 꼬였어."

"거래량을 나눠야 하나 보네요."


하 대리는 내 말에 수긍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맞아. 원래 이 미팅은 한진이랑 우리가 거래할 때 마진을 논의하는 자리여야 하는데···. 순식간에 우리랑 국내주식팀 쪽이랑 경쟁이 붙은 꼴이 돼 버렸단 말이지."

"어쩌다가 국내주식팀 쪽이 갑자기 끼어든 거예요?"


하 대리는 잘 모르겠는지 대답에 확신이 없었다.


"그게 확실치가 않아. 이 대리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최민호 팀장네를 초대했거든."

"그걸 주 과장님이 아시게 된 거고요?"

"응. 제일 황당한 건 고객사 쪽에서 인원 확정한다고 주 과장님한테 연락하는 바람에 주 과장님도 알게 되신 거야. 만약 안 그랬으면···."

"와, 당일에 현장에 도착해서야 뒤통수 맞은 줄 알았겠네요."

"가뜩이나 우리 팀장님하고 최 팀장 사이 안 좋은 거 뻔히 아는데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을까?"


'영업팀이 최민호 팀장과 사이가 더 좋았던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왜 굳이 대놓고 최민호 팀장 편을 들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심지어 최근엔 우리 팀이 영업 팀에게 증권 판매 인센티브도 제일 많이 준 거로 알고 있다. 확실히 이상한 부분이 있다.


"그래도 지금 환율 생각하면 국내보단 미국 주식 쪽 보는 게 훨씬 유리할 텐데요?"

"맞는 말이긴 한데, 문제는 그게 아냐. 한진 쪽에서 이번에 원하는 게 GoPang 이야."


GoPang.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기업 중 하나다.


한국의 아마존을 표방하며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 낸 유니콘 기업.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이 될 예정이기도 하다.


"한진 쪽에서 원래 우리가 보여준 종목 여러개 보고 있다가, 갑자기 고팡에 꽂혔다니까? 이거 아니면 안 된대. 후···."

"상장도 되기 전 종목을요?"

"신규 상장주 공모 참여하겠다고 했어. 솔직히 이거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공모 참여한다고 얼마나 물량을 받아오겠냐."

"한진이 원하는 게 확실한가 봐요."

"확실한 정도가 아니라, 고팡 아니면 아예 거래 안 하겠다고 했다니까?"


고객사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원하는 거 손에 쥐기 전까진 만족하지 않을 테니.


"불쌍한 주 과장님. 열심히 준비했는데 고객사는 갑자기 마음 바꿔서 원하는 거 아니면 거래 않겠다고 하지, 영업팀은 협조도 안 하지. 출장 가기 전에 속 터지는 게 이해 간다니까."


응? 잠깐.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고팡은 따지고 보면 해외주식이잖아요? 한진이 그렇게 고팡에만 고집을 부리는데 국내주식팀이 어떻게 끼어들어요?"


하 대리는 잠시 나를 말 없이 쳐다봤다. 정곡을 찔린 건가.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찾으려는 듯한 표정이다.


"몰라. 낸들 아냐?"


드디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나 싶었는데 또 헷갈리기 시작한다.


꼬일 대로 꼬인 상황.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황 파악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나 하 대리나 둘 다 이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창 폭격이 일어나고 있는 전쟁터 한가운데로 뛰어들긴 싫다.


하지만, 사무실 복도 한가운데 마냥 서 있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 하 대리와 나는 조심스레 주 과장과 이 대리의 옆을 지나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야! 내가 신규 주건 뭐건 알아서 해결한다고 했잖아!"

"과장님 일단 진정하시고요."

"진정? 진저엉? 너 같으면 진정 되겠냐! 눈 뜨고 코 베이게 생겼는데!"


주 과장이 저런 말도 쓸 줄이야···. 의외로 현학적인 구석이 있네.


"아 어차피 원하는 수량도 못 맞추실 거잖아요!"

"왓? 내가 한진이 다른 거도 보도록 설득하려고 준비한다고 했지? 그래야 회사에도 이익이 제일 크게 돌아올 거 아냐! 너 일 처음 해?"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치는 제임스 과장. 그리고 그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맞받아치는 이효상 대리.


둘은 한참을 더 싸우고 나서야 돌아서서 각자의 팀으로 복귀했다.


"야 신입."

"네?"

"너 여기 오기 전에 국내주식팀에 있었다고 했지?"

"아, 넵."

"너 거기서 한진생명 관련해서 들은 거 있어?"

"아···. 아뇨."

"진짜 미치겠네."


주 과장은 박창섭 팀장 쪽을 흘끗 쳐다봤다. 박 팀장은 주 과장과 눈이 마주치자 한 마디 던진다.


"너 화나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사무실에선 언성 너무 높이지 마라."

"팀장님! 팀장님은 걱정도 안 돼요? 이거 저쪽에 뺏기기라도 하면···."

"뺏기면?"

"그럼 최민호 팀장이 이사 다는 거잖아요!"


박 팀장은 피식했다.


"웃기는 놈일세. 너가 언제부터 내 승진을 그렇게 걱정했다고?"

"아 농담하지 말구요!"

"야 인마. 나라고 화가 왜 안 나겠냐? 몇 달 동안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자리에 최민호가 숟가락 얹겠다는데."

"그러니까 뭐라도 좀 해봐요! 팀장님이 승진해야 나도 승진하죠!"

"시끄럽고. 여기서 우리끼리 소리 질러봤자 해결되는 게 뭐가 있어?"

"그럼 아무것도 안 하자고요?"

"너 저쪽에서 들고나올 패는 뭔지는 알아?"

"···."


주 과장은 박 팀장의 질문에 침묵했다. 박 팀장은 그거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라도 알아야 우리가 뭔가 대책을 세울 거 아니야? 한진 입장에서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 걸 가졌을지 일단 봐야지."

"···."

"일단 오늘 미팅에서 실수하지 말고 잘 참석해. 너 베테랑이잖아."

"네···."

"저쪽이 뭘 어떻게 해서 영업팀 구워삶았는지 알아내."

"Alright."


제임스 과장은 그제서야 화를 삭이며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 속에 오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야 기훈아."

"네 과장님."

"너 이따 세 시에 뭐하냐?"

"네? 세 시요?"

"응. 그때 한진생명 미팅 있어. 그쪽 본사에서 하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

"그거 과장님 혼자 가시는 거 아니에요?"

"원래 그러려고 했는데, 국내주식 쪽에서 세 명이나 온다잖아. 가뜩이나 경쟁 붙어서 신경 쓰이는데 머릿수라도 맞춰야지."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하기훈 대리는 이메일을 열어 일정을 체크 했다.


"어, 으···. 죄송해요. 세 시에 한은 쪽이랑 만나기로 약속했는데요."

"흠, 그래?"

"조금 일찍 말해주셨으면 조정 해봤을 텐데요."

"어쩔 수 없지."

"팀장님은요?"

"팀장님은 그때 전무님이랑 회의 들어가신대."


주 과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하 대리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오른쪽 눈썹을 들어 보였다. 하 대리는 어깨를 으쓱 하며 화답했다.


"야 신입."

"네?"

"너 미팅 가자."

"미팅···이요?"


이렇게 갑자기?


"대충 들어서 알지? 기훈이가 상황 설명 해 줬어?"

"네 설명 들었습니다."

"오케이. 그럼 가자. 가서 아무 말도 안 해도 되니까 머릿수만 채우고 있어."

"야- 민성 씨 출세했네 주 과장님이랑 벌써 클라이언트 미팅을 다 가고."


옆에서 하 대리가 한 마디 거들었다.


"미팅 가서 친정 사람들 만났다고 도망가려 하지 말고. 알지? 과장님 폭주 안 하시게 잘 붙잡고 있어."

"하하···."


도망간다고? 모르고 하는 소리. 절대 그럴 일 없다.


갑작스럽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신입사원이 클라이언트 미팅에 참석하는 건 나름 파격적인 대우.


증권사 입장에서는 고객사 하나하나의 영향력이 엄청나다. 작은 운용사 고객 하나와의 관계도 조심히 다룬다. 하물며 한진생명 같은 초대형 클라이언트는 말할 것도 없다.


잠시 오후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두 시 십오 분. 제임스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여유 있게 가서 도착해 있어야 돼."

"네 과장님."


입사 이후 첫 미팅.


나는 주 과장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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