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라이베카 님의 서재입니다.

숫자버프 신입사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트라이베카
작품등록일 :
2021.05.12 10:43
최근연재일 :
2021.06.16 15:52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75,495
추천수 :
2,851
글자수 :
288,618

작성
21.06.16 15:28
조회
737
추천
27
글자
12쪽

이상혁 (4)

DUMMY

이상혁.


건장한 체격과 진한 눈썹, 그리고 중저음의 목소리. 거기에 더해 미국 유학 생활에서 얻어 온 은근한 억양까지.


슬쩍 묻어나는 이국적인 분위기는 그를 돋보이게 했다. 평범한 신입 사원이었다면 다소 과했을 법한 명품도 그의 몸에 둘렸을 땐 모나지 않았다.


이상혁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아우라에 빠져들곤 했다.


역대급 금수저 배경을 가진 서른 살의 젊은 남자. 그의 주변은 항상 그에게 호의적인 사람들 뿐이었을 것이다.


'아마 원하는 건 다 가져봤겠지.'


이상혁은 손에 넣고자 했던 걸 가지지 못한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신투인 것이고.


하지만, 이번에는 선을 넘었다.


[이스트 어드바이저]

[IP에셋]


그가 판에 끌어들인 금융사들. 둘 다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무리 한국에 지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라고 해도 그 본체는 엄연히 외국 자본.


그의 계획에 따라 저들이 신투를 장악한다면, 그거야말로 현대판 매국이 따로 없다.


딱히 애국심이라던지 대의를 위해 이상혁을 밟으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 위에 저놈이 서 있는 걸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


사실, 이상혁이 왜 외국 자본을 등에 업으면서까지 욕심을 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도 때문에 내게는 기회가 생겼다.


[해외증권 정산 확인서]

[종목명 : XXX]

[거래일자 : 2018/10/22]

[정산 일자 : 2018/10/24 (T+2)]

[통화 코드 (ISO 4217) : USD (코드 : 840)]

[거래액 : 1,000,000]


배 팀장이 건넨 폴더에는 과거 달러화로 결제한 거래의 정산 예시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숫자, '4217'을 발견했다.


ISO 4217.


시장경제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표기하기 위한 국제표준. 원화를 제외한 해외 통화를 사용하여 거래를 진행할 때, 필수적으로 확인하는 코드다.


미화 1백만 달러와 한화 1백만 원. 같은 숫자이지만 가치의 차이가 크다.


그래서 증권 거래 정산 시, 증권과 현금을 교환하기 전에 이 통화 코드를 필수로 체크 해야 한다. 잘못된 통화로 정산을 마감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보통의 경우 이 통화 코드를 크게 신경 써야 할 경우는 흔치 않다. 국내 고객사들은 해외증권 거래를 할 때도 대개 원화로 진행하니까.


원화를 달러로 바꿔 해외 시장에서 증권을 사는 환전 거래는 온전히 증권사의 몫이다.


'찾았는데··· 이걸 어떻게 쓰라는 거지?'


우선 ISO 4217 코드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이 주제에 관해 물어볼 가장 적합한 사람을 한 명 잘 알고 있다. 유선 전화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네 외환 팀 백주창입니다.

"대리님."

-어···? 민성 씨?


바로 백 대리. 반강제적으로 정산팀에 옮겨진 나를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 중 하나일 거다.


7층에서 마주칠 때마다 틈틈이 바이너리 옵션거래 얘기를 꺼내며 다음 트레이드는 언제 할 수 있을지 물어왔으니까.


내가 7층에 구태여 시간 내서 찾아가지 않는 이상 백 대리는 나와 마주칠 일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내 전화를 상당히 반기는 목소리다.


-민성 씨, 잘 지냈어? 야, 같은 회사인데 그거 팀 잠깐 옮겼다고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

"네 대리님. 정산 팀 업무 아시잖아요. 장 중에 잠깐 일어나기 굉장히 힘든 거."

-맞아, 알지 내가. 잘 알아. 고생 많네. 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 바이너ㄹ···

"대리님. 지금 사실 업무 관련해서 전화드렸어요."


백 대리가 바이너리 옵션으로 화제를 틀기 전에 그의 말을 잘라냈다.


-응? 업무? 아, 그래. 뭐 필요한 거 있어?

"네. 대리님 ISO 4217 코드 아시죠?"

-아 그거야 당연히 알지. 내가 하는 일이 맨날 외환 시장 쳐다보는 건데.

"해외자산 정산 건으로 확인할 것이 좀 있어서요. 혹시 이 코드 관련해서 자료 있는 것 좀 보내주시겠어요?"

-음? 딱히 자료랄 것도 없긴 한데. 알았어, 일단 있는 거 보내 볼게.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백 대리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그가 말한 대로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검색해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법한 단편적인 정보 뿐.


[우간다 실링 : UGX (800)]

[미국 달러 : USD (840)]

[우즈베키스탄 숨 : UZS (860)]

[···]


이메일 하단에 표기된 각종 통화 코드. 각각의 통화와 대칭되는 알파벳과 숫자가 적혀있었다.


'뭐야 이게 다였어?'


실망스러웠다. 행운의 숫자를 찾아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철광석도 그 자체로는 쓸모없다. 실력 좋은 대장장이 손에 들어가야 명검이 될 수 있는 거다.


여태껏 경험한 바로는, 내게 주어진 이 능력은 항상 잠재력 뛰어난 재료였다. 하지만, 이 재료를 완성 시키는 건 결국 나다.


그렇기에 계속 풀무질을 해야 한다. 땀을 흘리며 철광석을 달구고, 모루 위에 내려쳐 날을 벼려내야 한다. 이상혁을 찌를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날카롭게.


'거래 계획서, 통화 코드, 그리고 내가 알아낸 이상혁의 실체···.'


이 모든 조각을 한데 모아 생각의 용광로에 집어넣었다. 머릿속에서 모든 재료를 녹여 모으길 한 시간.


'설마?'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이 전략대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내게 불리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다.


내 발은 묶여있고, 적은 자유로운 상태에다가 상대해야 할 적도 하나가 아니다.


이상혁이 등에 업은 스폰서는 하나같이 거물들이다.


시간마저 내 편이 아니다. 이상혁이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단 이틀. 거래를 진행하는데 하루, 주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데 하루면 충분하다.


'반면에 내가 가진 무기는···.'


내 능력은 강력하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하루에 단 한 번만 쓸 수 있으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상관없다.


내 상황이 좋기만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내 손 안의 정보를 종합해 최선의 전략을 짤 뿐.


내가 방금 구상해낸 작전. 때를 기다리며 머릿속에서 계속 담금질을 했다.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어, 기회가 왔을 때 주저 없이 이상혁의 목을 칠 수 있도록 날을 벼려 놓을 거다.


**


"다들 다시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사전회의가 있었던 회의실.


이전 회의에 참석했던 멤버 그대로 다시 모였다. 박창섭 팀장의 주도하에 2차 회의가 진행되었다.


"오늘은 어제만큼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시스템 오류 났던 사항만 간단히 체크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네, 코드 내에 변수 설정 잘못 된 거 롤백해서 업데이트 끝났어요."


개발팀 최 과장이 박창섭 팀장의 말에 응답했다.


"알겠습니다, 최 과장님. 그러면 바로 테스트 거래 들어갈까요?"


박창섭 팀장의 말에 이상혁이 이스트 어드바이저 측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하는 테스트용 주문들.


띠링-

띠링-


몇 차례 알림음이 울리고 최 과장의 컴퓨터에서 체결 완료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총 주문 20건이 체결되었습니다.


방 안에서 작은 소리로 안도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상혁은 긴장했었는지 고개를 살짝 떨구기까지 했다.


"흠, 이제 사전 준비는 다 끝난 것 같네요? 최 과장님. 잘 처리 된 것 맞나요?"


박 팀장의 말에 다시 방 안은 조용해졌다.


"재검토했는데, 특이 사항 없습니다. 딱히 더 준비할 거 없이 바로 실전 투입 가능합니다."

"그럼 바로 실거래로 넘어갈까요? 지체할 것 없이."


"IP에셋 쪽 먼저 연락할게요."


이상혁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회의실 내 유선 전화를 이용해 IP에셋에 연결한 이상혁. 수화기에 대고 말을 이었다.


"네, 네. 지금 바로 주문 보내주시면 됩니다."


띠링-

띠링-


곧이어 IP에셋에서 주문이 도착해 시스템에서 알림 소리가 들린다.


-체결되었습니다.

-체결되었습니다.


테스트 거래와 마찬가지로 주문이 도착하자마자 자동체결 되었다. 이상혁의 제안으로 도입된 자동체결 방식에 의해, 수십 개의 주문이 아무런 방해 없이.


다들 화면을 쳐다보느라 놓쳤겠지만, 이상혁의 얼굴에 잠시 드러났다 사라진 감정은 희열이었다.


"자, 이제 이스트 쪽에서 매도 주문만 보내면 되겠네요."

"서둘러야 합니다. 동일한 주문들, 바로 안 들어오면 리스크 시스템에서 경고 메시지 뜰 거에요."


리스크 관리팀의 재촉을 들으며 이상혁은 다시 전화를 들었다. 전화 패널의 다이얼을 눌러 이스트 어드바이저에 연결을 시도했다.


-이스트 어드바이저 이상준입니다.


이번에도 직접 전화에 응답한 이상준 대표.


이상혁은 연결이 되자마자 전화를 스피커 모드로 돌렸다. 둘 사이의 대화가 모두에게 들리도록 설정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네.

"매도 주문 보내주시겠어요?"

-그게 말입니다. 저희가 내부적으로 거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검토해 봤는데요···.

"네?"

-이 거래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시죠?"

-애초에 계획했던 거래 규모를 대폭 축소해 3할 정도만 체결할 생각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고객사의 답변에 방 안의 모두가 술렁였다. 방 안에서 이 상황에 놀라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건 단 두 명.


나. 그리고 이상혁.


나야 이렇게 될 줄 일찍부터 예상했었고.


이상혁은 주도하던 거래가 크게 엎어진 사람치고는 너무 침착했다.


다들 무슨 일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이상혁은 거래 담당자인데도 불구하고 식은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후, 생각한 대로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신투가 IP에셋과 거래를 체결하자마자 이스트 어드바이저는 발을 빼려 시도 중이다.


이로 인해 신투는 IP에셋과의 옵션거래 리스크를 대부분 떠안게 됐다.


띠링-


[체결되었습니다.]


박창섭 팀장이 항의했으나, 이상준 대표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원래 약속했던 거래의 삼 분의 일만 보내져 자동화 시스템을 거쳐 체결되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애초에 무위험거래로 상정된 거래 아니었나요? 지금 신투가 지고 있는 위험도가 얼마나 큰지 아세요?"


리스크 관리팀 쪽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진정하세요. 아직 손실을 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이라구요?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아시잖아요!"

"애초에 주가가 크게 움직일 리 없는 종목들입니다. 주식 운용팀에 전화 넣어서 헤징 시작하면 됩니다."


박창섭 팀장이 리스크 관리팀을 진정시키며 중재에 나섰다.


그의 말은 맞다. 현재까지는 손실이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가가 아직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 박창섭 팀장은 이상혁과 이상준이 주가를 견인하기 시작할 거라는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다.


이상혁을 쳐다보자, 그가 나를 향해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는 아마 내가 자포자기했다 믿고 있을 거다.


내가 미동도 없이 조용히 침묵만 지키고 있으니까. 아마 자신의 완벽한 계획이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지금 즐겨 둬라.'


하지만 내게도 계획이 있다.


이상혁은 물론이고 그와 들러붙은 IP에셋, 거기에 이스트 어드바이저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계획.


그리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 방금 모두 충족되었다.


이제는 실행에 옮길 차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22 퍼펙트가이
    작성일
    21.08.14 15:12
    No. 1

    근데 이상혁은 실무자라 그렇다쳐도 다 팀장급이 참여하는데 정산팀은 수습사원이 참여라니.그것도 임시 사원이.ㅎ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숫자버프 신입사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신작 연재중입니다. +1 21.08.04 114 0 -
공지 감사합니다! +6 21.06.16 268 0 -
공지 전무님, 보고 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21.05.31 239 0 -
공지 제목 변경 공지입니다 21.05.13 237 0 -
공지 연재 시작했습니다 +4 21.05.12 1,882 0 -
53 도약 -完- (감사합니다!) +19 21.06.16 939 35 12쪽
52 변화 21.06.16 789 26 15쪽
51 이상혁 (7) 21.06.16 769 27 12쪽
50 이상혁 (6) +1 21.06.16 733 25 11쪽
49 이상혁 (5) +2 21.06.16 735 24 12쪽
» 이상혁 (4) +1 21.06.16 738 27 12쪽
47 이상혁 (3) +1 21.06.16 728 21 12쪽
46 이상혁 (2) 21.06.16 749 27 12쪽
45 이상혁 +7 21.06.12 930 43 12쪽
44 갖고 싶은 것 +4 21.06.11 949 52 14쪽
43 욕심 +3 21.06.10 975 44 12쪽
42 가설 +3 21.06.09 1,001 49 12쪽
41 시스템 완성 +1 21.06.08 994 44 12쪽
40 냄새가 난다 +1 21.06.07 1,024 53 12쪽
39 트로이 목마 +2 21.06.06 1,045 47 12쪽
38 잠입자 +1 21.06.05 1,074 46 14쪽
37 해결책 +1 21.06.04 1,106 59 13쪽
36 탐색전 +2 21.06.03 1,129 56 13쪽
35 선전 포고 +4 21.06.02 1,180 53 12쪽
34 1등? +7 21.06.01 1,188 64 12쪽
33 거래 하시죠 21.05.31 1,163 61 11쪽
32 행운의 숫자 +2 21.05.30 1,172 61 12쪽
31 조별 프로젝트 (3) +2 21.05.30 1,185 58 13쪽
30 조별 프로젝트 (2) +2 21.05.29 1,205 54 16쪽
29 조별 프로젝트 +1 21.05.28 1,273 61 13쪽
28 운 좋아? +2 21.05.27 1,334 60 12쪽
27 확장 서비스 +2 21.05.26 1,352 67 13쪽
26 한진생명 (9) +12 21.05.25 1,402 68 12쪽
25 한진생명 (8) +2 21.05.24 1,367 65 13쪽
24 한진생명 (7) 21.05.23 1,381 57 12쪽
23 한진생명 (6) +5 21.05.23 1,382 53 12쪽
22 한진생명 (5) 21.05.22 1,381 55 13쪽
21 한진생명 (4) +4 21.05.21 1,458 59 12쪽
20 한진생명 (3) 21.05.20 1,500 56 12쪽
19 한진생명 (2) 21.05.19 1,590 56 12쪽
18 한진생명 21.05.18 1,634 58 11쪽
17 첫 활약 (2) +1 21.05.18 1,628 52 12쪽
16 첫 활약 +2 21.05.17 1,651 56 12쪽
15 신입이 업무를 잘함 +2 21.05.17 1,717 54 12쪽
14 내기 할래요? 21.05.16 1,737 57 13쪽
13 외환 팀 백 대리 21.05.16 1,818 56 11쪽
12 7층 +2 21.05.15 1,899 60 12쪽
11 스카우트 +4 21.05.15 1,981 68 13쪽
10 행운은 용감한 자를 돕는다 21.05.14 2,011 59 12쪽
9 참교육 +2 21.05.14 2,035 6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