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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트라이베카
작품등록일 :
2021.05.12 10:43
최근연재일 :
2021.06.16 15:5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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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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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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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한진생명 (3)

DUMMY

"시간 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차장님."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회의 내용은 이메일로 정리해서 따로 팔로업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연락 기다릴게요."


한 차장과 이 대리가 인사를 나눴다.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진생명 건물을 나왔다.


"최민호 팀장님."

"왜?"

"미쳤어요?"


주 과장의 급발진. 로비를 나서자마자 처음 던진 말이었다.


"뭐 인마?"

"미치셨냐구요."

"하, 너네 팀이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상급자한테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골때리네. 죄송해?"

"네.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셔서 말이 헛나왔네요."

"뭐? 이 새끼가!"


"과장님, 팀장님. 여기 고객사 건물 근처에요!"


험악해지는 분위기. 이효상 대리가 나서서 말렸다. 하지만 둘 다 이 대리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팀장님. 우리 증권사 일하는 거 맞죠? 돈 벌어야 되는 거 맞냐구요!"

"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50억 손해 보겠다고 한 줄 알아?"

"그래요? 그게 뭔지나 들어봅시다."

"내가 꼭 말해 줘야 돼? 장기적인 고객사와의 관계 개선! 기본 아니야?"

"어떤 미친놈이 50억씩이나 퍼 주면서 관계 개선을 하는데?"


최 팀장이 대답하는 대신 빈정대기만 하자, 주 과장은 반말로 대응했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너 말이 계속 짧다?"

"짧은 건 니 생각이 짧은 거고. 얼마나 그 관계 유지가 대단하길래 50억을 쓰려고? 이거 전무님이 알면 가만두실 거 같아?"

"어휴, 말을 말아야지. 이 새끼 누가 검은 머리 외국인 아니랄까 봐, 양놈이 아주 따로 없네."


주 과장은 최 팀장 앞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마주 섰다. 정말 한 마디만 잘못 나오면 주먹질이라도 나올 상황이다.


"야 김민성이. 얘 데리고 꺼져."


최민호 팀장의 말을 따르는 것 같아 분하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주 과장을 이 상황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최선이다. 주 과장이 더 흥분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나는 말없이 주 과장을 붙잡았다. 그도 신입사원을 앞에 두고 못 볼 꼴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운가 보다. 별 저항 없이 돌아섰다.


"과장님, 일단 사무실로 돌아가시죠."

"야 신입."

"네."


국내주식운용팀 사람들과 갈라져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택시를 안에서 주 과장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오늘 도저히 더 일 못 하겠다. 어차피 퇴근 시간도 가까워져 오는데."

"사무실 안 올라가시고 바로 퇴근 하시려고요? 제가 가서 팀장님께 보고 드릴까요?"

"아냐. 너 오늘 뭐 하냐?"

"네? 오늘요?"

"별거 없지?"

"미팅 불러 주셔서 일단 나오기 전에 하 대리님 부탁하신 건 다 끝내 놨는데요."

"오케이. 너 럭키한 줄 알아라. 땡땡이치자."

"네?"

"땡땡이치자고. 나보다 한국말 잘하면서 왜 못 알아듣는 척이야?"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다. 하지만 주 과장은 계속 막무가내였다.


"아무리 그래도 팀장님께 보고드려야 하지 않아요?"

"아니 회삿돈 50억을 그냥 상납하겠다는 미친놈도 있는데. 넌 안 억울하냐?"

"억울하죠."

"그렇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야! 우리도 억울하니까 째고 그냥 맥주나 마시러 가자."


어··· 맥주?


콜.


**


다섯 시 십오 분 전. 사무실 근처 치킨집.


퇴근 시간보다 반 박자 빠르게 도착해서인지 치킨집은 아직 한산하다.


지금부터 삼십 분만 늦게 도착해도 대기 시간이 한 시간은 기본인데. 이게 다 주 과장의 과감한 결정 덕이다.


"여기 주문할게요."

"뭐 드릴까요?"

"맥주 피처로 하나 주시구요, 후라이드 한 마리, 양념 한 마리요."

"네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주문을 마친 주 과장.


"다 드실 수 있겠어요?"

"내가 한국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배운 말이 있거든."

"?"

"그중에 제일 맘에 들었던 말이 뭔지 알아?"

"글쎄요···."

"1인 1닭."


순간 피식했다.


처음부터 한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걸 알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제임스 과장은 왠지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았다.


큰 키에, 잘생긴 건 모르겠지만 강렬한 이목구비.


그런 사람이 치킨집에 앉아서 하는 말이 1인 1닭이라니···.


"맛있게 드세요-."


잠시 후 맥주가 도착했다.


팅-


잔과 잔이 부딪쳤다. 주 과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순식간에 한 잔을 비웠다.


"캬, 맛있네."

"그러게요."

"땡땡이치고 마시는 거라 더 맛있다."


격하게 동의한다. 그리고 나한테는 축배이기도 하고.


입사 이후 올린 첫 수익을 위한 축배. 그리고 처음으로 고객사 미팅에 참석한 것을 기념하는 축배.


"팀 옮기게 돼서 어때?"

"아시잖아요."

"그래. 알 만하다. 최민호 팀장 밑에서 고생 많았네."


손을 뻗어 주 과장의 맥주잔을 채웠다.


"어떻게 생각해?"

"뭐가요?"

"회의 말이야."

"이상했어요."

"말해봐."


주 과장은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경청하겠다는 의미다.


"고객사와 관계 유지를 위해서 가끔 마진 없이 거래하는 경우는 있어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트레이드를 하는 건 못 들어봤습니다."

"그렇지."


주 과장이 수긍해 주자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서 내 의견을 조금 더 덧붙였다.


"그리고 그 관계 유지라는 게 결국 이렇게 큰 거래를 하기 위한 것 아닌가요? 큰 거래에서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을 게 없어 보이는데요."

"바로 그거야."

"더 큰 이익이 없다면요."


쿵-


주 과장이 맥주잔을 살짝 들어 테이블을 치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내 대답에 만족하는 것 같다.


"치킨도 드릴게요-."


그리고 타이밍 좋게 나온 치킨.


주 과장은 다리를 하나 들어 입에 욱여넣고 우물거리다 뼈를 발라 뱉어냈다. 그리고 앞접시 위 잔해를 처리하며 말을 계속했다.


"나도 그 점이 이해가 안 가. 뭐 규모야 그렇다 치고, 이 이상 더 크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는데."

"이다음 거래에서 뭔가 크게 노리는 게 있는 것이 아닐까요?"

"뭐 그렇게 말이 오갔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렇다고 쳐도 말이 안 되는 점이 하나가 있어. 첫 거래 진행이 다다음 주니까··· 6월 초. 다음 거래는 빨라 봐야 9월."

"그러네요. 분기마다 진행한다고 했으니까."


이어지는 잠깐의 정적. 정적을 깨고 주 과장이 물었다.


"너 이 거래가 왜 중요한지 알아?"

"팀장님 때문에요?"

"맞아. 10월에 고과 총합으로 이사 승진 결정이 나거든."

"그럼 9월 실적이 좋으면 유리해지는 거 아니에요? 최민호 팀장이 노리는 게 그걸까요?"

"흠···."


주 과장은 다시 잠시 말을 멈췄다. 포크로 애꿎은 치킨 뼈만 계속 찌르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타이밍이 안 맞아."

"타이밍이요?"

"9월 초에 거래하기로 해도 규모를 생각해 보면 체결까지 이루어지는 건 9월 중순은 넘어야 하는 건데···. 평가에 들어가는 고과 마감은 9월 초거든."


'고과 마감이 9월 초라고?'


"네? 그럼 다음 거래에 뭘 하건 평가에는 잡히지도 않을 거 아니에요?"

"응. 안 잡혀."

"그리고 평가 전 최 팀장 마지막 작품이 이번에 고팡 건이구요."

"그렇지. 50억 손실 날 이번 거래."


말이 안 된다.


최민호 팀장의 결정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주 과장은 물론이고, 이제 갓 판세를 읽기 시작한 내 시선에서도 이상하다.


"아 몰라, 일단 마시자."

"넵."


술잔을 한잔 두잔 더 기울이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테이블 위 작은 스테인레스 통 안에는 닭 뼈가 쌓여갔다.


여섯 시가 가까워지자 아니나 다를까 퇴근한 회사원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휴, 그래 너네도 고생 많았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안 괜찮으면?"

"에이, 그냥 여쭤보는 소리죠···."

"그래 내가 최민호 그 새끼 때문에 속이 아주 썩는다 썩어."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주 시끄러운 장소에서 소음을 비집고 특정 단어나 이름이 또렷하게 귀에 들리는 경우.


방금이 그랬다. 각종 대화와 썰풀이로 시끄러운 회사 근처 퇴근 시간 치킨집. 소음이 무색하게 '최민호'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렸다.


"과장님."

"왜?"


나는 조용히 주 과장을 불렀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친 뒤 조심스럽게 옆 테이블을 가리켰다.


"아 왜 그러는데?"

"쉿!"

"!"


그제야 주 과장도 눈치를 챘다. 곁눈질로 살펴본 옆 테이블. 그곳에는 전환사채 사업부 1팀이 앉아 있었다.


시끄러운 실내라 잘 들리지는 않는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나서야 대화가 드문드문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 최민호 팀장이 ··· 했잖아?"

"네 ··· 그게 ··· 정말 막무가내라니까요."

"··· 아마 ··· 였던가?"

"그럴 거예요 ··· 니까요."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거리가 멀어서 대화가 잘 들리지 않는다. 앞에 앉아있는 주 과장은 답답한 표정이었다.


"과장님."

"응?"

"다녀오겠습니다."

"뭐? 간다고? 어딜?"


휴, 답답한 건 못 참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전환사채 1팀의 테이블 근처로 다가갔다.


그 근처에서 벽에 기대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는 척하며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이건 선을 좀 넘었죠."

"어쩌겠냐. 최민호 아니면 박창섭이 이사 승진하는 건데. 우리가 적 진다고 좋을 게 없다. 참자."

"그래도 이거 채권 모으느라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알지, 알아. 어휴."

"저걸 그냥 두고 보자고요?"

"그만 얘기하자. 입 아프다."


앞부분 대화는 이미 놓쳤다.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자리로 돌아왔다.


"과장님.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최 팀장한테 불만이 엄청 심하던데요. 채권 모으느라 힘들었대요."

"힘들었다고?"

"네. 그래서 그거 넘기기 아쉽다는 식으로 말하던데···."

"그리고 또?"

"그밖에는 별 얘기 없었어요."

"그렇단 말이지···."


별로 새로울 사실도 없는데 주 과장은 한참을 생각했다. 고민하는 그를 따라 머릿속을 정리하다 보니 갑자기 드는 의문점이 있었다.


"과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전환사채 팀이 따로 있는데 왜 국내주식부가 전환사채 거래를 주도해요?"


주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곤 설명했다.


"전환사채 옵션이 일단 행사되고 나면 주식이 되잖아. 그래서 주식 부서랑 고객사를 공유하기도 하는데 보통 협업 형식으로 진행돼."

"그렇구나··· 그런데 지금 저쪽에서 불만을 잔뜩 품고 있던 것 보면 협업이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그게 나도 궁금하다."


주 과장은 마지막 남은 맥주를 마셔 버렸다. 잔을 내려놓으면서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50억 손실 확정에, 다른 팀이랑도 사이 틀어지고. 도대체 왜?"

"뭔가 크게 얻어낼 게 있어야겠네요."

"아, 씨. 그런가? 아니면 최민호 그 새끼가 우리 팀장님 엿 제대로 먹이려고 뭐 설계라도 하는 거 아냐?"

"두 분이 사이가 그렇게 안 좋아요?"

"야 말도 마라."


주 과장은 그렇게 최 팀장과 박 팀장, 둘 사이의 썰을 풀기 시작했다. 회사에 알려진 것 이외에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이.


풀리는 썰들을 안주 삼아 맥주 한 피쳐를 더 끝낸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는 길.


보통은 홀가분한 퇴근길. 하지만 오늘은 왠지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풀리지 않은 궁금증 때문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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