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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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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13,963

작성
22.06.2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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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그리고, 새로운 국면

DUMMY

연방의 군복은 마왕군의 것과는 정반대의 하얀 색상에, 디자인도 다르다.


흑과 백의 대립은 스파세니예 연방이 데트르에 군을 보낸 시점부터 계속되어 왔으며, 일방적이기는 하지만 전쟁을 통해 많은 피가 흘렀다.


백의 세계에서 흑이 보이면, 그리고 흑의 세계에서 백이 보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살하는 게 여태까지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 마왕령에서는 아직도 매우 이질적인 군복을 입은 이들이 알트레아 왕국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왕성에 들어와 있었다.


“크흠.”


테일러 에스먼드 소령은 기다림을 수반한 정적이 불편한지, 괜히 헛기침했다.


제대로 허가를 받아 들어왔다고는 하나, 적대하던 마왕군 진영의 한가운데에 이렇게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불편하다는 건 그대로 그의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화려한 장식이 잔뜩 가미된 왕성은 연방의 투박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궁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특히나 입구 앞에 있었던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정원은 연방에서는 아무리 고위층이 사치를 부려도 무리다.


마왕은 그만큼의 위엄을 보이는 게 허락되는 자리라고는 하나, 그를 왠지 모르게 주눅들게 하는 장소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부터 공식으로 만나보게 될 자가 바로 그 높은 마왕님이니까.


“말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 전장에서 잠깐 말 섞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이잖아.”


“말해두지만 괜한 소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소령님. 대담 도중 질문이 필요하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테일러가 푸념 겸 혼잣말을 하자, 그의 부관ㅡ레이지스 휴버 중위가 다그치듯 말했다.


그녀가 입은 군복은 파흐 평야의 상공에서 있었던 격렬한 싸움을 증명하듯, 곳곳이 그을려있었다.


그 아름다운 분홍 머리가 그을리지 않은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 붉은 드래곤과의 전투는 문자 그대로 뜨거웠던 것이다.


만일 데트르의 연방군이 건재했다면 분명 그녀에게 연방영웅 훈장 수여가 고려되었겠지. 비행선 함대를 홀로 지키며 그 많은 드래곤들을 상대로 전선을 유지했던 그녀의 위용은 그야말로 영웅에 걸맞았으니까.


“우리는 각오하고 전쟁을 조기종식 시킨 거니까요. 지금은 마왕군의 휘하에 들어가는 이상, 마왕 각하를 최고지도자로 대해야 합니다.”


과거에 몇 번이나 이 계획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던 레이지스지만, 막상 실행단계에 들어가고 나서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수긍해버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그야, 그 돼지에 비하면 한없이 빛나는 최고지도자임이 틀림없겠지. 하지만 레이, 내가 걱정하는 건 역시 우리들이 마왕군에 잘 녹아들 수 있겠냐는 거라고. 소외된 직장 생활은 힘드니까 기왕이면 환영해주었으면 하는데.”


“그거야말로 괜한 소리네, 소령님.”


자신의 왼쪽 얼굴을 문지르던 일레느 코르투와 대위가 테일러 소령의 푸념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곳에는 상처는커녕 흉터조차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역시 그 주먹을 바로 잊기는 힘들다. 가름이 힘 조절을 했다고는 하나, 열 받은 헬하운드의 주먹은 꽤 매운 편이니까.


“그렇게 살벌하게 싸우던 적과 바로 화해하라니, 말도 안 되는 경우야. 포로수용소에 처박지 않고 이렇게 제대로 상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까나. 연방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우죠.”


금발의 광인을 빤히 바라보던 테일러는 한숨을 쉬었다.


“일레느가 상식적인 말을 하는 날이 오다니, 그거야말로 세상이 뒤집혔다는 기분이네.”


“잠깐만, 지금 일레느한테 뭐라고ㅡ”


일레느 대신 발끈한 나오키 쿠로사와 중위가 눈을 찡그리며 뭐라 하려는 순간, 누군가 그들이 모인 회의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신가, 아틀리치니 제군.”


그 모습, 그 목소리에 앉아있던 아틀리치니 전원이 즉시 일어서며 경례를 올렸다.


검은 코트를 펄럭이며 들어온 마왕은 그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경례에는 착각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강자에게 보이는 예우 또한 섞여 있었기에 마지못해 하는 제식의 느낌은 없었다.


어찌 보면 아틀리치니도 연방의 압도적 강자로서, 그들보다도 한층 위인 강자를 인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 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단순히 높은 자리에 있을 뿐만이 아닌, 세계를 위협하는 마수들에게 지도자로 인정받은ㅡ명실상부한 괴물 중의 괴물이니까.


어디 귀족의 자제 같은 반반한 얼굴에 속으면 안 된다. 이 소년이 지금까지 초래한 인명피해가 백만을 가볍게 넘긴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소년이야말로, 연방이 절대로 적으로 돌리면 안 되는 존재였다.


간단하게 그들의 경례를 받아준 마왕이 자리에 앉으라는 명령을 하고 나서야, 아틀리치니는 다시 착석했다.


회의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연방군 정예를 둘러본 마왕은 들고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의자에 앉으며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우선 이번에 협력에 준 것에 감사를 표하지. 덕분에 '몰살시키지 않고'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연방의 기술은 이쪽에 큰 도움이 되었고 말이다.”


꽤 허물없는 말투로 말하는 소년.


마음만 먹으면 전부 쓸어버릴 수 있었을 거라는 암시에도 반론을 꺼내는 자는 없다.


이번에 전력으로 마왕군과 부딪힌 그들은 이 전쟁이 결국에는 그들의 패배로 끝날 것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분해도, 그 정도의 전력 차는 무시할 수 없었다.


마왕군이 그 단기간에 증기기관 엔진 기술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 시점에서, 연방군은 선점하고 있던 기술적 우위도 뺏겨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뮬러 대령, 몸은 좀 어떤가? 자네는 이번 전투에서 꽤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하더군.”


“더할나위 없습니다. 모두 마왕님 덕분입니다.”


마왕이 보인 마음 씀씀이에, 머리가 희끗한 루웨인 뮬러 대령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시이나의 대검에 배가 꿰뚫리는 치명상을 입은 이 노장은 시이나의 변덕, 그리고 일주일 동안 하이엘프 의료진들이 쏟은 노력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마무리를 짓는 대신 인명구조라니, 시이나 다운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다행이군. 대령을 포함한 여기 모두는 앞으로도 부지런하게 일해줘야 할 테니 말이다.”


마왕은 준비해온 종이를 서슴없이 한 움큼 뿌렸다.


그의 중력 마법이 살짝 가미된 종이는 아무렇게나 떨어지는 대신, 각 사람 앞에 한 장씩 살랑살랑 내려앉았다.


“개혁에 대한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받아, 그를 토대로 보완한 것이다. 자네들은 당사자이기도 하니 한번 읽어보도록.”


그 말을 하며 마왕은 예카테리나 쪽을 보았다.


계획서에는 마왕군이 스파세니예 연방에서 실행할 개혁의 각 단계가 상세하게 기술되어있었다. 연방의 내부사정을 정확히 알기에 고안해낼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도움은 저 소녀에게 받은 것이다.


칠흑의 마왕ㅡ류셀 블레이크는 종이의 내용을 읽은 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마왕군이니 압도적인 무력으로 짓밟을 거라 생각했나? 그것도 무리는 아니지,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 한해서 그럴 생각은 없다.”


아직 앳된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얼굴을 한 마왕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나, 데트르에는 아직 120만이라는 대군이 남아있어. 그들에게 이곳에 정착하게 하고, 스파세니예 연방과는 별개의 세력으로 키우겠다. 본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ㅡ일종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지.”


◆ ◆ ◆ ◆ ◆ ◆ ◆



단 한 명ㅡ예카테리나 페르바크 중위를 제외하고 아틀리치니 전원이 동요했다.


특히 레이지스 휴버 중위는 의아함을 감추지 않으며 손을 들었다.


“무례를 무릅쓰고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각하?”


“물론이지. 궁금한 건 언제든지 물어도 좋다.”


내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레이지스는 그녀가 품은 우려를 털어놓았다.


“이들은 모두 마왕군을 적으로 인식하고 온 군입니다. 지금은 굴복했어도 그렇게 쉽게 생각을 바꿀까요? 전원 연방을 모국으로 살아온 자들인데요. 전쟁포로로 대우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좋은 질문이야, 중위. 하지만 방향이 틀렸군. 생각을 바꾸게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연방이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데트르의 지도를 보며 말했다. 각지의 연방군 잔존병력이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만한 병력이 작전목표를 내팽개치고 독립하겠다는데 환영할 나라는 없지. 분명 귀환을 명령하거나, 만에 하나 독립을 인정하더라도 상당한 양의 세금을 걷으려고 할 게 뻔하다. 연방은 데트르의 잔존병력 120만을 국가자산으로 볼 테니 말이지.”


“이곳의 병력이 정착하기도 전에 연방이 토벌대를 보내오려 하지 않을까요?”


연이은 레이지스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160만으로 이기지 못한 전쟁에 추가병력을 보내지는 못한다. 패전한 연방에 그만한 자금력은 남아 있지 않다. 우리가 데트르 전역에 흩어져있는 연방군 물자 전부를 탈취했으니, 설령 그쪽이 또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어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내 의견에 동의하는지, 레이지스를 포함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할 일은 이곳에 정착한 연방군과 스파세니예 연방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강대국 스파세니예 연방이 숨기는 어둠. 그건 바로 돈이니까.”


겉으로 보면 바로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사실 연방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근 100년 동안 변해버린 기후 때문에 사시사철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제대로 농사를 짓기도 힘들었고, 집권당 관계자들이 부를 싹 갈취하는 바람에 보통 서민은 내일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며 사는 것이다.


당에 대한 불만을 입에 담기라도 하면 모조리 숙청. 아주 운이 좋은 경우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을 때까지 노동교화형에 처해지거나, 보통은 일가족이 모두 총살대에 세워지기 마련이다.


단지 강대한 군사력을 쥐고 휘두르는 중앙집권당과 최고지도자 라트신에 대항할 기력이 없을 뿐이지, 극소수의 기득권 말고는 당에 전적으로 만족하는 인민은 없는 것이다.


“이쪽은 당장 배가 주리는데 보란 듯이 부를 움켜쥐고 인민의 애국심에 대해 떠들어대는 간부들의 모습을 납득할 수 있을까.”


“그렇네. 나도 어떻게 보면 먹고 살려고 군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일리 있어.”


잠자코 듣고 있던 카옌 콜드노바 소위가 입을 열었다.


“마왕 오빠는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서 이곳과 본국의 사이가 벌어지게 하려는 거구나?”


마왕인 나를 향한 허물없는 카옌의 말투에 레이지스의 얼굴이 새파래졌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넘어갔다. 로그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어린아이라는 건 그런 것이니까.


“그래, 소위. 비슷한 사례를 이전에 본 적이 있어서 말이지.”


지금은 최강국이 된 어느 식민지를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


“정착에 필요한 자금은 아낌없이 지원할 생각이다. 그 수많은 연방군 중에 평생 군에서 썩은 자는 드물고, 다른 직업을 가진 자들이 징집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총을 내려놓고 다른 일에 매진하는 것에 금방 익숙해지겠지.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더더욱.”


처음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아틀리치니의 얼굴에 이해의 빛이 깃드는 걸 보며, 나는 계속 설명했다.


“집권당을 두려워하며 매일매일 궁핍하게 살아오던 평범한 연방 인민들에게 있어, 이곳 데트르 대륙의 풍족함은 엄청난 발전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 알트레아 왕국이나 제국 등지는 남자 대부분을 전쟁으로 잃었으니 성비도 딱이지.”


새로운 땅에서 가정을 꾸린 자들의 마음이 이곳 데트르로 기울기는 결국 시간문제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했다.


본국에서 핍박받거나 불행한 삶을 이어가던 자들이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운 나라가 바로 연방인데, 그 똑같은 일이 반복되려는 것이다.


“연방에 가족이 있는 자들은 연방으로 돌아가기보다, 연방의 가족을 이리로 데려오고 싶어하겠지. 그런 자들을 위해 연방에서 인간을 빼 올 수 있는 방편도 제한적이지만 마련되어있다.”


마족의 숫자는 인간에 비해 적다. 부를 독차지하고 있던 인간들이 많이들 사라진 지금, 120만 정도쯤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즉 요지는 이곳이 연방보다 훨씬 높은 자유와 풍족함을 제공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이해시키고, 연방이 거둬들이려고 할 세금ㅡ또는 개입을 불합리한 것으로 인식시키는 것이다.”


“과연. 그러면 자연스레 본국에 대한 적대 감정이 생길 거란 말이네요. 듣고 있으니 충분히 일리가 있어요.”


테일러 에스먼드 소령이 중얼거렸다.


“잠시만, 그러면 단지 그걸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이곳이 스파세니예보다 나은 삶을 제공한다는 소문이 파다해지고, 그 소문을 듣고 이쪽으로 이주하려는 연방 사람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정부가 당연히 대척할 테고. 그러면ㅡ”


뭔가 깨달은 테일러 소령이 나를 바라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폭동이 일어난다. 우리가 부추긴 폭동이 스파세니예 각지에서 일어나는 거지. 그들은 우리가 제공한 무기를 들고 정부를 무너뜨리는 거다. 이쪽의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과연, 이쪽에서도 지원하는 거네요.”


이번엔 일레느 코르투와 대위가 발언했다.


부하에게서도 들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마왕군의 화약 기술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연방에서 쓰는 가스류와 달라 흥미롭다나.


“소화기 말고 폭탄류도 지원할 계획인가요? 그 꼴 보기 싫은 돼지의 타워를 무너뜨리기엔 최적일 것 같은데.”


“폭동이 성공적으로 정부를 무너뜨릴 수야 있다면 뭐든지.”


그녀는 내 대답에 만족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나오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마왕님의 부하를 몇 보내면 한 달 안에 나라가 무너질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인정했다.


“린 하나로 충분하겠지. 닷새만 있으면 스파세니예 전체가 이 지도상에서 사라진다. 펜리르에게 그 정도는 일도 아니야,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보다 더 빨리 연방 전체가 불탈 것이니.”


내가 진지하게 얘기하자, 나오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 순간, 회의실의 모두는 자신들의 생사여탈ㅡ나아가 연방의 존재 여부가 내게 달린 것을 깨달았겠지.


개인에게 허락되면 안 되는 힘을 휘두르는 존재가 비로소 마왕임을 알았기에, 저항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들은 내게 고개를 숙이고 복종 의사를 표한 것이다.


모든 패를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곳에 개혁할 나라는 남아있지 않겠지, 쿠로사와 중위. 나는 앞서 너희와ㅡ예카테리나 페르바크 중위와 맺은 계약을 이행하려는 것이다. 연방의 틀을 보존하는 것에 이의는 없겠지?”


예카테리나와 눈을 마주친 소년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나는 강조해서 말했다.


“중요한 건 이쪽이 정의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 이곳에 정착하게 될 120만의 병력은 오랫동안 쌓여온 불만에 불을 지피는 성냥이 되는 거지. 성대하게 폭발할 수 있도록.”


말은 길지만, 결국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이다.


“마왕군의 톱이 마왕. 즉 마족이라고 해도, 막상 살아보면 그리 크게 다를 건 없을 것이다. 야만적인 본성을 앞세워 폭정과 함께 군림하는 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지, 우리는 그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는다.”


“하긴, 오면서 보니까 인간도 멀쩡히 걸어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도저히 서적에 있었던 마족 치하 도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테일러가 금방 내 말에 수긍했다.


“제대로 된 급여도 받지 못하고 징집된 연방군 병력 태반은 금방 적응하겠네요. 마왕 각하 말씀대로 제일 중요한 건 환경이니까요.”


“그래. 어찌 보면 너희들이 원했던 개혁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좋다. 낡고 비효율적인 체제를, 새로운 체제가 집어삼키는 것이다. 이만한 인원을 따르게 하는 건 쉬운 게 아니니 처음에는 잡음이 다소 생기겠지만, 결국 잔잔해지겠지.”


나는 새로이 얻은 60개 사단급 병력을 허투루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연방의 사람은 마도ㅡ즉 고유스킬에 특화된 대신에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직접 마법식을 구축하지 않고도 마법을 쓰게 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


하나하나 이쪽의 장비를 활용해 무장한다면 엄청난 병력의 증강으로 이어진다.


그들을 이곳의 체제에 동화시킴과 동시에 스파세니예 연방의 개혁을 달성하기엔 이것이 최적의 수단인 것이다.


“그래. 무리 없이 잘 진행될 계획이다. 누가 개입해오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그 누가 감히 연방을 꺾은 마왕군에 개입할 수 있다는 건지 다들 눈을 찡그렸지만, 나는 그것을 구태여 입에 담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발표는 나중이 되겠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말해두지. 마왕군이 지배하는 이 드넓은 땅을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어떻게 보면 이건 데트르에게도 기회야.”


나는 선언했다.


“지금부터 마왕령은 수십 개의 주가 통합된 하나의 나라가 된다.”


작가의말

다음 적은 전에 살짝 소개했던 신성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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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금속은 생각보다 무르다 +3 23.07.05 67 3 13쪽
260 천사와 대척점에 선 것은 +2 23.06.18 75 3 15쪽
259 기술의 진보는 곧 살육의 진보 +3 23.06.10 70 3 16쪽
258 포신이 품은 마법 +3 23.05.20 73 3 10쪽
257 피의 무게는 죄의 무게만큼 +3 23.05.18 73 3 11쪽
256 신의 활, 그 시위가 품는 것은 +1 23.05.14 66 3 16쪽
255 매듭을 짓지 않으면 +2 23.05.09 70 3 14쪽
254 공중 요새 +3 23.04.29 74 3 16쪽
253 마도 vs 고유스킬 +5 23.04.05 78 2 15쪽
252 인간 대 인간 +3 23.03.25 86 3 14쪽
251 이빨을 드러낸 어둠 +4 23.03.18 82 3 14쪽
250 예술은 폭발이다 +3 23.03.10 89 3 12쪽
249 전쟁 발발 +2 23.03.02 92 2 13쪽
248 겨울, 온천 +5 23.02.25 79 3 13쪽
247 성전의 전조 +2 23.02.19 93 4 13쪽
246 이스 바실루스 +1 23.02.15 90 3 14쪽
245 레벤 연합의 침공 +1 23.02.11 82 2 14쪽
244 약자의 운명 +1 23.01.28 96 3 16쪽
243 표지가 새로 나왔습니다 (가름) +3 23.01.18 92 3 1쪽
242 또 다른 숙청의 시작 +1 23.01.14 96 3 14쪽
241 찬탈의 하겐 +1 23.01.01 101 4 14쪽
240 추악한 진실 +1 22.12.25 111 4 16쪽
239 개혁의 불씨 +1 22.12.10 109 4 15쪽
238 백색 죽음이 깔린 추도식 +1 22.11.20 107 3 14쪽
237 다크엘프와 여우의 진급 +1 22.11.13 101 4 10쪽
236 두 번째 보루의 소실 +1 22.11.13 99 4 10쪽
235 꺾인 십자가, 꺾이지 않는 신념 +1 22.10.31 106 4 12쪽
234 폭살의 르몽 +3 22.10.19 122 4 16쪽
233 의외의 첫인상 +1 22.10.14 113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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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다가오는 위기, 혹은 기회 +1 22.07.09 128 5 19쪽
214 칠흑의 선언 +1 22.07.04 116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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