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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5.18 22:05
연재수 :
305 회
조회수 :
136,470
추천수 :
3,289
글자수 :
1,694,467

작성
23.05.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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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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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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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포신이 품은 마법

DUMMY

패트리어트 시는 남부 도시 중에는 에든과 그나마 비교적 가깝다.


하지만 단지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것만으로 꼭 이곳에ㅡ마도연방국과 신성국이라는 두 거대 세력 사이의 최전선에 있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고급 저택에서 전장으로 근무지 변경이라니, 봐달라고요...”


마도연방군이 패트리어트 시 바깥에 세운 진지의 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있던 하겐은 이 자리에는 없는 그녀의 상사를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담피에르 후작의 수족이자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그녀가 잠시 본업을 쉬고 레벤 연합ㅡ그것도 신성국 측이 점령한 적지 바로 앞에 와있는 건 마도연방국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싶다는 후작의 부탁 때문이다.


에든 전역의 반란은 거의 진압되었으니, 동맹국의 전쟁에 힘을 보태서 생색을 내고 싶은 것이겠지. 하겐은 후작이 마왕에게 잘 보이고 싶은 기분은 이해했지만, 갑자기 광신도 놈들의 상대를 해야 하는 자신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칠흑의 군복을 입은 이들이 그녀를 힐끗 보며 지나가고, 그 중에는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꽤 강해보이는 자들도 조금 섞여 있었다.


도착 후 오니족 대령의 안내를 받은 덕분인지, 그녀에게 다가와서 신분을 캐묻는 자는 없다. 일부는 그녀가 마도연방군의 군복을 입지 않고 있다는 걸 의아하게 보는 것 같았지만,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잠시 그 사실에 대해 생각하던 하겐은 마도연방군에는 이미 인간들이 꽤 있다고 들었으니, 마족의 인간에 대한 태도가 누그러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납득했다.


“괴물들이 가득하다는 마도연방군에 내가 가세한다 한들 크게 티도 안 날 텐데, 어떻게 후작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낼는지 고민이네...”


하겐이 왼눈의 안대의 위치를 고치며 연거푸 한숨을 쉬던 순간,


“잠깐, 여기 이음새에 윤활이 덜 되어있지 않슴까! 담당 간부 어딨슴까, 지금부터 화려하게 팡팡 쏠 건데 곤란하지 말임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대화 사이로 전장치고는 너무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옆으로 고개를 돌린 하겐은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땅에 무릎을 댄 채로 대공포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작은 소녀를 발견했다.


“죄송합니다, 덴트님...”


대위 계급장을 단 간부가 쩔쩔매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 보아, 적어도 대위를 상회하는 계급을 달고 있을 소녀의 머리에 달린 건 토끼귀.


아니, 토끼귀가 아니라고 하겐은 곧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킹래빗과 비슷하지만 색이 어둡고, 그에 비하면 조금 짧다.


모든 특징이 가리키는 그녀의 종족은 드워프. 소녀의 은발과 금색 눈, 그리고 갈색 피부 톤은 인간도 한눈에 보고 인정할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드워프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자신도 모르고 그렇게 중얼거린 게 상대에게도 들렸는지, 소녀가 귀를 쫑긋 세우며 뒤를 돌아보았다. 토끼귀를 닮은 것만큼 청력도 킹래빗의 것처럼 뛰어난 것일까.


“인간? 보아하니 협력자인 검까?”


딱히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 질문에 하겐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드워프 소녀는 기다란 귀를 흔들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마법사인검까?”


하겐이 겉으로 아무런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것을 본 소녀가 물었다.


“맞아. 드워프에 대해서는 소문만 들어봤지,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야.”


잠시 하겐을 품평하듯 바라보던 드워프 소녀는 금세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었다.


“뭐, 드워프는 삶의 터전을 잃은 지 오래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인간들에게 날붙이를 만들어주는 거로 연명하고 있었으니까 말임다. 군 관계자라면 모를까, 보통 사람은 평생 드워프와 마주칠 일이 없는 게 당연함다. 어쨌든 도와주러 온 건 고맙게 생각하는 검다!”


“너, 신기한 말투를 쓰네.”


이쯤 되면 하겐도 적당히 올리고 있던 경계심을 내려놓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드워프들은 전부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건 아님다! 이건 저만의 트레이드 마크이지 말임다!”


“흐응.”


하겐은 아무 거리감 없이 다가온 소녀를 관찰했다.


자랑스럽게 팔짱을 끼는 드워프 소녀는 주위의 시선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멜빵 바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차림이었다.


가려야 할 건 전부 가려지고 있었기에 속옷을 안에 입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예상대로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슬아슬한 차림이라면 비쳐 보이는 상의 위에 망토를 걸친 하겐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 드워프가 이리 입은 이유는 하겐의 패션 취향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다루기 쉽게 포니테일로 묶은 은발, 그리고 이마에 대충 걸친 보호 고글과 종합해보면 아마 여기저기 작업의 흔적이 묻어나는 이 복장이야말로 그녀가 입고 제일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복장이리라.


하겐은 껄렁껄렁한 말투의 드워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하겐. 담피에르 후작의 사용인이야.”


“전 키루아! 뭐시기 공학자라는 직급이 있지만 그냥 키루아라고 불러주시면 됨다! 근데 자꾸 제 등을 쳐다보는데, 뭔가 묻기라도 한 검까?”


“아, 등에 뭔가 메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하겐이 묻자, 키루아가 마도연방군의 총기치고는 매우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것을 들어 보였다. 그런 걸 한 손으로 거뜬히 드는 걸 보니 역시 귀여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마족은 마족이라고 해야겠지.


“이건 MGL이라고, 수류탄을 쏘는 물건임다! 언제나처럼 마왕님이 아이디어를 줘서 제가 그걸 기가 막히게 만들어낸 건데, 한번 구경해보겠슴까? 착탄 할 때의 소리가 끝내줌다!”


당장이라도 보여주겠다는 듯 키루아가 무기를 치켜들었다.


“아니, 아니. 지금은 됐어. 아직 한참 싸우는 중이잖아?”


사람이 없는 쪽이라고는 하나 금방이라도 그 무기를 발사할 것 같았기에, 하겐은 키루아를 말렸다.


“나중이라도 궁금하면 보여주는 검다! 사양은 필요없으니까 말임다.”


“참고해둘게.”


이 소녀는 금세 어딘가로 튈지 모르는 말괄량이 같은 면이 있고, 하겐은 그게 딱히 싫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이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조금은 기분 전환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키루아씨, 난 엄연히 외부인이라 군 내부 정보를 전달받지 못해서 일단 묻겠는데, 저걸 어떻게 할 방법은 찾은 거야? 공격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딱히 성과가 없는 것 같은데.”


하겐이 고갯짓을 해서 현재진행형으로 맑은 하늘을 수놓고 있는 형형색색의 빛을 가리켰다.


패트리어트 시ㅡ정확히 말하자면 그 위에 부유 중인 적 요새를 향해 이어지고 있는 아군의 대규모 마법 공격이다.


주로 하이엘프로 구성된 마도중대가 일사불란하게 영창해서 사출하고 있는 그건 마법의 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난 탄막을 이루고 있어서, 저 요새를 노리는 마법 중 조준이 살짝 빗나간 일부가 시벽 등에 맞는 바람에 이미 패트리어트 시의 벽이나 문이라고 할만한 건 잔해가 되어버린 상태다.


적진과 이쪽 사이를 막아서는 벽은 이미 허물어지고 없음에도 아군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저 요새가 일으킬 수 있는 재해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수많은 중급 공격 마법이 날아가고 있지만, 저 요새는 어지간히도 상위의 방어 마법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인지 그만한 공격을 맞으면서도 흠집 하나 없었다.


요새가 회피기동에 들어갈 생각도 없이 그대로 이쪽의 마법을 맞아주고만 있는 게 그 증거다.


“뭔가 아까부터 고착된 느낌인데, 당장 저걸 떨어뜨릴 방법은 있는 거야?”


“물론임다! 이 귀염둥이를 쓰는 검다!”


키루아가 병사들이 정비 중인 대공포를 가리키자, 하겐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걸로도 흠집이 안 난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잠시 빼둔 거 아니었어?”


“일반탄이라면 무리가 있겠지만, 각인탄이라면 다름다! 탄을 뭘 쓰냐에 따라 위력이 크게 달라지는 거니 말임다.”


키루아가 자신 있게 단언했다.


“각인탄이라면...”


쿵ㅡ


처음 들어보는 용어를 물어보려던 하겐은 말을 하다 말고 넘어질 뻔했다.


적진으로부터 푸른 빛이 쏜살같이 날아와, 이쪽을 덮치기 직전 보이지 않는 벽ㅡ진지에 설치된 방어 마법과 충돌해서 잔상을 남기며 크게 터져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적 요새로부터 반격이 온 것이다. 마석포라도 쏜 것이겠지.


적의 조준은 정확했지만, 이쪽도 방어마법이라면 단단히 쳐두었기에 방어막과 적의 공격이 충돌해서 생기는 이런 울림 말고는 별 영향이 없었다.


“있지, 뭔가 방법이 있으면 저 요새 얼른 떨궈줬으면 좋겠는데. 이대로면 나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하고.”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하겐이 불평했다.


“흐후, 오래 기다리셨슴다. 슬슬 물자가 도착했으니 이제 걱정은 접어두는 검다!”


키루아는 타이밍 좋게 수레에 가득 실려 들어오는 나무상자를 멈춰세웠다.


작은 드워프 소녀의 손에 열린 상자 속 포탄들은 하나같이 신비한 문양이 새겨져 있고, 마법적 힘이 담겼음을 암시하듯 희미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저건, 마법식...?”


“후후, 제대로 알아본 검다. 술식 발동 전에 알아채다니, 꽤 실력 있는 마법사지 않슴까.”


하겐이 중얼거리자, 그 안목을 칭찬한 키루아가 눈을 빛냈다.


“제 귀염둥이를 드디어 실전에서 선보일 때임다... 똑똑히 보는 검다, 우리 마도연방군 기술연구부의 과학력으로 지금부터 끝내주는 불꽃놀이를 보여드리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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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웬만한 사람들은 검/활/마법만 쓰는 시대적 배경에 홀로 세계대전 찍고 있는 키루아입니다. 쟤가 현대에서 태어났으면 공대에서 과탑찍고 자퇴해서 회사 차린 뒤 대기업 오너가 되었을 것 같네요


대공포 디자인은 88 flak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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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기술의 진보는 곧 살육의 진보 +3 23.06.10 68 3 16쪽
» 포신이 품은 마법 +3 23.05.20 71 3 10쪽
257 피의 무게는 죄의 무게만큼 +3 23.05.18 72 3 11쪽
256 신의 활, 그 시위가 품는 것은 +1 23.05.14 65 3 16쪽
255 매듭을 짓지 않으면 +2 23.05.09 69 3 14쪽
254 공중 요새 +3 23.04.29 70 3 16쪽
253 마도 vs 고유스킬 +5 23.04.05 75 2 15쪽
252 인간 대 인간 +3 23.03.25 84 3 14쪽
251 이빨을 드러낸 어둠 +4 23.03.18 81 3 14쪽
250 예술은 폭발이다 +3 23.03.10 87 3 12쪽
249 전쟁 발발 +2 23.03.02 90 2 13쪽
248 겨울, 온천 +5 23.02.25 76 3 13쪽
247 성전의 전조 +2 23.02.19 87 4 13쪽
246 이스 바실루스 +1 23.02.15 87 3 14쪽
245 레벤 연합의 침공 +1 23.02.11 79 2 14쪽
244 약자의 운명 +1 23.01.28 94 3 16쪽
243 표지가 새로 나왔습니다 (가름) +3 23.01.18 91 3 1쪽
242 또 다른 숙청의 시작 +1 23.01.14 95 3 14쪽
241 찬탈의 하겐 +1 23.01.01 101 4 14쪽
240 추악한 진실 +1 22.12.25 109 4 16쪽
239 개혁의 불씨 +1 22.12.10 106 4 15쪽
238 백색 죽음이 깔린 추도식 +1 22.11.20 105 3 14쪽
237 다크엘프와 여우의 진급 +1 22.11.13 100 4 10쪽
236 두 번째 보루의 소실 +1 22.11.13 97 4 10쪽
235 꺾인 십자가, 꺾이지 않는 신념 +1 22.10.31 106 4 12쪽
234 폭살의 르몽 +3 22.10.19 120 4 16쪽
233 의외의 첫인상 +1 22.10.14 112 5 13쪽
232 사절단의 방문 +1 22.10.12 154 3 13쪽
231 짙게 드리우는 전운 +1 22.10.07 119 4 18쪽
230 어둠에 대처하는 자세 +1 22.09.29 116 4 18쪽
229 어둠은 확실하게 무너뜨린다 +2 22.09.15 128 5 18쪽
228 치명적 착각 +1 22.08.27 106 3 17쪽
227 구원의 손길 +4 22.08.19 113 5 18쪽
226 공주의 각오 +1 22.08.15 120 6 17쪽
225 강요되는 선택 +1 22.08.08 106 4 17쪽
224 그 불꽃은 푸른 색을 띠고 있다 +5 22.08.04 109 5 19쪽
223 우펜 요새 +1 22.07.30 115 5 20쪽
222 마왕의 제안 +4 22.07.26 117 4 19쪽
221 인간의 도시에, 인외가 도착하다 +3 22.07.24 113 4 15쪽
220 분열된 왕국 +1 22.07.24 111 4 16쪽
219 새로운 만남은 운명의 방향을 바꾼다 +1 22.07.22 107 5 19쪽
218 칠흑에 맞선 자의 말로 +2 22.07.18 116 4 17쪽
217 어둠에 물들지 않은 빛 +2 22.07.16 109 3 13쪽
216 지나가던 어둠이 발견한 것은 +1 22.07.16 116 4 11쪽
215 다가오는 위기, 혹은 기회 +1 22.07.09 127 5 19쪽
214 칠흑의 선언 +1 22.07.04 114 4 17쪽
213 파멸의 그림 +3 22.06.26 116 3 19쪽
212 그리고, 새로운 국면 +2 22.06.25 115 5 17쪽
211 황혼의 다짐 +2 22.06.14 111 5 19쪽
210 쿠데타 +4 22.06.04 123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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