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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5.18 22:05
연재수 :
3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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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9
글자수 :
1,694,467

작성
22.07.0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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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칠흑의 선언

DUMMY

알트레아 왕국의 서부 평야지대.


한때는 전 왕국을 집어삼킨, 지금은 폭풍처럼 지나간 전란이 거짓말 같은 이 평화로운 평야에, 검은색이 천천히 퍼져나가듯 번지고 있었다.


척ㅡ 척ㅡ 척ㅡ


발맞추어 전진하는 병사들의 묵직한 군화 소리.


칙칙ㅡ 끼르륵ㅡ


레윤케에서 조달한 석탄을 연료로 한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장갑차와 그 뒤에 고정되어 끌려가는 대공포의 소리.


병사들이 든 소총과 간부가 허리에 찬 권총은 햇빛을 받아 섬뜩한 색으로 빛났다.


현대의 지식을 활용한 기술연이 극한으로 살상력을 끌어올린 저것은 적의 머리를 꿰뚫을 순간을 지금도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부 병력이 허리춤에 보관하고 있는 스크롤은 마법 역량과 관계없이 누구나 중급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역시나 기술연과 마법연구원의 합작.


보통 군대라면 마법을 쓸 수 있는 개체는 아주 극소수에 한정되지만, 마법 술식을 기록한 스크롤은 그런 보편적 인식을 깨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압도적인 레벨의 군이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원을 그리며 비행하는 드래곤들의 모습까지 보인다.


단 한 마리가 대참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그것들은 와이번을 탄 하이엘프와 함께 천천히, 여유롭게 저공비행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의 뜻대로 좌지우지되는 군세이자, 날카롭게 가다듬은 칼날.


이런 광경을 재현할 수 있는 건 이 세계 전부를 뒤져봐도 단 한 사람밖에 없다.


그렇다, 이곳에는 지금 칠흑의 군대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평소 받는 훈련의 질을 보여주듯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마왕군 병사들.


그중에는 이번에 새롭게 마왕군에 편입된 아틀리치니와 그 직속 부대도 섞여 있었다.


마왕군에 이렇게 인간이 들어가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자도 있겠지. 허나 인간이 그들만 있는 건 아니다.


소수일지언정 인간의 얼굴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군세는 마왕군이 더는 마족의 군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간의 나라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흡수한 끝에, 진정한 의미로 인간과 마족이 공존하는 조직이 된 것이다.


이렇게 일부 인간들이 마왕과 그의 군에 찬동하는 건 살아남은 자를 노예처럼 대하지 않고, 침공 이전의 생활을 보장해 준 정책 덕이 크겠지.


마왕군 소속 인간들에게 있어서, 마왕군에서 병사로 일하는 것은 옛 국가에서 이어나가던 군 생활보다 좋은 조건이 붙을지언정 대우의 질이 떨어지진 않았으니까.


중요한 공지가 있다며 이 행사를 만들어 모두를 소집한 건 데트르 전역을 평정한, 이 모두 위에 군림하는 하나의 수장이다.


이번에는 데트르의 안위를 다루는 공식적인 행사인 만큼, 데트르 각국의 정상도 참석했다. 단상 한쪽에 마련된 자리에는 한때 무서울 게 없었던 각 정상이 앉아있었다.


“... 이렇게 병사를 모아서 무얼 하겠다는 건지.”


레스트 바실루스ㅡ지금은 속국으로 전락한 제국의 황제는 마왕의 군세를 보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힘이 행사할 수 있는 폭력을 직접 겪었기에, 이만한 병력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불안 섞인 황제의 푸념에, 옆에 앉아있던 로렌초 디 베키오 백작이 고개를 틀었다.


프랑 공화국의 일곱 백작 중 하나이자 베키오 길드장인 이 청년은 일찌감치 마왕군의 힘을 알아보고 그 수족을 자처한 여우 같은 남자다.


“마왕 각하께선 그만큼의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치실 계획이겠지요. 이렇게 저희를 불러모으셨다는 건 데트르 대륙 전체에 영향이 가는 일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왕군과 먼저 우호 관계를 쌓은 공화국은 당연하게도 이들과의 군사적 충돌이 전무했기에, 베키오 백작의 말투나 눈빛에선 아무런 부정적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백작. 하지만 설마 데트르에서 그러지는 않겠지. 우리 제국은 아직도 지난 전쟁에서의 피해를 전부 복구하지 못했단 말이다...”


지끈지끈 아파지는 머리를 감싸 쥔 레스트 바실루스.


하지만 단상의 반대편엔 마왕군 고위 간부들이 앉아있어서 그 이상의 불만을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특히 푸른 머리의 늑대 마족ㅡ린 중장이 이쪽으로 보내오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에, 레스트는 이쯤에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런 그를 이해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자가 있었다.


알트레아 왕국의 왕족과 귀족을 모조리 쓸어버린 숙청을 거의 홀로 면했다고 볼 수 있는 네이아르 백작은 동병상련의 기분인지, 황제에게 다정히 말했다.


“저희가 고민해보아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분도 이유없는 살육과는 거리가 먼 분이니, 저희는 무슨 결정이 나와도 따르기만 하면 무사히 지나가겠지요.”


아일란즈 공국의 홀슈타인 공작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호탕하고 대장부다운 성격으로 소문나 있었던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력이 없어 보였다.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마치 꼭두각시 인형 같다는 생각을 한 자는 한둘이 아니지만, 그걸 함부로 입에 담는 자는 없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보았자, 결국에 피해를 보는 건 자신과 백성들이기에.


“듣자하니 여러분은 마왕 각하에 대한 신뢰가 없군. 그분께서 행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리가 없다. 마왕 각하야 말로 진정한 지도자시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단언하는 인물은 전 알트레아 기사단장이자, 쿠테타를 일으켜 선대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지그문드 폰 알레인 국왕.


그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네이아르 백작은 이 자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그문드가 자진해서 마왕과 손을 잡았다는 건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이렇게까지 맹신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네이아르 백작이 더 의문을 품기도 전에, 은발의 소녀가 단상에 올랐다.


“다들 모이셨군요.”


소녀는 그들 다섯을 둘러보며 말했다.


알트레아 왕국의 총리를 맡은 이스ㅡ라는 이름의 소녀는 이들에게 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제국의 황녀이자, 동시에 제국을 저버리고 마왕과 뜻을 함께 하는 소녀는 그의 뜻을 각 나라에 전달하는 일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만큼 마왕에 가까운 자라는 점에서 대하기 어려운 상대였고, 특히 레스트 바실루스는 불편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내막을 아는 그로서는 이 소녀가 내린 결정에 자신의 나라가 희생당한 걸 용서할 수 없는 것이겠지.


“이제 곧 각하께서 등장하십니다. 정숙해주세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인간 관계자들이 앉은 곳 대신, 당연하다는 듯 마왕군 간부들이 앉은 단상 반대편의 빈자리에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 평야에 크게 울리는 명령이 있었다.


“부대차렷!”


모든 이들이 하고 있던 동작을 멈추고 차렷 자세로 섰다.


“마왕각하께 대하여 경례!”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2만이 넘는 병력이 동시에 경례를 올려붙였다


단상 옆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있던 각국 정상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키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며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것이다.


저벅, 저벅.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여유로운 걸음으로 단상에 오른 검은 코트 차림의 소년이 바로 마왕군의 통수권자.


이 모두를 이곳에 불러모은 장본인ㅡ칠흑의 마왕의 등장이다.


◆ ◆ ◆ ◆ ◆ ◆ ◆


나는 여느 때보다 진지한 가름의 경례를 받으며 말했다.


“부대 열중쉬어.”


내 명령을 받든 가름이 돌아서며 외친다.


“부대~ 열중쉬어!”


완벽하게 동작을 맞추어 뒷짐을 지는 병사들.


이만한 병력이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마왕군의 바로 잡힌 기강을 나타내었다.


“제군. 연방과의 전쟁은 당연하지만 우리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마법으로 증폭된 내 목소리가 연병장에 울려 퍼졌다.


“스파세니예 연방쯤은 우리 마왕군에 있어 사소한 장해에 지나지 않음을, 제군들은 열과 성을 다해 증명해주었다. 그 모습에 마땅한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나를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에는 결의가 느껴졌다. 나의 사랑스러운 부하들은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놓치지 않으려 했다.


“따라서 데트르를 정리한 지금, 이 대륙은 데트르의 모든 나라가 연합한 데트르 마도연방국이 된다. 더 이상 단지 마왕군이 아닌, 하나의 국가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올 것이 왔다는 듯 황제가 입술을 깨무는 것이, 시야 한구석에서 들어왔다.


일부 인간들에게는 내가 단지 인간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에 중점을 두는 괴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기껏 손에 넣은 체제를 무너뜨릴 생각은 없었다.


마왕의 권력 아래 통치되는 서로 다른 나라들은 언어도, 문화도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연방’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통일된 언어와 통일된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들이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면 생산성이 올라가니까.


“군이라는 것은 나라에 속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법. 어쩌면 늦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제부터 제군은 마도연방국의 일원이다.”


마왕의 입에서 나온 건국 선언에 잠시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한 병사들이 큰 소리로 열광했다.


오랜 역사 동안 단지 인간의 체제에 저항하고자ㅡ생존을 위해서 무기를 드는 게 전부였던 자들이, 이제는 공식적인 국가에 속하게 된 것이다.


마족의 나라라는 건 라그나로크 이전에나 있던 것.


그 태초의 대전쟁에서 패한 이들은 커봐야 부족 단위로 무리를 지어, 인간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겨우 연명하며 살아왔다.


당연한 일이다. 마족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으니까.


승리에 승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자랑스럽게 휘두를 국가의 깃발이 생겼다는 건 이들에게 있어 숙원의 달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었다.


마도연방국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목숨을 거뜬히 바칠 병사들이 보이는 늠름한 모습에 만족하며, 나는 목소리를 높여갔다.


“하지만 작은 승리에 취해 착각하면 안 된다. 아직 우리ㅡ마도연방국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 영겁의 미래를 넘어, 과거의 악몽이 추격해온다. 마족과 평화의 영원한 숙적이 어둠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연단에 미리 올려두었던 마법 수정구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회의 따위에 자주 쓰이곤 하는 그것은 곧 데트르와 인근 해역의 지도를 하늘 가득 비추었다.


내가 지도의 최남단을 확대하자, 모두가 그곳에 있는 나라의 이름을 확인했다.


“신성국.”


내가 그 이름을 읽었다.


“라그나로크에서 신의 편을 든 인간들ㅡ에인헤랴르의 혈통이 아직까지도 지켜지고 있는 나라다. 인간에게, 나아가 천계의 신들에게 반기를 든 우리를 가로막고 선다면 놈들보다 적임자는 없을테지.”


그렇게까지 말한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병사들 사이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적에 대한 살의가 조용히 끓어오르는 것을 관찰했다.


“제군. 이번에 그랬듯, 숙적이 이빨을 드러내고 접근해오는 걸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우리의 땅을 놈들이 짓밟고 유린하는 걸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


내가 팔을 휘두르며 연단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번에 선전포고를 하는 건 우리다. 놈들이 일용할 양식을 거두는 밭을 불태우는 건 우리다. 비명을 지르며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적병을 납으로 벌집을 만들어주는 건 우리다. 목숨을 구걸하는 적 간부를 모두가 보고 비웃을 수 있도록 하늘 높이 매다는 건 우리들이다!”


곧 다가올 전쟁의 희열에 감싸인 나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돈다.


나의 눈은 이미 최전선을ㅡ그 끔찍한 아비규환을 보고 있었다.


“대공포로 놈들의 공중병력에 구멍을 내어 떨어뜨리자. 폭격으로 놈들의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어, 한시라도 살이 타는 냄새가 그치지 않게 하자. 기관포로 적의 지도부를 살점 덩어리로 만들고, 숨이 붙은채 다리를 잃고 울부짖는 적병의 머리에 웃으며 방아쇠를 당겨주자. 파괴마법을 잔뜩 놈들의 수도에 퍼부어대, 그 어느 건물도 제대로 서 있는 것이 없게 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전쟁의 환희를 이 자리의 병력이 공유하여, 열기가 점차 뜨거워져 간다.


“드래곤은 적병을 밟아 터뜨려죽이고 그 잔해를 브레스로 불태워라. 총기를 든 자들은 잔탄 수가 0발이 될 때까지 놈들에게 총알을 퍼부어라. 마법 스크롤로 인간과 건물을 터뜨려라. 아비규환의 완성까지ㅡ아무것도 이 손에 남지 않을 때까지 파괴를 행해라! 숙적에게 걸맞은 죽음을ㅡ완벽하고 끔찍하고 아름다운 전쟁을!”


크게 숨을 내쉬고, 내가 이어말한다.


“우리의 손으로 예술을 만들자. 전쟁이란 도화지에, 적의 피를 충분히 적신 붓으로 그림을 그려나가자. 바로 그 뒤에 죽음이 도사린다해도 후회 하나 없을 아름다운 작품이, 우리의 노력으로 완성된다.”


평야의 병력이 기대감에 가득찬다. 당장이라도 적병에게 방아쇠를 당기고, 마법을 퍼붓고 싶어 몸이 안달나있다.


나는 안달난 폭력의 도구를 진정시키듯 부드럽게 말했다.


“수동적으로 침공당할바에, 우리가 먼저 놈들의 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제군, 우리를 적대하는 이상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걸, 놈들에게 가르쳐주자. 이 전쟁에서 아름답게 죽음을 꽃피워보자.”


내가 양팔을 활짝 벌리며 선언했다.


“우리 신ㆍ마왕군은 오늘을 기점으로 데트르 마도연방국을 결성함과 동시에 신성국에 선전포고한다!”


그렇다.


이 2만이라는, 전체 병력의 5할 이상을 차지하는 병력은 전부 신성국 침공을 위한 병력인 것이다.


황국보다도 강력하다는 놈들을 얕볼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완전히 박살 낼 각오로 침공을 준비했다.


고오오오오ㅡ


내가 선전포고를 마치자마자, 평야에 접근 중이던 거대한 비행선들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내 등 뒤로 등장했다.


본래라면 이미 가보지 못한 곳에는 전이 마법을 써야 하기에 신성국까지는 항로와 육로를 써야 했겠지만, 연방군을 흡수하며 손에 넣은 비행선이 나의 병력을 보다 신속하게 움직일 것이다.


“놈들은 우리가 친애하는 적이다.”


병력을 나눠 태우기 위해 착륙하는 비행선들을 보며, 내가 낮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의 숙원에 한걸음 다가가게해줄, 사랑스러운 적이다. 필시 우리를 처참하게 무너뜨리려할 적인 것이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죽고 죽이는 행위를 실천할 게 분명하다...!”


나는 매우 들뜬 채로, 즐겁게 말했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숙적인가! 우리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신념을 가지고, 죽을때까지 우리를 꺾으려하는 숙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먼 여행을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소녀처럼 발그레 미소를 띠고, 하지만 그 뒤로는 우리의 가슴을 꿰뚫을 창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럼 우리도 그에 마땅한 마음자세로 맞서지 않으면 안되겠지. 잔뜩 죽고, 그리고 죽여보자. 드넓은 대지를 적의, 아군의 피로 물들이며 달려나가는 것이다!”


쿠웅ㅡ


비행선들이 착륙하고, 병력의 탑승을 위한 다리가 내려졌다.


“제군, 전장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곳에 우리의 발자취를 남기러 가자.”


내 말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경례를 올려붙인다.


평야에 준비한 침공병력이 비행선에 탑승하는 걸 보며,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 기대되는군. 흩날리는 죽음 속에서, 무엇을 보게될지.”


◆ ◆ ◆ ◆ ◆ ◆ ◆


데트르 마도연방국의 결성과 신성국에 대한 선전포고.


원래 마족으로 이루어진 나라ㅡ쿠라마사를 비롯한 섬나라들은 바로 마도연방국에 참가를 표명했고, 그건 인간의 나라인 알트레아 왕국, 제국, 프랑 공화국과 아일란즈 공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무 빨라.”


노을을 등지고 언덕 위에 선, 연한 분홍 머리의 소년이 중얼거렸다. 저 멀리서 병력을 가득 실은 비행선이 뜨는 게 보이고 있었다.


끝까지 전면전에 나서지 않은 마왕군이 이렇게 단기간에 승리한 건, 역시 연방군에 내통자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무 탈 없이 120만의 병력이 흡수될 리가 없다.


신성국은 연방이 패배하지 않도록 지원할 생각도 있었지만, 이로써 그 계획은 폐기되었다. 스파세니예 연방은 더는 마왕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마왕군과 신성국의 직접 충돌뿐.


“다시 펼쳐지려고 하는가, 라그나로크가.”


그가 입은 기사 갑옷에는 금색 테두리를 두른 은색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작가의말

소재 특성상 전쟁이 안 끝나네요. 이번엔 얼마나 죽어나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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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포신이 품은 마법 +3 23.05.20 70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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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신의 활, 그 시위가 품는 것은 +1 23.05.14 65 3 16쪽
255 매듭을 짓지 않으면 +2 23.05.09 69 3 14쪽
254 공중 요새 +3 23.04.29 70 3 16쪽
253 마도 vs 고유스킬 +5 23.04.05 75 2 15쪽
252 인간 대 인간 +3 23.03.25 84 3 14쪽
251 이빨을 드러낸 어둠 +4 23.03.18 81 3 14쪽
250 예술은 폭발이다 +3 23.03.10 87 3 12쪽
249 전쟁 발발 +2 23.03.02 90 2 13쪽
248 겨울, 온천 +5 23.02.25 75 3 13쪽
247 성전의 전조 +2 23.02.19 87 4 13쪽
246 이스 바실루스 +1 23.02.15 87 3 14쪽
245 레벤 연합의 침공 +1 23.02.11 79 2 14쪽
244 약자의 운명 +1 23.01.28 94 3 16쪽
243 표지가 새로 나왔습니다 (가름) +3 23.01.18 91 3 1쪽
242 또 다른 숙청의 시작 +1 23.01.14 95 3 14쪽
241 찬탈의 하겐 +1 23.01.01 101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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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개혁의 불씨 +1 22.12.10 106 4 15쪽
238 백색 죽음이 깔린 추도식 +1 22.11.20 105 3 14쪽
237 다크엘프와 여우의 진급 +1 22.11.13 100 4 10쪽
236 두 번째 보루의 소실 +1 22.11.13 97 4 10쪽
235 꺾인 십자가, 꺾이지 않는 신념 +1 22.10.31 106 4 12쪽
234 폭살의 르몽 +3 22.10.19 119 4 16쪽
233 의외의 첫인상 +1 22.10.14 111 5 13쪽
232 사절단의 방문 +1 22.10.12 15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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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지나가던 어둠이 발견한 것은 +1 22.07.16 116 4 11쪽
215 다가오는 위기, 혹은 기회 +1 22.07.09 126 5 19쪽
» 칠흑의 선언 +1 22.07.04 114 4 17쪽
213 파멸의 그림 +3 22.06.26 116 3 19쪽
212 그리고, 새로운 국면 +2 22.06.25 115 5 17쪽
211 황혼의 다짐 +2 22.06.14 111 5 19쪽
210 쿠데타 +4 22.06.04 123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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