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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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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5.18 22: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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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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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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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파멸의 그림

DUMMY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라니까.”


피처럼 붉은 머리를 한 소녀가 투덜거렸다.


“이대로 이놈들에 편승하는 것도 하나의 수단이었는데 말이야, 이렇게 쉽게 무너질 거라고는 몰랐어. 응? 펠릭스는 알고 있었다고? 헤헤.”


마치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하는 소녀를, 잔뜩 피가 튄 흰 군복을 입은 남자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은 체구의 소녀가 검을 바닥에 짚은 채 걸터앉은 의자 주변에는 피가 낭자했다.


그녀의 검에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무참히 쓰러진 시체들에서 흘러나온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아틀리치니를 필두로 한 쿠데타 세력의 지시에 따라 마왕군에 투항할 예정이었던 프냐르 주둔 연방군 연대.


그를 지휘하는 간부진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바닥에 주저앉아 이 소녀 하나에 덜덜 떨고 있는 이 남자ㅡ연대장뿐이었다.


“보라니까? 정예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행동력도 참 좋은 놈들이야. 다 걔네 말에 넘어가서 이쪽 지휘관은 이미 제거하고, 마왕군에 찬동하는 간부들만 남겨놨다니까. 연방군만 믿고 가만히 있었다간 나도 그대로 적에 상납 되었을 수도 있겠네.”


그리 말하며 유리에가 검을 들어 연대장의 목에 가져다 댔다.


“있잖아, 말한 대로 일단 살려두긴 했는데 진짜 필요할까?”


“이봐! 약, 약속과 다르지 않은가...!! 나는 자네가 시키는 것에 다 따랐다고...!”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하지만, 유리에는 연대장의 목소리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펠릭스 말이 맞아. 그 부대에 협력을 얻어내는 데는 이 아저씨가 필요하다고 했지.”


누구와 말하고 있는 건지, 설득당한 유리에가 아쉬운 듯 검을 거두었다.


때마침 문이 열리며, 잿빛 머리의 장신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프냐르 주둔 연방군 지휘소 내부에 널린 시체들을 보고, 그것들이 드러낸 내장이 풍기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눈을 찡그리면서도, 유리에를 보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유리에 준특등 수사관님.”


레윤케 중앙정부가 완전히 함락되었다고 하는데도, 하인켈 전 1급 수사관은 유리에를 옛 계급으로 불렀다.


일찌감치 프냐르로 후퇴한 덕분에 건재한 1개 대대를 이끄는 유리에와 그를 아직도 레윤케 소속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이미 유리에의 기행에 익숙해져 있는 그는 잔뜩 널려있는 시체들을 내색하지 않고 걸어와, 작은 종이 하나를 공손하게 건넸다.


“저쪽에서도 준비가 된 모양입니다. 저희는 계획대로 시간에 맞춰 움직이면 됩니다.”


“오오, 하인켈 말대로 이 아저씨는 꽤 도움이 된 거구나! 잘했네!”


머리를 감싸 쥐고 검붉은 바닥에 기던 연대장은 자신이 살 수 있다는 희망에 얼굴이 밝아졌다.


영문도 모르고 이 소녀에게 납치되어, 사관학교 동기가 지휘하는 다른 연대에 특정 내용이 담긴 전보를 보내라고 강제되었을 때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문제가 되는 건 그 전보의 내용.


쿠테타 세력이 이미 데트르 주둔 연방군 태반의 통제권을 가져간 지금 그런 연락ㅡ그 세력에 대한 반역이나 다름없는 것을 주고받는 건 자살행위였지만, 기쁘게도 비행연대를 지휘하는 그의 동기는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그의 제안에 응해준 것이다.


허나 드디어 이 살인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은, 유리에가 심드렁하게 내뱉은 말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되면 이 아저씨는 더 필요 없는 거잖아?”


“... 그렇네요. 이미 비행연대에 협력을 약속받았으니, 전보를 보낸 장본인이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인켈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연대장의 목이 떨어지는 건 거의 동시였다.


“아아, 좋네. 못생긴 아저씨도 피는 이쁘게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면 신은 참 공평해.”


유리에는 자신의 발을 흥건하게 적시는 피의 분수를 보며, 행복하게 입맛을 다셨다.


“이건 전쟁이야. 마음 같아선 단신으로 뛰어들고 싶지만, 새로운 말을 찾았거든.”


잔뜩 피에 젖은 유리에의 검이 춤추며 선혈을 흩뿌렸다. 그 흑색 검은 어째서인지 희미한 백색 빛을 띠고 있었다.


“가자, 하인켈. 새로운 전장을 찾으러.”


◆ ◆ ◆ ◆ ◆ ◆ ◆


불타는 보금자리. 산산이 부서진 보석. 칠흑 같은 어둠을 품은 밤하늘.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인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들린다.


내가 잃은 것들이 남긴 흉터가.


“보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린이 서재 입구에 서 있었다.


“아, 린인가.”


나는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아마 나는 꿈ㅡ아니, 오래전의 기억을 다시 되짚던 중이었겠지.


나는 금주에는 알트레아 왕국의 저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화려한 옥좌보다는 이런 곳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역시 내가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니기에 그런 것일까.


의자에 걸터앉아있던 나는 어느새 다가온 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눈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읽은 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쳐버렸군. 미안하다.”


“아니에요, 마땅히 할 일을 한 거니까요... 몸은 좀 어떠신가요, 보스.”


린이 가까이 다가와, 자연스레 내 어깨를 안았다. 포근하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네 덕분에 이렇게 잘 살아있지.”


나는 린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지상 최악의 마수 펜리르가 내 앞에선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로 돌변한다는 건 직접 보지 않고서야 믿어줄 사람이 많지 않겠지.


“고맙다, 린. 네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야.”


내 말이 기쁜 듯, 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의자에 앉은 내게 그녀가 뒤에서 몸을 밀착하는 바람에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자기주장이 강한 한 쌍의 봉우리가 느껴졌다.


요즘 꽤 적극적으로 된 것 같지만 무리도 아니다.


'그만한' 일이 있었으니까.


나도 그녀의 호의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니,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혀보려는 것이겠지.


잠시 나를 안고 있던 그녀는 몇 번 심호흡을 하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보스, 스파세니예 연방을 존속시키겠다는 건 진심이십니까.”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만, 린은 역시 내 결정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번의 스비엣 사태에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었으니까,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되는 건 전부 나를 대변해서겠지.


내 소중한 것을 그렇게 망가뜨린 연방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보스가 말만 하셔도 제가 그 나라를 불태울 수 있어요. 아무 주저 없이. 그 저주받은 땅을 없던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상반신 앞으로 내려온 린의 팔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무슨 생각인지 잘 알고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말해주는 것에 기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게 불합리하게 계약을 파기할 생각은 없다.”


린이 동요하는 것이 맞닿은 살의 접촉으로 느껴졌다.


“걱정하지 마, 린. 책임은 제대로 지게 하겠어. 나ㅡ류셀 블레이크는 그냥 없던 것으로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나는 눈빛을 바꿨다.


“철저히 뜯어고치는 거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쌓아온 악의의 탑을 무너뜨리고, 어머니가 바라셨던 나라로 바꾸겠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린을 똑바로 응시했다.


파흐 평야에서는 차마 바라보지 못했던 그 올곧은 부하의 눈을, 이쪽도 올곧게 응시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어머니가 만든 거나 마찬가지인 나라다, 린.”


그 말을 하며 살짝 떨렸지만, 나는 이미 정한 자신의 답을 계속 말했다.


“어머니는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으셨다. 비록 인간의 악의에 희생당했다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해서 지킨 걸 완전히 박살 내고 싶지는 않아.”


나는 침대에 털썩 쓰러지듯 앉아, 길게 숨을 뱉었다.


“아니, 어쩌면 더 이기적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지. 연방이라는 나라야말로, 어머니가 이 세계에 유일하게 남긴 것이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게, 그건 좋든 나쁘든 어머니의 일생이 그대로 담긴 유품이나 마찬가지야.”


“보스...”


내 곁에 나란히 앉은 린.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보스가 그런 마음이라면, 저도 수긍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니, 조금 서운한데요.”


린이 내 손을 끌어다, 자신의 가슴에 가져갔다.


그녀의 심장의 고동이,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저는 몸도 마음도 보스의 것이니까요. 보스와 함께라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 ◆ ◆ ◆ ◆ ◆ ◆


무려 120만의 연방군 잔존 병력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할 거라는 예상은 적중하였다.


다음 날의 야심한 밤, 프냐르 인근의 연대에서 탈주가 발생한 것이다.


그에 대한 대응은 군무부의 재량에 따라, 광맥지대에서 간부 한 명을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병력을 꾸리는 것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인원을 보내는 것이 우선된 것이다.


“이런 시각에 죄송합니다, 이그시피아 소령님. 프냐르 항구도시의 서부, 141정찰항공연대에서 트러블이 발생한 모양입니다.”


긴급출동명령을 받고 전이 마법진에 올라서는 카니앗 이그ㆍ시피아에게 쿠도 하루네 대위가 간략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동방의 여우 마족은 차분히 보고서의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쿠데타 세력이 신병을 구속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있었고, 일부 병력이 비행선을 탈취했습니다.”


“규모는?”


활의 시위 상태가 만전임을 확인한 카니앗은 늘 메고 다니는 화살집을 챙기며 물었다.


“현지 병력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건 비행선 5대입니다. 몇 번이나 투항을 거절하였기에, 본 작전의 목표는 전기 격추입니다.”


거대한 함포가 달린 비행선이 다섯 척이나 있다는 소리지만, 카니앗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이런 것쯤은 마왕군 간부에게는 당연하게 요구되는 의무였다.


“알겠습니다. 금방 섬멸하고 돌아오죠.”


“그럼 건투를 빕니다.”


쿠도 대위의 경례를 받은 카니앗의 시야가 뒤집히고,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전이 마법이 제대로 발동한 것이다.


한순간에 바뀐 기후는 바다에 인접한 마을의 것. 그녀의 도착을 확인하고 잽싸게 경례를 올리는 마왕군 병사 몇몇이 눈에 띄었다.


카니앗이 전이한 위치는 마왕군이 미리 차린 임시막사의 안이었으며, 오래 찾지 않아도 동쪽 하늘에는 아직 그렇게 멀리까지는 벗어나지 못한 비행선이 다섯 척 보이고 있었다.


밤이라 식별하기 어려울까 했지만, 오히려 달빛을 받아 훤히 빛나고 있는 목표를 보고 카니앗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목표 확인.”


바로 격추에 돌입하려던 카니앗을 맞은 건 뜻밖의 얼굴이다.


“오? 이제 도착한 검까. 기다리다 지치는 줄 알았슴다.”


“덴트? 왜 당신이 여기에...”


키루아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는 카니앗에게 다짜고짜 꽤 묵직한 가방을 건네주었다. 그 가방을 연 카니앗의 눈빛이 달라졌다.


낮과 밤이 뒤바뀐 덕분에 밤에 더 활동적인 이 드워프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팔짱을 꼈다.


“후후, 준비하고 오신 건 좋지만 그 활은 내려놓아도 좋슴다. 이번엔 제가 부탁해서 이 전장을 신무기의 시험무대로 삼기로 한 검다!”


다크엘프 중 다수는 활을 매개로 마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활에 시위를 거는 것 자체가 특성상 총기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느릴 수밖에 없기에, 키루아 덴트 일등공학자를 필두로 한 기술연구부는 이를 개선할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이것.


카니앗은 긴 총신을 한번 쓰다듬고, 가뿐히 그 저격소총을 들어 올렸다.


카니앗의 활의 재질과 똑같은 나무ㅡ일종의 신목을 사용해 만든 이 볼트액션 라이플은 칠흑의 마왕이 원래 세계에서 한번 쏴볼 기회가 있었던 샤이택 볼트액션 라이플과 미묘하게 닮아있었다.


방아쇠 앞으로 들어가는 탄창은 일곱 발의 전용탄이 들어간다.


레일에는 4배율 스코프까지 달려있고, 사용자가 들고 다니기 쉽게끔 큼지막한 핸들도 밑으로 달려있었다.


“아, 참고로 이 무기의 이름은 샤이택으로 지었슴다!”


키루아가 당당하게 말했다.


마왕이 들었다면 너무 작명 센스가 부족한 것 같다는 핀잔을 주었겠지만, 키루아가 원형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사실을 모르는 카니앗은 내색하지 않았다.


행여 그 사실을 알았어도 카니앗의 성격이라면 어차피 중요한 건 무기의 성능이라고 넘겨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카니앗 씨의 마법술식을 그대로 새겨넣은 전용탄임다.”


키루아가 여분 탄창을 들어 올리며 설명했다.


“평소 쓰던 화살보다 마력을 담기 수월하실 검다. 따로 마법식을 구축하지 않아도 그냥 카니앗씨의 마나만 흘려놓고 방아쇠면 당기면 오케이니까 말임다.”


활을 매개로 마법술식을 구현하고, 화살에 그 술식을 거친 마나를 담아 쏘아 보내는 게 기존 다크엘프가 마법을 쓰는 방식이다.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활이 마법 지팡이고, 지팡이가 만든 마법이 화살에 담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저격소총은 사용자가 마법술식을 구현하는 단계ㅡ즉 지팡이를 휘두르는 과정을 생략하여 마법의 사용을 용이하게 하는 장치다.


저격소총이 쏘는 탄환이 기존 활로 쏘는 화살보다 사거리가 긴 것은 두말할 것 없고, 사출하는 마법의 정확도 또한 향상되는 것이다.


카니앗이 소총에 자신의 마나를 흘려 넣는 순간 체임버에 장전된 탄환에 기록된 술식이 작동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여타 총기와 다름없이ㅡ하지만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진 탄환을 발사하는 구조다.


그녀가 쓰는 마법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사전에 새겨넣은 술식대로 밖에 작동하지 않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시험사격은 이미 마쳤지만, 전투 전에 쏴보셔도 좋슴다.”


저격소총을 들어 이리저리 살피는 카니앗에게, 키루아가 자랑스럽게 어깨를 펴며 말했다.


“아니.”


카니앗이 고개를 저었다.


“시험사격은 저놈들로 하겠어. 딱 좋은 거리이기도 하고.”


곧바로 샤이택을 들어 올려 목표에 조준한 카니앗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ㅡ!


폭발과 같은 소리와 함께 탄환이 사출되고, 올곧게 뻗어 나간 파괴의 화신은 바다로 도주하던 비행선 중 하나에 직격.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폭발과 함께, 그 거대한 비행선이 제어를 잃고 밑으로 추락해간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차원이 다른 위력에, 지켜보고 있던 마왕군 병사들이 감탄사를 내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은검다.”


키루아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카니앗 씨의 마법은 지금부터가 진짜이니까 말임다.”


핑ㅡ 핑ㅡ


아니나 다를까, 비행선 하나를 관통한 보라색 탄환이 맑은 소리를 내며 고개를 틀었다.


피잉ㅡ


그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곡선이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마치 스스로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탄환의 궤도가 마음대로 휘어지는 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두의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핑ㅡ 피 피잉ㅡ


하늘은 한 장의 도화지고, 카니앗의 탄환은 붓이다.


밤하늘에 벌써 보라색 그림 한 폭을 그린 탄환은 계속해서 기세를 죽이지 않고 다음, 그리고 다음 비행선을 꿰뚫었다.


고작 한번 관통한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비행선이 걸레짝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저, 저건 도대체...”


그걸 지켜보던 병사 하나가 입을 벌리며 말하자, 키루아가 기쁜 얼굴로 설명해주었다.


“카니앗 씨는 이미 쏘아 보낸 화살을 조종할 수 있잖슴까? 저 탄환도 그 능력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검다.”


피핑ㅡ 핑ㅡ


밤하늘을 비추던 보라색 빛이 없어지기가 무섭게, 비행선 다섯대가 일제히 폭발하며 추락했다.


콰과과과광ㅡ


이로써 손에 잡힐것만 같은 어둠과 파괴를 그대로 담은,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방아쇠를 단 한 번 당겼을 뿐인데, 저 하늘에서 일어난 참사는 1개 대대의 대공포를 마구 쏘아댄 결과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다.


“전기격추. 훌륭한 검다!”


카니앗은 바로 탄창을 갈아끼우고, 노리쇠(볼트)를 젖혀 당기고 다시 밀어 넣었다.


깡ㅡ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탄피가 떨어지고, 그녀는 제2탄을 발사했다. 목표는 여전히 추락 중인 비행선 다섯 척이다. 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마무리를 지으려는 것이겠지.


목표지점에 근접하고 나서야, 탄환에 새겨두었던 술식이 그 효과를 나타냈다.


반경 수 킬로미터는 거뜬히 집어삼키는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오오! 저것은ㅡ”


키루아가 흥분해서 방방 뛰며 들뜬 소리를 내었다.


저 탄환에 새겨져 있던 것은 상급 파괴마법의 술식.


하지만 저건 그를 한창 뛰어넘어, 마치 핵이라도 떨어뜨린 것 같은 광경이다. 방아쇠를 당긴 카니앗도 어안이 벙벙한지, 잠시 그걸 바라보고만 있었다.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검다! 마왕님의 생각이 옳았던 검다!”


키루아는 자신과 마왕이 생각한 이론이 그대로 들어맞았던 것에 기뻐했다.


“낭비되는 마나가 하나도 없이, 그대로 현실개변에 사용된 결과임다. 흘려 넣는 마나의 손실을 최소화하니 마법이 몇 단계는 오른 것 같지 않슴까? 저와 마왕님의 합작인 검다!”


“마왕님께서... 직접?”


“어떻게 하면 카니앗 소령한테 더 알맞은 무기를 만들어줄 수 없을까 고민한 결과이지 말임다. 이야~ 이런 물건을 받다니 카니앗 씨도 행운아인검다!”


카니앗은 자신이 쓰던 활과, 이번에 사용한 저격소총 샤이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활이 사용하는 마법에 대한 범용성은 좋지만, 매개로서의 효율이 최악이었던 것이겠지. 단지 무기를 바꾼 것만으로, 그녀의 진정한 실력이 나타난 것이다.


저격소총을 조심히 내려놓은 카니앗은 무릎을 꿇어, 지금은 앞에 없는 그녀의 주인에게 예를 표했다.


“제게 이 귀한 무기를 하사한 마왕님의 영광을 더욱 드높여 보이겠습니다.”


간부의 전용 무기를 만드는 건 따지고 보면 쿠도 대위에게 준 마검에 이어 두 번째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카니앗이 아니었다.


“키루아 덴트 일등공학자. 당신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주인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이 이상의 기쁨은 없습니다.”


키루아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감사에 답했다.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서 또다시 빛을 발할 것 아님까? 그것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슴다!”


◆ ◆ ◆ ◆ ◆ ◆ ◆


탈주의 진압, 신무기의 성능 테스트.


그렇게 보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밤의 소동이었지만, 광맥지대는 아침이 되고 나서야 다른 보고를 받아보았다.


“보스, 프냐르 항구에서도 탈주가 있었다는 보고입니다.”


린이 건넨 보고서를 읽어본 나는 입꼬리를 올려 적에게 한방 먹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종류의 미소를 만들었다.


“일부러 다른 연대의 비행선을 사용해 이쪽의 주의를 끌고, 그 사이에 데트르를 떴다는 건가. 우리의 입김이 닿기 전에.”


지금 이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밖에 없다.


붉은 유령ㅡ유리에. 연방군에 합류했었다던 그녀는 늦기 전에 다음 전장이 될 장소로 이동해간 것이다.


피하지 못할 미래를 예견한 나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이윽고 다시 전장에서 만나겠군.”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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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어둠은 확실하게 무너뜨린다 +2 22.09.15 128 5 18쪽
228 치명적 착각 +1 22.08.27 106 3 17쪽
227 구원의 손길 +4 22.08.19 113 5 18쪽
226 공주의 각오 +1 22.08.15 120 6 17쪽
225 강요되는 선택 +1 22.08.08 104 4 17쪽
224 그 불꽃은 푸른 색을 띠고 있다 +5 22.08.04 108 5 19쪽
223 우펜 요새 +1 22.07.30 115 5 20쪽
222 마왕의 제안 +4 22.07.26 117 4 19쪽
221 인간의 도시에, 인외가 도착하다 +3 22.07.24 112 4 15쪽
220 분열된 왕국 +1 22.07.24 110 4 16쪽
219 새로운 만남은 운명의 방향을 바꾼다 +1 22.07.22 107 5 19쪽
218 칠흑에 맞선 자의 말로 +2 22.07.18 116 4 17쪽
217 어둠에 물들지 않은 빛 +2 22.07.16 109 3 13쪽
216 지나가던 어둠이 발견한 것은 +1 22.07.16 115 4 11쪽
215 다가오는 위기, 혹은 기회 +1 22.07.09 126 5 19쪽
214 칠흑의 선언 +1 22.07.04 113 4 17쪽
» 파멸의 그림 +3 22.06.26 116 3 19쪽
212 그리고, 새로운 국면 +2 22.06.25 114 5 17쪽
211 황혼의 다짐 +2 22.06.14 111 5 19쪽
210 쿠데타 +4 22.06.04 123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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