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태 할아범 - 2018[공포]
망태 할아범
김은 망태 할아범이었다.
인적 드문 산길이 붉은 노을로 젖어들 때 김은 훌쩍 나타났다. 길눈이 서투른 배 곪고 철없는 꼬마가 있으면 김은 다가가 꼬챙이로 때리고 낚아 망태에 넣었다. 김은 산등성이를 넘고 넘곤 했다. 자식 잃은 아비와 어미가 벗들까지 내어 김을 쫓으면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에 김의 발걸음은 재었고 발은 굳은살로 덮였다.
김은 조선 팔도를 누비면서 망태를 꼬마로 채웠고 꼬마가 비쩍 마른 산송장이 될 때까지 때리고 굴리고 흘레붙고 굶겼다.
돌아가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김의 딸은 무당이었다.
딸은 좁고 긴 통 속에 꼬마를 가두었다. 넣고 굶겼고 마시면 목구멍이 불타는 꿀물 한 방울씩 흘려보냈다.
딸은 김에게 술과 떡을 내어 먹였다. 어찌 되었든 서로에게 쓸모가 있는 부녀였다. 이러한 거래가 아니면 서로 만나지 않을 터였다. 딸은 김의 상에서 떡 하나를 집어 통 속의 꼬마에게 물도 없이 먹였다. 꼬마는 목에 떡이 걸려 죽었다. 딸은 통 아래에 장치를 달아 꼬마의 송장을 움직이기도 했다.
만들어진 꼬마 송장의 일그러진 얼굴은 딸의 마음에 들었다. 이제 조선 팔도를 돌면서 통을 보여주면 미욱한 처자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딸은 그렇게 만들어진 통을 동료 무당들에게 팔기도 하는 당찬 여자였다. 딸의 수완이 대단하다고 김은 생각하곤 했다.
김은 마당으로 나와 곰방대를 물었다. 담배 연기가 향기로웠다.
방금 마신 뱀술이 썼다. 뱀은 무슨 죄가 있어 먹히나 하고 김은 생각했다.
김은 한때 승려였다. 이 세상 너머에 어쩌면 착함으로만 되어 있는 신이 창조한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김은 생각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승은 허무했다. 허무로부터 비롯된 세상이 이승이기에 지금처럼 사는 것만도 대단한 거라고 김은 생각했다. 옥황상제는 허무한 이승 또한 수많은 세상들 중의 한 가능성이기에 무한한 세계의 한 종류로 내버려두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김은 생각했다. 이리 힘들게 사는 자신도 부처가 구원해줄 거라고 김은 생각했다.
김은 육보시를 하려고 딸에게 갔다.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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