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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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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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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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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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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Episode 02 웃는 인형 (6)

DUMMY

4. 그 아이




쌍봉낙타는 아무래도 애완용으로 기르기 힘든 동물이다. 쌍봉낙타가 애완용이 아니라고 말해줘야 했다.


세준은 회사 화장실의 거울을 보며 쌍봉낙타에 대한 소신을 불태웠다. 태민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깜짝이야!”하고 소리쳤다. 손에는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뭡니까, 선배. 왜 아침부터 그렇게 진지하게 거울을 노려보고 계세요?”


“……쌍봉낙타 알아?”


태민은 손을 씻으며 안쓰러운 듯 대답했다.


“쌍봉낙타라니, 그게 뭡니까, 대체. 뭐, 보아하니 유진희에게 걸렸군요.”


어떻게 알았지?


세준이 비장한 음모론을 떠올리며 노려보자, 태민은 별 거 아니라며 해명했다.


“뭘 그렇게 쳐다보세요. 뻔하죠. 유진희 씨 장래 희망이 아랍의 28번째 왕자와 결혼하는 거라는 사실을 다 아는 걸요.”


선임은 벤틀리 20년 할부로 식스팩 있는 연하의 집사를 노리고 있는데, 그 후배 여인은 또 아랍의 28번째 왕자와 만나는 게 목표였다.


“왜 하필이면 28번째 왕자라는 거야? 5번째도 있고, 8번째도 있고…….”


태민은 글쎄요, 하고 들고 있던 봉투를 부채처럼 부쳤다.


“28번째 왕자 정도면 마음 놓고 돈을 쓰면서 왕위 싸움 때문에 피곤한 일이 없을 거라고 하던데요?”


세준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런 삶의 목표를 정했을 때는 그게 최소한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인지를 먼저 고려하라고!


당장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태민은 “그래서 선배는?”하고 확인했다.


“선배는 얼마 걸 거예요? 권 대리님이 식스팩을 가진 연하 집사를 만나는 게 먼저일까요, 아니면 유진희 씨의 아랍 28번째 왕자?”


내가 그런 걸로 돈 내기를 할 인간 같냐.


한심해 하는 눈길에도 불구하고 태민은 진지했다.


“얼마 걸 거냐고요. 참고로 팀장님과 저는 2년 안에 쇼부를 친다고 보고, 저는 권대리님에게, 팀장님은 유진희 씨에게 걸었어요. 다른 팀에서도 걸고 있어요.”


진짜 한심하다.


세준은 속으로 혀를 차며, 조용하게 말했다.


“……배당 높냐?”


“그럼요.”


태민은 씩 웃었다.


“높죠. 6개월 전부터 시작됐고, 올해 안에 참여자를 다 모을 거니까요.”


“콜.”


내기는 그렇게 극적으로, 또한 은밀하게 타결됐다. 세준은 계영에게 걸었다. 아무래도 아랍의 28번째 왕자를 만나는 것보다는 식스팩을 가진 연하 집사를 꼬드기는 일이 더 쉬워 보였다.


내기의 참여를 선언하고, 단체 채팅방에 등록을 할 때까지는 계영의 미래가 더 쉬워 보였다. 그러나 B02의 문패가 빛나는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태민이 당당하게 자백했다.


“진희 씨 아랍어 대따 잘해요. 제가 알기에는 커뮤니티를 통해서 얼마 전에 사십 몇 번째 왕자는 만난 걸로 알고 있어요. 게다가 계영 선배 정도면 진희 씨에게 아랍 왕자는 소개시켜 줄 수 있겠죠. 권 대리님은 왠지 그런 거 잘 할 거 같지 않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일을 성공시키는 거.”


씹할, 바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런 고급 정보는 미리 알려줘야지.


부두교의 저주 인형처럼 욕설을 중얼대자, 태민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네며 씩 웃었다.


“아무튼 등록 끝났으니까 이제 어쩔 수 없어요, 선배. 아, 그리고 이 서류 계영 대리님께 부탁드립니다.”


세준은 노란색이 부드럽게 빛나는 봉투를 건네받았다.


“이게 뭔데?”


“아, 계영 선배가 어제 새벽에 전화해서……, 뭐 좀 달라고 해서 준비한 거예요.”


“네가 직접 주면 되지.”


“저는 외근 나가야 하는데, 아직 자리에 안 오셔서요. 책상에 올려놓으려고 해도, 우리는 비밀 문건들을 다루니까 규칙 아시잖아요, 모든 매체는 전자를 쓰면 안 되고, 반드시 문서로 서로 주고받은 후에 보관용을 제외하면 모두 폐기한다……, 법률팀에서 안 그러면 과실책임의 원칙에 걸린다고 난리예요.”


점심시간마다 목에 아이디카드를 두르고 정장차림으로 흐느적거리며 밥을 먹으러가는 법률팀. 그들은 시크릿 세이버를 총괄하는 운영의 총책이다.


세준은 말없이 동의하며 서류를 받아 챙겼다. 보나마자 송기철 회장의 자서전에 대한 자료였다. 새벽녘에 그 빌어먹을 「투시」때문에 전화했을 때, 계영은 놀랍게도 사무실에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세준이 출근했을 때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태민도 가방과 상의를 챙기며 같은 말을 했다.


“저에게 전화하실 때도 새벽인데 사무실이라고 하셨는데, 아침에는 왜 안 계신지 모르겠어요.”


새벽까지 회사에서 철야를 하던 사람이 도대체 어디를 간 걸까.


세준은 옥상의 흡연실을 생각하다가 관뒀다. 권계영 대리도 요새는 끽연을 즐겨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태민이 발랄하게 인사하며 문으로 다가섰다. 팀장은 출근 시간 직전에 이미 본관의 상관에게 불려간 상태였다. 세준이 그래, 하고 대답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기는 아까부터 발신자의 이름을 새기며 충직하게 몸을 떨어댔다.


“네, 한세준입니다. 아, 네, 알고 있습니다, 박훈철 씨…….”


소곤거리듯 작게 말한 소리를, 태민이 들어버렸다. 그는 세준이 통화를 끝낼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렸다.


“혹시 그 사람하고 통화하신 겁니까? 박훈철 전 과장님?”


“아, 알아요?”


세준은 회사의 여느 동성 직원들끼리 그러하듯, 어느 틈엔가 존대와 하대를 섞어하기 시작했다. 태민 역시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네, 하고 아는 척을 했다.


“팀은 달라도 알죠. 계영 선배가 그 사람을 내부 고발해서 여기로 좌천되어 왔다는 소문이 얼마나 많이 퍼졌는데요. 저도 지상층 인간들이 입사 동기란 말이죠.”


그가 말하는 지상층에는 세준도 근무했다. X팀에 이전하던 첫날, 옥상의 휴게실에서 이전 팀의 사람들이 얼마나 지하팀의 음모론을 기다렸는지도 기억이 났다. 그때는 X팀의 권계영이 정말 자기 파트너를 고발했느냐가 소문의 중심이었다.


세준은 물론 사람들의 그런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박훈철을 직접 대면해본 결과 소문에 대해 완전히 부정하는 쪽이었다. 시크릿 세이버 사람들은 그냥 비밀을 다루는 사람들 특유의 촉각으로 지레짐작한 게 분명했다. 얼마 전 지하 주차장에서 박훈철과 마주쳤을 때, 권계영이 넌지시 농처럼 말했다.


‘네가 우락부락한 논개도 아니면서 나를 끌어안고 회사의 오명이라는 바다로 날 던졌으니 무료로 해, 알간? 흠, 내 한 몸 팔아서 얻은 자료라니…….’


박훈철 본인은 더 직접적으로 해명했다.


‘사실 제가 시크릿 세이버에서 금지된 회사 외의 부업무를 갖고 있었습니다. 실은 회사 하나를 차린 거예요. 정보제공센터? 뭐 그런 겁니다.’


결국 박훈철은 잘렸거나, 혹은 권계영을 앞에 세워서 권고사직으로 처리된 게 분명했다. 계영이 스스로 파트너를 고발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세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태민의 눈동자는 진실에 대한 의욕 충전으로 반짝거렸다.


“그래서,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리님을 둘러싼 내부고발자 음모론요.”


“아마 그 소문들이 진짜는 아닐 거야, 태민 씨.”


“그렇죠?”


세준은 엄숙하게 동의했다.


“그렇지. 너도 알다시피, 계영 선배란 인간은 남을 꼬지르기에는 너무 이기적이니까.”


계영은 자기 존재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그라면 왕년에 박훈철이 파트너로 옆에서 여자와 섹스를 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정말 그랬다. 태민 역시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출근 시간 전후로 청소를 하던 지하팀 담당 관리인이 문을 열었다. 그는 태민의 발을 피해, 빈 쓰레기통을 솜씨 좋게 밀며 중얼댔다.


“……화장실에서 또 그 사람이 죽어 있어.”


염불보다 더 그윽한 음성이었다.


태민이 “네?”하고 되묻자, 관리인은 무심하게 바닥을 쓸며 두 사람 사이를 통과했다. 그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구루guru처럼 웅얼댔다.


“화장실 세면대에 사람이 죽어 있어…….”


세준은 태민과 시선을 나누었다. 관리인의 본의를 파악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B.C 500년 전 쯤의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연 곱슬머리의 소유자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중생의 카르마를 본 이후로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의 설법을 펼치며 손에 손을 잡도록 외친 위대한 존재였다.


이 위대한 존재는 존자들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팔만이 넘는 문자를 찍어대도 모자랄 만큼의 많은 유산을 남겼으나, 세준이 기억하는 것은 두 개 정도였다. 이 자비의 존재, 천연 곱슬머리 남자의 생일날 절에 가면 밥을 준다는 사실과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인생의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


한 줄의 명구는 세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가 말한 ‘비교’는 모든 아이템을 다 상징했다. 그것은 타인과 자신의 삶에 대한 비교를 의미하며, 때론 존재 자신의 시간적 비교도 의미했다. 과거의 영광과 미래의 희망을 현재와 비교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불행에 빠진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위대한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도 말하지 않았던가.


「역사적 성공의 반은, 죽을지도 모를 위기에서 비롯됐다. 역사적 실패의 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역시 모든 명인들의 생각은 우주의 섭리상 하나의 진리를 관통하게 되어 있다. 비교와 인간의 행․불행에 대한 촌철살인 같은 명구名句는, 때론 수천 년, 때론 수십 년을 돌고 돌아, 인류가 낳은 위대한 곱슬머리 남자의 생일날 절에 가서 밥을 얻어먹은 한 소년의 뇌리에 남아 있다가, 이후 수년이 지나 같은 영혼의 청년의 머릿속에도 잠재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시공간을 돌고 돌아, 그 청년이 일하는 회사의 화장실에 세면대에 도착했다. 그것도 여자 화장실, 새벽에 청소한 티를 내며 향기를 폴폴 풍기는 여자 화장실에.


세준은 일단 여자 화장실의 문을 잠그고 세면대에 기댔다. 세면대는 회사 건물 내의 다른 휴게시설에 걸맞게 매우 값진 대리석이다. 인조 대리석이 아니라 진짜였다.


계영이 값비싼 대리석을 디디고 서서, 어푸어푸, 세수를 감행했다. 세준은 곱슬머리 스승이 설파한 자비의 인내심으로 그 시간을 기다렸다. 끝내주게 창백한 얼굴이 물기를 뚝뚝 흘리며 고개를 들자마자, 핸드타월을 뽑아주는 친절함도 있지 않았다.


“부처가 말했죠. 인간의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오는 거라고.”


그리고 잔소리 타임-.


“토인비도 말했죠. 역사적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도 모를 위기에서 시작되고, 역사적 실패의 반은 찬란했던 옛 영광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계영이 다 쓴 타월을 휴지통에 내던졌다.


“네 말이 맞아. ……토인비의 말은, 부처님의 말보다는 이중적인 해석이 필요한데, 그건 한 사회집단이 가진 역사적 불행 역시 비교에서 오는 거라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빛나던 시절만 기억하고 그것을 되살리려 하거나 혹은 그것에 젖어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 온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나는 대리님이 좀 더 ‘비교’에 집중해 줬으면 하는데요.”


하얀 얼굴이 부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 얼굴은 자신이 방금 물기를 닦은 타월이 핸드타월이 아니라, 저 유럽 끝단의 부츠 모양의 반도 이름을 띤 타월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비교……?”


“네, 비교.”


세준은 상큼하게 나무랐다. 잠이 덜 깼을 때라도 잔소리를 하는 게 부하의 숙명이다.


“부처님이 아무리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는 게 불행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더라도요, 선배, 선배는 비교를 좀 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토인비의 말을 예로 든 것도 그렇고요. 역사적인 관점에서 ‘사회적인 지금’에 충실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거죠. 사회적인 태도를 좀 가지라고요. 안 그러면 만날 여기를 청소하시는 관리인이 선배가 또 죽어서 여기 누워 있다고 중얼거리며 돌아다닐 겁니다. 저도 남에게는 이런 이야기 안 하지만요, 대리님! 제발, 타인의 시선 좀 의식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 좀 맺고 살라는 말입니다.”


세면대에 죽은 듯 누워서 자고 있는 계영을 깨웠을 때부터, 이 잔소리는 계획되었다. 권계영의 성격을 이제 어느 정도 파악했기에 놀라지 않은 거지, 아침부터 사내 여자 화장실에 사람이 죽어 있다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듣고 싶지 않았다.


계영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가, 입술에 옅은 호를 그렸다.


“여기 조명이 좋잖아? 대리석도 끝내준다고. 그리고, 그 관리인 아저씨 나랑 친해. 내가 여기서 자는 걸 아시고 얼마나 깔끔하게 청소하시는데.”


“차라리 사무실에서 주무세요. 거기 소파도 있고, 바닥도 양탄자인데.”


“여기 자러 온 게 아니야. 사실은 세수하러 왔다가……”


말을 잇던 그는 아니야, 하고 고개를 저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그 성격의 표독스러움이 사라지고 순해 보였다.


“아무튼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카페인이 공급되면 그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보지. 아, 근데, 새벽에 통화하던 거 어떻게 됐어? 역시 안지율 씨가 말한 게 맞나?”


세준은 혀를 찼다.


“알고 맡기신 거잖아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계시니까 저에게 그런 걸 맡기신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역시 잠에서 막 깨어난 생명체는 고양이건 표범이건 죄다 순하다.


“실험 정신에 입각해서 보낸 거야. 원래 모든 이론은 수십 번의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고, 그것을 검증하여 이론화하는 거니까. 이상한 일도 여러 번 일어나면 그 안에 동일하게 흐르는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그게 바로 선배의 문제점입니다. 저는 선배의 메스실린더가 아니라고요.”


세준은 화가 나진 않았지만, 모처럼 잡은 순한 시간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저는 선배의 플라스크도 아닙니다, 저는 선배의 핀셋도 아니고요…….”


“아, 내가 공부한 것들은 메스실린더나 플라스크나 핀셋은 잘 사용하지 않아.”


순한 시간이 얼마 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계영은 부은 눈을 만지작대며 옹알댔다.


“오히려 슬릿slit이나, 오실로스코프나, 전압계나 전류계나, 다이오드나 뭐 그런 걸 활용하지. 하지만 우리 업계……, 내가 공부하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툴tool은 사실은 그런 것들보다 오히려…… 다른 것을 가장 많이 활용해.”


부은 눈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때렸다.


“바로 뇌. 우리는 뇌를 이용해서 가장 많은 실험을 하고, 가장 많은 설계를 하고, 가장 많은 이론들을 증명해 보려 하지. 그리고 ‘뇌’는 너도 갖고 있고, 나도 갖고 있어. 그리고 너와 나는 그걸 특별하게 사용하게 될 거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메스실린더나, 슬릿이나, 오실로스코프가 되는 거야. 그게 네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을 보는 이유일지도 몰라.”


그는 완전히 잠에서 깬 것처럼 태민의 서류를 꺼내 보았다.


화장실 문이 덜컹거렸다. 유진희가 밖에서 “뭐예요!”하고 소리쳤다. 세준은 “시끄러워.”라고 대답했다.


“1층 로비로 가면 있잖아.”


밖에서 툴툴대는 소리가 들렸다. 세준은 다시 소리쳤다.


“그리고, 쌍봉낙타는 집에서 못 길러!”


권계영은 쌍봉낙타? 하고 두리번거렸다. 자신은 꽤 멀쩡한 영혼을 가진 것처럼 느긋했다.


“쌍봉낙타라니, 그게 뭐야?”


“아뇨, 모르셔도 돼요. 아무튼 태민 씨 자료, 그거 뭡니까? 아침에 박훈철 씨에게도 연락이 왔는데, 선배가 새벽에 의뢰하신 거 오늘 저녁까지 알아본답니다. 아니……, 제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라……, 관리인 아저씨에게 만날 시체 취급당하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왜 새벽부터 그 모든 사람들을 깨운 겁니까?”


“노, 노, 노.”


계영은 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다시금 연못 안의 미물들을 바라보는 눈길이다.


“모든 사람을 깨우지 않았어. 팀장님과 진희 씨는 자게 내버려뒀다고. 미천한 인간들을 깨운 거지.”


잠이 덜 깼을 때가 순해서 좋았는데, 금쪽같은 시간을 놓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세준은 한숨을 쉬었다. 계영은 세준과 같은 방향으로 세면대에 기대며 사근사근 나불댔다.


“그리고 혼자만 그 시간에 일하는 건 괜히 아쉽잖아?”


세준은 콧방귀를 꼈다.


“무서워서 그러셨겠죠.”


“후후훙, 무서워서 전화한 게 누군데 그래.”


세준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들키지 않게 꽉 쥐었다.


“무섭지 않았습니다. 좀 놀란 거죠. 놀란 거랑 무서운 거랑은 다릅니다. 아, 근데 아까 통화에서 제가 본 거 자세히 말씀 못 드렸죠, 사실은……”


세준은 청결한 향이 나는 세면대에 기대 나머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창문과 손, 그리고 불이 나듯 창문 밖에서 피어오르던 연기, 안에서 자는 것 같은 사람의 실루엣, 또한 인형과 타닥타닥거리던 소리들 모두…….


계영은 가끔 강한 숨을 들이켰지만 잠자코 그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의 잉여적 호기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이야기들임에 분명했다.


한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몸을 돌려 반대쪽에 있는 거울에 얼굴을 들이댔다. 그리고는 하얗고 깨끗한 얼굴로 거울 위에 김을 불었다. 아주 평범하면서도 눈여겨볼 만한 행위였다.


그의 하얀 김이 거울에 닿자, 새벽까지 누군가 낙서한 것처럼 투명하게 쓴 글씨가 드러났다.


「지켜보곤 했다.」


“이게 뭔가요?”


세준의 질문에 계영은 몰라, 하고 세면대를 짚었다.


“새벽에 세수하러 왔다가······, 이게 떠올라서 적어본 거야. 안지율 씨가 읽지 못한 뒷부분은 나도 못 봤지. 그런데 잘려나간 뒷부분은 모르겠지만, 일단 자서전은 이 문장으로 끝을 맺어.”


“그게 바로 저 문장······?”


계영이 끄덕거렸다.


“맞아, 저거야. 자서전의 289페이지, 이 문장으로 미완성이야. 네가 본 어떤 것들과 이 끝 문장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찾아봐야겠어.”


계영이 손가락으로 「지켜보곤 했다.」의 앞 문장을 적어갔다. 하얀 글씨가 또박또박 정갈한 한글을 이어갔다.


그 문장은 바로 「그 아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였다.


작가의말

어쩜 이렇게 늘 5분 전에 안착할까요..ㅠㅠ

죄송합니다. 오타들은 한 번에 시간을 봐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사람이 이름이 중간에 틀린 게 나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건 정말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ㅠㅠ


변명하자면, 다른 사람을 쓴 건 아니고요, ^^;; [투시]는 예전에 시나리오로 쓴 걸 고치는 과정에서 보고 적다보니까, 은근히 헷갈렸나 봅니다. 카피 앤 페이스트 해서 붙이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 이름도 바꾸고 설정도 좀 바꿔서, 아예 새로 적고 있는데도, 한 번 머릿속에 입력된 내용이라 그런지 손이 그렇게 가네요.


죄송합니다!


------------------------


업데이트 기록 _ 14.11.10 수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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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6 온연두콩
    작성일
    14.09.24 00:11
    No. 1

    시간 지키시는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들어와서 새로고침 누르면서 대기타고 있었어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4.09.24 04:25
    No. 2

    매일 이정도 분량으로도 굉장하신 거예요. 제 선호리스트에서 날마다 업뎃 해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_<
    그나저나 전 이쯤에서 세준씨의 셔츠를 걷어보고 식스팩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지네요. +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더마냐
    작성일
    14.09.24 08:59
    No. 3

    세준씨 너무 귀여워요... 우훗!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젤라
    작성일
    14.12.11 17:13
    No. 4

    세준도 은근히 쌓인게 많았던 것 같아요. 잔소리할 타임은 결코 놓치지 않는군요. 두 사람 모두 귀엽습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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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透視, Second Sight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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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6) +5 14.12.18 592 13 14쪽
33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5) +10 14.12.15 730 12 23쪽
32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4) +11 14.12.09 675 11 32쪽
31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3) +7 14.12.03 638 11 13쪽
30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2) +7 14.11.30 702 9 19쪽
29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1) +7 14.11.30 616 9 7쪽
28 Episode 02 웃는 인형 (완결) +10 14.11.10 905 11 27쪽
27 Episode 02 웃는 인형 (13) +6 14.10.18 558 15 19쪽
26 Episode 02 웃는 인형 (12) +15 14.09.30 787 16 26쪽
25 Episode 02 웃는 인형 (11) +9 14.09.29 765 13 26쪽
24 Episode 02 웃는 인형 (10) +7 14.09.27 804 21 10쪽
23 Episode 02 웃는 인형 (9) +6 14.09.26 624 12 9쪽
22 Episode 02 웃는 인형 (8) +9 14.09.25 755 12 26쪽
21 Episode 02 웃는 인형 (7) +4 14.09.24 616 17 25쪽
» Episode 02 웃는 인형 (6) +4 14.09.23 691 15 18쪽
19 Episode 02 웃는 인형 (5) +4 14.09.22 683 16 10쪽
18 Episode 02 웃는 인형 (4) +4 14.09.20 818 15 21쪽
17 Episode 02 웃는 인형 (3) +6 14.09.19 649 17 18쪽
16 Episode 02 웃는 인형 (2) +4 14.09.18 667 14 19쪽
15 Episode 02 웃는 인형 (1) +7 14.09.17 1,265 23 11쪽
14 Episode 01 빨간 드레스 (완결) +6 14.09.17 591 16 3쪽
13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3) +7 14.09.16 637 17 25쪽
12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8 14.09.15 575 15 20쪽
11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1) +9 14.09.13 561 17 22쪽
10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0) +5 14.09.12 545 17 18쪽
9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8 14.09.11 515 14 17쪽
8 Episode 01 빨간 드레스 (8) +9 14.09.10 718 14 10쪽
7 Episode 01 빨간 드레스 (7) +5 14.08.03 818 15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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