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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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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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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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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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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Episode 02 웃는 인형 (8)

DUMMY

회의 테이블 맞은편의 보드는 이전의 프로젝트 때처럼 송기철 회장에 대한 자료로 가득했다. 세준은 여느 때보다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장가형은 늦게 들어서는 두 사람을 일별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마는 중년의 부인처럼 느긋하게 빔 프로젝터의 리모컨만 깔짝거렸다.


김태민도 두 사람 사이의 이상한 긴장을 의식한 듯 잠깐 쳐다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유진희는 더 태연하게 보드를 쏘아보았다. 그가 어떤 대화를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권계영이 박훈철에게서 받은 봉투를 열어 사진들을 꺼내더니 보드에 붙이기 시작했다.


박훈철은 확실히 정보센터인지 고급 흥신소인지를 운영할 만한 남자였다. 그가 계영에게 준 것은 송기철 회장의 사건 현장 사진이었다. 그 안에는 심지어 경찰도 소장하고 있을지 아닐지 모를, 전前부인의 현장 사진도 함께 동봉됐다.


회의 보드에는 송기철 회장의 프로젝트 건이 일목요연하게 명시됐다. 이전처럼 태민의 뚜렷한 필적이 드러나는 정리였다. 팀장 장가형이 막 나열되기 시작한 사진들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사진 자체를 탐탁지 않아하는 투였다.


“그래, 우리 휴머니즘에 가득한 권 대리가 아직 파일을 복구하지 못했다는 게 무슨 말이야?”


그는 책상 위의 달력을 보며 지적했다.


“보라고. 계약 만료 날짜가 당장 금요일이야. 이제 이틀 남았다고.”


만료일에 시달리는 이유는 태민과 유진희가 사건을 오래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계영이 태민의 불안을 감지했는지, 선선히 대꾸했다.


“파일 복구보다도 송회장님의 유지 내용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팀장님.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그 유지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유지의 ‘그 아이’라는 표현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고인이 말하는 ‘그 아이’라는 게 따님을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거든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따님이라면 ‘그 아이’라는 3인칭을 쓰지 않죠.”


세준은 자세를 바로 했다. 뜨끈뜨끈하던 뇌의 온도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에고를 드러내던 신경 세포는 이내 송기철 회장의 사건으로 옮겨갔다.


권계영이 아침에 거울에 썼던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안지율은 문제의 자서전이 매번 뒤의 내용을 이어가지 않고, 스스로 생명이라도 가진 듯 289페이지에서 끝난다고 말했다. 그 문장은 「그 아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였다.


확실히 송기철 회장이 유언에 남긴 ‘그 아이’의 존재는 모호했다. 자서전이 끝나는 문장이 어떤 식으로든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계영의 의견이 옳았다. 이미 첫 번째 사건에서 겪었듯이, 고인의 유지에 반反하는 행동을 해서도 안 되지만 그 유지에 하나라도 미달이 되어서는 안 되는 업무였다. ‘그 아이’를 찾아내서 회장의 말을 전해야 했다.


장가형은 부담스러운 듯 이마를 연신 문질렀다.


“그 문장은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권계영, 그건 솔직히 우리가 이행하지 않아도 법률팀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야. 한 줄의 문장이라도 애매하면 안 되는 게 그들의 일이라고. 우리 팀은 계약서에 분명히 명시된 ‘자서전 완성 후 폐기’가 1차적인 목표고.”


“그렇긴 하죠. 하지만 팀장님, 그 자서전이 바로 ‘그 아이’로 시작하는 문장을 끝으로 더 이상 완성이 되지 않고 있다니까요.”


계영은 반박했다.


“여기에는 분명히 고인을 위해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는 거예요.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항상 말씀드리지만, 모호한 문장에는 늘……”


유진희와 김태민이 합창하듯 뒤를 이었다.


“······어두운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계영이 부은 눈으로 조금 웃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둘 다. 잘했어. 아시겠죠, 팀장님? 어두운 비밀을 어떻게든 해결해주기 원하는 고객들이 우리에게 일을 맡깁니다. 그래서 저도 새벽에 태민 씨에게 뭘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고……, 태민 씨가 상황을 좀 정리해봤죠. 일단 ‘그 아이’가 누굴 말하는지 알아내려면 자서전 속의 내용을 검토한 후에 우리와 송 회장이 언제 계약을 했고, 어떤 상황에서 했는지를 알아봐야 하니까요.”


태민이 맞아요, 하고 연필을 쥔 손으로 보드를 가리켰다.


“맞습니다, 팀장님. 저도 계영 대리님이 부탁해서 알아봤는데요,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래요. 송회장은 사고가 나기 6개월 전에 자서전을 집필할 거라고, 자기 회사의 프리랜서 대필 작가인 안지율 씨에게 말했습니다. 근데 이상한 건, 그 비슷한 시기에 우리와 계약을 했다는 거죠.”


장가형이 불길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그게 왜 이상하다는 거지?”


태민이 대답했다.


“고인의 나이 때문입니다. 계약을 할 당시 고인의 나이는 55세. 젊은 편이죠. 근데 회장은 이미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미적대고 있던 자서전을 느닷없이 준비하고, 우리와 계약했으니, 이게 상당히 의문입니다. 미루던 자서전과 유언, 이 두 가지는 죽음을 준비하는 자의 필수적인 과정이니까요. 그것도 재벌이라는 회장의 위치상 더 그래요.”


“맞아요, 팀장님.”


계영이 뒤를 이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쉽죠. 만약 송기철 회장이 특별한 비밀을 갖지 않은 고객이라면 일반 로펌을 이용해서 유산 처리를 할 겁니다. 로펌의 변호사들도 의뢰인이 심각한 범법 행위를 하지 않은 이상, 고객과의 비밀 유지 계약을 계속 지켜나갈 거고요. 하지만 송기철 회장은 20년 가까이 회사와 거래하는 자체적인 법률 회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언과 유지에 대한 계약을 우리에게 맡겼어요. 게다가 진희 씨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계영이 게임 순서를 지목하듯 진희를 가리켰다. 유진희는 등 떠밀린 사람처럼 푸념하는 말투였다.


“제가 예전 동료들에게 알아낸 바로는 이래요. 송회장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우리와 계약하기에는 어떤 치명적인 병세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최근에는 대상포진을 앓은 기록이 있긴 하지만 경미했어요.”


“이제 아시겠죠, 팀장님?”


계영은 양팔을 넓게 벌렸다. 원기를 회복한 모습이었다.


회의실은 다소 멍해진 팀장의 표정과 더불어, 불법 피라미드 회사의 교육장 같은 분위기였다. 계영이 기선을 잡은 채로 주장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모호한 유지와 유품 내용을 먼저 생각해 보죠. 그리고 아직 창창한 나이의 사업가가 자신의 개인 변호사를 이용하지 않고 우리 같은 로펌 겸 심부름센터에 따로 사후 관리를 예약한 점, 자서전의 집필 일시와 유언 작성 시기가 비슷한 것, 마지막으로 자서전을 완성해 놓고도 ‘자신이 죽으면 폐기해 달라’라고 말한 것, 이렇게 모두 다섯 가지를 연결하면······”


하필이면 그 순간, 눈이 딱 마주쳤다. 세준은 뭔가를 약간 포기하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송기철 회장은 죽음을 예견한 거군요. 그렇죠?”


장가형이 그런 분위기를 비난하듯, 휘파람을 짧게 불렀다. 휘이익, 호각의 소리 같은 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김태민이 뒤를 이어 한숨을 거나하게 토했다. 놈은 어리고 청순한 동물처럼 캬, 하고 웃으며 놀려댔다.


“이제 원래의 세준 선배로 돌아왔다.”


유진희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어깨를 툭, 떨어뜨렸다.


“그러게, 그러게. 화목하게 그렇게, 그렇게!”


계영이 영리한 사족보행의 동물들을 칭찬하듯 살짝 웃었다. 세준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약간 나른한 기분으로 뇌까렸다.


“한편으로 자서전을 집필하고도 폐기해달라고 한 건, 심리적인 동요를 말하는 것 같은데요. 정리하자면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6개월 전 쯤에, 송회장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양심에 의거해서 검은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으나, 자신이 죽은 후에 그 비밀이 드러나면 누군가 다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모순되는 계약 사항들을 명시하게 한 게 아닐까 합니다.”


어떤 인간들은 죽음 직전에 양심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자 노력한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이 자신이 저질렀던 감춰진 범행들을 사형 선고 후에 고백하는 것과 비슷했다.


유진희가 그러네요, 라고 동의했다.


“그럼, 세준 선배, 어떤 출판 재벌이 자신의 자서전을 이용해서 비리나 비밀을 밝히고 가족에게 그 자서전에 대한 대가를 대대손손 지불하지 않고, 오히려 폐기하달라고 한 거는 뭘 상징할까요?”


세준은 대답했다.


“자신의 양심을 일정 부분만 보이고 버리고 싶을 만큼, 송회장이 애정을 담은 대상일 때 가능하지.”


그때였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장가형이 내뱉었다.


“부정父情이야.”


평소의 장가형답지 않은 씁쓸한 어투였다. 태민이 놀란 것처럼 “부정?”하고 되물었다.


“어, 부정父情.”


확신에 찬 어투가 강조했다.


“죽은 후에도 걱정되는 누군가가 있다면, 양심을 버릴 정도로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부모로서는 딱 하나, 자식이지. 아버지의 마음과 양심의 고백이 송회장에게 갈등을 일으킨 요소가 아닐까 해. 자네들은 모두 미혼이니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애들 아빠고, 내가 죽어서도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딱 하나, 내 아이들이 잘 살아가는 거야. 나로서도 뭔가 아이들의 문제를 알게 된다면 사회에 사실을 밝힐까 말까, 상당히 갈등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그런 양심을 굳이 포기해야 하는 단 하나의 경우가 있다면, 바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야. 뭐, 좋은 태도는 아니지. 하지만 저절로 그렇게 된다고.”


송회장의 딸, 송가연이 연상되는 발언이다. 태민 역시 같은 것을 떠올리듯 얼굴이 흐려지고 검어졌다가, 다시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미, 믿을 수 없는데요? 그럼 송가연 씨가 뭔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걸까요? 송가연 씨가 송기철 회장의 양심에 타격을 줄 정도로 어떤 일을 벌였다는 겁니까? 그럼, 송기철 회장은 딸과 관련된 중대하고 위험한 비밀을 알고 그걸 죽기 전에 한 번은 털어놓고 싶었지만……, 자기 양심을 위해서 한 번의 발설에 그칠 뿐이고, 딸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 내용의 폐기를 원한다?”


그는 자신의 여신이 타락했을 거라는 예상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 계영이 그런 놈의 모습을 딱하게 바라보며 “잠깐만.”하고 돌려 말했다.


“미리 상처받기 전에 좀 더 신중해야 해. 단서가 하나 더 있어. 자서전 말이야. 지금 안지율 씨에게서 넘어온 자서전은 어쨌든 이렇게 끝나. ‘그 아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라고. 묘한 데자뷰아냐? 송회장이 남긴 마지막 유지에도 그 표현이 나오니까. ‘그 아이’라는 표현.”


태민의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놈은 “이햐!”하고 소를 모는 카우보이처럼 팔을 휘둘렀다.


“그럼 그거네요, 선배. 인류의 대서사 막장 드라마! 송회장에게 아이가 더 있는 거죠!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러면 더 말이 되고요! 숨기고 싶지만 핏줄이라 양심의 가책을 받고, 그렇지만 남은 가족들을 위해 비밀로 만들어야 할, 다른 숨겨진 아이! 재벌가에 맴도는 출생의 비밀이라니, 이 얼마나 어울리는 조합입니까, 안 그래요?”


“……문제는 송회장의 자서전에서 표기된 ‘그 아이’가 누군지, 나는 알고 있다는 거야.”


계영이 뻑뻑한 눈에 인공눈물을 넣으며 대답했다. 태민이 그의 말에 반색하며 손뼉을 쳤다.


“알고 계시다고요? 그럼 ‘그 아이’를 찾으면 되죠. 찾아서 송회장의 말을 전하면 되죠. ‘그 아이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전해 달라.’ 이게 송회장의 미스터리한 유지였잖아요? 뭔지는 몰라도 그 아이를 찾아가서 약속을 지키라고 말합시다. 그리고 자서전을 우리 눈앞에서 완성하고 폐기하면 끝!”


“어디 얼음물 없냐, 유진희?”


계영이 차분한 어조로 돌아왔다. 얼음물? 유진희는 떨떠름한 눈길로 태민을 쳐다보더니, 없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그래?”


계영이 낙담했다.


“아쉽네. 태민이 쟤, 얼음물에 좀 담갔다가 꺄아꺄아 하고 살려달라고 말할 때 꺼내려고 했는데.”


장가형이 들키지 않게 씩 웃었다. 태민은 신나서 소리를 치다가 풀 죽은 아이처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계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사진 하나를 꺼냈다.


아주 잘생긴 소년의 모습이 찍힌 사진으로, 꽤 낡은 상태였다.


“여기서의 문제는 송회장의 자서전에 나오는 ‘그 아이’가 딸인 송가연의 오래전 남자 친구라는 거야. 내가 아는 정보 센터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래. 적어도 17년 전, 송회장이 자신의 딸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기 전에 송가연이 15살 무렵에 만났던 소년이라는 거지. 이 남자는 지금 물론 성인일 거고, 만약 이 사람이 태민이의 말처럼 송회장의 숨겨진 아들이라면, 그야말로 문제지. 어린 시절의 풋사랑이지만, 어쨌든 송가연이랑 연애질을 했으니까.”


성춘향도 16살 때 연애를 했다. 15살이든 16살이든 알 것을 다 아는 나이다. 태민은 로또 당첨에서 두 끗발로 떨어졌을 때보다 더 낙심했다.


“으악! 그런 식이면…….”


놈은 계영이 말대로 까악 까악 흥분했다. 계영은 사족보행 동물의 신개념을 윤허하는 표정으로 달랬다.


“그래, 그런 거야, 김태민. 그러니까 가뜩이나 머릿속 복잡한데, 괜한 막장 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 같은 거 넣지 말라고.”


나름 상냥하게 당부한 그는, 약간 신경이 쓰이는 말투로 밝혔다.


“아무튼, 이 남자…… 송가연의 오래전 남자 친구는 송가연이 자기 어머니가 화재 사고로 죽기 전까지 고향에서 만난 과외 선생이었어.”


화재.


세준은 같은 설명을 전날에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송회장의 전처가 분명 화재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맥락의 어떤 장면을 새벽의 거실에서 본 기억도 떠올랐다. 창문을 열던 하얀 손, 조용한 움직임, 안에서 잠든 사람, 그리고……, 창밖으로 피어오르던 연기와 그때 날리던 검은 재.


세준은 무심결에 발설했다.


“아, 그러면 오늘 새벽에 제가 본 건……!”


유진희가 동시에 튕기듯 일어섰다.


“어? 뭔가 보셨어요? 그 투시인가 뭔가를 하신 거예요?”


세준은 “아니, 그게…….”하고 새벽의 장면을 열렬히 떠올렸다. 계영이 맑은 시선으로 응답했다.


“화재, 맞아, 한세준 씨. 이상한 건······, 송회장 집안의 두 사람은 모두 화재로 죽었다는 거야. 뒤의 사망자는 경찰이 재조사를 해야 정확한 사유를 알겠지만, 17년 전에 일어난 송회장 전부인의 화재 사건 같은 경우에는······, 여기, 내가 의뢰한 정보센터에서 알아낸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당시 화재 사건에서 분명 송가연과 송가연의 전 남자친구가 서로의 알리바이를 증언했다는 겁니다.”


그는 봉투에서 남은 사진들을 꺼내 보드에 계속 붙였다. 자료 몇 장도 모두에게 배부됐다. 17년이 지난 후의 소년은 반듯한 외모로 성장해 있었다. 계영이 그 남자의 사진을 실물처럼 바라보며 말했다.


“이름 강지한, 현재 나이 서른일곱, 당시에는 송가연의 과외 선생으로, 갓 대학생이 된 직후였어.”


장가형이 좋아, 하고 손을 비볐다.


“좋아, 다 좋아, 권 대리. 근데 그게 도대체 우리 계약 집행이랑 무슨 상관이라는 거지?”


그에게 돌아가는 대답은 냉정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파일이 지워지는 현상과 송가연을 둘러 싼 일련의 사건, 비극의 스토리가 서로 관계있다는 느낌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보세요, 계영은 화재 현장의 사진을 꾹 눌렀다.


“제가 알아낸 바로는 송가연 씨의 친모는 불의의 화재 사고로 17년 전, 고향을 떠나기 전에 죽었습니다. 송가연 씨와 강지한의 사이를 눈치 채고 반대했던 것도 그 어머니였고요. 당시 동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의 화재 사건 당시, 송가연은 강지한과 같이 있었다고 증언했고, 그 친구도 거기에 동의했답니다. 그렇지만······, 그 조사 이후로 강지한은 송가연을 매우 피하고 서둘러 유학까지 떠났다고 하더군요. 과외로 학비를 충당해야 할 만큼 가난했던 강지한이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건, 당시 화재 사건에 대해 송기철이 입막음으로 준 돈 때문일 거라고, 마을에서는 한동안 그렇게 소문이 돌았답니다.”


보드의 정 가운데에 세 사람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송기철, 송가연, 그리고 강지한.


유진희가 어깨를 떨며 중얼댔다.


“그 말은······, 송가연 씨 친모의 죽음이 정말 단순한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군요.”


계영이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정확한 건 당시 사고가 이 세 사람이 얽힌 상태로 일어났다는 거고······, 중심에는 송가연 씨가 있다는 거야.”


장가형이 순박한 얼굴을 되찾으며 중얼댔다.


“뭘 어떻게 생각해도 무시무시한 가설밖에는 안 떠오르는 걸?”


맞아요, 계영은 역시 동의했다.


“아무튼 사건 당시의 정황을 들어보면, 그해 겨울 저녁, 송가연 씨의 작고한 친모는 무슨 일 때문인가 화가 나서 가연 씨와 싸웠답니다. 가연 씨는 외출해서 강지한 씨를 만나러 가고, 남은 어머니는 감기약과 술을 마신 후에 담뱃불을 붙인 채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몸에 불이 붙었는데 탈출하지 못하고 창가 아래에서 시신으로 발견 된 거죠.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 같죠, 하지만 이 사진을 보세요.”


사진에는 불에 탄 시신이 열린 창문 아래 놓여 있었다. 마찬가지로 불에 탄 이부자리 머리맡에는 소주병과 불에 글린 재떨이가 있었다. 방과 장판, 이불은 모두 잿더미처럼 보일 정도로 탄 자국이 심했다.


방의 삼면三面은 현장이 1층이라 그런지, 창살이 달린 창문이 있었고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시신의 오른쪽 창가 아래에는 유아용 자동차가 불에 탄 채로 모양을 드러냈고, 잿더미가 깔린 바닥에는 발자국과 희미한 포물선이 있었다.


세준의 시선을 끈 것은 그 포물선이었다. 문제의 포물선 모양은 차의 바퀴까지 연결되어 뻗어 있었으나, 어지러운 현장 탓에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장가형이 “이게 뭐?”하고 따졌다.


“이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태민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계영은 태연하게 창문과 장난감 차를 주시했다.


“이상하지 않아요? 당시 경찰도 이 부분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안 그래, 한세준 씨?”


다시 한 번, 계영이 화해를 청하듯 넌지시 호명했다. 세준은 의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하얗고 가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간의 모호한 텐션과는 상관없이, 뇌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대답했다.


“이상하죠.”


태민이 “뭐가요?”라고 되물었다. 세준은 설명했다.


“아이가 있는 집이니까, 저 방에 저 장난감 차가 있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송가연은 외동딸이고, 또 십대 소녀거든요. 물론 움직이는 자동차 모델이나 인형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그 나이 또래의 소녀가 부모님과 다른 방을 쓴다고 볼 때······, 저 장난감 차가 왜 저기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 차가 움직인 것처럼 잿더미인 바닥에 그려진 궤도도 이해가 가지 않고요.”


장가형이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다가 멈췄다. 세준은 등받이에 목을 뉜 채로 그 리모컨을 쏘아보며 덧붙였다.


“저건 모양으로 볼 때, 아주 어린 유아용 장난감이죠. 심지어 어쩌면 저 자동차는 리모컨으로 움직일 수도 있고, 인형도 태워서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 창가의 쇠창살 보이죠? 사람은 통과할 수 없지만 인형은 통과할 수 있습니다.”


유진희가 오한을 느끼는 사람처럼 떨었다.


“선배, 무슨 말인지 대충 알겠는데, 어쩐지 점점 더·····.”


계영이 한숨을 쉬며 자신의 책상에서 컴퍼스와 자를 들고 왔다. 그는 문제의 포물선 궤적이 있는 사진에 컴퍼스를 대고 무형의 반원을 죽 그렸다.


“저도 세준 씨의 예상이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 사진에서 포물선을 그리듯 움직이는 이 가는 선이 보이시죠? 일반적인 차가 타이어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들은 동선을 만들죠.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장난감 자동차가 나타내는 일종의 스키드마크라고 볼 수 있죠. 이 마크는 여러 사람의 발자국으로 훼손되기는 했지만······, 복원해 보면 이렇게 장난감 자동차의 위치에 맞물립니다. 여기에 있는 가늘고 이상한 궤적은 자동차가 움직인 방향을 나타내고 있어요.”


그 부분에서 설명은 잠시 끊어졌다. 마치 사람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듯 단락된 설명은, 곧 부드럽게 이어졌다.


“이건 가설일 뿐이죠. 17년 전, 아직 화재 조사나 과학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의 사건에 대한 가설.”


세준은 다시 지난밤과 새벽을 떠올렸다. 송회장이 안지율에게 맡긴 물건들. 불에 글린 장난감 차와 인형.


현장 사진에는 없지만, 자동차와 비슷하게 그을음이 있는 인형.


문득 모든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먼저, 송기철의 전前부인이 잠들어 있다. 그의 머리맡에는 소주병과 불을 끈 꽁초가 뒹굴었다. 장난감 차는 창문 아래에 놓여 있고, 잠시 후, 하얀 손이 창문을 조금 열고 창문 아래의 자동차에 인형을 앉혔다.


인형의 목에는 낚싯줄이 감겨 있고, 이 줄이 쇠창살을 지렛대처럼 이용해서 정교하게 차에 앉힐 수 있는 장치로 활용됐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인형의 손에는 불이 붙은 막대기가 꽂혀 있다. 이 작은 불씨에서 시작한 재가 바람에 날리고, 손은 그림자로 검게 보였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인형을 태운 자동차가 출발해서 잠든 부인의 머리맡으로 갔다. 자동차는 재떨이에 가까운 쪽 머리카락에 불을 붙이며 스쳐갔다. 머리카락이 타기 시작했고, 부인이 놀라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부인은 눈을 뜬 채로 비명을 지르지만 연기가 금세 퍼져 나갔다. 장난감 자동차는 자신을 조종하는 외부의 손이 이끄는 대로 빠르게 달려가 창문 앞에 멈췄다. 다시 하얀 손이 인형의 목에 감긴 낚싯줄이 당겨, 인형을 창문 밖으로 쑥 빼냈다. 불이 붙은 여자가 놀라는 표정으로 창가의 사람을 보지만, 창가의 사람은 의외의 행동을 했다. 사방의 창문들을 갑자기 마구 열기 시작한 것이다.


부인은 불타는 손을 뻗어, 살려달라는 것처럼 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열려진 창문.”


세준은 신음하며 내뱉었다. 인형의 목에 있던 희미한 줄의 흔적들, 자동차에 남은 그을음의 남다른 농도들, 사진 속 창문의 틀에 남은 서로 다른 두께의 잿더미.


뇌의 온도가 가파른 직선으로 상승했다. 세준은 누구에게일지 모를 질문을 중얼댔다.


“창문은 불이 붙기 시작할 때 갑자기 열렸어요, 그렇죠?”


계영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장가형이 참을 수 없다는 듯 “그게 뭐?”하고 확인했다.


“그게 뭐? 부인이 창문을 열었을 수도 있잖아? 방문을 못 찾고 당황해서!”


계영이 아뇨, 하고 곧바로 부인했다.


“그런 거 아닐 겁니다, 팀장님. 방문은 이미 어떤 식으로든 밖에서 잠긴 상태였을 거예요. 이 당시에는 작은 걸쇠형 잠금 정도를 사용했겠지만, 아무튼 부인은 나갈 수 없었을 거예요. 창문이 열려 있다는 게 그 증거죠. 그렇지, 한세준?”


세준은 네, 하고 대답했다.


“계영 대리님의 의견이 맞습니다. 부인이 저기서 멈춰서 쓰러진 건, 저 창문 앞에서 누군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불을 붙인 사람이겠죠. 저 밖에 있던 사람이 차를 움직인 사람이고, 또 인형을 이용해 부인에게 불을 붙일 수 있었던 범인일 겁니다. 창문을 모두 연 건 범인입니다. 왜냐하면……, 안쪽으로는 그을음이 있지만, 바깥쪽에는 없으니까요. 이 말은, 불이 한창 타고 있을 때, 손에 그을음이 없는 사람이 ‘밖에서’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태민이 얼굴을 심하게 구기더니 왜요, 하고 반문했다.


“하지만 왜요? 어떤 이유로인가, 미지의 인물이 송가연 씨의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는 건 어느 정도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창문이 열린 게 왜 그 증거죠? 왜 그런 행동이 필요하죠?”


세준은 계영과 시선을 교환했다. 계영도 세준이 도달한 결론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화재 사진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그건, 하고 입을 열었다. 완전히 갈라져 듣기 힘든 목소리였다.


“태민 씨, 그건 말이지…… 아니, 혹시 고기를 밀폐된 공간에서 구울 때 갑자기 산소를 공급한 적 있어? 그 차이점을 본 적이 있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계영은 속삭이듯 설명했다.


“산소가 공급되는 공간에서 불이 붙으면······, 보통은 연기에 질식사를 먼저 해. 하지만 피부부터 타들어가서, 희생자가 아직 살아있는 경우, 불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타 들어가기 때문에 산소가 공급될수록 고통스러워져. 피부의 지방질이 열에 녹으며 더 강한 기름으로 공급되면서 화력은 점점 세지고······, 고통이 심해지지. 튀겨지는 거랑 비슷할 거야.”


태민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목에서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선배, 하고 그가 충격을 받은 듯 나지막이 웅얼댔다. 계영은 스스로의 설명을 털어내듯 여러 번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후, 그는 냉정함을 되찾으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한세준 씨? 범인은 어떤 사람일까?”


세준은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등을 더 깊이 의자에 파묻은 채 사진을 노려보았다. 계영과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순간부터, 이미 이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었다.


“저 사건의 범인이 누구든, 타고난 살인자라는 이야기죠.”


무서울 정도의 적요寂寥가 찾아왔다. 한참의 시간이 침묵 속에서 흘러갔다. 계영이 “가장 놀라운 일은……”하고 봉투 안의 마지막 서류를 꺼냈다.


“지금 강지한의 직업이 소방공무원이라는 거야.”


정말 그랬다. 사진 속의 강지한은 소방관의 옷을 입고, 아이들에게 화재 대피 요령을 설명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글자 수 어디 나와요? (띠벙한 질문)ㅠㅠ


-------------------------

업데이트 기록 _ 14.11.10 수정(1)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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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Lv.20 그린데이
    작성일
    14.09.26 00:03
    No. 1

    올리실 때 작성창 우측 하단에 나옵니다.
    올린 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졌다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09.26 00:14
    No. 2

    앗, 감사합니다!!! 진짜 띨빵해 보여서 안 여쭤보려고 했는데, 너무 궁금해서 못 참았습니다..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온연두콩
    작성일
    14.09.26 00:16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09.26 00:16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4.09.26 00:23
    No. 5

    아, 그 영화에서 나온 말 생각나네요. 분노의 역류였나. 방화범과 소방관의 공통점...
    그런데 가장 끔찍한 고통이 불에 타는 고통이랬는데 불에 튀기....ㄷㄷ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09.26 00:30
    No. 6

    분노의 역류가 그런 영화였습니까? ㅠㅠ 저는 못 봤네요. 으악. 사실 이 부분에 과학적인 뭔가의 단서가 주어져야 하지만, 지나치게 잔인해서 뺐습니다. 이 정도만 되도 범인의 악랄함이 적용될 것 같아서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온연두콩
    작성일
    14.09.26 01:30
    No. 7

    저도 분노의 역류 생각했어요.
    갇혀진 장소에서 불이 공중에 머금어지고 있다가
    문을 여니까 산소 공급되면서 완전 급속도로 퍼지는데 완전 무서웠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09.26 23:57
    No. 8

    엇, 분노의 역류를 정말 한 번 봐야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 꽤 유명했던 영화였는데 (지금도 거의 레전드 급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안 봤거든요. 뭔가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요..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젤라
    작성일
    14.12.11 17:52
    No. 9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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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pisode 02 웃는 인형 (9) +6 14.09.26 623 12 9쪽
» Episode 02 웃는 인형 (8) +9 14.09.25 754 12 26쪽
21 Episode 02 웃는 인형 (7) +4 14.09.24 616 17 25쪽
20 Episode 02 웃는 인형 (6) +4 14.09.23 690 15 18쪽
19 Episode 02 웃는 인형 (5) +4 14.09.22 683 16 10쪽
18 Episode 02 웃는 인형 (4) +4 14.09.20 817 15 21쪽
17 Episode 02 웃는 인형 (3) +6 14.09.19 649 17 18쪽
16 Episode 02 웃는 인형 (2) +4 14.09.18 666 14 19쪽
15 Episode 02 웃는 인형 (1) +7 14.09.17 1,265 23 11쪽
14 Episode 01 빨간 드레스 (완결) +6 14.09.17 591 16 3쪽
13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3) +7 14.09.16 636 17 25쪽
12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8 14.09.15 574 15 20쪽
11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1) +9 14.09.13 561 17 22쪽
10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0) +5 14.09.12 545 17 18쪽
9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8 14.09.11 514 14 17쪽
8 Episode 01 빨간 드레스 (8) +9 14.09.10 717 1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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