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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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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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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글자수 :
2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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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3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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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2)

DUMMY

1. 사이코필드 Psychfield




계영이 유진희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그가 말한 주말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세준은 약간의 흥미를 느꼈다.


“남들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


볕이 좋은 토요일의 오후.


세준은 계영이 불러주는 주소로 차를 몰았다. 서울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의 전원마을이 목적지였다. 두 사람은 회사 앞에서 만나 출발했기 때문에, 목적지까지는 대략 한 시간이 소요됐다.


평상시보다 늦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영은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원래도 창백한 편이지만 햇빛 아래의 안색은 평소보다 안 좋았다.


“아무래도 다음 주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게 뭐든……, 대리님 안색 정말 안 좋아 보여요. 어제도 우리 새벽에 퇴근했단 말이죠. 그 송가연이라는 인간의 보고서 때문에.”


확실히 송가연의 사건을 겪고 나서, 그는 눈에 띄게 좋지 않았다. 그러나 계영은 세준의 염려에도 별로, 하고 대답했다. 그저 상의를 내려 허벅지를 덮더니, 모호하게 에둘렀다.


“다음 주가 되면 더 늦을지도 모르지.”


“더 늦을지도 모르다뇨? 뭐가, 말입니까?”


“여러 가지가 말이야.”


유진희는 두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에 연락해 왔다. 계영이 어둑해지는 거리를 응시하며 통화를 끝냈다. 심각한 겁니까, 세준의 질문에, 어쩌면 심각하지, 계영이 대답했다.


“우리 X팀 사람들이 다들 어떤 비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심각함의 종류를 알려주지 않고 물었다.


“예를 들어 세준 씨는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잖아? 근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둘 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사실 이런 건 아주 드문 케이스잖아? 그런 인간 둘이 그야말로 ‘우연히’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


“우리 X팀의 존재 자체가 인위적이라는 겁니까? 누군가 개입한 거다?”


“아주 대놓고 은밀하게 개입한 거야, 사실.”


“대놓고 은밀하게 개입하다니, 그 말 자체가 웃긴데요, 대리님. ‘누구나 다 아는, 사장의 숨겨진 아들’과 같은 표현이잖아요.”


“역설적으로 그렇다는 거야, 인마. 역설 몰라, 역설? 패러독스!”


“됐고요. 그래서……, 누가 어떻게 개입했다는 겁니까? X팀이 생긴 초창기부터? 그럼 10년이 훨씬 넘는데요? 거의 20년 가까이 되지 않습니까.”


“원래 X팀 자체는 인위적이지 않았지.”


귀찮아하는 말투가 설명했다.


“처음부터 X팀이 인위적인 구성을 가지게 됐다는 말이 아니야. X팀은 회사가 생긴 이래 계속 있었던 팀이기도 하니까. 단지 최근 몇 개월 동안 인위적으로 멤버들이 교체된 것은 맞아. 특히 김태민이나 유진희 같은 경우에는 더 그렇지.”


차는 한적한 저수지 근처의 주택 앞에서 정지했다. 낚시꾼들이 좋아할 만한 저수지 근처였다. 그 저수지의 끝단에 위치한 집은, 외관상 거의 펜션으로 보였지만 규모가 작았다. 일대의 다른 집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관광의 기분보다는 쉬로 오는 장소로 알맞았다. 못은 최근의 내린 비 때문에 수위가 높았다. 시동을 끄는 순간부터, 차의 열기는 급히 식었다.


“그러니까, 대리님 말씀은 X팀이 지금의 팀원들을 가지게 된 것에는 어떤 모종의 음모가 있다……, 이런 겁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만날 사람이 이 상황들을 설명할 거니까 더 이상 음모는 아니지.”


펜션으로 보이는 주택의 문이 열리며 개가 먼저 튀어나왔다. 젊은 남자가 웃는 낯으로 개의 뒤를 따랐다. 세준은 개와 남자를 한눈에 훑어보며 차에서 내렸다. 날씨가 다소 쌀쌀해서 그런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하지만 대리님 말씀에 의하면, X팀의 지금 팀원들이 ‘계획적’으로 구성된 거고,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도착한 이유로 보건대, 태민 씨나 진희 씨도 저와 비슷한 투시를 한다는 말씀으로 해석이 되는데요? 조금 전에 진희 씨가 전화한 이유가 혹시 그런 것에 관련된 겁니까?”


저수지의 북쪽, 가파른 느낌의 산등성이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산에 걸린 노을은 금색 실을 토해내는 거미의 입처럼 보였다. 가득 찬 못의 물길이 금빛으로 넘실거리고, 계영의 안색 역시 더 창백했다. 그는 남자에게 다가서며 흘리듯 대꾸했다.


“맞아. 김태민도 유진희도 자기나 나처럼 X팀에 속하게 된, 그런 저런 이유를 갖고 있지. 다만 그들이 메인 요리가 아니라는 것만 달라. 조금 전 유진희가 전화를 한 이유 역시 그래. 진희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가끔 들어.”


남자가 다가왔다. 세준은 조금 전의 대화를 음미했다. 남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유진희.


왠지 색달랐다. 그냥 쌍봉낙타와 아랍의 스물여덟 번째 왕자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나.


“잘 지내셨나요, 주상현 씨? 이렇게 급하게 연락드리게 되어서 죄송해요. 어느 정도 멤버들이 다 갖춰지면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계영이 인사를 건넸다. 주상현은 얼굴에 비해 투실한 손을 내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항상 제가 죄송하죠. 일이 많으신 걸 알고도, 한세준 씨가 영입됐다는 말에 얼른 만나야한다고 졸라댔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계영 씨가 위험해지니까요. 아, 그쪽이 한세준 씨죠? 저는 주상현이라고 합니다.”


상현의 저택인지 펜션인지 모를 건물은 따뜻하고 방이 많았다. 그는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거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커다란 개는 남자가 앉는 의자 바로 아래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개의 금빛 털은 가을의 논을 연상시켰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듯, 한 칸씩 떨어져서 의자를 차지했다. 개와 사람들로 둥그렇게 둘러싸인 테이블 위에는 빈 다기 세트와 포트가 놓여 있었다. 주상현이 태연한 얼굴로 차를 따라 모두에게 나눴다. 계영과 주상현은 녹차를 마시며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커다란 개가 인간이 듣지 못한 소리를 들은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가 곧 갸웃거렸다.


“궁금해 하시는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세준 씨. 뭐,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궁금해 하시는 게 당연하지만요.”


우리들……?


전날, 계영이 한 말이 떠올랐다. 푸른 수염과 신데렐라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대해 내가 아는 것만큼 알려줄 사람에게 갈 거야.


세준은 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우리들이라고 하시면, 주상현 씨도 계영 대리님이나 저와 같은 상황을 겪고 계신단 말입니까?”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입니다.”


남자는 허물없는 투로 밝혔다.


“저의 경우는 세라 DNA라고 부릅니다. 이런 식으로 부르는 이유는 나중에 설명 드리죠. 아무튼 제가 겪는 증상들은 흔히들 말하는 사이코메트리와 관련이 깊습니다.”


세준이 사이코메트리에 대해 아는 것은, ‘물건’을 통해 어떤 기억을 본다는 점이다.


“사이코메트리라면, 물건을 통해서 물건에 얽힌 과거를 본다? 뭐, 그런 겁니까?”


주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능력들을 의미하죠. 하지만 저의 경우는……, 음, 사실 사이코메트리를 통한 염사念寫에 가깝습니다.”


염사念寫는 심령학적인 용어였다. 심리학에서도 종종 ‘투사’와 같은 의미로 ‘염사’라는 단어를 혼용하지만, 엄밀히 말해 강신술에서 자주 쓰이던 용어다.


“헷갈리시죠? 일단 이걸 보시면서 들으시면 이해가 빠르실 거예요.”


주상현은 커다란 개를 뛰어넘어 맞은편 캐비닛에 다가섰다. 그는 캐비닛 안에서 상자 하나를 안고 돌아왔다. 작은 자물쇠가 달린, 크기가 큰 함석 상자였다. 뚜껑에는 서양 남자와 여자가 그려져 있고, 그들의 복식은 19세기 정도로 가늠됐다. 그밖에도 함석의 칠에서 떨어져나간 부분이며, 닳은 모서리 등이 상자의 나이를 짐작케 했다.


상현이 상자에서 꺼낸 종이 다발 중에도 끝이 누런 것이 섞여 있었다. 그는 그 종이들을 테이블 위에 한 장씩 넓게 펼쳤다. 다 펼쳐진 그것들은, 부두교에서나 쓰일 저주 카드처럼 보였다.


어떤 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선들과 면이 채워져 선뜩했고, 어떤 것은 그의 말처럼 ‘인화’된 필름처럼 테두리가 탄 자국으로 뚜렷한 도형을 표시했다. 몇 장은 미셜 푸코Michel Foucault의 글처럼 난삽했지만, 대부분은 형태상으로나마 직관적이었다. 모두가 불로 찍은 도장처럼 보인다는 공통점은 있었다.


“주상현 씨라고 하셨죠? 이게 뭡니까?


세준은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 그림은……, 아니, 그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 불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은 어린 아이들로 보이고, 이쪽 그림은 같은 아이들이 학습을 받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음, 이 역시 표현이 이상하지만, 어떤 서류들로 보입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주상현이 끄덕였다.


“지금 보신 이 그림들이 바로 제가 염사한 것들입니다. 이 종이는 인화지죠.”


세준은 감탄의 의미로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놀라운데요? 저는 이런 걸 할 줄 아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뭐, 저나 계영 대리님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본다든지 하는 건 사실 이것보다는 더 흔한 일일 것 같아요. TV특종 같은 것에 나가보시는 것이……?”


“분포 빈도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능력치로 따지면 별로 대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이코필드에서는 한세준 씨나 권계영 씨와 같은 경우를 더 높게 치죠.”


사이코필드?


염사 용지 중 하나, 개중에서도 어떤 서류를 찍은 것처럼 그려낸 종이에 Psychfield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주상현이 말한 ‘사이코필드’였다.


“사이코필드가 뭡니까? 우리나라 말로 옮기면 굉장히 이상한 조합인데요? 정신력의 장場?”


“장場 혹은 마당이라고도 하지.”


계영이 대답했다.


“상현 씨가 말한 사이코필드 역시 물리의 개념과 유사하거든. 물리학에서도 필드의 개념은 정말 중요해. 예를 들어 전기력이 있으면, 이 힘이 닿는 범위가 바로 전기마당, 혹은 전기력장, 또는 쉽게 전기장이라고 부르잖아? 사이코필드는 네가 말한 강신술적인 개념에서 정신적인 힘이 미치는 영역, 혹은 그것들이 SNS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끼리의 네트워크 마당을 설명하는 거야.”


“좀 더 쉽게 설명해 드리죠.”


상현은 계영의 장광설에 익숙한 듯, 웃으며 끼어들었다.


“한세준 씨, 혹시 어린 시절에 겪고 계신 투시 현상 때문에 병원에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까?”


병원이라면 자주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까지도 자주 다녔던 것 같다. 의료진도 시시때때로 바뀌었고, 병원 자체도 자주 옮겨 다녔다.


“물론 다녔죠. 어머니가 저를 병원에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나요.”


“그게 몇 살 때쯤의 일입니까? 처음 시작이요.”


“아, 제가 아무리 천재여도, 그런 일은 처음이 언제였는지는 기억하기에는……! 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요. 그때는 뭐든 보이는 대로 말하니까요.”


숨기는 것에 익숙해진 것은 어른이 되면서부터다. 어쩌면 어른이란, 비밀을 이해하고 생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달 수 있는 타이틀이다.


상현이 동의했다.


“그렇겠죠. 아이들은 의외로 선입견 없이 자기가 보는 것을 솔직히 말하니까요.”


그는 함석 상자에서 사진 몇 장을 더 꺼냈다. 굉장히 오래된, 젊은 두 남자의 대학 졸업 사진이었다. 상현은 그 사진 속 인물 중에 오른쪽을 가리켜 “김덕원 교수.” 라고 칭했다. 사진 속 김덕원은 약간 신경질적인 턱과 눈빛에, 다소 홀쭉한 뺨을 가진 남자였다. 세준에게는 왠지 낯이 익었지만, 실제 기억은 전무했다.


김덕원 교수의 반대쪽에 있는 인물은 키가 크고, 김덕원보다 어깨가 넓으며 살짝 구부러진 코를 가진 남자였다.


남자들의 살쩍은 보기 좋게 정돈되어 있었다. 둘 다 생김새나 옷차림은 정반대임에도 인텔리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두 사람 뒤로 걸린 「〇〇국립대학교 졸업식」이라는 현수막이, 사진의 배경을 더 학구적으로 포장했다.


“김덕원 교수의 옆에 있는 사람이 승재준 교수라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세 살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대학 졸업 동기죠.”


그나저나 김덕원 교수라는 사람은 정말 낯이 익었다. 세준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상현은 “어떻습니까.”하고 도려 물었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 것 같습니까?”


“……그러게요. 분명히 낯이 익습니다. 하지만 전, 이 김덕원 교수라는 사람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 걸요. 이름조차도 말입니다. 음, 혹시 제가 다니던 회사 고객이었을까요?”


김덕원이 어느 대학 교수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학창 시절에 만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어떤 가능성이든 부정하는 투였다.


“그런 식으로 만난 인물은 아닐 겁니다. 제가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면 비교적 이해가 쉽겠죠. 시작은 상당히 거창합니다. 1940년대에서 50년대를 거쳐 오면서, 그러니까 2차 대전 직후 냉전시대 때,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대학을 시작으로 해서, 몇 개의 대학과 MI6나 MI5와 같은 첩보기관들이 같이 연계해서 흔히들 말하는 심령적인 현상, 혹은 초능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연구했습니다. 의외로 이 연구는 굉장히 오래, 그리고 많은 데이터들을 가지고 실행됐거든요. 대개 이런 자료들은 군 기관이나 정보기관에서 secret, confidential로 다루는데, 그중에서도 이 연구는 냉전시대 당시에는 거의 Top에 속했죠. 하지만 냉전시대가 끝나고 90년대 초반쯤부터 천천히 자료가 풀리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 연구에 반쯤 참가한-예를 들면 문틈에 낀 고양이처럼- 한국 출신의 과학자가 있었다. 그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주상현의 설명에 의하면 남자였고, 70년대에 고국으로 돌아와 비슷한 내용을 실험하고자 했다.


세준은 뜬금없이 그런 배경이 이 역사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70년대라면 냉전이 극으로 치닫던 시대. 검은 비밀이 난무하던 시대.


어쨌든 누군지 모를 과학자가 제기한 이 얼토당토않은 심령 실험은, 놀라울 정도로 그럴 듯하게 진행됐다. 문제의 과학자는 상현의 커다란 개처럼, 끝까지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의 설명에서 중요한 점은, 사진 속의 두 인물, 김덕원과 승재준 교수가 그 연구들을 마지막까지 진행했다는 점이다.


“당시 승재준은 영국에 있었습니다. 김덕원은 한국에서 같은 실험을 진행했고요. 아주 비밀스러운 작업이었죠. 방식은 이랬습니다. 각종 병원과 그때 당시만 해도 미비했던 센터 같은 곳에서 의뢰가 들어온 ‘특이 증후군’ 아이들을 김덕원 박사가 직접 테스트합니다. 이미 병원이나 센터와는 서로 긴밀히 이야기가 된 시대죠. 그때는 전 세계 어디라도, 군복의 말을 들어야 하는 시대였으니까요.

이렇게 선별된 아이들을 뽑아서 ‘영재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숙소에 두고 관찰했습니다. 제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테스트는 계속되었어요. 그리고 몇 개월 뒤에 최종적으로 서로 비슷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 10명이 명단에 남았습니다.

승재준 교수는 영국에서 친구인 김덕원이 실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자료들을 모으고 비밀리에 전달했다면, 김덕원 교수는 친구와 자기 자신, 그리고 몇몇 연구원들만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코드로 이 이상한 아이들의 능력치와 활용 방법 등을 모색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 연구지만 알아볼 수 있게 분류했던 코드들이 바로 이런 이름들입니다. 모두가 각 아이들의 특색에 맞게 동화나 신화 같은 것에서 따온 것들이에요.”


상현이 염사로 찍은 서류에는, 인장처럼 흐릿한 글자를 볼펜으로 덧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볼펜으로 각을 세운 단어들은, 아이들이라면 대체로 알만한 명칭들이다.


하이드, 지킬, 푸른 수염, 신데렐라, 세라, 플랜더스, 거울, 트로이, 사이렌, 노간주나무.


“이들은 모두 동화나 신화에서 따온 겁니다. 하이드와 지킬은 잘 아시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그리고 푸른 수염과 신데렐라는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에서, 세라는 버넷 여사의 책 「소공녀」의 주인공에서 따온 겁니다. 플랜더스는 원래라면 프랑스와 벨기에에 맞닿은 지방 이름이지만, 사실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그 플랜더스를 부르는 코드명입니다. 거울은 백설 공주에 나오는 거울을 의미하고요, 트로이는 신화에 나오는 그 트로이를 뜻합니다. 사이렌 역시 요괴를 의미하고, 노간주나무는 의붓아들을 죽이고 갈아서 뼈를 노간주나무 아래 심었더니 그 아들이 새로 태어나 복수를 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동화로, 그림 형제의 이야기책에 나오죠. 10명의 아이들은 모두 이 코드명에 걸맞은 어떤 특이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10명의 아이들. 그리고 10개의 코드명.


인화지 속에의 아이들은 역시 화염으로 찍은 도장처럼 보였다. 아이들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달라붙은 코드명은 선명했다.그 글자들 안에는 「하이드 DNA」도 있었다.


“나는 하이드 DNA라고 했죠? 계영 선배는 지킬 DNA였을 것이고……. 근데 내가 영재 교육이라는 걸 받은 적이 있나?”


세준은 혼란에 잠겨 뇌까렸다.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상현이 슬쩍 뻐기는 투로 답했다.


“이 역시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리들 대부분이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저도요. 제가 알기로 우리는 마지막에 해산할 때 강력한 암시를 받았거든요. 하지만 그 뛰어난 의료진들도 실수를 했죠.”


상현은 즐거운 눈빛으로 「세라DNA」라고 적힌 아이를 가리켰다.


“아마도 그때의 김덕원 교수와 연구진들은 내가 세라 DNA, 그러니까, 저도 읽어보지 않은 동화라서 왜 세라DNA라고 불렸는지 한참 헷갈렸습니다만, 아무튼 그런 코드명이어서, 사물이나 물건을 통해서 기억을 읽고 그걸 해석할 수 없더라도 도장처럼 찍어낸다는 걸 간과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몇 가지 물건은 가지고 퇴소를 했고, 그 물건들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기억들이 계속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증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염사하는 것을 뭔지를 해석하려고 평생을 바치겠죠.”


인간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간주할 때 평화롭다. 세준은 그런 평온을 얻기까지 꽤 긴 시간을 방황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광기에 대한 염려는 아니었다. 방황의 시작은 오히려 ‘그것을 누군가와 나눌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공감해야 한다. 인간은 연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고립의 미칠 듯한 허기가 평화를 전복한다.


염사로 남겨진 10명의 아이들은 모두 꼬리표를 달았다. 그들의 인식 능력은 언젠가 박훈철이 이야기한 0.01%와도 관련이 있었다.


하이드, 지킬, 푸른 수염, 신데렐라, 세라, 플랜더스, 거울, 트로이, 사이렌, 노간주나무.


그리고 0.01%라는 수치, 플러스와 마이너스.


모든 것은 코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 작성자
    Lv.22 더마냐
    작성일
    14.11.30 09:52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12.03 18:48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36 온연두콩
    작성일
    14.11.30 10:17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12.03 18:49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4.12.01 23:57
    No. 5

    아니 두 분, 왜 이렇게 비밀스러워요. 궁금해지잖아요. 나도 비밀 댓글 달 테닷. +_+
    그러나 전 비밀이 없는 순결한 뇌인지라....
    그나저나 열 개의 코드네임이 나왔네요. 진희씨는 딱 봐도 알 이름이 있는데 태민은 뭘까요. 왕. 이거 완전 궁금해요.>_<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12.03 18:51
    No. 6

    흐흐흐흐...^^ 저도 비밀이 별로 없는 청순한 뇌의 소유자입니다..흐흐흐...
    진희씨는...네, 사이렌DNA이죠! ^^
    태민이 편은 이번 에피소드 쯤 어딘가에서 '수줍게' 공개될 예정입니다. 태민이 생각보다 별 능력 없나 봐요..ㅠ__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젤라
    작성일
    14.12.11 20:05
    No. 7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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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pisode 02 웃는 인형 (6) +4 14.09.23 690 15 18쪽
19 Episode 02 웃는 인형 (5) +4 14.09.22 683 16 10쪽
18 Episode 02 웃는 인형 (4) +4 14.09.20 817 15 21쪽
17 Episode 02 웃는 인형 (3) +6 14.09.19 649 17 18쪽
16 Episode 02 웃는 인형 (2) +4 14.09.18 666 14 19쪽
15 Episode 02 웃는 인형 (1) +7 14.09.17 1,265 23 11쪽
14 Episode 01 빨간 드레스 (완결) +6 14.09.17 591 16 3쪽
13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3) +7 14.09.16 636 17 25쪽
12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8 14.09.15 574 15 20쪽
11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1) +9 14.09.13 561 17 22쪽
10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0) +5 14.09.12 545 17 18쪽
9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8 14.09.11 514 14 17쪽
8 Episode 01 빨간 드레스 (8) +9 14.09.10 717 14 10쪽
7 Episode 01 빨간 드레스 (7) +5 14.08.03 818 15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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